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이살 타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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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이살 타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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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이살 타워 (2)
2023.08.05.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10만 평은 족히 넘을 듯한 넓은 지하 공간을 가득 채운 알들. 후포 일행은 그것을 부수고 또 부쉈다.
지상에서 벌어질 일이 걱정이긴 했지만, 알들을 그냥 놔두고 갈 수는 없었다.
반투명한 알 안에 들어 있는 불길한 것들이 온전한 모습을 갖추고 태어나면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촤악-
주르륵-
촤악-
퍼석-
알껍데기를 깨고, 흘러나오고, 그것들의 머리를 부수는 소리가 기괴하게 울려 퍼졌다.
역겨운 냄새가 점점 진해져서 숨을 쉬기 힘들 지경이었다.
꿀렁-
지하 곳곳에 퍼져 있는 혈관 같은 것이 큰 움직임을 보였다.
지상에서 죽은 자들이 흘린 피를 받아들여 알들에게 생명을 나눠주고 있는 것이었다.
꿀렁- 꿀렁-
두꺼운 혈관들이 요동칠 때마다 알들이 점점 커지며 껍질이 투명해졌다.
옥엽이 헐떡거리며 말했다.
“서둘러야겠어요.”
옥엽의 몸은 알의 분비물이 묻어서 엉망이었고 다른 범들도 마찬가지였다.
허서는 얼굴에 흐르는 알 분비물을 닦아내며 구역질을 했다.
“주군, 그거 아세요? 전 비위가 약합니다.”
“헛소리할 시간에 하나라도 더 깨라.”
후포는 길게 자란 손톱으로 여러 개의 알을 한꺼번에 베어내며 말했다.
마로는 어두운 표정으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증오에 눈이 멀어서 이런 알들을 만들어내는 데 한몫했다는 걸 떠올릴 때마다, 죄책감이 송곳처럼 폐부를 파고들었다.
괴물을 만들어낸 것도, 그 괴물로 동족들을 죽이게 만든 것도 전부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당시 이상함을 느끼고 후포와 의논을 했다면 일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티도, 나래도 아직 살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꿀렁-
가짜 혈관이 또다시 약동했다.
파사삭-
아직 깨지 못한 알 몇 개가 부화 조건을 충족했다.
알 안에 웅크리고 있던 불길한 것이 스스로 알껍데기를 깨는 소리가 나자, 지추가 귀를 쫑긋했다.
“망했네요.”
지추가 동료 몇 명을 데리고 알이 부화하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알을 깨고 나온 괴물은 아직 작고 불안정했다.
허서가 외쳤다.
“놈들이 정신 차리기 전에 죽여버려!”
“안 그래도 그러는 중…… 커헉!”
지추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검고 긴 것이 지추의 명치를 뚫고 나와 있었다.
“제……길…….”
지추의 입가로 피가 주륵 흘렀다.
지추의 몸이 서서히 위로 들려 올라갔다.
“너, 넌 뭐냐!”
“이 자식이!”
“죽어!”
지추 근처에 있던 범들 사이에 소동이 일어났다.
범들이 지추 뒤에 있는 사람을 향해 몸을 날렸으나, 검고 긴 것 여러 개가 휙휙 움직여서 그들을 멀리 날려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뒤늦게 소동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린 후포의 눈에, 배가 꿰뚫린 채 들어 올려진 지추와 그의 발아래로 뻗어 있는 다리가 보였다.
후포는 지추의 배를 뚫고 나온 것이 검은 부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주군, 도망…….”
지추가 손톱을 세워 제 뒤에 서 있는 놈을 향해 뻗었지만, 그전에 놈이 지추를 멀리 날려버렸다.
지추가 멀찌감치 날아가 어딘가에 부딪혀 떨어지는 소리가 울리는 동안, 그들은 조용히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꿀렁-
가짜 혈관이 또 꿈틀거렸을 때에야, 후포의 콧등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환웅…….”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머리를 뒤로 단정하게 넘긴 환웅이 고고하게 서 있었다.
파랗게 보일 정도로 하얀 피부와 갸름한 눈매, 입가에 미미하게 머금은 미소.
그는 기자들 앞에 설 때처럼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악의로 가득 찬 지하실과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서, 그가 잘못 찾아온 게 아닌지 미심쩍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환웅은 지추의 배를 뚫었던 부채를 펴들어 살랑살랑 흔들었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후포와 범들은 정신을 차렸다.
“환웅!”
가장 먼저 뛰어나간 건 마로였다.
마로는 환웅의 꼬드김에 넘어가서 끝내 불티까지 죽이고 말았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검은 안개가 환웅을 뒤덮고 매섭게 뻗어 나간 손톱이 정확하게 환웅의 목을 노렸다.
열 개의 손톱이 지척에 다가왔는데도 환웅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마치 잘 그려진 그림처럼 그렇게 미동도 없이 마로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음 순간.
마로의 눈에 비친 건 불티였다.
“형…… 왜 그래?”
불티의 난처하다는 듯한 목소리에, 마로는 불티의 목을 찌를 뻔한 손톱을 거두고 옆으로 몸을 굴렸다.
불티가 눈썹 끝을 아래로 내리고 마로에게 다가갔다.
“형, 괜찮아?”
“불티…….”
마로는 제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불티가 죽는 것을 똑똑히 보았는데,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두 눈을 부릅뜨고 제 동생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어디를 봐도 불티였다.
불티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입고 있던 옷, 불티의 체취, 불티의 목소리.
“너…… 살아 있…….”
마로가 불티를 향해 손을 뻗을 때였다.
어느새 다가온 허서가 마로의 손목을 낚아채 뒤로 던져버리고 불티를 향해 긴 손톱을 뻗었다.
