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괴물이 온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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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괴물이 온다 (4)
2023.05.20.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이럴 수가…….’
동철을 포함한 범 사냥꾼들은 눈앞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꼼짝도 하지 못했다.
‘괴물…….’
단지 지네처럼 생긴 괴물 때문에 긴장한 건 아니었다.
이 순간, 괴물과 싸우는 착호 역시 괴물처럼 보였다.
범 사냥꾼들 역시 일반인들보다는 강한 체력과 동체 시력을 갖게 되었음에도 착호의 움직임을 따라잡기가 어려웠다.
돕겠답시고 섣불리 끼어들었다가는 방해만 될 것 같은 상황.
전투 경험이 많은 범 사냥꾼들이기에 착호 일행의 손발이 척척 맞아떨어져서 이 정도의 위력을 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하루의 붉은 오랏줄은 마치 생명을 가진 듯 움직였다.
빠르게 쏘아져 나가 지네 괴물의 몸뚱이를 휘감았다가 구불거리며 돌아오고 다시 지네 괴물의 몸 아래쪽을 쳐올렸다.
지네 괴물이 성가셔서 여러 개의 다리를 달그락달그락 움직이며 몸을 비틀었지만, 뱀처럼 움직이는 오랏줄을 피할 수는 없었다.
지네가 오랏줄에 정신이 팔린 동안, 제하의 척살검이 공기를 갈랐다.
터엉-! 터엉-!
검이 지네 괴물의 몸에 부딪칠 때마다 쇠를 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구경하던 범 사냥꾼 한 명이 기가 막힌 듯 중얼거렸다.
“뭐…… 저런 게…….”
생물의 몸에서 쇳소리가 나다니.
제하는 쇳소리를 듣자마자 뒤로 한발 물러섰다가 주안에게 말했다.
“외피는 단단해. 번거롭기는 해도 마디 사이사이에 찔러넣어야 해.”
주안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지네 괴물의 뒤쪽으로 달려갔다.
움직임을 포착한 지네 괴물이 주안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여러 갈래로 갈라진 입을 벌리고 가시를 쏘았다.
쐐액-!
살기를 띠고 날아가는 작은 가시는.
타앙-!
도건이 쏜 총알에 막혔다.
가시는 총알에 담긴 힘을 이기지 못하고 공중에서 분쇄되었다.
그러는 동안 지네 괴물의 시야에서 벗어난 세인이 몸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손에서 반짝이는 두 개의 단검이 사정없이 지네 괴물의 마디 사이를 파고들 때, 환이 쏜 화살이 쇄도했다.
터엉-! 터엉-! 터엉-!
타앙- 탕-!
화살과 총알이 비처럼 쏟아져 지네 괴물을 강타하자, 지네 괴물은 성가신 듯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댔다.
그때, 지네 괴물의 뒤로 돌아가서 자리를 잡은 주안이 몸을 낮게 낮추며 마디 안으로 깊숙이 창을 찔러넣었다.
푸욱-!
약점이 없을 것 같은 지네 괴물이라도 유독 약한 부위는 있었다.
날카로운 날붙이가 연한 살을 예리하게 찌르고 들어오자, 지네 괴물이 괴성을 질렀다.
“끼에에에에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비명.
“얼른 처리해야 한다. 동료를 부르는 걸지도…….”
하루가 오랏줄로 지네 괴물의 다리 중 하나를 감아서 뽑아내며 말했다.
제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지네 괴물을 노려봤다.
기회를 노려야 한다.
단숨에 지네 괴물을 갈라버릴 기회.
지네 괴물이 움직일 때마다 긴 몸을 덮은 외피들이 들썩거렸지만, 마디 사이의 속살이 잘 드러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 일검으로 베어낼 기회가 있을 것이다.
제하가 그런 기회를 노린다는 걸 깨달은 호수가 사슬낫을 빙글빙글 돌렸다.
단단한 사슬 끝에 달린 낫이 달빛을 받아 위협적으로 빛나는 둥근 궤적을 만들어냈다.
낫에 충분히 힘이 실리자 호수가 지네 괴물 가까이로 달려갔다.
그의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빛나는가 싶더니, 오른쪽 어깨가 부풀어 오르며 단단해졌다.
아주 짧은 순간, 호수의 오른팔에 힘이 차올랐다.
푹-!
지네 괴물의 꼬리를 향해 내리찍은 사슬낫이 놈의 외피를 뚫고 들어갔다.
“끼에엑!”
호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사슬을 끌어당겼다.
콰직- 콰직-
결코 부서지지 않을 것 같았던 강철 같은 외피는 한 번 균열이 생기자 아까처럼 버티지 못했다.
깊이 찌른 낫이 사슬에 끌려 호수에게 돌아가는 동안 지네 괴물의 꼬리 부근 외피 한 마디가 부서졌다.
“키아아아아아!”
깊은 상처를 입은 지네 괴물이 상체를 이리저리로 비틀며 비명을 질러댔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입에 턱다리들이 덜컥덜컥 움직이며 사방으로 가시를 쏘아댔다.
가시는 하나하나가 20cm가 넘어서 그것에 당하면 깊은 상처를 입을 터였다.
탕- 타앙- 탕-
쌔액- 쌕-
도건과 환이 쉴 새 없이 총과 활을 쏘고, 하루가 오랏줄을 던져 가시를 막았지만, 사방으로 쏘아지는 가시를 전부 막을 수는 없었다.
다행히 범 사냥꾼들은 넋을 놓고 구경만 하지는 않았다.
저들의 전투에 끼어들지는 못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일반인을 보호해!”
