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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3화 (3/171)

3화 위대한 대종사 케겔

회귀 이후 몇 달쯤 지난 뒤.

‘드디어 도착했군.’

나는 마침내 감숙성 공동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신체연령 12세, 여정 도중 해가 바뀌어 신체연령 13세가 된 몸으로 중원의 변방인 감숙성까지 움직이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중원에서 성(省)급 행정구역은 나라 하나에 버금가는 면적과 인구를 가지고 있다.

이 시대 기준으로 평범한 인간이라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본인이 사는 성 밖으로 나갈 일이 없는 셈이다.

내가 떨어진 산서성에서 감숙성까지 가려면 중간의 섬서성을 가로질러야 하는, 생각보다 꽤 먼 거리.

나라 하나를 통째로 지나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본래라면 13세 어린아이가 홀로 갈 수 없는 먼 거리.

거기다 계절이 겨울이었으니, 이런 계절에 혼자 움직인다는 건 사실상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는 두 다리로 걸어서 감숙성까지 도달하였다.

운우지락과 미래의 삼처사첩을 위해서라면, 까짓거 감숙성이 뭐냐 저 멀리 해남도까지도 갈 수 있었다.

게다가 지난 두 달 동안 나는 몸에 달라붙은 가느다란 환관 말투, 내시 웃음소리 같은 빌어먹을 고자 버릇을 절세미녀와 정을 통하겠다는 목적의식과 초인적인 의지력으로 대부분 고치는데 성공했다.

“흐읍.”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숨을 들이쉬면서 토납법을 행했다.

토납법(吐納法).

심법이라도 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호흡법.

익혀봤자 내공이 쌓이고 그러지는 않는다.

호흡을 통해 흡수한 자연지기가 세맥을 통해 몸에 쌓인 탁기를 조금씩 몸 밖으로 밀어내면서 결과적으로 조금 건강해질 뿐이다.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양생법(養生法)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토납법은 무공 축에도 끼지 못하는 가장 기초적인 심법이었다.

건강과 장수에 효능이 있다는 이야기 때문에 토납법을 단련하는 민간인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

현대 중국에서 사람들이 매일 아침 공원에 모여서 라디오 틀고 태극권 건강 체조를 하는 것처럼 여기서는 다들 휴식 시간에 마을 광장에 삼삼오오 모여서 토납법 수련을 했다.

쉽게 말해서 토납법은 원시 고대 심법이었다.

누가 개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초의 내가기공이 바로 토납법의 형태였을 것이다.

토납법에는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세맥을 깨끗하게 만들어 축기의 토대와 단전의 기초를 닦아주는 효능이 있다.

거기에 정파의 정종무공, 사파의 사공, 심지어 마교의 마공과도 반발 없이 잘 섞이는 장점이 있기에 내공 입문용으로는 이만한 무공이 없었다.

그래서 본격적인 내공심법을 사사하기 전에 기초공으로 토납법을 가르치는 문파도 많았다.

거기에 더해서 나는 토납법의 숨겨진 효능을 알고 있었다.

‘토납법을 지속적으로 꾸준히 행한다면 정력이 좋아지지.’

정력 향상!

물론 토납법을 단련한다고 해서 갑자기 하루아침에 정력왕이 되는 건 아니다.

하루아침에 정력왕이 되는 건 채음보양을 골자로 하는 사파의 색공에서나 볼 수 있는 효과인데, 정파에 입문하려는 내가 사파의 색공을 익힐 이유는 없었다.

거기다 색공은 비효율적이며 채음보양을 주기적으로 하지 않으면 내공이 전부 흩어진다던가, 색공을 통해 증폭된 성욕에 지배당해서 색마가 되는 등 부작용도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색공을 단련할 생각 따위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나는 어디까지나 욕망을 해소하고 운우지락을 즐기며 안빈낙도하고 싶은 것이지 뇌 대신 양물로 사고하는 욕망의 노예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건 내가 추구하는 색도(色道)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러니 토납법이다.’

토납법은 색공처럼 극적인 효과는 없지만 대신 부작용도 없다.

어디까지나 지속적으로 한다는 전제 아래 매일매일 조금씩 서서히 정력이 좋아지는 거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조금이라도 정력에 보탬이 된다면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토납법은 원시 고대 심법답게 원리가 간단해서, 보통의 심법과는 달리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빠져 운기행공을 하는 과정 필요 없이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호흡만으로 연공이 가능한 동공(動功)이었다.

