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환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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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환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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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환웅 (3)
2023.08.26.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인왕산 쪽에서 내려온 검은 안개가 괴물들의 뒤를 쳤다.
끼에에에엑!
캬아아악!
괴물들의 비명이 커지자, 환웅은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거대한 검은 안개.
그림자 세계에 남아 있던 범들이 인왕산에서 내려왔다.
“주군!”
수백 명의 범족이 후포를 불렀다.
“이리로 와라!”
후포가 외쳤다.
“이놈을 죽이는 데 집중해라!”
환웅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저런…….”
제 아이들이 죽어가는 데도 환웅의 얼굴에는 슬픔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이들은 다시 만들면 그만이다.
환웅은 근처에 있던 인간 형태의 괴물들 몇 마리에게 명령했다.
“너희는 저것들을 쓸어버리렴.”
괴물들이 그쪽으로 몸을 날렸다.
괴물들은 범들을 향해 달려가면서 앞을 가로막는 인간들을 모조리 죽였다.
처참한 힘 차이에 인간들은 절망했다.
범들도 마찬가지였다.
완성형의 괴물들은 일반 괴물들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갖고 있었다.
후포를 비롯한 상급 범들조차 완성형 괴물 한 마리를 처치하는 것이 버거운 상황.
이제 막 인왕산을 내려온 범들 중 상급 범은 손에 꼽을 만큼 수가 적었다.
인간들과 범들의 절망을 피부로 느낀 환웅이 히죽 웃을 때였다.
콰아아아아-!
환웅의 머리 위에서 장대한 힘이 내리꽂혔다.
환웅은 거대한 힘보다 머리털이 곤두서는 소름을 먼저 느꼈다.
반사적으로 치켜든 검은색 부채에.
채앵-!
세로로 찍혀 내려오던 묵색 검이 부딪쳤다.
상반된 두 개의 힘이 부딪쳐 파동이 퍼져나갔다.
그 힘을 느낀 인간들과 범들, 괴물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들의 눈에 놀라운 광경이 들어왔다.
부채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려서 버티는 환웅. 그리고 위에서 검을 세로로 세워 찍어누르는 제하.
바람도 불지 않는데 환웅과 제하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제하를 알아본 환웅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흐트러진 검은 머리칼, 황금빛 눈동자, 오뚝한 코와 고집스럽게 다문 입술.
제하의 얼굴은 타배와 다른데도 환웅은 그에게서 타배를 느꼈다.
“타배…….”
힘겹게 버티는 환웅의 입술 사이로 오랫동안 부르지 않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온 힘을 다하는 환웅과 달리 제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아니.”
제하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단단히 버티고 있던 환웅의 다리가 비틀, 흔들렸다.
“나는 제하다.”
환웅은 두 눈을 부릅떴다.
한낱 인간 따위에게 밀린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후포가 인간들에게 맞아 죽는 걸 보기 전까지는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건만.
환웅의 등에서 여러 개의 촉수가 튀어나와 제하의 옆구리와 목을 노렸다.
제하는 피하지 않았다.
제하의 어깨가 두툼해지며 촉수 하나를 튕겨냈다.
쌔액-!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또 하나의 촉수에 박히고.
스아악-
두 개의 단검이 촉수를 휘감으며 예리하게 빛났다.
그제야 환웅은 이곳에 있는 사람이 제하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길고 단단한 장창이 환웅의 옆구리를 노렸다.
환웅은 몸을 비틀어 척살검을 밀쳐내며 부채로 장창을 쳐냈다.
착호는 환웅이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정확하게 환웅을 노리며 비산하는 화살, 번쩍이는 단검과 현란하게 움직이는 장창. 그리고 묵직하게 내리쳐오는 척살검.
제하와 환, 세인과 주안은 마치 한 몸인 듯 합이 맞았다.
물 샐 듯 쏟아지는 공격에 빈틈이 없어서, 피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아이들을 만들기 위해 너무 많은 살과 피를 내어준 탓이다.
환웅의 능력으로 만들어냈던 인간의 얼굴에 점점 균열이 생겼다.
부드럽게 움직이던 관절에서 삐걱삐걱 소리가 났다.
환웅은 가까스로 고개를 돌려 제 주위를 둘러싸고 인간과 범들을 막아내는 인간형의 괴물들을 보았다.
고대의 힘이 흘러 내려오면서 평범한 인간들에게도 힘이 생겼다.
특히 범 사냥꾼이나 범들은 거의 고대의 범족과 곰족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인간형 괴물들은 강했지만 끊임없이 쏟아지는 맹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내지는 못했다.
흠집 내기 힘들었던 피부가 찢겨 거무죽죽한 피를 흘리는 괴물을 향해, 환웅은 촉수를 뻗었다.
촉수 끝이 인간형 괴물의 등을 뚫어서 들어 올렸다.
환웅이 같은 편을 공격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허공으로 떠오르는 괴물을 올려다봤다.
몸을 비튼 괴물은 제 등을 뚫은 것이 환웅이라는 걸 확인하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버지…… 어째서……?”
깜짝 놀라서 묻는 인간형 괴물의 표정은 거의 인간 같았다.
환웅은 제 아이를 향해 인자하게 미소 지었다.
“내 힘이 되어다오.”
“아버지!”
촉수가 여러 갈래로 갈려 괴물을 조각냈다.
