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 괴물이 온다. (1) (68/85)


68. 괴물이 온다. (1)
2023.04.29.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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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오십육. 백오십육.’

지귀는 주위를 둘러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까지 먹은 인간의 숫자가 156명.

인간을 먹은 만큼 힘이 축적되고 있었다.

평범한 인간보다는 범 사냥꾼을 먹는 편이 낫다.

하지만 요새 범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범 사냥꾼도 자취를 감췄다.

전에는 포수를 누르면 곧바로 범 사냥꾼이 달려왔는데, 요새는 그런 일도 많이 줄었다.

포수를 누르는 사람이 줄어든 것이다.

그 이유는 범의 공격이 사라진 탓도 있지만, 사람들 사이에 묘한 소문이 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포수를 누르면 괴물이 온다.

왜 그런 소문이 퍼졌는지는 모른다.

대부분은 코웃음을 쳤지만, 그렇다고 그 소문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다.

인간들은 한 번 ‘범’을 경험했다.

이 세상에 인간이 아닌 ‘범’이라는 존재가 있으니, 어쩌면 괴물 또한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들은 포수를 누르지 않게 되었다.

‘나는 상관없지만…….’

지귀는 이미 인간이 되었으니, 여기서 더 이상 인간을 먹을 필요는 없었다.

다만 강해지고 싶기에, 조금 더 아버지 환웅 가까이로 가고 싶기에 기회가 날 때마다 먹고 있을 뿐.

‘동생들은 먹어야지.’

인간이 ‘괴물’이라 부르는, 지귀의 동생들.

환웅의 자식들.

알에서 막 깨어난 그들은 작고 연약하다.

인간이든, 범이든, 살아 있는 생명을 먹어야만 점점 커지며 그 능력을 개화할 수 있다.

그리고 100개의 생명을 섭취했을 때, 인간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현재 인간이 된 형제들은 지귀까지 포함해서 27명.

지귀는 27명으로도 충분히 이 신시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멸하고 아버지 환웅의 세상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환웅의 생각은 달랐다.

-“인간들은 때로 생각지 못한 힘을 발휘하기도 하지. 그게 아주, 아주 거슬린단 말이야.”

환웅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했다.

-“아직은 안 돼. 지금 인간들이 너희의 존재를 눈치채면, 다른 건 다 미뤄두고 뭉치려 할 거다. 그건 좋지 않아. 아주 좋지 않지.”

조금 더 많은 아이가 인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그때까지는 인간들에게 들키지 않게 다니라고, 환웅은 말했다.

뭉쳐 다니는 인간들을 눈에 띄지 않게 몰래 잡아먹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포수가 자주 울릴 때는, 그 싸움에 편승해서 범도, 범 사냥꾼도, 인간도 잡아먹을 수 있었지만, 요새는 그런 일이 드물어서 동생들의 발전이 더뎠다.

그래서 지귀는 동생들에게 힘을 좀 보태주기로 했다.

“윤수야, 여기!”

소란스러운 호프집.

구석에 앉아 있던 한 무리의 인간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손을 들었다.

지귀가 잡아먹고 변신한 ‘윤수’라는 대학생의 친구였다.

지귀는 며칠 전부터 ‘윤수’로 살아가는 중이었다.

‘윤수’로 생활하며, 오늘의 약속을 만들었다.

“야, 네가 만나자고 했으면서 네가 제일 늦게 나타나냐?”

“하여간, 이 새끼는 전부터 약속을 지키는 법이 없어요.”

윤수의 친구들이 웃음 띤 얼굴로 툴툴거렸다.

지귀는 왜 저 인간들이 화를 내면서도 웃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윤수’의 습관대로 싱긋 웃으며 답했다.

“새끼들, 얼마나 기다렸다고.”

이 자리에 모인 윤수의 친구들은 5명이지만, 호프집 전체에는 사람이 더 많았다.

최근 범이 나타나지 않는 게 거의 확실해지자, 사람들은 그동안 억눌러온 것을 터뜨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며 놀기 시작했다.

‘포수를 누르면 괴물이 온다.’, 혹은 ‘신시에 괴물이 산다.’라는 소문이 돌기는 하지만, 범과 달리 괴물을 실제로 본 사람은 거의 없기에, 범이 나타났을 때보다는 몸을 사리는 사람이 적었다.

대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이 넓은 호프집에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지귀는 몹시 흡족했다.

‘동생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겠어.’

아직 인간이 되지 못한 동생들은 조금 아둔하기 때문에, 머리를 써서 남몰래 인간을 먹는 법을 잘 모른다.

그나마 아는 방법이라고는 포수가 울리는 곳으로 달려가는 것뿐.

그런 동생들을 위해, 지귀는 오늘 이곳에 포식의 장을 열어주기로 했다.

“야, 우리 이러고 얘기만 하는 것도 지겹지 않냐? 게임이나 하자.”

지귀는 분위기가 무르익기를 기다렸다가 말했다.

“게임은 뭔 게임이야, 애도 아니고.”

“그런 건 졸업했다.”

친구들이 어깃장을 놨지만, 지귀는 계속해서 말했다.

“왜? 쫄리냐?”

“쫄리긴. 야, 엠티 때 너 게임 겁나 못해서 사발로 마시고 맛탱이 갔던 거 기억 안 나냐? 두 번 다시는 게임 안 하겠다고 했잖아.”

“맞아, 맞아. 너, 그때 진짜 진상이었는데.”

그런 기억 같은 건 없었지만, 지귀는 기억나는 척 웃었다.

“뭐야, 쫄리네. 그럼 말고.”

“아씨. 뭔데? 뭐 걸고 하게? 술 사발로 마시기?”