물론 한계도 있었다.

토납법은 어디까지나 축기(築氣)의 토대를 닦는 거지, 진짜 내공심법과는 다르게 축기 자체는 거의 불가능했다.

물론 토납법을 수련하는 동안에도 미약한 기가 단전에 쌓이긴 한다.

하지만 토납법의 축기 효율은 끔찍할 정도로 형편없어서 평생 수련해도 일년 내공조차 모으지 못할 정도니, 내공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저잣거리에 떠도는 삼재심법 같은 삼류 심법조차 꾸준히 수련하면 일년 이상의 내공을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 토납법보다 우위에 있었다.

그래서 보통 문파에서는 제자가 본격적인 내공심법에 입문한 이후부터는 토납법 수련을 중단한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정력을 위해서라면 평생 토납법을 갈고 닦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력이라는 방면에서 토납법은 마교의 천마신공, 무당파의 양의심공, 화산파의 자하신공과도 비견될 만한 신공절학이었다.

물론 내가 준비한 정력왕의 길을 향한 광세절학(曠世絶學)은 토납법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내게는 다른 비장의 무기도 있지.’

움찔.

나는 토납법과 동시에 항문 근처 치골미골근을 의식적으로 움직여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그렇다.

이것은 바로 케겔 운동.

미국의 위대한 대종사이자 산부인사 의사인 아놀드 케겔이 창안한 신공절학으로서, 지속적으로 행한다면 남성의 성기능을 강화할 수 있는 현대 의학의 정수였다.

무림의 토납법과 현대의 케겔 운동이 하나로 합쳐진다면, 그렇다면.

‘성인이 됐을 때는 정력왕이 되어있겠지.’

최강과 최강을 더하면 무적이 되는 법이다.

토납법과 케겔 운동으로 나는 색도(色道)의 일대종사(一代宗師)가 되리라.

입 밖으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지금 당장은 어차피 13세의 몸.

육체의 전성기가 아직 오지 않은, 미숙한 소년의 몸이기 때문에 운우지락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

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것은 불완전한 쾌락, 상대도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나도 원하는 바가 아니다.

게다가 나는 한 명이 아닌, 삼처사첩의 총 7명의 절세미녀를 침대 위에서 만족시켜야 하는 몸.

7명, 아니 10명의 미녀를 칠주야 동안 침대 위에서 상대해도 끄떡없고, 상대를 전부 만족시켜줘야 할 강철 같은 정력을 갖춰야 할 의무가 있었다.

기껏 운우지락을 시작했는데 먼저 나가떨어지거나 상대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만한 치욕이 없다.

‘내가 추구하는 색도는 상호 만족이 원칙. 나 홀로만 만족하면 안 되는 법이야.’

50년 동안이나 참은 만큼, 나는 만전의 상태에서 최고의 상대와 최고의 운우지락을 즐기고 싶었다.

그리고 오래오래 매일매일 운우지락을 즐기고 싶었다.

그러니 나는 케겔 운동과 토납법을 통해 정력을 연마한 뒤, 약관을 넘어 성인의 나이가 되어서 완벽한 정력왕의 체력과 육체를 갖춘 뒤에야 삼처사첩과 함께 운우지락을 즐기리라.

‘무공 준비도 이만하면 됐고.’

토납법을 익혔으니 내공 입문도 조금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으리라.

물론 정력에 비하면 토납법의 내공 입문 효과 따위는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전생의 나는 황궁제일고수였던만큼, 빌어먹을 고자 전용 동창의 비전이 아니더라도 금의위의 무공이나 군문의 무공, 황궁무고에 있는 각종 무공 구결을 전부 외우고 있었다.

원한다면 황궁 무공의 기본공을 익혀서 빠르게 무공에 입문하는 것도 가능했다.

황궁무공은 군대에서 사용될 용도로 만들어졌으니 실전적이고, 황제를 지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니 방어 중심적이다.

따라서 정신적 깨달음과 수행이 주요 목적인 정파의 무학과는 발전 방향이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황궁무공에 깊이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황궁무공에도 절정 이상의 경지에 도달이 가능한 상승무학이 존재하며, 재능 있는 자들은 화경 이상의 경지를 찍을 수 있었다.

황궁제일고수인 내 경지는 현경이었고, 금의위 도독의 경지는 화경이었으니.

