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 괴물이 온다 (3) (70/85)


70. 괴물이 온다 (3)
2023.05.13.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아직도 인간을 잡아먹는 범이…….”

거기까지 말한 후포가 입을 다물었다.

 
공기 중에 퍼진 혈향에 기분 나쁜 냄새가 섞여 있었다.

언젠가 맡아본 냄새. 꿈에도 잊을 수 없는 냄새.

후포의 콧등에 주름이 잡혔다.

“괴물…….”

옥엽이 왼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소리는 저쪽에서 납니다, 주군. 어쩔까요?”

인간 따위, 도와주고 싶지 않았다.

괴물에게 먹히든 말든, 이쪽이 신경 쓸 이유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괴물은 터무니없이 강하기도 했다.

인간을 돕느라 내 부하들이 다치는 건 원치 않는다.

하지만.

-“아저씨, 우리 엄마가 해준 밥 맛있어요.”

그 빌어먹게 따뜻했던 식탁.

그 짜증 나게 다정했던 눈빛.

그 짧은 순간이 자꾸만 후포의 심장을 건드렸다.

저곳에서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누군가도, 그러한 눈빛을 지을 줄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저곳에서 죽어가는 누군가가, 불티를 불쌍히 여겼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후포. 밥은 먹었나?”

그 아둔한 인간 가족들과의 저녁 식사 이후, 타배를 향한 증오에 그 시절을 향한 그리움이 섞인 게 문제였다.

오롯이 존재했던 증오에 생긴 작은 균열이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커지기만 했다.

불티를 잔혹하게 죽인 제하가 원망스럽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제하와 같지 않다는 걸 알아버렸다.

‘나는 저 그림자의 세계로 쫓겨 들어갔을 때 무엇을 원했나?’

전처럼 돌아가기를 바랐다.

평화로웠던 신시.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도우며 살아가던 고즈넉한 일상.

제하를 증오하고 인간 또한 싫지만.

‘그 괴물은…….’

그런 것이 이 신시에 존재하는 한, 모든 인간을 죽인다 해도 예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다.

그 때문에 후포는 그저 무시할 수가 없었다.

후포의 손톱이 길게 자라났다.

+++

지네의 몸통에 갈고리 같은 수십 개의 다리, 인간의 얼굴에 잠자리 같은 커다란 눈이 달린 괴물은, 지하수로를 이용해서 빠르게 이동하는 중이었다.

지네 괴물은 60명쯤 되는 인간을 먹었을 때부터, 아버지 환웅과 좀 더 강하게 연결되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는 우리가 아직 인간들의 눈에 띄기를 원치 않으신다.

마음 같아서는 저 넓은 지상에서 마음껏 돌아다니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지네 괴물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열한 명.’

이제 11명만 더 먹으면 비로소 인간이 되고, 지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

지네 괴물은 생전 처음으로 ‘기대’라는 감정을 품었다.

포수가 울리고 있었다.

인간들은 모르지만, 포수를 누르면 거기서 괴물들만이 느낄 수 있는 파장이 퍼져 나간다.

그곳으로 가기만 하면 싱싱한 인간들과 범들이 있었고, 괴물들은 그저 그것을 단숨에 삼키기만 하면 됐다.

다른 형제들에게 식량을 뺏길세라 빠르게 이동하던 지네 괴물은, 바로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멈칫했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 한다니까.”

“우리 진짜 오랜만에 만난 거잖아. 좀 더 같이 있다가 가면 안 돼?”

“나도 그러고 싶은데, 정말 안 돼. 부모님이 아직은 늦게 다니는 게 위험하다고 했어.”

“범 사라진 지 한참 됐잖아.”

“그래도…… 우리 큰아버지 가족이 범한테 당하셨거든. 그래서 더 조심스러우셔. 당분간은 자기가 이해해줘.”

지네 괴물은 조금 고민했다.

포수가 울리는 곳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이 위에 있는 것들을 먹을 것인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지네 괴물은 아직 인간이 되지 못했기에 아둔한 면이 있었고, 바로 위에서 느껴지는 인간의 기척을 향한 식탐을 이기지 못했다.

