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괴물이 온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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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괴물이 온다. (2)
2023.05.06.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호프집에 들어온 범 사냥꾼 중 한 명인 연미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둘러봐도 ‘범’처럼 보이는 건 없었다.
호프집은 평화로웠고, 범 사냥꾼들이 그 분위기를 깬 것만 같았다.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범 사냥꾼들을 쳐다보는 와중에, 한 테이블에 있던 남자가 옆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람들이 포수를 누르는 걸로 게임을 했어요.”
게임?
연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게임이라고?
안 그래도 요새 범이 나타나질 않아서 먹고살 길이 끊겼다.
그런 와중에 착호 쪽은 괴물이 있네, 어쩌네 하면서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범 사냥꾼들은 두 개의 파로 나뉘었다.
괴물을 믿는 쪽, 믿지 않는 쪽.
연미와 동료들은 괴물을 믿지 않는 쪽이었다.
지난번에 착호가 구립 체육관에서 모이자고 했을 때 가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끔찍한 게 이 신시를 돌아다닌다는 걸, 그런데 아무도 그걸 본 적이 없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야, 이 새끼들아! 이 사람 말, 진짜야?”
연미의 동료인 수철이 버럭 외치며, 대학생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로 달려갔다.
대학생들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서로 눈치를 봤다.
그중 한 여자는 거의 까무러칠 것처럼 파랗게 질려 있었다.
“대답해, 이 새끼야!”
수철이 한 남자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며 외쳤다.
남자는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툭 떨어뜨렸다.
“저, 저기…… 저기,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그게…… 저희가 너무 취해서…….”
“너무 취해? 우리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건데, 너무 취해서 게임을 하다가 포수를 눌렀다고?”
“그게…… 자,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용서해주세요.”
“이 미친 새끼들이! 죄송하다고 하면 끝날 문제……. 넌 또 뭐야?”
수철은 자기 팔뚝을 잡은 지선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친구를 돕기 위해 나서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선의 표정이 심상찮았다.
핏기가 가신 얼굴, 뭔가에 놀란 듯 열린 동공.
“유…… 윤수가…… 윤수가……”
“뭐? 윤수? 그게 누군데? 이 새끼 이름이 윤수야?”
지선이 고개를 저었다.
크게 뜬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윤수…… 윤수가…….”
그때였다.
“엄마야! 이게 뭐야?”
“강아지 아냐?”
“아, 아냐…… 강아지가…… 흐아아아악!”
“으아아아아!”
“괴, 괴물이다!”
호프집 주방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사…… 살려…….”
“꺄아아아아아아!”
범 사냥꾼들은 무기를 고쳐 쥐고 주방으로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홀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으아아…….”
“도, 도망…….”
“아아아악!”
사람들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입구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그들은 나갈 수 없었다.
이미 입구 쪽도 막혔기 때문이다.
방금 전, 범 사냥꾼들이 들어온 그 입구 앞에, 언제 나타났는지 검고 호리호리한 것이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며 서 있었다.
‘그것’은 잿빛 피부를 가진 남자 같은 몸통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곤충 다리처럼 생긴 끈끈하고 두꺼운 무언가를 갑옷처럼 온몸에 두르고, 눈코입이 있어야 할 얼굴에 구멍만 여러 개 뚫려 있었다.
마치 거대한 지렁이 같은 촉수 여러 개가 ‘그것’의 목 뒤에 붙어서 꿈틀거렸고, 하체에는 문어 다리 같은 게 붙어 있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얼어붙었다.
비명을 지를 생각도 못 한 채,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것’을 응시했다.
그건 범 사냥꾼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은 상상의 범주를 벗어난 걸 목격하게 되면 생각이 멈추곤 한다.
급박한 상황인데, 뇌에 과부하가 걸린 듯 멈춰버렸다.
“아악!”
하지만 그것도 잠시.
구석에 있던 남자의 날카로운 비명에, 다들 정신을 차렸다.
언뜻 보기에는 커다란 개나 고양이처럼 보이지만, 입이 여러 개인 괴물이 한 남자의 허벅지를 물어뜯고 있었다.
수철이 검을 쥐고 달려가려는 걸, 연미가 붙잡았다.
연미의 시선은 문 앞을 가로막은 괴물에게 향해 있었다.
“저게 먼저야.”
꿀꺽-
수철은 마른침을 삼켰다.
촉수 괴물은 아직 움직임이 없었지만, 수철은 그것이 누구를 먼저 먹을지 가늠해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 저 촉수 괴물이 먼저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저걸 이길 수 있을까?’
싸워본 적도 없는 괴물이지만,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여기저기서 작은 괴물에게 당한 사람들의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우당탕-!
콰당-!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며 도망 다니다가 식탁이 쓰러뜨리고 걸려 넘어지고, 서로를 잡아 괴물 쪽으로 밀쳐냈다.
휴대폰을 꺼내서 미친 듯이 포수를 누르는 사람도 있었다.
주방 쪽에서는 괴물과 싸우다가 불이라도 냈는지 매캐한 연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비규환이라는 걸(@아비규환은)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거군…….’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다른 생각을 하는 수철의 귀에, 연미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기 단단히 쥐어.”
연미가 쥔 검이 우웅, 하고 떨렸다.
“어떻게든…….”
괴물의 촉수가 일제히 연미에게로 향했다.
“약점을 찾아내야 해.”
연미가 땅을 박찼다.
+++
동철은 무기 제작자들이 일할 공간을 마련해주었고, 표리는 일족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표리를 범 사냥꾼들에게 소개한 날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 무기 제작자들이 무기와 방어구 몇 개를 완성했다는 말에 제작소로 찾아온 참이었다.
