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사내로서 살겠다
-쉿, 쉬싯!
내가 검을 들자마자 살무사가 아가리를 쫙 벌리면서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재빨리 소양보를 밟아 놈의 공격을 피했다.
-쉬이이잇!
아슬아슬하게 놈의 아가리가 빗나갔다.
허공에 입질한 살무사가 분하다는 듯 소리를 내어가면서 내게 다시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는 전생에 지고의 경지인 현경까지 도달한 고수.
저 정도 미물은 일초지적에 불과하다.
나는 내력을 끌어올리면서 소양보로 공격을 다시 피한 뒤에 검으로 소양검법의 초식을 펼쳐서 그대로 놈의 모가지를 내려쳤다.
깡!
하지만 놈의 비늘은 흠집만 났을 뿐, 놈의 몸은 멀쩡했다.
생채기가 새겨진 놈의 몸에서 피가 흘렀다.
-쉬시시시시싯!!
내게 상처를 입은 게 자존심이 상한 모양인지 살무사가 발광했다.
영물은 아니지만, 미물 주제에 영기를 좀 모았다고 비늘이 제법 단단해진 모양이었다.
예상 밖이지만 괜찮다.
오히려 좋다.
비늘이 단단하다는 건, 그동안 모은 영기가 많다는 것이다.
영기가 많다는 건 저놈을 푹 고아 뱀탕으로 만들었을 때, 그 효능이 훨씬 좋아진다는 뜻이다.
더 좋은 뱀탕이라니!
“흐흐흐.”
나는 벅차오르는 기쁜 감정을 웃음으로 승화하면서 소양심법을 운용해서 내력을 끌어올렸다.
공동파의 내공심법은 역혈에 기반을 두고 있다.
물론 기초심법에 일시적으로 잠력을 폭발하는 역혈대법 따위는 들어있지 않지만, 현경의 고수인 나는 얼마든지 역혈의 묘리를 소양심법으로 응용해서 일시적으로 내력을 증폭시킬 수 있었다.
나는 소양심법을 역혈의 묘리로 운용했다.
우우웅.
단전이 진동하는 느낌과 함께 역혈의 묘리를 통해 증폭된 내력이 혈도를 거칠게 내달렸다.
혈도에 살짝 타격이 가서 몸이 아팠지만 괜찮다, 이 정도는 버틸 수 있다.
나는 역혈의 묘리로 증폭된 내공을 검에 주입했다.
내력이 깃든 검이 약하게 진동했다.
나는 진동하는 검을 들어 곧바로 살무사 쪽으로 파고들었다.
“안 돼! 사제!”
등 뒤에서 사형의 절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내가 물릴 것처럼 보여서 걱정하는 거겠지.
물론 사형의 걱정은 맞았다.
나는 지금 살무사에게 물릴 작정이었다.
당연히 미친 건 아니었고, 지극히 정상이었다.
‘살무사의 독은 양강(陽强)의 기운을 보유한 독, 체내에서 독기를 중화하여 양기만 남긴다면 이만한 정력제도 없지.’
중세 무림 의학 기본 원리 중 하나가 바로 약독동원(药毒同源)이었다.
사용하기에 따라 독이 약이 될 수도, 약이 독이 될 수도 있으니 약과 독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기적의 논리였다.
따라서 살무사의 독도 약독동원의 원리에 따라 정력제, 아니 약으로 사용할 수 있다.
물론 평범한 사람이 살무사에게 물린다면 당연히 중독되어 사경을 헤매다 죽겠지만, 나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전생의 황궁제일고수였던 내 내공 컨트롤 실력이라면 충분히 운기행공(運氣行功)만으로 독기를 몰아내고 양기만을 취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대로 살모사의 입질을 어깨로 받아내면서 동시에 역혈로 증폭한 내력을 실은 검을 놈의 몸통을 향해 내리쳤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
살무사의 비명과 함께 놈의 검붉은 독혈(毒血)이 분수처럼 피어올랐다.
아까보다 강화된 내력이 실린 검이 정확히 놈의 몸뚱이를 두 동강 낸 것이다.