그들은 아직도 구석에서 덜덜 떨고 있는 연인에게 달려갔다.
곁눈질로 민간인들이 안전하다는 걸 확인한 제하는 조용히 힘을 끌어모았다.
제하의 금빛 눈동자는 허둥거리지 않고 지네 괴물의 외피 사이에서 연한 살을 찾아 움직였다.
몇 개의 가시가 제하의 몸에도 박혔지만 움찔거리지도 않았다.
한차례 불어온 바람이 제하의 검은 머리칼을 흐트러뜨렸다.
고통에 발광하는 지네 괴물 앞에서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고요히 서 있는 제하의 모습은 마치 해일 앞을 막아서는 어린아이처럼 작고 위태로워 보였다.
그러나 가까이에 있던 호수와 하루는 알 수 있었다.
‘찾아냈구나!’
제하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동시에 척살검이 움직였다.
사악-
척살검은 아주 깔끔하게 지네 괴물의 몸통을 가로로 베어냈다.
지네 괴물은 제 몸에 무슨 일이 벌어진 지도 몰랐다.
위쪽과 아래쪽으로 나뉜 두 개의 몸뚱이가 도마 위의 횟감처럼 철썩철썩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몸통이 갈린 후라 외피를 덮고 있던 단단한 기운이 사라진 터.
큰 힘을 싣지 않은 주안의 창에도, 도건의 총알에도 외피가 뚫리고 부서졌다.
먼저 움직임을 멈춘 건 꼬리 쪽이었고 그다음에 머리 쪽이 축 늘어졌다.
괴괴한 공기에 둘러싸여 있던 골목은 괴물의 죽음과 함께 산뜻해졌다.
괴물이 풍기는 역한 냄새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공기를 내리누르는 듯한 힘이 사라졌다.
괴물이 완전히 죽었다는 걸 확인한 제하는 그제야 제 몸이 박힌 가시들을 빼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인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야, 병원을 가야지, 왜 그렇게 막 뽑아? 그러다가 흉터 남는다?”
“흉터 좀 남으면 어때?”
“피 나는 것 좀 봐. 안 아파? 너, 그러다 죽어.”
제하가 씩 웃었다.
“안 죽어.”
왜인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 정도의 상처로는 죽지 않는다.
조금씩, 조금씩 타배의 기억을 되찾아갈 때마다 육체 역시 제힘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아마 다른 일행도 마찬가지이리라.
그걸 오롯이 제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
세인도 다치면 알게 되겠지. 저도 모르는 새에 육체가 빠르게 회복해나간다는 걸.
도건이 괴물의 머리를 발로 툭 차며 말했다.
“괴물을 죽이는 게 전보다 쉬워졌어. 이놈이 전보다 약한 것 같진 않은데.”
확실히 그랬다.
전에는 괴물을 상대하고 나면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가시가 몇 개 박힌 걸 빼면 큰 상처는 없었다.
강해지기도 강해졌지만 모두의 손발이 맞았기 때문이다.
혼자였다면 이렇게 쉽지 않았을 거라고, 제하는 생각했다.
환이 주위에 떨어진 화살을 챙기며 물었다.
“아까 그 남자랑 여자는?”
그 말에 제하가 고개를 드는데 옆에서 동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람들은 우리가 돌려보냈다. 범 사냥꾼 두 명을 붙여줬으니 큰 문제는 없겠지. 이런 놈이 또 등장하지만 않는다면.”
동철과 범 사냥꾼들은 머쓱한 표정으로 착호를 둘러쌌다.
“이런 게 나타났는데 우리는 무기 한번 꺼내 보지도 못했군.”
“전부 너희들에게 맡겨두다니…… 창피하다.”
“도저히 끼어들 수가 없더라. 어떻게 그렇게 움직이는 거지?”
“나는 내가 범 사냥꾼 중에서도 상위라고 생각했거든? 와, 너희는 진짜…… 말도 안 되더라. 와, 어떻게 그렇게 싸워?”
범 사냥꾼들이 한마디씩 보태는 말에 제하는 민망해졌다.
칭찬을 받는 일에는 익숙하지가 않다.
다른 일행들도 그런 듯 어색한 표정을 지었지만, 세인만이 턱을 바짝 치켜들고 말했다.
“우리가 좀 하지.”
세인의 우쭐거리는 태도에 범 사냥꾼들 사이에 웃음이 일었다.
제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
“포수가 더 울리지는 않았어?”
그제야 그들은 포수가 울린 곳으로 향하다가 지네 괴물과 마주쳤다는 걸 떠올렸다.
도건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제 안 울려.”
황급히 울리던 포수가 더는 울리지 않는다는 건, 둘 중 하나였다.
다른 범 사냥꾼들이 일을 해결했거나 포수를 울리던 사람들이 모두 죽었거나.
만약 상대가 괴물이라면 평범한 범 사냥꾼들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으니, 분위기는 몰살 쪽으로 기울어졌다.
모두 어두운 표정으로 골목 너머를 응시했다.
이곳에서는 저 멀리서 얼마나 참혹한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주안이 창을 다잡으며 말했다.
“그래도 가서 확인해봐야겠지?”
제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스아아아-
검은 안개가 강물처럼 밀려와 순식간에 펼쳐져 그들의 시야를 막았다.
“범!”
호수가 짧게 외치며 팔을 휘저었다.
잠시 걷힌 안개 사이로 거대한 덩치의 검은 범이 날카로운 송곳니를 빛내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검은 털을 잉걸불처럼 흩날리며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범.
후포였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