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결함이 있는 몸
눈을 감은 나는 사형의 부축을 받아 청운각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내상은 가벼운 수준이구나. 짧으면 사흘, 길면 칠주야 정도 방에서 정양하며 운기요상에 힘쓰면 별 탈 없이 나을 거다.”
“알겠습니다. 사부님.”
방에서 진맥을 끝낸 전영이 내게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파리한 얼굴색으로 답했다.
옆에는 울먹이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사형이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두꺼운 솜이불 속에서 은밀하게 손을 움직여 바지춤을 더듬었다.
적사월이 내게 주고 간 속명단은 양물 근처에 잘 있었다.
이걸 먹으면 내상은 바로 나을 것이다. 그렇다면 행잉 운동의 수련도 이어갈 수 있겠지.
‘상품의 속명단이야. 가벼운 내상을 치료하는 데 쓸 필요는 없지.’
하지만 나는 속명단을 지금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적사월이 주고 간 속명단은 상품의 물건. 고작 가벼운 내상 치료하자고 사용하는 건 돌돔으로 매운탕을 끓여 먹는 짓과도 같은 낭비였다.
흑룡방과의 비무가 계획대로 마무리되면 이제 본격적으로 강호 출도가 이루어질 터, 내가 아무리 전생에는 현경의 고수였다지만 도산검림의 강호 무림에서는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비상약 정도는 필요한데, 이 상품의 속명단이 그때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행잉 운동을 못 하는 대신 정력에 좋은 음식이나 마음껏 먹어야겠어.’
물론 행잉 운동을 못하는 데서 오는 정력 손실은 다른 데서 보충할 필요가 있었다.
“뭐 먹고 싶은 음식이라도 있느냐?”
때마침 사부가 내게 질문해왔다.
“히끅, 흐끅!”
옆에서는 사형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왜 저렇게 세상 무너진 것처럼 울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정력에 좋은 음식은 무수히 많다.
굴, 장어, 부추, 아스파라거스, 샐러리, 양배추, 토마토, 호두 등등.
하지만 이 모든 걸 요구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현대와는 달리 중세 무림의 유통망은 전근대 수준이라 싱싱한 굴을 해안가에서 내륙인 감숙까지 직접 배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굴을 먹어야 하는데.’
나는 속으로 입맛을 다시며 생각했다.
굴이야말로 아연이 가장 풍부하게 포함된 음식 중 하나다. 정액의 양과 질을 증진하려면 삼시세끼 굴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내 언젠가는 강남으로 가서 반드시 굴을 먹으리라. 나는 그렇게 다짐하면서 사부에게 말했다.
“돼지고기······. 삶은 돼지고기와 돼지 간이 먹고 싶습니다······.”
그렇다.
수많은 고기 중에서도 정력 형상에 가장 으뜸인 효험을 보이는 고기가 바로 돼지고기였다.
돼지고기에는 아르기닌이라는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 아르기닌이야말로 현대 의학에서 밝혀낸, 공청석유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는 절세영약이었다.
아르기닌은 발기력 향상은 물론 정자 생성과 테스토스테론 증가 효과까지 갖춘 절세의 정력제로 장복시 비아그라를 뛰어넘는 정력 향상 효과를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돼지고기에는 아르기닌이 장어보다 더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지······.’
정력제로 유명한 장어 꼬리보다 돼지고기에 g당 아르기닌이 더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돼지고기는 중국에서 가장 흔한 고기이자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고기.
오죽하면 별다른 수식어 없이 중국에서 고기 육(肉) 한 글자만 쓰면 돼지고기를 의미할 정도다.
그 정도이니 내륙지방인 감숙에서 돼지고기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을 터.
거기다가 돼지 간 또한 비타민 A와 아연이 풍부한 천연 정력제에 속했다.
순대에서도 간을 많이 먹으면 정력이 좋아진다.
비타민 A는 정자 수에 관여하는 영양소. 아연도 마찬가지이니 돼지 간과 돼지고기를 동시에 먹으면 정력과 정액의 양과 질을 동시에 증진할 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공청석유와 천년하수오를 동시에 복용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정력 증진 효과.
게다가 중국 어디를 가도 구하기 쉬운 식재료이니 이보다 더 안성맞춤일 수는 없었다.
‘흐흐흐, 이때가 아니면 언제 돼지고기를 먹어보겠어.’
물론 특식이 아닌 일반식으로 돼지고기와 돼지 간을 장복하기 위해서는 열악한 공동파의 재정 상태를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처럼 풀떼기만 먹고는 피지컬 증진도 정력 향상도 느리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됐다.
‘정력왕이 되려면, 지금 식단으로는 안 돼······.’
내가 바라는 색도를 완성하려면, 식단부터 철저히 관리해야 했다.
삼시세끼 매일매일 돼지고기와 장어로 도배된 비장의 저탄고지 정력 식단을 먹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비무에서 승리해야 했다.