그와 함께 나는 화끈한 독기가 놈의 입에 물린 어깨 부근부터 혈맥을 타고 온몸으로 빠르게 퍼지는 걸 느꼈다.
“사제!”
멀리서 울먹이는 사형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나는 잘린 채로 내 어깨를 물고 있는 살무사의 머리를 손으로 떼어내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이제 내력으로 독기를 몰아내고 양기만 취해야 했다.
원래라면 고작 한 달 동안 쌓은 쥐꼬리만 한 내공으로 독기를 체외로 배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역혈을 통해 내력을 증폭하고, 거기에 내 섬세한 내공 컨트롤이 더해진다면 가능했다.
그렇게 내가 마비되어가는 몸을 느끼면서 내력을 일으켰던 그때.
“사제! 안 돼! 사제! 사제에!”
사형이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덮쳤다.
우당탕탕.
나는 사형에게 덮쳐진 채로 흙먼지가 가득한 풀밭을 굴렀다.
뭐야?
갑자기 왜 덮쳐?
이제 나도 내공을 어느 정도 축기했으니, 몸 상태가 정상이었다면 기감을 통해서 사형의 돌진을 감지해서 회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는 운기행공에 온 신경을 집중한 상황에다 독기가 몸 안에 돌아다니는 상태.
기감이고 뭐고 감지를 했어도 독기 때문에 몸이 굳어가던 나는 사형의 돌진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나는 사형의 호리호리한 중성적인 몸 아래 굴욕적으로 깔릴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찔끔.
눈에서 통한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첫 포옹, 첫 생선 뼈 발라주기에 이어 이제는 첫 덮치기까지 절세미녀가 아닌 남자인 사형에게 빼앗긴 것이다.
원래 보름달이 뜬 아름다운 밤, 성욕을 증진하는 향초를 피운 분위기 좋은 침대 위에서 정욕을 참지 못한 청초하면서도 정숙한 미녀가 홍당무처럼 붉게 물든 얼굴로 굴곡진 몸매와 풍만한 수밀도(水蜜桃)가 그대로 드러나는 나삼(羅衫)을 펄럭이며 나를 덮치는 상황을 나는 원했다.
그런데 보름달 대신 노을이 뜨기는 했지만, 향초 대신 은은한 들꽃 향기가 풍기기는 했지만, 차가운 흙바닥 위에 누워 여자처럼 예쁘지만, 여자가 아닌 남자인 사형에게 깔리는 꼴이라니.
한 번 터진 눈물은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물이 흐르듯 계속 터져 나왔다.
살무사의 독기가 몸을 마비시켜서, 나는 제발 나 혼자 할 테니 참견하지 말라고 사형에게 말을 하고 싶어도 안면 근육이 굳어 말을 할 수 없었다.
“사제! 미안해, 내가 도와준다고 했는데······. 못 지켜줘서 미안해······. 조, 조금만 기다려! 내, 내가 치료해줄게! 사제······. 죽으면 안 돼······. 제발······.”
내 위에 올라탄 사형이 보름달의 달빛을 받아 쓸데없이 광채가 흐르는 잘생긴 얼굴에서 단장(斷腸)의 고통이라도 겪는 것처럼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내 앞섬을 풀어 헤쳤다.
잠깐, 내 상의는 왜 벗겨?
나는 반항하려고 했지만, 살무사의 독기에 마비당한 신체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지금 독기가 골수에 침투하는 것을 내력으로 막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유진휘가 내 앞섬을 풀어헤치자, 그동안 외공 수행을 통해 다져진 탄탄한 가슴 근육과 복근이 붉은 노을 아래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나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내 상의 탈의를 여자가 아닌 남자에게 보여주다니.
대체 저 무도하고 잔인한 사형은 얼마나 내 순정(純情)을 빼앗아야 만족할 것인가?
사형의 손놀림에도 반항하지 못하고 있는 무기력한 내 모습에 자괴감이 든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형은 보름달 아래 드러난 내 쇄골에 있는, 살무사가 문 흔적이 남은 상처 부위에 입을 가져다 댔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설마, 아니지?’
