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본 파의 재건은 이제 걸음마를 막 뗀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본 파에 야명주와 이합신공 같은 무가지보(無價之寶)가 있다는 사실을 공표하는 것은 본 파라는 어린 양을 굶주린 이리 떼 한가운데 던지는 것과도 같습니다. 지킬 힘이 없는 보물은 재액(在厄)과도 같습니다. 무정강호(無情江湖)에서 보물을 내보일 때는 반드시 보물을 지킬 힘을 지녀야 합니다. 하지만 본 파는 보물은 있으나 지킬 힘은 없습니다. 그러니 힘을 충분히 갖춘 뒤에 보물을 내보여야 합니다.”
나는 전영을 보면서 공손한 말투로 말했다.
내 말은 지극히 정론이었다.
말만 명문이지 구성원이 고작 3명뿐인 공동파가 보물을 갖고 있다고 공표한다? 그건 흑의복면인에게 공동파 본산 프리패스 끊어주는 꼴밖에 안 된다.
공표 이후 일주일 만에 흑의복면인 부대가 몰려와서 공동파가 멸문한다는데 내 전 재산을 걸 수 있다.
전영이 생각이 있다면 내 제안을 수용하겠지.
내 말을 들은 전영이 눈을 살짝 감았다 떴다.
“네 말에도 일리가 있구나. 좋다. 그리하도록 하지. 본 파가 야명주와 이합신공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당분간 대외비로 하도록 하겠다. 옛말에 사불급설(駟不及舌)이라 하였으니 두 사람 모두 경거망동(輕擧妄動)하지 말도록.”
다행히 전영은 내 생각대로 따라주었다.
나와 사형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에게 입단속을 시킨 전영이 처소 한쪽 구석에 있는 궤짝을 열어 야명주와 이합신공의 비급을 넣고는 뚜껑을 탁하고 닫았다.
자물쇠까지 채운 뒤, 전영이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너희가 무사히 생환(生還)하기도 하였고, 본 파의 절학도 되찾고 선조 님들의 인도로 기연도 얻은 데다 철수의 성취도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으니 이를 기념하여 내일은 외식하도록 하겠다.”
전영이 우리를 바라보면서 옅게 웃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흥분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외식이라.
나는 전영이 우리를 데리고 외식할 장소가 어디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누가 있는지도.
‘드디어 백도제일화를 만나게 되겠군.’
백도제일화(白道第一花) 냉혼검희(冷魂劍姬) 서하린.
전생에서 검성 유진휘의 사매(師妹)이자 정파제일미녀였던 그녀의 공동파 입문 전 신분은 객잔주의 딸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살던 객잔이 공동파 산하의 유일한 사업장인 공동객잔.
사부가 내일 우리를 데려갈 외식 장소였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나는 사형과 함께 사부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모든 작업을 끝낸 뒤, 나는 청운각의 내 개인실로 돌아왔다.
드르륵.
미닫이문을 열자 낡고 초라한 이부자리와 짐들이 나를 반겼다.
탁. 나는 미닫이문을 닫고 짐에서 기름통을 꺼내 손에 듬뿍 발랐다.
그동안은 사형과 함께 있느라 현대 과학의 개세절학이자 비수술적 음경 확대술인 젤크 운동을 행하지 못했다.
무려 일주일이나 젤크 운동을 빼먹다니!
기연 때문이기는 하지만,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苟日新 日日新 又日新)을 좌우명(座右銘)으로 삼은 나로서는 뼈아픈 실책이 아닐 수 없었다.
지난 일주일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라도 젤크 운동을 열심히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오른손을 바지춤 안에 넣었다.
소리 없는 아우성과 함께 내 허리가 다시 활처럼 휘었다.
이불 속 궁신탄영(弓身彈影)의 현현이었다.
*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나는 아침부터 기분 좋은 하반신의 뻐근함을 느꼈다.
이불을 들어올리자, 바지춤 위로 세워진 거대한 피라미드가 나를 반겼다.
그렇다.
건강한 남자라면 누구나 한다는 아침 텐트가 오늘도 나를 찾아온 것이다.
“흐흐흐흐.”
나는 곧추 선 바지 피라미드를 보면서 웃음을 흘렸다.
보통 사람들은 일과가 시작되는 아침을 싫어한다지만, 나는 아니었다.
잠에서 깬 직후 우뚝 솟아오른 불기둥을 보는 이 시간이야말로 내가 제일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제 나도 아침에 선다. 나도 남자다는 사실이, 성장에 따라 조금씩 커지는 양물의 굵기와 길이, 강직도를 오감으로 느끼는 순간이 나는 순수하게 기뻤다.