떨어지는 괴물의 살점과 피가 환웅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깨진 유리처럼 갈라지던 환웅의 피부가 원래대로 돌아왔고, 검은 눈동자가 음산한 빛을 내뿜었다.
피를 피하기 위해 잠시 뒤로 물러났던 제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네 자식이라며?”
환웅이 히죽 웃었다.
입술 사이로 보이는 이빨에도 피가 묻어서 기괴했다.
“아이는 또 만들면 되니까.”
환웅의 촉수 하나가 또 인간형 괴물을 향해 뻗어갔다.
“세상 어느 부모가 그딴 생각을 해!”
제하가 척살검을 치켜들고 촉수 위로 몸을 띄웠다.
촉수를 내리찍는 척살검.
하지만 환웅은 시간차로 더 많은 촉수를 만들어내 주변에 있는 인간형 괴물들의 등을 꿰뚫었다.
촉수 하나는 척살검에, 또 하나는 세인의 단도에 끊겼지만 나머지는 환웅의 의도대로 촉수에 꿰어 허공으로 올라갔다.
인간형 괴물들은 제 아버지의 손에 찢겨 제 아버지의 양분이 되기 위한 피를 흘렸다.
“피해!”
제하가 환웅 근처에서 계속 공격을 하고 있던 세인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환웅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졌다.
제하의 외침을 들은 주안과 환도 뒤로 물러섰다.
제 자식들의 피와 살점을 받아들인 환웅에게서 음산하고 서늘한 검은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하보다 작았던 육체가 점점 커지며 입고 있던 옷이 찢어졌다.
“헉!”
“저, 저게 뭐야?”
“괴물…….”
멀리에 있어서 환웅이 뻗어내는 촉수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점점 부풀어가는 검은 형태를 뒤늦게 발견했다.
괴물들과 싸우고 있던 동철이 피 섞인 침을 퉷 뱉었다.
“가지가지 하는군.”
성희가 부러진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예쁘장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저런 모습일 줄은 꿈에도 몰랐는걸.”
괴물 가까이에 있던 착호 일행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환웅이 완전히 부풀기 전에 죽이기 위해 맹공격을 퍼부었지만, 아까와 달리 환웅은 밀리지 않았다.
두 손으로 잡고 세게 휘두르는 검이 환웅의 단단한 피부에 부딪혀서 터엉, 터엉, 소리를 내며 몇 번이나 튕겨 나갔다.
주안이 두꺼워진 두 팔로 장창을 찔러넣어도 미세한 상처만 낼 뿐이었다.
“와씨…… 이거 어떡하지?”
칼춤을 추듯 공격하던 세인이 헐떡거리며 물었다.

환이 활을 공중으로 겨누고 시위를 당겼다.
타앗-
손가락을 놓자, 화살이 쌔액 날아가 환웅의 눈동자를 정확하게 찔렀다.
“크아아아아악!”
거대해진 환웅이 온몸을 비틀며 비명을 질렀다.
기포가 끓듯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거대해지는 육체에서.
스아아악-
독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이런……!”
진녹색 독 안개를 본 제하가 팔뚝으로 코를 가리며 뒤로 물러섰다.
환웅의 육체는 여러 괴물이 섞인 덩어리처럼 커졌지만, 인간일 때의 팔다리와 얼굴은 그때의 크기 그대로 남아 있었다.
허리 부근에 붙어 있던 팔이 꿈틀꿈틀 움직여 위쪽으로 올라가 눈에 박힌 화살을 빼냈다.
환웅의 작은 얼굴이 아래쪽으로 움직여 내려왔다.
괴물의 배에 환웅의 얼굴이 붙어 있는 꼴이었다.
환웅이 하나만 남은 눈으로 제하를 빤히 응시하며 히죽 웃었다.
“이리 와라, 내 아이들아. 이리 와서 아버지의 힘이 되어다오.”
환웅이 변신할 때부터 멈춰 있던 괴물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괴물들은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환웅을 향해 두려움 없이 다가왔다.
“아, 안 돼! 막아!”
동철이 비명처럼 외치며 달려왔다.
범 사냥꾼들과 범들도 괴물들과 환웅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콰아앙-!
퍼엉-!
타앙-! 탕-!
무기와 괴물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강한 힘이 담긴 무기와 괴물의 단단한 피부가 부딪칠 때마다 격한 파동이 일어났다.
평범한 인간이었다가 결계가 깨지면서 고대의 힘을 얻게 된 인간 중 일부는 이미 정신을 차리고 싸우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공포에 질려 있었다.
약간의 힘을 얻었다고 해도 괴물이 내뿜는 위압감은 여전히 어마어마한 와중에, 믿었던 환웅까지도 끔찍한 괴물이 되어버리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다들 정신 차려어어어!”
범 사냥꾼들이 외쳤다.
“이놈들을 막아야 해!”
괴물들이 환웅에게 도달하면 환웅은 더욱더 거대한 적이 될 터였다.
지금도 착호가 밀릴 정도인데, 모든 괴물을 흡수했을 때 환웅이 어떻게 변할지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범 사냥꾼들의 날카로운 외침에 조금쯤 이성을 되찾은 사람들은 제 주위에 쓰러져 죽은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또다시 덜컥 겁이 났지만.
“뭣들 하니? 어서 이리로 와.”
배에 붙은 얼굴로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현혹시키려는 듯 달콤한 목소리로 제 아이들을 부르는 환웅의 모습에, 다들 마른침을 삼키며 결심을 굳혔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