차마 상상하는 것조차 끔찍한 그 응급처치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내 실낱같은 희망을 사형은 그대로 배신했다.
사형의 부드러운 입술이 내 목덜미와 어깨 사이에 닿았다.
그의 따뜻한 체온과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이 내 몸을 통해 전해졌다.
그렇다.
사형이 내 어깨 부근에 키스한 것이다.
“어으······. 으어어어어어어······!”
나는 전력을 다해 몸을 움직이려 노력하면서 안 된다고, 그만하라고 외치려 했다.
하지만 살무사의 독에 중독되어 마비당한 몸으로는 제대로 된 언어를 내뱉을 수 없었다.
의미 없는 아우성이 땅거미가 지는 들밭에 울렸다.
츄우, 쭈욱, 쭈우우웁.
사형이 내 상처를 핥으면서 정성스럽게 빨아댔다.
누가 들으면 오해할 만한 물소리가 내 어깻죽지와 맞닿은 사형의 입술에서 울렸다.
사형은 나를 꼬옥 끌어안은 채로, 내 어깨에 달라붙어 상처를 빨고 있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지금의 사형은, 독사에 물린 나를 치료하기 위해 입으로 독을 빨아내는 응급처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세계의 의술에서는 제법 보편적인, 독사에 물렸을 때 하는 응급 처치였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가슴으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으아아아, 으어어어어······!!”
어느새 노을이 전부 지고, 보름달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밤하늘.
시야가 눈물로 뒤덮이면서 흐려졌다.
이럴 수는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포옹, 생선 뼈 발라서 먹여주기, 깔아뭉개기까지는 백번 양보해서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상의를 벗긴 것도 모자라 목덜미에 키스라니!아무리 응급처치라고는 하지만, 내 첫 목덜미 키스를! 키스마크를! 남자에게 내어주다니!
분하다.
원통하다.
너무 억울했다.
최루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눈물이 줄줄줄 흘렀다.
츄우우, 츄우.
독혈을 빨아낸 사형이 어깻죽지에서 입술을 떼어냈다.
내 어깨의 상처와 그의 앵두처럼 탐스러운 붉은 입술 사이로 은빛 실선이 살짝 이어졌다 끊어졌다.
사형이 잘생긴 뺨을 잔뜩 붉힌 채로 입에 머금은 독혈을 밖으로 뱉어냈다.
“으아아아······.”
독기가······. 독기가 줄어들었다.
내 정력제가······. 줄고 있다.
독기가 미약하게 줄면서 마비가 조금 풀렸다.
나는 그제야 마비에서 살짝 풀려난 사지를 가지고 사형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다.
이런 게 우주적 공포인가?
상상만으로 정신이 오염되는, 코즈믹 호러 같은 이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나야 했다.
“사제, 왜 그래? 많이 아파? 미안해. 조금만 참아······. 내가 안 아프게 해줄 테니까······.”
하지만 사형은 무슨 오해를 한 것인지, 나를 못 벗어나게 꽈악 끌어안으면서 다시 내 어깨의 상처를 빨아내기 시작했다.
츄웁, 츄우우웁, 츄우우우······.
그의 입술이 다시 내 어깨에 닿았다. 끈적한 물소리와 함께 사형의 부드러운 입술과 혀의 감촉이 내 몸을 간지럽게 만들었다.
츄우···. 츄웁······. 쮸우······.
사형의 응급처치는 계속됐다.
나는 그렇게 내 몸의 독기가 전부 빠져나갈 때까지, 사형에게 붙잡혀 끔찍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
사제가 살무사에게 물린 순간
유진휘의 사고가 정지됐다.
하나뿐인 소중한 사제였다.
지켜주기로 결심했었다. 옆에 서도록 도와준다 다짐했었다. 그날, 우는 사제를 달래주면서.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고작 뱀이 징그럽다는 이유만으로, 사제를 독물 앞에 홀로 두었다.
그러니 지금 사제가 독사에 물려 사경을 헤매는 건 내 책임이다.
유진휘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제!”
사제의 이름을 부르면서 울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소중한 사제가 지금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 공포와 죄책감이 유진휘의 마음을 덮쳤다.
