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5. 증오의 끝 (4) (75/85)


75. 증오의 끝 (4)
2023.06.17.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16876083854622.jpg

 
동철은 착호와 만나기로 한 회의실로 향하면서 그들이 아주 울적해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전에야 범에게 걸린 현상금 때문에 싸웠다고 해도, 지금은 아무 대가 없이 괴물과 싸우는데 도리어 제하의 목에 현상금이 걸렸다.

그러니 우울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회의실에 들어가기 전에 동철이 주의를 줬다.

“다들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고 적당히 기분 살피면서 얘기하자고.”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툴툴거리는 범 사냥꾼을 무시하고 회의실 문을 연 동철은 깜짝 놀랐다.

우울감에 젖어서 땅을 파고 있을 줄 알았던 착호가 평소와 다를 게 없는 표정으로 잡담을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상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동철의 말에 세인이 씩 웃었다.

“허구한 날 이랬는데 새삼 죽상일 게 뭐가 있어? 오히려 이번 일로 알게 된 게 하나 있거든.”

“알게 된 거?”

세인이 검지를 들었다.

“이살 그룹의 환웅.”

범 사냥꾼들이 눈빛을 교환했다.

그들도 그동안 벌어진 일들로 여러 의심을 마음에 품고 있던 터였다.

호수가 말했다.

“일단 앉아서 얘기하자.”

다들 자리에 앉은 후, 환이 물었다.

“다른 범 사냥꾼들 분위기는 어때?”

“안 좋아.”

성희라는 이름의 범 사냥꾼이 대답했다.

그녀는 한때 여우라는 이름의 범 사냥꾼 무리의 팀장이었다.

여우 팀은 20명 정도의 소규모 팀이었는데 범과 싸우다가 5명이 죽고 그 후 8명이 실종되어서, 얼마 남지 않은 팀원을 이끌고 이곳에 온 터였다.

성희도 지난번 착호가 괴물과 싸울 때 그 현장에 있던 범 사냥꾼 중 한 명이었다.

“너희는 정말 강하더라. 괴물은 상상 이상으로 끔찍했고. 솔직히 말하자면 범이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되고 처음으로 싸우게 됐을 때보다 훨씬 무서웠어.”

다른 범 사냥꾼들이 그녀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다 때려치우고 싶어.”

아무도 성희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범 사냥꾼들은 현상금 때문에 이 일에 뛰어들기는 했지만, 그 저변에는 신시를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다는 소망이 깔려 있었다.

신시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범들은 더 이상 인간을 공격하지 않게 되었는데 더 끔찍한 것이 나타났다.

싸움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고 너무 많은 사람이 죽어간다.

과연 신시가 예전처럼 돌아갈 날이 올까?

범들이 그랬듯 괴물들이 갑자기 인간 사냥을 멈춘다 해도 그때는 너무 늦은 것 아닐까?

범 사냥꾼들은 무기를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이윽고 성희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싸워야겠지. 지금까지 싸워온 게 아까워서라도.”

“그래, 맞아. 여기서 손 놓고 있다가 그 빌어먹을 괴물 새끼들한테 먹히면 그거야말로 개죽음이잖아.”

“어떻게든 해봐야지. 그러면 어떻게든 되겠지. 1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이런 힘이 생겨서 범 사냥을 하고 다닐 줄 누가 알았겠어?”

“괴물이 끔찍하긴 해도 범 사냥할 때처럼 뭔가 방법이 생기겠지.”

범 사냥꾼들은 애써 용기를 끌어 올렸다.

마지막 한 조각 남은 용기, 희망, 소망, 그런 긍정적인 것들.

동철이 세인에게 물었다.

“이살 그룹의 환웅이라는 건 무슨 소리냐?”

범 사냥꾼들의 무거운 분위기에 눈동자만 또록또록 굴리던 세인이 얼른 답했다.

“아, 그거 말이야. 이번에 환웅이 제하한테 현상금을 걸었잖아. 그걸로 뭔가 확신이 생겼어.”

“확신?”

“환웅이 의심스러웠으니까…… 아,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세인이 도움을 청하듯 일행을 돌아보자 주안이 말했다.

“작년 1월부터 지금 현재 3월까지 아주 많은 일이 있었는데, 거기에 항상 환웅이 있었어.”

“그거야 환웅이 아무래도 크게 사업을 벌이고 여러모로 도움을 주니까 그런 거 아냐?”

범 사냥꾼의 반박에 주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거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야. 첫 번째, 현상금. 범에게 현상금을 걸어서 많은 사람이 범 사냥에 뛰어들었지. 그런데 방식이 너무 잔인해. 왜 굳이 범의 머리를 잘라서 가져가야만 했던 걸까?”

“증거가 필요하니까.”

“증거는 영상이나 사진으로도 충분하지 않아?”

“영상도 사진도 조작할 수 있으니까.”

가만히 있던 환이 검지를 세웠다.

“영화에서 보면 말이야. 외계인이 침공했을 때 각 나라의 수장들이 제일 먼저 하는 게 뭔지 알아?”

환이 갑자기 영화 이야기를 꺼내자 범 사냥꾼들이 서로를 쳐다봤다.

“전쟁 준비?”

누군가의 대답에 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전쟁 준비를 해. 그런데 그보다 먼저 하는 게 있어.”

“…….”

“대화 시도.”

“아…….”