좋소 문파인 공동파가 대기업 문파인 흑룡방을 비무에서 이긴다면?
계획한 언더독의 반란이 성공한다면 감숙 향토 상단, 감숙 향토 표국 같은 지역 스폰서가 어마어마하게 붙을 게 분명했다.
거기에 하오문이 열 비무 도박판에서 역배가 걸릴 게 뻔한 공동파 승리에 판돈을 올인하는 건 덤이다.
그 스폰서들에게 받은 돈과 도박 역배를 터뜨린 돈으로 식단을 개선해서, 더 빠르게 정력과 근육을 향상한다.
그것이 내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돈은 모으려고 버는 게 아니라 쓰려고 버는 거다. 그리고 가장 적절한 돈의 사용처는 정력 증진이다.
천하의 모든 정력제를 사버릴 때까지 나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돼지고기와 돼지 간? 알았다. 철수야. 이 사부가 구해볼테니 푹 쉬고 있거라.”
드르륵.
사부가 미닫이문을 열고 방을 나섰다.
탁.
문이 닫히자 남은 건 사형과 나.
움찔.
나는 지속적으로 케겔 운동을 행하면서 눈을 힐끔 떠서 사형 쪽을 바라보았다.
사형이 눈물을 닦아내면서, 대야에 뒀던 헝겊을 쭈욱 짜내서 내 이마 위에 얹었다.
“사제, 빨리 털고 일어나야 해······. 내가 미안해······. 못 지켜줘서······.”
이마에 차가운 물수건의 감촉이 느껴졌다.
“얼른 나아야 해, 알았지?”
설마 계속 밤새 간호할 생각은 아니겠지? 그러면 곤란하다. 젤크 운동을 못 하게 되잖아.
하지만 간호하겠다는 사형더러 나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내상을 입고 침상 위에서 요양하는 나를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는 절세미녀가 밤새 나를 간호하는 풍경을 나는 원했다.
간호하다가 자연스럽게 그녀와 침상 위에서 포개지며 운우지락을 나누고 싶었다.
‘상공, 괜찮으시어요? 어맛, 안돼요. 어맛, 꺄아아아아아악!’
모름지기 가장 좋은 보약은 운우지락이다. 미녀와의 뜨거운 음양교합 한 번이면 내상도 바로 털어낼 텐데.
하지만 내 곁에 있는 건 절세미녀가 아닌 남자 사형.
나는 잔혹한 현실에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제발 사형이 밤샘 간호를 안 하게 해 달라고.
더 이상의 버킷리스트 파괴는 그만둬 달라고.
하지만 애석하게도.
하늘의 뜻은 내게 있지 않았다.
그날, 사형은 나를 밤새 간호했고 나는 젤크 운동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사형의 간호를 받으면서 케겔 운동을 하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얼마만큼 잔 걸까?
허리가 뻐근하다. 잠에서 깬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기 전 생각했다.
설마 사형이 밤새 간호하다 지쳐 허벅지에서 잠든 건 아니겠지?
그런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간호에 대한 내 마지막 남은 로망마저 사형이 짓밟게 둬서는 안 된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허벅지에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살짝 안도하며 마침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잠에서 깨어난 날 반기는 건 익숙한 천장과 창살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
그리고 나를 반기는 사부 전영의 얼굴이었다.
“깨어났느냐?”
전영이 내게 물었다.
잠깐, 전영이라고?
“사부님께서 여기는 어인 일이십니까? 사형은 어디로 갔습니까?”
분명 내가 자기 직전까지 사형이 옆에 있었는데.
왜 일어나보니 사형이 없지?
내 질문에 사부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허허 웃었다.
“휘아라면 새벽까지 너를 간호하다가 돼지고기를 구하러 내게 너를 맡기고는 본산을 내려갔느니라.”
사형이 돼지고기를 구하러 갔다고?
사부가 갈 줄 알았는데 의외다.
“알겠습니다. 사부님.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허허. 화정현에 홀로 내려간 휘아가 걱정되는 것이더냐? 휘아는 혼자서 제 앞가림을 잘할 아이니 네 사형은 걱정하지 말고 몸조리나 잘하거라.”
내 말에 흐뭇하게 웃는 사부.
대체 뭘 오해한 건지 모르겠지만, 굳이 정정해줄 필요는 없겠지.
나는 사형이 빨리 돼지고기를 사오길 바라면서 눈을 감고 아침 케겔 운동을 시작했다.
*
유진휘는 아침 공기를 가르며 몸을 날렸다.
그, 아니 그녀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나 때문이야.’
듬직한 사형으로서 소중한 사제를 지키겠다.
스스로 그리 약조했었다. 그래서 사내로 살기로 다짐했었다.
하지만 사제와 함께 지낸 지 1년이 지나고 사춘기가 오기 시작한 지금, 유진휘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사제는 소중하다.
하지만 요즘 사제만 보면 이상하게 가슴이 설레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수련하다 그와 몸이 살짝이라도 닿으면 소스라칠 정도로 얼굴이 붉어지고 종일 가슴이 뛰었다.