유진휘가 몸을 날렸다.
“사제! 안 돼! 사제! 사제에!”
데굴데굴.
달밤의 공동산 들판. 이철수를 덮친 유진휘가 그의 앞섬을 파헤쳤다.
“사제! 미안해, 내가 도와준다고 했는데······. 못 지켜줘서 미안해······. 조, 조금만 기다려! 내, 내가 치료해줄게! 사제······. 죽으면 안 돼······. 제발······.”
유진휘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녀의 머릿속에 언젠가 사부 전영에게 들었던 독사에 물렸을 때의 응급처치 방법이 떠올랐다.
상처를 입으로 빨아내 독혈을 밖으로 내뱉는다는 방법.
여인이 사내에게 하기에는 수치스러운 방법이지만, 유진휘에게는 지금 그런 체면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소중한 사제. 하나뿐인 사제. 겉은 어른스럽지만 실은 누구보다 유약한 사제. 그러면서도 불평 한 마디 없이 힘든 수련을 이겨내고, 나아가 기재인 그녀 옆에 서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사제.
그런 사제를 살릴 수만 있다면 유진휘는 무엇이건 할 자신이 있었다.
쭈욱, 쭈욱, 츄웁.
유진휘는 입술을 통해 이철수의 어깨에 난 물린 상처에서 독혈을 뽑아냈다.
“으아아아, 으어어어어······!!”
이철수가 몸부림치며 신음을 흘렸다.
사제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폭포수처럼 흘렀다.
그의 신음을 듣고 그의 눈물을 본 유진휘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얼마나 아프면 저렇게 비명과 눈물을···.
사제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사제, 왜 그래? 많이 아파? 미안해. 조금만 참아······. 내가 안 아프게 해줄 테니까······.”
유진휘는 사제의 아픔을 덜어내기 위해 그를 더 꼬옥 끌어안으면서 더 빠르게 입술을 상처에 맞추고 독혈을 빨아 뱉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계속해서 흘렀다.
‘전부 내 책임이야.’
사형으로서 사제를 지켜주고 이끌어주기로 결심했다. 의지되는 사형이 되기로 결심했다. 사제를 책임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어떤가? 그를 지켜주기는 커녕 도리어 반대로 지켜지고 말았다.
그가 독사에 물려 사경을 헤맬 때까지 유진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유진휘는 통렬한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꼈다.
그녀의 머리에 문득 얼마 전에 있었던 사부 전영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철수도 이제 본 파의 엄연한 정식 제자다. 원래라면 네가 남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철수한테도 알려줘야겠지만······. 사부는 걱정이 앞선다. 휘아야. 너는 강호 무림에서 사내로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부가 아닌 내부인 본 파에서부터 철저히 사내로서 행동해야 한다. 평소 행동거지가 빈틈 없이 사내다워야, 강호 무림에서도 사내로 행세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 역시 널 사내로 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어린 철수가 네가 여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널 사내처럼 대할 수 있을지 사부는 걱정이 되는구나. 철수는 연기도 잘 못하는 순수한 아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철수가 약관이 되어 장성하면 진실을 알려주려 했다. 하지만 사형인 네가 원한다면 지금 밝혀도 좋다. 선택은 네 몫이니라.’
남장여자라는 사실을 밝히는 건 그녀의 몫이라고 사부는 말했다.
‘그건, 지금 당장 결정할 일은 아닌 듯합니다. 시일을 두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사부님.’
당장 결정할 사안은 아니라 생각해서 말미를 달라 한 유진휘였다.
하지만 오늘 현 시간부로.
유진휘는 결정을 내렸다.
‘외강내유하고 순진하고 성실한 사제한테는 사형이 필요해. 누구보다 사내다우면서도 의지할 수 있고, 언제나 지켜주고 이끌어주고 책임을 져주는 든든한 사형이. 하지만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는 듬직한 사형이 될 수 없어.’
그러니 사형으로, 사내로 평생을 살겠다.
오로지 사제를 위해서.
유진휘는 그렇게 다짐하면서, 비장한 마음으로 이철수의 독혈을 빨아냈다.
“으아아아······.”