‘지금이라면 무발기 사정도 가능할 것 같군.’
아니, 발기했으니 무발기 사정은 아닌가?
나는 바지춤을 들춰 양물의 스펙을 점검했다.
거기에는 십삼 세 어린아이의 물건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매머드가 바지를 뚫을 듯 곧추서 있었다.
그야말로 날마다 새로워지는 아랫도리였다.
‘슬슬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겠군.’
양물의 스펙을 체크한 나는 젤크 운동과 케겔 운동을 넘어 상승의 공부로 넘어가야 할 때임을 깨달았다.
젤크 운동과 케겔 운동은 현대 의학이 낳은 광세절학이기는 하지만 무공으로 따지자면 기초공.
당연히 이것만으로는 내가 바라는 절대 정력을 이룰 수 없다.
마침 기초가 거의 완성되어가니, 이제 상승절학에 입문할 차례였다.
그래야 색도의 절정고수가 될 수 있으리라.
‘행잉을 시작할 때가 되었어.’
음경과 고환을 끈으로 묶은 뒤에 끝에 무게추를 달아 마보 자세로 진자운동을 하는 행잉(Hanging)이야말로 비수술적 음경 확대술의 상승절학이라 할 수 있었다.
행잉 운동은 현대에서도 유명한 비수술적 음경 확대술로서 일부 수련원에서는 행잉을 기(氣) 수련, 단전호흡과 연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氣)와 내공(內攻)이 없는 현대에서 기 수련, 단전호흡과 행잉의 연계 효능은 플라시보 효과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는 현대 지구가 아닌 이세계 중세 무림. 내공이 실존하는 이 세계에서 내력을 끌어올린 채로 행잉을 한다? 어쩌면 인터넷 등지에서 주장하는 허무맹랑한 정력 강화 효과가 실제로 발생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발생하지 않아도 좋다. 행잉의 효능은 이미 수많은 사람이 입증했으니 말이다.
젤크 운동으로 충분히 양물의 기초를 다졌으니, 이제 상승의 공부인 강직도와 길이, 지속력, 골반저근을 단련하는 행잉에 입문할 때였다.
‘적당한 무게추와 부드러운 천을 구해야겠군······.’
나는 행잉의 준비 재료를 떠올리면서 미닫이문을 열고 오늘의 일과를 시작했다.
늘 하던 것처럼 사형과 함께 아침 청소를 마치고, 사부를 깨웠다.
“흠흠. 그럼 오늘은 어제 약조한 대로 외식을 하도록 하겠다.”
잠에서 일어난 사부가 우리에게 말했다.
“둘 다 본 파의 무복으로 환복하고 오도록.”
사부가 지시를 내렸다.
지금의 나와 사형은 낡고 해진 수련복을 착용한 상황.
공동파도 일단은 문파는 문파다보니 외출용 무복은 따로 있고 나도 입문 당시에 지급받았었다.
그동안 외출할 일이 없어서 한 번도 입은 적은 없는데, 오늘 입게 생겼다.
나와 사형은 사부의 지시에 따라 청운각 개인실로 각자 들어가 환복을 진행했다.
외출용 무복은 외출복답게 낡은 티는 좀 나지만 해지지도 않고 깔끔한 검은 무복이었다.
나는 무복으로 갈아입은 뒤에 옷맵시를 다듬었다.
동경(銅鏡)이 없어서 지금 내가 옷을 잘 입었는지 아닌지 감이 잘 안 잡힌다.
나는 빗으로 머리를 빗어 넘기고, 향낭 점검까지 했다.
몸단장은 중요하다.
여심(女心)을 사로잡는 비결의 첫 번째가 청결, 그다음이 패션이기 때문이었다.
옷이 날개라는 말처럼, 얼굴이 모자라는 나로서는 옷이라도 잘 입어야 했다.
똑같이 못생겼어도 해지고 낡고 목이 늘어진 반팔 티를 입은 남자보다는 깔끔한 세미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에게 조금 더 호감이 가는 법이다.
‘빨리 거울을 사야겠군.’
나는 거울이 없는 답답함을 느끼면서, 최종 점검을 끝낸 뒤에 미닫이문을 열었다.
“사제, 나왔구나?”
드르륵.
문을 열고 나오자 사형이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나를 반겼다.
낡았지만 깔끔한, 역태극이 새겨진 검은 무복을 입은 사형의 모습은 굳이 더 서술할 필요도 없었다.
안 그래도 기생오라비처럼 쓸데없이 잘생긴 사형이었다.
