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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44화 (44/171)

44화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

공동파 산문.

갑자기 끼어든 유진휘의 얼굴을 마주한 흑사룡 위소련의 얼굴이 살짝 굳는다.

‘이자가 공동파의 장문제자 유진휘인가?’

이번 비무에 흑룡방을 대표해서 출전하는 위소련이었다.

당연히 상대인 공동파 제자 두 명에 대한 정보는 이미 사전에 입수해서 숙지한 상황이었다.

공동파의 제자는 둘이 있는데, 첫째가 송옥과 반안과도 견줄 만한 미남이자 일대기재라는 소문이 있는 장문제자 유진휘.

그리고 둘째가 공동 객잔에서 사영회 흑도 셋의 고환을 정확하게 도려낸 이철수라는 정보였다.

전부 하오문이 흑룡방에 무료로 제공한 정보였다.

화정현에 일대기재라는 소문만 무성한 유진휘였다.

그의 실제 무위가 어떤지는 제대로 검증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위소련은 경계하되 큰 신경은 쓰지 않았다.

“그 반반한 얼굴······. 공동파의 유진휘가 송옥과 반안과도 견줄 만한 침어낙안(沈魚落雁)의 용모를 지닌 미공자라는 소문이 사실이긴 한 모양이로군. 아까워,”

위소련이 쩝하고 입맛을 다셨다.

아깝다.

그녀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유진휘의 용모는 인간을 뛰어넘은, 타인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었다.

천하의 모든 미남, 아니 잘생겼다고 유명한 송옥과 반안을 뛰어넘을 고금제일을 논해도 아깝지 않을 정도의 절세 미남이 그녀의 눈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흑룡방의 소방주가 아닌 평범한 아녀자였다면 그의 외모에 마음을 빼앗겼을지도 모른다.

위소련은 무심코 그렇게 생각했다.

“뭐가 아깝다는 거지?”

유진휘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미남이라는 소리는 어릴 때부터 화정현에 내려갈 때마다 주구장창 들어왔던 유진휘였다.심지어 화정현에 내려가면 그녀의 미모를 먼발치서 훔쳐보는 아녀자들이 늘 열 명 이상 있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유진휘는 그런 미모 칭찬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잘생겼다는 칭찬이 무슨 소용이야. 무인은 무(武)로서 말하는 법인데.’

문인은 문(文)으로서, 무인은 무(武)로서 증명한다.

용모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칭찬받아도 기쁘지 않다.

오히려 자신을 능멸하는 기분이다. 유진휘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제라면 모를까······.’

예외는 단 하나.

소중한 사제가 미모를 칭찬해주면 조금은 기쁠지도 몰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칭찬을 말한 것은 사제가 아닌 씹어죽여도 시원찮을 흑룡방의 소방주 위소련이었다.

“곧 본 방과의 대전에서 패배해 멸문할 공동파의 대제자가 이토록 미공자라니 아까워서 말이야.”

목소리조차 아름답군.

위소련은 뒷말을 삼켰다.

솔직히 유진휘의 체형은 사내보다는 여인에 가까운 호리호리한 중성적인 체형이었다.

하지만 그 용모는 인간을 초월한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홀린다는, 천하제일미로 소문이 자자한 사도련주가 미염공을 펼친다면 이럴까.

유진휘를 더 봤다가는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았다.

위소련은 마음을 다잡으면서 단전에서 흑사구룡결의 진기를 일으켰다.

우우우우웅.

단전이 진동하며 폭급한 흑사구룡결의 진기가 일어났다. 위소련의 전신에서 무형의 기세가 일어나 유진휘를 향해 쏘아졌다.

사파제일 후기지수.

그 명성에 걸맞게, 위소련은 어린 시절부터 흑룡방주의 무남독녀 외동딸로 벌모세수를 받고 영약을 밥처럼 먹으며 걸음마를 보법으로 뗄 정도로 오직 무공만 바라보며 자랐다.

그뿐이 아니었다.

사내다움을 숭상하는 거친 흑룡방 사내들을 미래의 방주로서 휘어잡기 위해, 아녀자다움은 포기하고 사내들처럼 흙탕에 뒹굴며 자란 그녀였다.

사파제일 후기지수, 여인에게 붙는 봉(鳳)이 아닌 용(龍)의 칭호를 받은 건 그 때문이었다.

“아무리 일대기재라한들 결국은 화정현이라는 작은 동네에서나 통하는 명성일 터. 천하가 넓다는 사실을 내 오늘 너한테 알려주겠다.”

위소련이 기도를 해방해 유진휘를 압박한 순간.

유진휘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떴다.