지네 괴물은 맨홀 뚜껑을 열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두 명의 인간이 바짝 붙어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뒤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지네 괴물을 눈치채지 못했다.

지네 괴물은 갈고리 같은 다리들을 바르작바르작 움직이며 인간들에게 가까이 접근했다.

인간의 냄새를 짙게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에야.

“꺄아아아아아!”

“으허헉!”

인간들이 괴물을 눈치채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늦었다.

지네 괴물은 수백 개의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고, 체구가 큰 남자를 먼저 삼켰다.

아니, 삼키려 했다.

“끅…….”

어둠 속에서 무언가 날아와 괴물의 목을 휘감아 조였다.

목이 부러질 정도로 세게 조여오는 밧줄.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다리로 밧줄을 끊어내려는 지네 괴물의 귀에,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이런. 이곳은 식사를 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다니는 곳이지 않느냐.”

+++

연미는 쿨럭, 피를 토해냈다.

촉수 괴물의 문어 다리가 연미의 복부를 꿰뚫어 올리고 있었다.

수철은 잘린 다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는 중이었고, 다른 동료들은 숨이 끊어진 지 오래였다.

‘약점이라니…….’

괴물의 약점을 찾으려 했던 게, 자신의 오만이라는 걸 깨달았다.

‘진짜로 이런 게 있다니…….’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착호가 하는 말을 믿었더라면, 얼마 전 동철이 모이자고 했을 때 그곳에 합류했더라면, 이런 개죽음을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으…… 으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범 사냥꾼들이 힘 한번 제대로 못 써보고 당하는 모습에, 호프집 안에 있던 일반인들은 미쳐가고 있었다.

괴물에게 통할 리도 없건만,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빌거나,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를 찾는 사람도 있고,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중 반은, 괴물에게 짓밟히고 찢기고 먹혔다.

괴물의 목 뒤에 달린 촉수 중 하나가 연미를 향해 다가왔다.

여러 개의 촉수마다 날카로운 이빨이 달린 입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달칵달칵 소리를 내며 가까워지는 광경이, 연미에게는 아주 느릿하게 보였다.

‘죽음을 목전에 두면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더니…… 정말이었네. 의외로 주마등이 보이지는 않고.’

죽음을 앞에 두고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게 우스웠다.

처절한 싸움 끝에 죽게 되면, 좀 더 멋진 생각이나 유언 같은 걸 남길 줄 알았는데.

콰아아앙-!

펑-!

연미는 호프집의 벽이 터지듯 부서지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무언가 일어났다는 걸 깨달았다.

눈앞이 캄캄해지는가 싶더니, 괴물이 갑자기 몸부림을 치다가 연미를 패대기쳤다.

“끄아아아아아!”

덮쳐오는 격통에 연미가 비명을 지르는 동안, 무언가가 어둠 속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연미는 고통 속에서도 복부를 부여잡고, 어둠 속을 오가는 이가 누구인지 파악하려고 애썼다.

“으어, 주군! 저 지렁이 같은 거 보이십니까?”

“닥치고 집중해라, 허서.”

“주군, 저는 지렁이를 싫어해요.”

연미는 그들이 괴물과 싸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 눈 앞을 가린 어둠이, 범들이 사용하는 검은 안개라는 것도 떠올렸다.

‘어째서……?’

범이 일부러 이곳에 와서 괴물과 싸우는 걸까?

‘우리를 도와주려고?’

그럴 리가 없다.

범은 인간을 잡아먹는다. 괴물과 다를 게 없다.

“으악! 주군! 지렁이가 까만 피를 흘려요!”

“허서, 제발 좀 닥쳐!”

“옥엽, 넌 이게 아무렇지도 않아? 정말…… 으아악!”

“내가 너 그 지랄하다가 한 대 처맞을 줄 알았다.”

“처맞은 게 아니라 팔 한쪽이 잘렸다고!”

그때.

“끼에에에에에엑!”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비명이 호프집을 가득 채웠다.

연미는 어둠 속에서도 괴물의 움직임이 점점 커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괴물이 허둥거리고 있어.’

범이 이기고 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연미는 당장이라도 기절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두 눈을 부릅뜨고 견뎠다.

저 범들이 인간을 도와주기 위해 괴물과 싸우는 건 아닐 것이다.