송옥과 반안의 싸대기를 왕복으로 때릴 정도로 기개가 헌앙하고 인물됨이 준수한 미소년 사형이 외출복을 입자 낡은 무복이 클래식 명품 맞춤 정장으로 보이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거기에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와 은은하게 풍기는 들꽃 향기는 덤이었다.
사형의 등 뒤로 떠오른 오전의 햇살이 비치자, 그의 온몸에서 광채가 일어났다.
‘씨발. 이건 좀 아니지.’
나름대로 꾸민다고 아침부터 냇가에서 샤워하고 머리도 감고 빗으로 머리도 정리하고, 향낭을 착용해서 향기까지 보정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사형의 타고난 재능을 나는 이길 수 없었다.
이게 얼굴 천재가 아니면 대체 뭐가 천재란 말인가?
나는 새삼스럽게 세상의 불공평함을 느끼면서, 사형의 그곳이 3cm이길 기원하며 그의 옆에 섰다.
“네, 이제 나왔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먼저 산문으로 가셨어. 빨리 가자. 사제.”
오랜만의 외식에 들뜬 건지 사형이 웃으면서 내 손을 잡으려 시도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손길을 회피하면서 순수한 웃음을 연기했다.
“알겠습니다. 본 파의 식구들과 첫 번째 외식이라 그런지 설레는군요. 마치 제 생일 같습니다.”
내가 손을 빼내자 살짝 멈칫한 사형의 눈동자가 내 말을 듣자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그가 말했다.
“그래? 나도 마찬가지야. 소중한 사제랑 같이 외식이라는 추억을 쌓게 돼서 기쁜걸.”
사형이 배시시 웃었다.
그는 정말 기분이 좋은 듯 콧노래를 흥얼거렸지만, 나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첫 외식을 남자들과 하게 될 줄이야.
자고로 외식이란 고급 주루 꼭대기에서 절경(絶境)을 감상하며 절세미녀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거늘.
그나마 백도제일화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만이 내게 조그마한 위안이었다.
“우제도 사형과 함께 외식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사부님께서 기다리겠습니다. 출발하시지요.”
“응! 사제. 내가 앞장설게! 길 잃어버리지 말고 잘 따라와!”
사형이 한 발짝 앞장섰다.
길 잃기를 빙자한 기연 탈취 사건 이후 사형은 사소한 일에서도 본인이 앞장서겠다 자청했다.
지금도 그렇다.
본산 안에서 대체 길 잃을 일이 어디 있다고 길 잃지 말라는 소리를 하는 건지.
나는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사형의 꽁무니를 따라 산문으로 향했다.
산문에는 이미 전영이 기다리고 있는 상태.
“크흠. 그럼 출발하겠다.”
전영의 말과 함께 우리는 본산을 나섰다.
공동파가 있는 곳은 공동산 취병봉.
쉽게 말해서 산꼭대기다. 당연히 아랫마을인 화정현(华亭縣)까지 내려오려면 신법을 펼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잘 따라오도록 하여라.”
전영이 방금 사형과 같은 말을 하면서 소양보를 사용해 몸을 날렸다.
표홀한 움직임으로 산길을 내려가는 전영.
그의 뒤를 따라 나와 사형도 소양보를 운용해 몸을 날렸다.
그렇게 산에서 내려온 우리가 도착한 곳은 화정현.
공동산의 아랫마을이었다.
공동파가 구파일방의 일좌로서 융성했던 시절에는 화정현의 규모 역시 대단히 커서 공동파를 방문하는 수많은 방문객을 수용하는 객잔과 주루가 끝없이 늘어서고 시장도 들어섰던 장소였다.
하지만 공동파가 몰락한 지금, 화정현의 규모는 축소되어 있었다.
문 닫은 점포와 객잔이 공동파의 몰락을 상징하듯 방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정현이 완전히 유령 마을이 된 건 아니었다.
공동파는 몰락했지만, 공동산은 여전히 도교의 성지이자 중원에서 손꼽히는 영산(靈山)이었다.
따라서 공동산에 순례하려는 순례객들이 아직 상당했기 때문에 화정권 상권은 쇠퇴했을지언정 몰락까지는 하지 않았다.
우리는 순례객들로 적당히 붐비는 화정현의 저잣거리를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탁.
전영의 발걸음이 초라한 객잔 앞에 멈췄다.
객잔 현판에는 한자로 공동객잔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렇다. 이 객잔이 바로 다 망한 공동파의 마지막 남은 사업장이자······.
백도제일화의 본가였다.
내 눈앞에 전생에서 만났던 정파제일미녀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씨익.
입꼬리가 올라갔다.
백도제일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