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16화 (16/171)

16화 기연을 만나다

광성단혈에 도착하도록 사형을 유도하는 것까지는 어렵지 않았다.

유진휘가 제아무리 미래의 검성이라 하더라도, 아직 내력이 일류 수준도 못 되는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안력(眼力)과 기감을 키워봤자 밤의 산에서 길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낮의 산과 밤의 산은 다르다.

아무리 환한 보름이라고 해도 어두컴컴한 밤의 산에서는 평소에 자주 가던 길이라도 제대로 길을 찾지 못하고 잃어버리기가 십상이었다.

GPS도 핸드폰 네비게이션도 없는 중세 무림에서 독도법(讀圖法)과 길찾기는 제법 고급 기술이었다.

게다가 유진휘는 천무지체인만큼 무공에 한해서 무재(武才)와 오성(悟性)은 뛰어났지만, 그 밖의 분야에서는 평균을 살짝 밑돌았다.

이는 전생의 기록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인데, 강호 초출 당시의 유진휘는 그래서 상당히 고생했다고 했다.

뭐 내가 만난 말년의 천하제일검 유진휘는 강호에서 제법 굴러먹어서 경험치가 쌓인 탓에 그런 순진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건 미래고 지금은 아니었다.

그래서 순진한 사형은 나를 철석같이 믿고 내 길 안내를 따라왔던 것이다.

덕분에 나는 아주 편하게 길을 잃는 척 교묘하게 새벽의 공동산을 헤매면서 광성단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형의 두려움 가득한 목소리에 나는 다시 감정을 집중했다.

의도해서 잃어버린 길이기는 하지만, 어쨌건 길을 잃은 건 사실이니 사과를 해야 했다.

슬픈 감정을 떠올리기 위해서, 나는 다시 한번 양물이 잘리는 끔찍한 광경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주르륵.

버튼이 눌리자 자동으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죄송합니다. 사형, 우제(愚弟)가 길을 그만 잃어버렸나 봅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흑흑흑.

나는 한껏 눈물을 흘렸다.

전에도 말했듯 선즙은 필승이었다.

물론 지나치게 강한 선즙은 좋지 않았기에, 저번처럼 서럽게 울지는 않았다.

그냥 적당히, 눈두덩이 빨개질 정도로만 울었다.

덥석.

사형이 손을 잡았다.

그가 다른 손으로 내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사제. 길을 잃을 수도 있지. 밤의 산길은 위험하니까······. 내가 더 미안해. 진작 사제랑 같이 길을 찾았어야 했는데······.”

사형이 내게 말했다.

역시 호구 사형.

이 정도로 넘어가주는군.

물론 오늘 길을 잃어버린 대가로, 나는 사형에게 공동파의 잃어버린 절학을 전해주고 영약도 조금 나눠줄 생각이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짐에다 식기도구를 챙겨온 거다.

물론 독식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건 사형이 빠르게 검성이 되어야 나에게 떨어지는 떡고물도 많아질 테니 사형이 강해지는 것도 내게는 잘생긴 사형에게 느끼는 빌어먹을 기분과는 별개로 중요했다.

전생의 기록에 따르면 사형이 광성단혈에서 얻은 공동파의 절학은 심법인 삼음진결(三陰眞訣)과 검법인 칠살검(七殺劍)과 현천검(玄天劍), 보신경인 행운유수(行雲流水), 수법인 복마대력수(伏魔大力手), 지법인 건양지(乾陽指)와 곤음지(坤陰指),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당의 태극혜검, 화산파의 매화검법, 마교의 천마신공처럼 공동파를 상징하는 진산절기(鎭山絶技)인 복마검법(伏魔劍法)이었다.

그렇다.

50년 전 공동혈사 이후 실전된 공동파의 본산절기인 복마검법이 이곳에 잠들어 있는 것이다.

‘지금의 공동파에는 복마검법이 없지.’

현재 몰락한 공동파에 남은 가장 높은 수준의 무공은 전반부만 남은 반쪽짜리 칠살검이었다.

50년 전 공동파를 침공한 마교의 선발대는 집요할 정도로 철저하게 공동파를 파괴했다.

그들은 저항하던 공동파의 본산제자는 물론 속가제자와 속문까지 전부 학살해서 감숙성을 피로 물들였다.

그 와중 공동혈사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였던 천뢰검 임백선은 삼대제자의 신분이라 기초공과 몇몇 무공만 배운 상태였고, 공동파의 절학을 보존하던 장경각은 불타버린 지 오래.

그렇게 공동혈사 이후 공동파의 상승절학은 전부 명맥이 끊겨버렸다.

공동파를 대표하던 절기인 복마검법마저.

‘전영의 별호가 복마검객인건, 반쯤 비웃음을 담아 부르던 멸칭에 가까웠고.’