아마도 괴물과 경쟁을 하는 거겠지.

괴물이 인간을 먹으면 자기들이 먹을 수가 없으니까.

‘괴물을 처리한 다음에는, 우리를 잡아먹을 거야.’

그러니까 버텨야만 한다.

어떻게든 힘을 남겨뒀다가, 범들이 괴물을 처리하는 순간 기습해서 놈들을 죽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 호프집 안의 인간들은 몰살이다.

“옥엽. 안개를 거둬라.”

어둠이 가시기 시작했다.

괴물은 아직 버티고 서 있었으나 처참한 상태였다.

촉수는 모조리 잘리고, 문어 다리도 몇 개 남지 않았다.

“이 새끼들은 도대체가 약점이 없네요.”

옥엽이 문어 다리를 끊어내며 투덜거렸다.

허서는 남은 팔 한쪽으로 괴물의 허리 쪽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군이라고 불리는 검은색 범은, 긴 손톱 열 개를 모조리 괴물의 복부에 쑤셔 넣고 마구 헤집었다.

괴물이 검은색 피를 흩뿌리며 ‘주군’을 떼어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집요하게 괴물에게 달라붙어, 그 속에 담긴 걸 모조리 끄집어냈다.

살려달라고 빌던 사람도, 반쯤 미쳐서 웃어대던 사람도, 우왕좌왕하던 사람도, 모두 움직임을 멈추고 범들과 괴물의 싸움을 지켜봤다.

이제 곧 죽을 거란 절망에 빠져 있던 인간들은, 범들에게서 희망을 찾았다.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는 인간들에게 범들은 적이 아닌 영웅이었다.

이윽고.

“끄으……… 으…….”

괴물이 마지막 신음을 흘리며.

풀썩-

쓰러졌다.

괴물은 쓰러진 후에도 꿈틀거렸지만, 다시 일어나서 공격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연해졌네요.”

옥엽이 중얼거리며, 괴물을 썰었다.

잠시 후, 괴물은 그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산산조각이 났다.

호프집 안은 고요했다.

세 명의 범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몇 명의 인간은 생각했다.

‘범이 우리를 도와줬어! 굉장해!’

또 몇 명의 인간은 생각했다.

‘이제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건가?’

여러 생각이 담긴 공기가 흐르는 가운데, 허서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잘린 팔을 가져와서 붙이며 중얼거렸다.

“배가 고파서 그런가, 잘 안 붙네요.”

허서의 중얼거림에, 범을 영웅이라고 생각하던 인간들까지도 생각을 바꿨다.

‘배가 고프대…… 우리를 잡아먹을 거야!’

연미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온몸이 덜덜 떨렸지만, 그래도 힘겹게 손을 움직여 무기를 쥐었다.

‘주군’의 눈동자가 천천히 내려와 연미에게서 멈췄다.

연미는 있는 힘을 다해서 ‘주군’을 노려봤다.

호랑이 괴물처럼 거대했던 ‘주군’의 모습이 서서히 작아지고 있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주군’은 그저 인간처럼만 보이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괴물은 저거 하나였나?”

예상치 못한 질문에, 연미는 잠시 망설이다가 답했다.

“작은 것들이…….”

“허서, 옥엽. 작은 괴물을 봤나?”

“못 봤어요. 우리가 오기 전에 도망친 것 같아요.”

“못 봤슴다. 주군. 저, 너무 아파서 먼저 가볼게요.”

배가 고프다던 허서는 아무도 잡아먹지 않고 절뚝거리며 호프집을 나갔다.

‘주군’은 허서를 돌아보지도 않고 연미에게 말했다.

“저것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봤나?”

“아니…….”

‘주군’은 잠시 입을 다물고 연미를 내려다보다가 히죽 웃었다.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연미는 생각했다.

“내가 인간들을 잡아먹을까 걱정인가?”

“…….”

“그래서 기절할 것 같은데도 버티고 있군.”

“…….”

“나는 너 같은 녀석을 싫어하지 않지. 걱정하지 말고 기절해라. 이곳의 인간들은 잡아먹지 않을 테니.”

그리고, 연미의 눈앞이 새까맣게 변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