“아니. 그런 건 재미없지. 포수 누르기 어때?”

“어? 포수?”

순간, 술자리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포수라는 말을 듣자, 범에게 당하고 살았던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귀는 모르지만, 윤수의 친구 중에는 범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

윤수는 특히 그 사람을 많이 신경 썼기에, 친구들은 ‘윤수’가 갑자기 포수 얘기를 꺼내서 범 생각이 나게 만드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범에게 엄마를 잃은 지선은, 자기 때문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는 걸 깨닫고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왜들 그래? 오랜만에 이러고 노는 건데, 옛날 생각하면서 술 게임 하는 것도 괜찮겠네. 그런데 포수를 누르는 건, 좀 그렇다. 그러다가 진짜로 범 사냥꾼들이 와주면 어떡해?”

‘윤수’가 싱긋 웃었다.

“그러니까 벌칙인 거지. 범 사냥꾼이 오면 제대로 사죄하고 술 한잔 드시고 가시라고 하는 것까지 하면 되잖아.”

“글쎄. 포수는 안 누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또다시 반박한 건 지선이 아닌, 다른 친구였다.

“내가 저번에 인터넷에서 봤는데, 포수 누르면 괴물이 나온다더라.”

“아, 나도 그거 봤는데…….”

“그런데 어떤 괴물을 말하는 거지?”

“뭔가 되게 징그럽고 무시무시한 게 있대.”

친구들이 제각각 떠드는 걸, ‘윤수’는 묘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그리고 그런 ‘윤수’를 지선 또한 지켜보고 있었다.

‘윤수가…… 오늘 좀 이상한데.’

평소에는 조용한 편인 윤수가 먼저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벌칙을 제안하는 것도, 이 자리에 지선이 있는데도 배려 없이 범과 관련된 포수 얘기를 꺼내는 것도 이상했다.

“그래서 괴물을 믿으신다? 무서워서 게임을 못 하겠다?”

이윽고 ‘윤수’가 친구들의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그는 자신을 돌아보는 친구들을 향해 히죽 웃으며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그럼 내가 누르지, 뭐.”

윤수가 포수를 눌렀다.

순간 테이블이 고요해졌다.

“이 미친…….”

먼저 정신을 차린 친구 한 명이 욕설을 내뱉었다.

“야, 미쳤어? 너 그러다가 진짜로 범 사냥꾼이 오면 어쩌려고 그래?”

“저 새끼, 저거. 진짜 왜 저러지? 야, 너 뭐 잘못 먹었냐?”

“그거 얼른 취소해! 야, 씨. 저거 누가 불렀어?”

“누가 부르긴. 저 새끼가 오늘 모이자고 했잖아! 미친놈이…….”

친구들의 아우성에도 ‘윤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웃었다.

그런 윤수를 가만히 지켜보며, 지선은 생각했다.

‘윤수, 쟤…… 눈동자가 원래 저렇게까지 새까맸었나?’

윤수의 눈동자는 마치 암흑 같았다. 빛 한 조각 없는, 끝도 없는 암흑.

안 그래도 어두컴컴한 호프집에서, 윤수의 눈동자는 더 어두웠다. 주위의 빛을 모조리 흡수하는 듯이, 그렇게 새까맸다.

‘이상해…….’

등골이 서늘해진 지선은, 자기가 너무 과하게 생각하는 거라며 다른 친구들의 눈동자를 확인했다.

아무리 어두워도, 친구들의 눈동자는 윤수의 것처럼 까맣지는 않았다.

‘뭔가 좀 이상해.’

친구들의 눈동자는 호프집의 어슴푸레한 조명 빛을 받아서 반짝거렸다. 그에 반해 윤수의 눈동자는.

‘빛나질 않아. 전혀…….’

아무리 어두운 조명이라도 그걸 받으면 빛이 반사되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소름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뭔가 잘못됐어.’

+++

윤수의 친구들이 험악하게 아우성치는 걸 보며, 지귀는 속으로 웃었다.

힘도 없는 인간 따위, 지귀 혼자서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쉬운 건 재미없다.

지귀는 인간들 사이에 섞여서 그들을 관찰하고 그들을 조롱하고 그들이 겁에 질린 모습을 지켜보는 게 좋았다.

대응할 힘을 갖지 못한 인간들이 지귀가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 공포로 무너지는 모습에서 희열을 느꼈다.

지귀는 미소 띤 얼굴로 윤수의 친구들이 욕설을 내뱉다가 점차 잠잠해지는 걸 지켜봤다.

“요새 범 사냥꾼들이 포수 눌러도 잘 안 온다는 얘기가 있던데…… 진짜 그런가 보네.”

그렇지 않았다.

이번에는 범 사냥꾼이 제대로 도착했다.

중무장한 범 사냥꾼 4명이 호프집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왔다.

“어디야!”

그들은 당장이라도 범을 공격할 듯 흉흉한 분위기였다.

윤수의 친구들은 범 사냥꾼들의 등장에 얼어붙었다.

오더라도 한 명만 오지, 4명이나 올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범 사냥꾼들은 시민들이 찍은 동영상으로 봤을 때보다 더 비장한 분위기였다.

호프집 안에 있던 사람들과 윤수의 친구들의 시선이 모두 범 사냥꾼에게 향했을 때, 지귀는 슬며시 일어나 모습을 감췄다.

175cm의 건장한 사내였던 지귀의 모습이 호리호리하고 자그마한 여자로 바뀌는 걸 목격한 사람은.

‘저게 뭐야? 방금…… 방금 윤수가…… 어떻게 된 거지?’

지선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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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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