그런데도 전영이 복마검객이라는 별호를 달고 있는 건, 그나마 남은 공동파의 마지막 영역을 호시탐탐 탐내는 흑도 문파 사영회에서 전영을 조롱하기 위해 퍼뜨린 멸칭이었다.

이미 끊어진 복마의 명맥을 찾는 것이 어리석은 뻘짓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멸칭.

하지만 전생에서 복마검법을 되찾은 이후, 복마검법을 뒤늦게 유진휘에게 습득한 전영은 별호에 걸맞는 활약을 선보이며 진정한 복마검객으로 거듭났다.

어쨌건, 복마검법이 저 캄캄한 동굴 너머에 잠들어 있다.

“본산에서 꽤 떨어졌어······. 사부님이 걱정하실 텐데······.”

사형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공동파 본산에서 광성단혈까지는 꽤 먼 거리.

게다가 광성단혈까지 오면서 나와 사형은 험한 공동산의 절벽을 몇 번이고 타고 지나왔기에 사부라고 해도 우리를 쉽게 발견할 수 없으리라.

광성단혈 자체가 사람 발이 닿지 않을 정도의, 나는 새도 날개를 접고 쉬어가는 험지에 있기에 그동안 발견되지 않아서 50년 전 공동혈사에서도 무사했던 거다.

사형은 그래서 걱정하고 있는 거였다.

“걱정마십시오. 사형. 사부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찾아낼 겁니다. 저는 사부님을 믿습니다.”

나는 순진한 사제를 연기하면서 사형에게 말했다.

내 말에 사형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사제의 말이 맞아. 나도 사부님을 믿어.”

“맞습니다. 사형······. 죄송하지만, 밤새 험한 산에서 헤맨 탓인지 우제(愚弟)의 몸에 피로가 몰려오는 것 같습니다. 저 동굴에서 조금만 쉬어도 괜찮겠습니까?”

나는 몸을 비틀거리면서 광성단혈의 입구를 가리켰다.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밤새도록 험한 산을 타다 보니 내 몸은 많이 지친 상태였다.

위치야 이미 전생에 동창을 통해 습득한 정보를 통해 숙지하고 있었지만, 영약을 찾는다는 목적이 없었더라면 그냥 중간에 발길을 돌려서 본산으로 돌아갔을 거다.

“응. 알았어. 사제. 피곤할 만해. 그럼 저기서 조금만 쉬자.”

내가 휘청이는 연기를 하자 사형이 내게 다가와 자연스럽게 어깨동무를 했다.

잠깐? 어깨동무?

첫날의 끔찍한 추억이 떠오른 내 몸이 잠깐 굳었다.

사형과 내 눈이 마주쳤다.

걱정이 가득 깃든 똘망똘망한 눈동자가 보였다.

먼저 피곤하다고 말해놓은 상황이니, 사형이 어깨동무로 부축하더라도 내게는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빌어먹을,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더니.

어쩔 수 없다.

오늘만큼은 남자에게 내 몸을 맡길 수밖에.

코 끝에 스치는 들꽃 향기를 맡으면서, 사형의 부축을 받아 나는 광성단혈 안으로 들어갔다.

*

광성단혈 안은 넓었다.

천장에는 형광빛을 띄는 이끼가 붙어 있어서 생각만큼 어둡지 않았다.

거기에 광성자가 도를 닦고 무극자가 은거하며 등선했다는 전설이 깃든 동굴답게 영기(靈氣)가 모여든 덕분에 걸으면서 토납법을 하는 것만으로 몸에 활기가 조금씩 쌓였다.

그리하여 피로도 자연스럽게 풀렸다.

나는 사형을 광성단혈 안의 깊숙한 장소로 인도했다.

그렇게 깊숙히 들어간 우리는 마침내 자연 동굴이 아닌, 사람의 손이 닿은 인공 석굴로 진입했다.

천장에 알알이 박힌 야명주(夜明珠)를 발견한 사형의 눈동자가 커졌다.

“우와아아아······.”

사형이 탄성을 내뱉었다.

여기까지는 기록 그대로다.

광성단혈 심처에 존재하는, 무극자의 유산이 있는 혼원비동에 드디어 진입한 것이다.

‘기관장치는······. 없군.’

기록대로 기관장치는 없었다.

활기를 되찾은 나는 사형의 부축에서 벗어나 그와 함께 나란히 복도를 걷고 있었다.

“사제, 여기가 어딜까? 설마 전설에서나 나오던 광성단혈은 아니겠지?”

사형이 내게 순진한 눈빛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사형의 말에 적당히 답했다.

그가 말한 전설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 광성단혈의 위치는 300년 전의 공동파 출신 천하제일인인 무극자가 은거한 뒤부터 공동파 내부 기록에서도 전부 지워져서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전생의 사형이 광성단혈을 발견한 것도, 지금처럼 밤의 산에서 길을 잃었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이런 걸 우연히 발견하다니, 역시 기연은 될놈될인 모양이다.