‘문제는 내가 공동파 입문 예정이라는 거지.’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단순한 무공만 좋은 머저리가 아니다.

앞으로 떡상이 예정된 코인인 공동파 코인과 검성 유진휘 코인에 탑승하는 것.

그래서 공동파의 떡상과 함께 신흥세력 공동파의 이름 있는 협객으로 무명(武名)을 날리고 검성 유진휘와 사형제 관계를 맺어 그의 명성에 빌붙어 강호의 영웅으로 등극, 뭇 절세미녀들의 관심과 호감을 받아 삼처사첩을 구축하는 것.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주지육림 속에서 운우지락을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굳이 황궁무공을 익힐 필요는 없지.’

세상천지 다른 문파의 무공을 익힌 무인을 제자로 받아주는 문파는 없다.

다른 문파의 무공을 익혔다는 건 곧 그 문파의 소속이라는 것.

내가 황궁무공을 익혔다면 공동파 장문인은 날 황궁 소속으로 알 게 분명하다.

그러니 내가 공동파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토납법 이상의 무공은 안 익히는 편이 맞다.

그래야 공동파 장문인이 나를 제자로 받아들일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공동산 초입에 우뚝 섰다.

공동산.

도교의 성지 중 하나이자 과거 구파일방의 일좌를 차지했던, 지금은 몰락한 옛 명문대파 공동파가 자리한 산.

이 산 꼭대기에 공동파가 있으리라.

어차피 지금 공동파는 몰락할 대로 몰락한 문파.

기록에 따르면 이 시기의 공동파 구성원은 장문인인 복마검객 전영과 그의 제자인 미래의 검성 유진휘 단 둘뿐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공동파에서 내 입문을 거절할 여유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공동파로 향하는 산길을 올랐다.

*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눈이 소복히 쌓인 겨울의 공동산을 13세의 몸뚱이로 올라가는 건 힘들었다.

아무리 토납법으로 기초 체력을 다진 나였지만, 산은 산이었다.

험준한 산을 오르니 겨울의 찬바람을 맞고도 몸이 달아올라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헉, 허억.”

입안에서 단내가 난다.

나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계속해서 산을 올랐다.

케겔 운동과 토납법을 병행하는 건 덤이다.

고작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삼처사첩, 운우지락, 주지육림······.’

주저앉고 싶어질 때마다 나는 미래에 쟁취할 절세가인 삼처사첩 아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제 보는 것만으로 눈물을 삼키던 나날은 끝났다.

나도 할 수 있다.

간접 경험이 아닌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마자 힘이 솟아난다.

그래도 토납법 덕분에 힘들기는 해도 쓰러지지는 않았다.

공동산의 겨울이 불러온 북풍한설(北風寒雪)과 엄동설한(嚴冬雪寒)은 조금 괴로웠지만, 참을 만 했다.

그렇게 얼마나 등산했을까.

마침내 나는 공동산 취병봉(翠屛峰)에 세워진 공동파의 입구, 지붕에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산문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기로군.’

공동파.

한때 구파일방의 일좌를 차지했던 명문대파였으나 50년 전 마교의 침공을 받아 문도 대부분이 죽고 무공이 실전되어 영락한 문파.

원래대로라면 마교에 맞서는 정파의 최전선을 담당하는 문파는 무협소설의 클리셰대로 곤륜파였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50년 전 마교에서 그 사실을 역이용했다.

마교에서는 곤륜산 루트로 침공한다는 역정보를 무림맹의 세작을 통해 흘린 뒤 정파의 전력이 곤륜산에 집결한 틈을 타서 주력 침공 부대를 은밀하게 공동산 쪽으로 우회 기동, 텅 비어있던 공동파를 기습 침공하면서 정마대전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

정파의 최전방인데다 침공 정보 때문에 대비가 제대로 되어있던 곤륜파와는 다르게 공동파는 마교의 침공을 받아 멸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고, 그 상처를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야에 공동파의 산문이 보였다.

두근.

가슴이 뛰었다.

‘이 산문을 넘으면······.’

공동파의 제자가 되고, 전생과는 다른 삶이 펼쳐질 터.

삼처사첩, 그리고 운우지락.

내 진짜 인생의 시작이 눈앞에 있다.

그 사실에 나는 흥분을 애써 감추면서, 케겔 운동과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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