착호와 동철, 그리고 다른 범 사냥꾼들 8명이 와서 무기 제작자들에게 각자의 무기를 받은 후 사용법 설명을 듣는 중이었다.
“검처럼도 사용이 가능하다고?”
“그래. 여기를 누르면…….”
표리가 총신 옆에 있는 붉은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총이 손잡이처럼 변하며 검날이 길게 뻗어 나왔다.
도건의 눈에 감탄이 피어올랐다.
“여차하는 순간에는 도움이 되겠네.”
“이건 더 도움이 될 거야. 이 총알은 표적을 맞히고 들어가면 안에서 폭발하면서 가시를 뿜어내거든.”
“오.”
“그리고 이건…….”
제하도 다른 무기 제작자에게 팔 보호대를 받아서 착용하는 중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가죽 보호대처럼 보이는데, 제하가 팔뚝에 착용하자 가죽이었던 보호대가 단단해졌다.
“와,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네 내부에 있는 힘을 사용한 거야. 힘을 더 불어넣으면 더 단단해질 거야. 이 다리 보호대도 마찬가지고.”
“힘을 좀 빼면 부드럽게 움직여?”
“응.”
“한번 해봐야겠다.”
제하가 몸에서 힘을 빼려고 할 때였다.
삐이이이이-
우우우우웅-
그 자리에 있던 범 사냥꾼들의 포수가 일제히 울렸다.
설명을 듣던 범 사냥꾼들이 휴대폰을 꺼내서 위치를 확인하고는 제하를 돌아봤다.
“어쩔까? 네놈들은 범한테 쫓기는 신세인데 여기 있는 게 낫지 않겠냐?”
범 사냥꾼들의 말을 들으며, 제하는 잠시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가봐야지. 숨어 있는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앞으로 포수가 울려서 나갈 때는 무조건 착호 일행 중 두 명 이상을 포함해, 10명 이상이 출동하기로 했다.
상대가 괴물일 경우에는 두, 세 명만 가지고서는 이길 수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범들이 ‘제하’에게 증오를 품고 있다는 문제도 있었다.
만약 범과 싸우다가 괴물이 나타났을 때, 범들이 괴물을 잡는 것에 동참해줄지, 이제는 확신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가 전부 다 갈 필요가…….”
범 사냥꾼이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삐이이이이이-
우우우우우웅-
삐이이이이-
우우우우웅-
포수가 긴급하게, 계속해서 울리기 시작했다.
지도에 표시된 곳은 단 한 곳.
더는 말이 필요 없었다.
범 사냥꾼들은 방금 두두리 일족에게 건네받은 무기를 쥐고, 지도에 표시된 곳을 향해 달렸다.

+++
후포는 허서, 옥엽을 데리고 어두운 밤길을 걷는 중이었다.
최근 인간들은 범이 나타나기 전처럼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그런 인간들을 보면 속이 뒤틀렸다.
후포는 인간들이 불티의 죽음을 두고 인터넷에서 무어라 떠들어대는지 알고 있었다.
인간들이 불티를 그토록 잔혹하게 고문하고 죽인 제하를 얼마나 칭찬하는지도 알았다.
그런 글들만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인간들을 몰살시키고 싶지만.
⌞아무리 범이라도 생명이잖아요.
⌞나랑 같이 본 친구는 중간에 토했어. 끔찍해. 범 우는 거 봤어? 진짜 불쌍하더라.
⌞세상 미쳐 돌아가네. 그냥 죽이면 되지, 고문을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저게 뭔 영웅? 그냥 사이코패스 미친 새끼지.
많지는 않지만, 범을 두둔하는 몇 개의 반응이 후포의 발목을 붙들었다.
따지고 보면, 인간들이 입장에서 먼저 고문을 하고 잡아먹은 건 범이었다.
그럼에도 아직 범이 당하는 가혹한 처우를 불쌍히 여겨주는 인간들이 있었다.
“주군. 마로를 저대로 놔둬도 될까요?”
옥엽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제하를 잡아서 죽이겠다고 날뛰며 돌아다니던 마로가 갑자기 방에 틀어박혀 허공만 노려보고 있었다.
때때로 “날 농락하려는 건가?”, “그게 그 자식이 아니면 누구란 거지?”, “누구라도 상관없어. 죽여버릴 거야.”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는 모습은 반쯤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그러더니 어제는 갑자기 불티의 영상을 틀어놓고 눈이 빠지게 그 영상을 보고 있었다.
불티가 죽는 모든 순간을 각인시켜, 다시금 투지를 불태우겠다는 듯 그렇게 영상을 되풀이해서 보고 있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둬라.”
이런 상황에서 말려봐야 나아질 것도 없었다.
만약 마로가 정신을 차린다면, 당장 인간들을 몰살하겠다며 전처럼 인간을 붙잡아 고문하고 돌아다닐지도 모른다.
일이 이렇게 되었음에도, 후포는 인간을 고문해서 죽일 생각은 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제하를 잡아서 그 목을 물어뜯고 싶었지만, 그 살의 역시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저 묻고 싶었다.
죽인 건 이해하지만, 왜 그렇게 잔혹하게 고문해야만 했느냐고.
불티가 인간에게 한 짓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던 것이냐고.
그렇다면 왜 그걸 굳이 영상으로 찍어서 남긴 것이냐고.
인간들의 영웅이 되고 싶었던 것이냐고.
타배가 그러했듯 인간의 영웅이 되어, 인간들과 힘을 합쳐 범을 몰아내는 것이 목적이냐고.
그런 생각을 하며 걷던 후포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허서가 고개를 들었다.
“주군. 비명이 들리는데요.”
마침 후포도 혈향을 맡은 참이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