불티가 훌쩍 몸을 뒤로 피했다.
불티가 서 있던 자리를 날카로운 손톱이 스치고 지나갔다.
불티의 옷자락이 살짝 베여 찢어졌다.
“허서, 뭐 하는……!”
후포가 허서를 말리려고 일어나는 마로의 목덜미를 세게 잡았다.
“불티가 아니다, 마로.”
“주군…….”
“불티는 죽었다.”
“아니, 저기 저렇게 살아 있잖습니까. 어쩌면 그 영상이 가짜였을지도 몰라요.”
허서는 불티와 싸우고 있었다.
불티는 요리조리 몸을 피하면서 허서에게 말을 걸었다.
“허서, 내가 실수한 건 아는데 너무 심하잖아. 굳이 우리끼리 싸울 필요가 있어? 우리 적은 다른 데에 있다고.”
허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듯 그저 공격에만 집중했다.
허서의 공격을 피하면서 대화를 시도해보려던 불티가 일순 인상을 찌푸렸다.
“성가시게.”
다음 순간, 불티의 등에서 긴 촉수 여러 개가 뻗어 나와 허서의 몸을 꿰뚫었다.
“허서!”
옥엽이 날카롭게 외치며 허서를 돕기 위해 달려갔다.
옥엽의 손톱이 촉수를 베어내기 위해 마구잡이로 움직였지만, 어느 하나에도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불티는 여유롭게 옥엽의 공격을 피하며 허서를 들어 올렸다.
“크아아아악!”
촉수가 몸 깊이 파고드는 격통에 허서가 비명을 질렀다.
후포도 마로를 내려놓고 불티를 향해 달려갔다.
불티는 후포를 향해 싱긋 웃더니 허서를 저 멀리 내던지고 모습을 바꿨다.
“후포, 오랜만이군.”
타배였다.
그립고도 미운 친구.
하지만 후포는 흔들리지 않았다.
“역시 네놈이 벌인 짓이군!”
옥엽은 왼쪽에서, 후포는 정면에서 놈에게 공격을 쏟아부었다.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였지만, 놈에게는 어느 것 하나도 닿지 않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마로도 공격에 합세했지만, 놈은 여유 있게 공격을 피하면서도 말을 걸었다.
“후포, 나한테 너무하지 않나? 우리, 친구잖아.”
“너는 대체 누구지?”
“누구라니. 나야, 타배. 친구 얼굴도 잊었나?”
“그때도 이런 식으로 우리를 모함한 건가?”
타배가 히죽 웃었다. 입꼬리가 귀에 걸릴 정도로 길게 찢어졌다.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타배가 말했다.
“이제야 좀 똑똑해졌네, 후포.”
타배가 팔을 들어 올렸다.
“피해!”
후포가 외쳤지만, 늦었다.
타배의 손에 있던 검은색 검이 사선으로 움직였다.
검 끝이 옥엽의 어깨부터 복부까지 깊이 갈라냈다.
“큭!”
옥엽이 상처를 붙잡고 비틀거렸다.
타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검이 옥엽의 목을 썰어내려는 듯 가로로 움직였다.
검이 옥엽의 목에 닿기 전, 마로가 옥엽을 끌어안고 옆으로 굴렀다.
검은 옥엽의 목 대신 마로의 등을 스쳤다.
후포는 비틀거리는 옥엽과 마로를 낚아채 타배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공기 가르던 소리가 난무하던 공간에 잠시 적막이 내려앉았다.
타배가 들고 있던 검 끝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흐트러진 회갈색 머리칼, 가늘고 긴 눈매, 호박색 눈동자, 탄탄한 턱과 굵은 목, 넓은 어깨.
어디를 봐도 영락없는 타배였지만, 그 입가에 묻어 나오는 미소는 잔혹했다.
후포는 제 부하들을 슬쩍 내려다본 후 다시 타배를 노려봤다.
“너는 대체 뭐냐?”
타배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후포. 왜 자꾸 그래? 나야, 타배.”
“아니, 네놈은 타배가 아니다. 타배는 그런 식으로 웃지 않지.”
타배의 입술 끝이 귓가에 걸렸다.
“그렇게 똑똑한 놈이 그때는 왜 속았을까?”
헐떡거리던 마로가 두 눈을 부릅떴다.
“이 새끼……!”
타배가 마로를 흘끗 보더니 어느새 부채로 돌아온 무기를 펼쳐 살랑살랑 흔들었다.
“가만히 있어, 마로. 네 주군이 시간을 끌려고 이것저것 묻고 있잖아. 후후후. 시간을 끌면 자기가 이길 수 있을 줄 아나 봐. 후후후후.”
타배의 웃음소리가 음산하게 울렸다.
그는 후포가 시간을 끌어서 부하에게 회복할 시간을 준다는 걸 알면서도 여유로웠다.
놈이 여유를 부린다면 후포도 감사하게 그 오만방자함을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놈은 시종일관 느긋하게 움직였지만, 단 한 번도 공격이 먹혀들지 않았다.
놈의 약점을 찾아야만 했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냐?”
후포의 질문에 타배가 싱긋 웃더니 환웅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는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말했다.
“이제야 옳은 질문을 하네.”
끼릭- 끽끽-
어느새 부화한 괴물 몇 마리가 환웅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환웅은 그중 한 마리를 손바닥에 올려두고 귀엽다는 듯 응시했다.
“이것보다 작았지. 이것보다 약했고. 그랬더니 다들 날 무시하더라고. 자기들끼리 어울려서 희희낙락 즐거우면 뭐해. 나처럼 작고 연약한 건 무시하고 괴롭히는데.”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