“보통은 그렇잖아. 미지의 무언가가 나타났을 때, 이왕이면 평화롭게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가기를 바라. 그게 제일 좋으니까. 그래서 대화를 시도하지. 적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

하지만 환웅은 그러지 않았다.

범의 목적을 알아보려 하는 시도 따위는 없었다.

“물론 범이 다짜고짜 나타나서 인간들을 죽이기는 했지만,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범을 생포하든 뭐든 해서 대화를 해봐야만 했어.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 오히려 목을 베는 잔인한 방식으로 현상금을 받아가라면서 싸움을 부추겼어.”

범은 인간을 잡아먹고 인간은 범의 목을 썰었다.

“그 후에 환웅은 포수를 만들어서 무료로 배포했는데, 범 사냥꾼들은 사람들에게서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

이 자리에도 그런 짓을 했던 범 사냥꾼이 몇 명 있었다.

그들이 민망한 듯 고개를 숙이는 걸 보며 주안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 때문에 인간과 인간 사이에 갈등이 생기지.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범 사냥꾼들을 원망하고, 범 사냥꾼들은 목숨 걸고 싸우는데 그깟 돈 때문에 자기들을 욕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원망해. 그러던 중에 현상금 액수를 줄여서 갈등이 더 심해지지. 그리고 괴물이 나타나.”

괴물이 언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착호는 확신했다.

“괴물은 아마도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을 때부터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을 거야. 모든 실종과 모든 죽음이 범 때문만은 아닐 거야.”

지하 통로를 따라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괴물들.

그것이 하루 이틀 사이에 갑자기 생겼을 것 같지 않다는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우리는 괴물을 알게 된 시점에서 여러 곳에 알리기 시작했고 괴물을 목격했다가 살아남은 생존자들도 아마 인터넷에 글을 올렸겠지. 그런데 그런 글들은 올리자마자 삭제됐어. 철저한 통제. 이 신시에서 이게 가능한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

이살 그룹의 회장 환웅뿐이다.

“거기다 우리는 포수가 울려서 달려갔는데 그곳에 괴물이 나타나. 이번에도 그랬지. 포수가 괴물을 부르는 거 아닐까? 범으로부터 인간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괴물의 먹이가 될 인간들을 불러모으기 위해 만들어진 것 아닐까?”

주안의 목소리가 단조로워서 오히려 소름이 끼쳤다.

범 사냥꾼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착호를 응시했다.

그들도 미심쩍다는 생각은 했고 이상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환웅이 떠오르기는 했다.

하지만 환웅은 너무도 거대한 존재였다.

신시의 실질적인 지배자.

그런 사람이 괴물을 부리며 인간들을 잡아먹게 한다는 걸 상상하고 싶지 않아서 자꾸만 떠오르는 생각과 의심을 애써 털어내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런데 착호가 말한다.

환웅이라고.

“환웅은 내게 현상금을 걸었어.”

제하의 음성이 차게 가라앉은 공기를 깨뜨렸다.

“그냥 날 생포하는 정도였다면 우리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 영상은 정말 지독하게 끔찍했으니까. 하지만 날 죽이라고까지 했어. 내가 얼마나 많은 범과 싸워왔는지 알 텐데도.”

제하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

“환웅은 신시 시민들을 위해서 싸우는 내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드는 걸까? 내가, 우리가, 자꾸 괴물을 죽여서 화가 났나?”

순간 범 사냥꾼들의 머릿속이 맑게 갰다.

더는 부정할 수 없었다.

환웅이다.

범 사냥꾼들이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제하를 죽이기 위해 특수부대가 나섰다고 했다.

환웅이 정말로 신시를 위한다면, 제하가 범을 아무리 끔찍하게 고문하고 죽였더라도 제하의 사살 명령을 내려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제하의 말대로 생포해서 이야기를 들어볼지언정, 신시 시민들이 영웅처럼 여기는 제하를 죽여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동철이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젠장. 환웅이라니…… 대체 환웅이 왜? 이 신시에서 제일 대단한 사람이잖아. 모든 걸 다 가졌는데 왜…… 아니, 아니, 애초에 뭘 하고 싶은 거지?”

“그러게. 환웅이 그런 식으로 행동해서 얻는 게 뭐야? 아니, 그리고 환웅도 돈이 많아서 그렇지, 돈 빼고 보면 그냥 평범한 인간이잖아. 그런데 어떻게 괴물을 부려? 그 괴물들은 어떻게 만들어낸 거고?”

범 사냥꾼들은 환웅이 이 모든 일의 뒤에 있다는 걸 믿게 되었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그때, 환이 또 검지를 세우며 끼어들었다.

“영화에서 보면 말이야. 환웅처럼 정점에 오른 인간 중에 약간 여기가 이상한 놈들이 하는 생각이 하나 있거든.”

환이 제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힘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하는 거지. 구질구질한 바퀴벌레 같은 놈들. 저 지저분한 것들을 싹 다 없애버리고 괜찮은 놈들만 추려서 완벽한 세계를 만들어야겠다. 나만의 완벽한 왕국.”

“하!”

몇 명이 헛웃음을 터뜨렸지만, 환의 말을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현실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는 지배자가 있어왔으니까.

환이 말했다.

“뭐, 내 생각이 꼭 맞다는 건 아니고.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그럼 환웅은 그 괴물을 어디서 어떻게 구한 거지? 그리고 어떻게 그런 괴물을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거야?”

16876083854629.jpg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