무극자가 은거한 뒤에 우화등선(羽化登仙)했다는 것도 공동파 내부에 전해지는 전설에 불과하다.

가장 사실에 가까운 추측은 당시 공동파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오른 무극자가 은거하기 전 광성단혈 관련 기록을 모조리 지우고 떠났다는 가설이었다.

뭐가 됐건 300년이나 지난 지금은, 광성단혈의 위치와 관련 기록이 철저히 실전(失傳)된 미스터리를 풀 길은 없었다.

광성단혈은 공동파가 개파조사로 모시는 광성자가 도를 수행한 신화가 전해지는 동굴로, 공동파의 성지(聖地)나 다름없는 장소라서 더더욱 그렇다.

‘더 수상한 건 기연을 취한 뒤에 시간이 흘러 유력한 후기지수로 떠오른 유진휘가 폐관수련을 위해 다시 광성단혈을 찾았을 때는 이미 내부가 무너진 상태라, 무극자의 혼원비동으로 가는 길이 막힌 거지만.’

길이 무너져 비동이 막힌 건 우연이었을까?

무극자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문파의 성지와 관련된 기록을 전부 지웠을까?

전생에서 전부 미스터리였지만, 사실 뭐 지금 상황에서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쨌건 난 비동에서 챙길 것만 챙기고 나가면 되는 일이니까.

‘흐흐흐.’

드디어 영약을 먹을 차례다.

안 그래도 내 몸은 근골이 좋지 않은 데다 나이가 13세가 넘어 탁기가 많이 쌓이고 세맥이 막힌 상황이었다.

영약을 먹어서 세맥을 타통하고 탁기를 몰아내서 벌모세수를 해야 했다.

그렇게 내 몸에서 쌓인 탁기를 전부 배출한다면······.

‘피부가 좋아진다······!’

그것도 그냥 좋아지는 게 아니다.

벌모세수를 끝낸 순간 나는 아기 피부처럼 촉촉한,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탁기 없이 뻥 뚫린 혈도 덕분에 내력의 수발이 쉬워지고, 영약의 기운으로 막대한 내공을 축기하는 건 피부가 깨끗해지는 것에 비하면 부가효과에 불과했다.

비록 성형수술도 없는 중세 무림이라 타고난 얼굴을 바꾸는 건 불가능했지만, 피부만큼은 관리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깨끗하고 촉촉하고 부드럽게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궁극의 육체미를 완성하려면 반드시 깨끗한 피부가 필요했다.

‘깨끗한 피부야말로 육체미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지!’

몸이 아무리 좋아도 피부가 별로라면 소용이 없다.

얼굴이 달처럼 움푹움푹 패여 있다면? 그것만큼 끔찍한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새하얗고 깨끗한 피부야말로 궁극의 육체미의 마지막을 장식할 화룡점정인 것이다.

물론 중세 무림에는 현대 과학의 정수인 스킨, 로션, 화장품을 포함한 피부 미백 용품은 없었지만 대신 벌모세수가 있었다.

게다가 내공이 늘어나는 것 역시 나에게는 좋은 일이다.

어쨌거나 내공은 곧 생명력과 정력에 영향을 끼치는 힘이니, 내공이 많으면 많을수록 정력도 증강되는 건 당연한 이치였으니까.

무공은 싸움에 이기려고 배우는 게 아니다. 섹스하려고 배우는 거다.

‘흐흐흐. 기다려라. 영약아.’

나는 속으로 웃음을 흘리면서 사형과 함께 비동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혼원비동이라는 네 글자가 세워진 비석과 함께 300년 전의 천하제일인, 공동파가 낳은 절대고수인 혼원검제 무극자의 은거지에 우리는 도달할 수 있었다.

천장에 야명주가 박혀 있고, 돌로 만들어진 탁자 위에는 비급으로 보이는 서책이 있는 비동의 동쪽 벽면.

그곳에서 나는 마침내 영약을 찾을 수 있었다.

영약 앞으로 간 나는 손을 부르르 떨었다.

유일하게 자연 그대로의 동굴을 그대로 간지하고 있는 비동의 동쪽에는 다가가는 것만으로 영약에서 피어오르는 영기(靈氣)에 피부가 저릿해지고 기감이 조건반사적으로 예민해질 정도의 천고의 영약이 있었다.

동굴 바닥에 뿌옇게 고인 유백색의 조그마하고 창백한 액체 웅덩이를 강호 무림에서는 일컫길 미타성수(彌陀聖水).

극음의 기운이 천년이 넘는 시간 끝에 모여 만들어진 천고의 영약이자······.

음한지기를 품고 있어 정력에는 백해무익(百害無益)한 병신 같은 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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