소설리스트

63. 도망자 (2) (63/85)


63. 도망자 (2)
2023.03.25.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목조 주택에 숨어 있었던 것이 사달이었다.

만약 콘크리트로 지은 주택이라면 아무리 상급 범이라도 쉽게 무너뜨리지는 못했을 테니까.

제하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파편을 피하며 손을 뻗었다.

덥석-!

하루의 멱살을 잡아서 끌어당기는 것과 동시에.

쿠웅-!

하루가 서 있던 자리에 커다란 인영이 떨어져 내렸다.

후두둑-

부서진 건물 조각들이 떨어졌지만, 상대는 꿈쩍도 하지 않고 붉은 안광을 빛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제하는 척살검을 찾아서 허리로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손가락 끝에 걸리는 것이 없었다.

잠자리에 들려던 차라 검집을 식탁 옆에 세워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식탁은 지금 무너진 건물 잔해에 파묻혀 있었다.

‘다른 녀석들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있던 일행이 보이지 않았다.

“눈알.”

그때 상대의 목소리가 음산하게 울렸다.

“굴리지 마라!”

쌔액-!

하루의 멱살을 잡은 채로 날아오는 손톱을 피했다.

제하에게 딸려가며 하루가 외쳤다.

“나는 내가 알아서 해! 검이나 찾아!”

그제야 굳이 하루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약하지 않다는 걸 떠올렸다.

하루의 말대로 검을 찾아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일행이 무사한지 걱정돼서 제대로 상황을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상대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덮쳐왔다.

검은 안개가 번져 시야를 가리고.

스아아악-!

무언가가 빠르게 접근해오는 소리가 들렸다.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했지만, 완벽하게 피하지는 못했다. 허리에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제하!”

왼쪽에서 세인의 외침이 들려왔다.

“안개에 닿지 마!”

호수의 목소리도.

‘무사하구나.’

모두의 목소리를 확인한 건 아니지만, 다른 일행도 괜찮을 거라고 믿었다.

쌔애액-!

날아온 손톱이 제하의 팔뚝을 깊이 베었다.

안개로 눈앞이 가려진 데다가 무기도 없는 상태에서 놈을 상대하기는 힘들다.

일행도 검은 안개에 덮여 있거나 바깥쪽에 있어서 제하를 돕기는 힘든 상황일 터였다.

‘다음 공격 때.’

제하는 도망치는 대신 똑바로 서서 정면을 노려봤다.

사아악-!

예상대로 놈의 손톱은 제하의 가슴을 노렸다.

제하는 피하지 않고 두 손으로 손톱을 붙잡아 꺾었다.

콰직-!

손톱이 부러지자, 놈이 작게 욕설을 뇌까렸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던 검은 안개가 흐릿하게 사라지며, 가까이에 서 있는 놈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회색에 갈색 줄무늬가 있는, 흉악한 인상의 범.

“마로…….”

마로의 콧등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네놈도 내 동생처럼 죽여주마!”

“잠……!”

마로는 해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발로 제하의 복부를 차서 밀어낸 마로가 남은 9개의 손톱으로 제하를 공격했다.

채앵-!

하지만 그 손톱은 주안의 창에 막혔다.

먼지를 뒤집어쓴 주안이 마로를 향해 옅게 웃었다.

“여기 제하만 있는 건 아니라서.”

마로의 입술이 벌어졌다.

“그럼 나는 나만 있는 줄 알았나?”

“뭐……?”

“크허어어엉!”

마로가 포효했다.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검은 안개가 일렁거리며 일행을 향해 달려왔다.

“젠장!”

세인이 양손에 단검을 하나씩 쥐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환이 시위를 당기고, 도건의 총에서 총성이 터졌다.

타앙-!

그렇게 피하고 싶던 범과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

처음에는 착호가 밀렸다. 제하에게는 무기가 없고, 갑작스러운 공격이라 충분한 대비를 못한 탓이었다.

제하가 마로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는 동안, 하루는 다른 동료를 도우며 척살검을 찾아서 잔해를 뒤졌다.

터엉-!

제하의 목을 가르려던 마로의 손톱이 제하의 단단한 팔뚝에 막힌 게 벌써 다섯 번째.

마로의 눈동자가 음울하게 빛났다.

“강철 피부를 사용하는군. 그러면서도 빠르고. 역시 넌 그놈이랑 너무 똑같아.”

“그놈이라는 건…….”

마로는 제하가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터엉-!

막힐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손톱을 찔러넣었다.

그렇게 하면 한 번쯤은 공격이 먹혀들 것이라는 듯이.

마로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마로를 상대하는 내내 몸을 강화시키고 있던 제하는 서서히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말 그대로 강철처럼 단단했던 피부가 점점 물러지고 있었다.

이제 두, 세 번 더 저 공격을 막으면 팔이 잘릴 것이다.

마로는 슬쩍 뒤를 돌아봤다.

마로와 함께 온 범은 고작 3명.

“네 동료들은 둘이 한 명도 제대로 상대하지 못하는군. 그런 주제에 내 동생을……!”

“그건 내가 한 게……!”

터엉-!

“윽!”

마로의 손톱이 결국 제하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찡하게 울리는 통증에 제하가 작게 신음하는 걸 마로는 놓치지 않았다.

마로가 다시 손톱을 휘두르려고 할 때였다.

타앙-!

탕-!

타다다다다다-!

여기저기서 총성이 울렸다.

“크아아악!”

“뭐, 뭐야!”

“마로, 조심해!”

회색 범이 날 듯이 달려와서 마로를 덮치듯 구르자마자 그 자리로 총알 세례가 이어졌다.

하나하나 힘이 담긴 총알이었다.