그래서 떨어졌다.
사제의 곁에 있으면 자꾸 여인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어서.
들어만 봤던 여인의 마음이 자꾸만 고개를 드는 것만 같아서 유진휘는 사제와 필요 이상의 접촉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나는, 나는 사형이니까······.’
여인이 아닌 사형으로서 사제를 지켜야 한다.
그러니 여인으로서의 마음 따위는 필요 없다.
‘게다가 나는 정상적인 아녀자도 아니니까······.’
여인으로 살지 않겠다고 결심한 두 번째 이유.
그건 유진휘 본인의 몸이 정상적인 아녀자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천무지체란 천년 무림의 역사상 오로지 사내의 몸으로만 타고 나던 체질.
그렇기에 역대 천무지체의 소유자는 모두 남자였다.
오직 유진휘, 그녀만 제외하고.
사내에게만 허용된 천무지체를 여인의 몸으로 타고났기 때문일까? 천하를 오시할 일대종사의 자질을 타고난 대가로 주어진 천형(天刑)일까?
‘달거리를 하지 않아. 아마 임신도······.’
유진휘는 월경을 하지 않았다. 월경을 하지 않는다는 건 곧 불임이라는 뜻.
지아비를 모시고 아이를 낳아 가문의 대를 잇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인 여인이 불임이라는 사실은 곧 여인으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말과도 같았다.
하늘이 내린 무재의 대가는 진정한 여인이 될 수 없는 불임의 몸이었던 것이다.
아니, 유진휘는 여인 이전에 본인이 타인과 같은 인간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사제 덕분에 추측을 확신으로 바꿀 수 있었다. 천무지체를 부여받은 그녀의 기혈과 근골은 보통 사람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그녀는 보통 사람들과 완전히 다른 초인의 몸으로,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고 있었다.
역대 천무지체의 소유자들 역시 그녀처럼 보통 사람과 완전히 다른 몸으로 태어났으리라.
그녀에게 있어 천무지체와 대종사의 자질은 축복이 아닌 저주에 가까웠다.
유진휘는 이미 어릴 때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본인의 체질과 존재가 이질적이라는 사실을.
그러니 더더욱 여인으로, 사람으로 살 수 없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집착했다. 사형제로서의 인연에, 사문의 재건이라는 대의에, 의협이라는 가치에. 그녀 본인이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타인과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새기기 위해서.
하지만 자꾸만 그의 곁에 있으면 사람이 아닌 여인이 되고 싶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결함이 있는 몸을 지닌 그녀는, 사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사내로 살아야 했다.
그렇게 사제를 멀리했던 유진휘였다. 하지만 객잔에서의 소동 이후 흑의복면인에게 상처를 입은 사제를 봤을 때.
그녀는 죄책감을 느꼈다.
‘전부 내 잘못이야. 내가 마음 수행을 잘못한 탓에······. 그래서 사제를 멀리한 탓에 사제를 위험에 빠뜨린 거야.’
여인의 마음을 억누를 정도로 마음 수행을 잘 했다면.
아니 처음부터······. 사제를 멀리하지 않았더라면.
사제가 흑도들과 싸우고, 내상을 입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약조했던 대로, 사제를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제를 멀리했기 때문에 흑도와 싸울 때도, 흑의복면인이 본산에 침입했을 때도 사제를 지키지 못했다.
‘전부 내 책임이야.’
유진휘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살짝 흘렀다.
두근, 두근.
지금도 압박 붕대에 짓눌린 유진휘의 가슴 속 심장은 세차게 뛰고 있었다.
그렇게 공동산을 내려온 유진휘는 눈물을 닦기 위해 품에서 헝겊 손수건을 꺼냈다.
1년 전, 광성단혈에서 진법이 보여주는 환영 때문에 울고 있을 때 사제가 건네줬던 손수건을 유진휘는 아직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유진휘는 이제는 보물이 된 헝겊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면서 마음을 진정시킨 뒤 공동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계십니까?”
“오늘 장사 안······. 어라, 유 공자님이 여긴 무슨 일로······?”
객잔 안에 들어선 유진휘가 마주한 건 객잔주인 서 대인과 그의 딸 서하린.
서 대인을 만난 유진휘는 어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흑의복면인과 이 공자가······. 그렇군요. 그래서 내상을 입은 이 공자를 위해 돼지고기를 가지러 오셨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대인. 염치불구하고 혹시 고기를 구할 수 있다면······.”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희 때문에 이 공자가 부상을 입은 거니까요. 은혜도 모르는 금수처럼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요.”
서 대인의 말에 유진휘가 살짝 마음을 놓은 그때.
“······유 공자님.”
서하린의 텅 빈 눈동자가 유진휘에게 향했다.
“······괜찮다면 제가 본산에서 이 공자님을 돌봐도 되겠습니까?”
뒤이은 서하린의 말을 들은 순간.
유진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