그런 그녀의 귓가에 사제의 구슬픈 비명이 들려왔다.
*
“사제. 이제 괜찮아졌네. 다행이야······.”
진맥을 끝낸 사형이 내 손목을 놓아주면서 안심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결국 빌어먹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응급조치는 내 마비가 풀릴 정도로 사형이 독기를 빼낸 뒤에야 끝났다.
나는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 즉시 사형에게 운기행공으로 독을 몰아낼 테니 그만해도 된다고 말했고, 사형은 내 몸에서 드디어 떨어졌다.
그 이후 나는 운기조식을 통해 독기를 체외로 몰아내고, 양기만을 취해 몸에 흡수했다.
사형이 독기를 많이 빼냈기에 원래 예상보다 적은 양기를 취하기는 했지만, 어쨌건 정력이 늘어났으니 됐다.
나는 아직도 화끈거리는 어깻죽지를 만졌다.
사형이 몇 번이고 빨아댄 탓인지, 내 어깻죽지는 입술 모양으로 빨갛게 부어 있었다.
그렇다. 키스마크였다.
그것도 남자가 새긴 키스마크가 내 목덜미를 뒤덮고 있었다.
나는 빨갛게 부어오른 목덜미와 쇄골을 만졌다.
그와 함께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나는 뇌리에서 상상하는 것만으로 뇌에 타격을 입히는 끔찍한 기억을 억지로 가라앉혔다.
“제 목숨을 구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형.”
나는 속으로 이를 뿌득뿌득 갈면서, 겉으로는 옷매무새를 다듬은 뒤 더없이 공손하게 말하며 포권을 취했다.
강호의 은원(恩怨)이란 질긴 것.
내 몸에 새겨진 이 끔찍한 원한은 기필코 나중에 사형에게 배로 받아내리라.
“아니야. 사제. 은혜라고 생각 안 해도 괜찮아. 사제는 남이 아니라 내 사제고, 우리는 사형제 사이니까. 응.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 오히려 내가 미안해. 위험해지면 돕겠다고 했는데······.”
내 말에 사형이 얼굴을 붉히면서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사형. 그럼 이제 독기도 몰아냈으니······. 저 뱀으로 같이 생사탕(生蛇湯)을 만들어 먹도록 하죠.”
나는 사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포권을 풀면서 영약을 달여 먹기 위해 채집을 나오기 전부터 미리 챙겨둔 냄비를 꺼냈다.
원래 나 혼자 먹으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어쨌거나 겉으로는 사형이 중독되어 사경을 헤매는 나를 구해준 꼴이 되었으니, 저 살무사의 지분을 내가 100% 주장할 수 없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깝지만 어쩌나.
사형에게도 조금은 나눠줄 수밖에.
내가 그렇게 눈물을 삼키던 그때.
“생, 생사탕이라니? 사제. 서, 설마 저 뱀을 먹겠다는 거야? 지금?”
사형이 흠칫하고 놀라면서 내게 말했다.
기껏 귀한 보양식을 나눠주겠다는데 반응이 왜 저래?
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사형에게 말했다.
“네. 사형. 지금 안 먹으면 신선도가 떨어지니까요. 그리고 사형은 모를지도 모르겠지만, 뱀을 푹 고아 만든 생사탕은 남자한테 좋은 보양식입니다.”
“나, 남자?! 보, 보양식!?”
내 말에 지나치게 동요하는 사형.
아무래도 뱀탕을 먹기 싫은 모양.
뭐 그럼 나야 좋다.
“싫으면 저 혼자 먹겠습니다.”
나는 사형을 지나치면서, 냄비를 세팅하고 토막 난 뱀의 몸에 칼을 가져다 대면서 이렇게 말했다.
밤도 늦었으니 빨리 뱀탕 먹은 뒤에 광성단혈 찾아서 영약도 파밍하고 공동파의 비전절학도 찾아야 한다.
그때.
“자, 잠깐! 나, 나도 먹을래! 생사탕! 남자한테 좋다면······!”
등 뒤에서 사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사형의 말에 속으로 혀를 찼다.
하.
또 남자에게 좋은 건 알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