마로가 붉은 눈을 번뜩이며 총을 쏜 상대를 찾아 허공을 둘러보는 동안, 하루가 척살검을 찾아냈다.

“제하!”

하루가 던진 척살검을 향해 제하가 달려갔고, 마로 역시 척살검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제하가 척살검의 손잡이를 잡는 것과 마로가 검집을 잡는 건 거의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아니야!”

척살검을 뺏으려 하는 마로를 향해, 제하가 으르렁거리듯 내뱉었다.

“그건 내가 아니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타다다다다다-!

타앙- 탕- 탕-!

다시 시작된 총성이 마로의 말을 끊었다.

제하는 아까 마로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배를 발로 차서 밀어내고 척살검을 뽑았다.

척살검이 그 모습을 드러내자 범들의 눈동자가 술렁거렸다.

어딘가에 몸을 감춘 채 지원 사격을 하는 인물들. 그리고 척살검.

이번에는 범 쪽이 불리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마로의 눈빛만큼은 여전히 기세 좋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제하의 가슴이 싸늘하게 식었다.

“너도 인간들을 고문해서 죽였잖아.”

비릿하게 흘러나온 음성이 제 것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너도 내 친구의!”

제하의 손가락이 환을 가리켰다.

“부모님이랑 동생을 고문해서 죽였잖아! 너희들도! 내 친구의!”

주안을 가리켰다.

“연인을!”

도건을 가리켰다.

“가족을 죽였잖아!”

마로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제하는 놓치지 않았다.

제하는 척살검을 비스듬히 들고 마로에게 달려들었다.

“마로!”

범들이 외쳤지만 제하가 더 빨랐다.

척살검이 마로의 가슴팍을 찌르고 들어가려는 순간.

휘릭-!

날아온 밧줄이 척살검을 감아 고정시켰다.

“아가야. 우리가 하려는 건 복수가 아니지 않느냐.”

증오와 복수심으로 불타는 현장에서 하루의 나지막한 음성이 평화로웠다.

제하는 이를 으득 갈면서 마로를 노려봤다.

이번에는 제하의 눈동자가 증오를 머금은 채 흉흉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 부모님을. 죽였잖아. 너희도.”

제하의 검이 움찔했지만 하루의 밧줄이 단단히 묶고 있어서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석상처럼 굳어 있는 마로를 향해 제하가 손을 뻗었다.

제하의 손바닥이 마로의 가슴을 향하는 동안에도 마로는 꼼짝하지 않고 서서 제하의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타악-!

제하가 손바닥으로 마로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가.”

“…….”

“가서 그 눈으로 그 영상을 한 번 더 똑바로 봐. 그 짓을 한 게 정말로 나인지 제대로 확인하라고.”

마로는 지금 이 순간 착호가 마음을 먹으면 이 자리에 있는 범을 모두 죽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들뿐이라면 좀 힘들겠지만 이곳저곳에 모습을 감춘 지원군이 있으니, 아무리 상급 범이라도 모두를 상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대로 보내주겠다고?”

“그래. 죽여버리고 싶은데.”

제하는 환의 허락을 구하듯 그를 돌아봤다.

환은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고 있었다.

제하와 시선을 마주친 환은 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널 죽여버리고 싶어 하는데.”

척살검을 쥔 손에 힘이 들었다.

“우리가 죽여야 할 게 범은 아닌 것 같거든.”

 
+++

위기일발의 순간에 착호를 도운 건 호랑나비 팀이었다.

범들이 떠난 후 모습을 드러낸 동철의 모습에 제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철은 제하를 죽이려 들었는데, 이번에는 착호의 목숨을 구했다.

전시에는 적이 아군이 되기도 하고 아군이 적이 되기도 한다는데, 정말 그런 모양이다.

호랑나비 팀은 차나 오토바이를 가져와서 착호를 태워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하와 하루는 동철이 운전하는 차에 탔다.

다른 일행은 동철의 부하들이 운전하는 자동차나 오토바이에 나눠서 타기로 했다.

그래야 혹시 모를 습격이 있을 때도 대응하기 쉽기 때문이었다.

자동차가 달리는 동안, 뒷좌석에 앉아 있던 제하는 가만히 동철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이 인간을 믿는 게 옳은 선택일까?’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다른 범 사냥꾼들과 함께 지내는 편이 범들을 피하기에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게다가 진짜 적은 범이 아닌 다른 존재이니만큼 고립된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동철을 완전히 믿지 못하면서도 도와주겠다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동철은 괴물을 본 적 없으면서도 괴물이 존재한다는 걸 믿기에 착호를 구하러 왔다.

과거의 해묵은 은원은 미뤄두고 힘을 합쳐야 할 때, 괴물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있다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당신도 그 동영상 봤지?”

“어, 봤지.”

“그걸 보고 나한테 뭔가 기대하는 게 있다면 관둬. 그건 내가 한 짓이 아니니까.”

“알아.”

“……안다고?”

동철이 백미러로 제하를 흘끔 쳐다봤다.

“네놈 깜냥에 그런 근사한 짓을 해낼 것 같지는 않았거든. 너, 맹탕이잖아. 아까도 그놈들을 다 놔주고.”

“……맹탕이라니.”

어이가 없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짓을 한 게 자신이 아니라는 걸 믿어줘서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때는 죽일 듯 밉다가도, 작은 신뢰, 작은 은혜 하나로 쉽게 바뀌기도 하는 것이 감정인 걸까?

그러면서도 결코 바꿀 수 없는 감정 또한 존재하기에, 관계라는 것을 이어가는 건 쉽고도 어려운가 보다.

한참을 달리던 자동차가 어느 건물 지하로 들어갔고, 거기서 차에서 내려 다른 건물로, 또 다른 건물로 몇 번을 더 이동한 끝에야, 그들은 호랑나비 본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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