그녀의 몸에서 삼음진결의 진기가 일어나 전신을 휘돌았다.

유진휘의 몸을 휘감은 음유하면서도 거친 기운이 위소련이 쏘아낸 무형의 기세를 그대로 사방팔방으로 튕겨냈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바람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발산한 무형지기의 기파가 흙모래를 일으켰다.

*

“콜록, 콜록.”

나는 갑자기 일어난 모래바람에 기침했다.

하여간 고수들은 왜 만나기만 하면 기도 해방으로 기싸움하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이 몇백년 앞서 찾아온 미세먼지 어떻게 할 거냐고.

“······조금 의외로군. 그래도 기재라고 불릴 만한 재능은 지녔다는 건가?”

미세먼지가 걷히자 위소련이 사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소련이 본인이 쏘아낸 기도를 성공적으로 방어한 사형의 모습을 보고 평가를 약간 수정한 모양.

그래봤자 아직 사형의 전력은 1%도 다 안 보여준 상태라 괜찮다.

대결에는 문제없다.

“그날 비무에서 몰락하는 건 너희 간악한 사마외도의 무리가 될 것이다.”

“하, 너희 공동파가 우리 대 흑룡방을? 웃기는군. 방금이 내 전력이었다고 착각하지 마라. 정파의 위선자야. 쯧. 애초에 아버님의 명이 없었더라면 공동파 따위와 비무를 할 일도 없었음이야.”

혀를 차는 위소련.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허공에서 부딪혔다.

유진휘와 위소련이 무협 소설의 한 장면처럼 멋있게 멘트를 주고받고 있던 그때.

“그럼 본 파가 이기면 넌 어쩔 건데? 비무 결과랑 별개로 그렇게 자신 있으면 다른 내기 해도 되는 거 아니야?”

나는 위소련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제야 위소련의 시선이 내게 돌아왔다.

그녀의 얼굴에 어이없는 표정이 떠올랐다.

“다른 내기라니? 내가 왜 그런 걸 해줘야 하지?”

어물쩡 넘어가려는 위소련.

보통의 중세 무림인이라면 여기서 넘어가겠지만, 나는 보통이 아니었다.

현대인 시절 수많은 랭크 게임과 인터넷 커뮤니티 키보드 비무, 그리고 환관 시절 궁중 암투를 통해 단련된 내 입씨름 실력은 중세 무림인들이 감당할 수준을 이미 뛰어넘어 있었다.

나는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고는 내 나이대에 맞는 치기 어린 어린아이를 연기하면서 말했다.

“설마 질까 봐 쫄린 거야? 흑룡방의 소방주 흑사룡은 아녀자답지 않게 화통하고 마음이 넓고 대범하다더니 강호의 소문이 전부 구라였네. 쪼잔하고 속 좁고 이기적이야, 아주 계집아이가 따로 없어. 흑사룡이 아니라 흑토룡이었네.”

내가 용이 아니라 지렁이(土龍)라고 모욕하자 위소련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점등하기 시작했다.

“아니면 사파제일 후기지수 주제에 설마 우리 사형한테 쫀거야? 방금? 역시 우리 사형이야. 기싸움 한 번만에 사파제일기재가 벌벌 떨고 강호 무림과 사해 동포가 경악하는 공동파가 낳은 초특급 천재! 일대기재!”

“사, 사제······.”

흑사룡을 끌어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지른 사형의 칭찬에 반응하는 유진휘.

그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뭐야, 아까는 무협소설 주인공처럼 카리스마 있게 잘도 말하더니 왜 저래.

부담스럽다.

“······그럴 리가 있나? 흑토룡이라니! 감히 나를 그렇게 모욕하다니! 대흑룡방은 결코 지지 않는다! 그 상대가 너희 같은 다 무너져가는 삼류 문파라면 더더욱! 좋아. 우리 흑룡방이 지면 내 친히 너를 평생 오라버니라고 불러주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말이야!”

내 말에 얼굴을 붉히며 길길이 날뛰는 흑사룡.

그녀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평생 오라버니, 그러니까 오빠라고 불러준다고?

‘흐흐흐흐.’

나는 씰룩거리는 입가를 애써 진정시켰다.

천재 중의 천재, 천무지체이자 미래의 천하제일인인 사형이 있는 이상 우리 공동파는 절대로 이 비무에서 질 수가 없다.

그러니 흑사룡은 무조건 나를 오빠라고 부르게 될 터.

‘오, 오라버니······.’

선머슴 같지만 예쁜 미모를 붉히면서 나를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흑사룡.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관심과 사랑.

원래 오빠가 자기 돼고 자기가 여보가 되는 밥.

호칭으로 심리적 저지선을 무너뜨리면 호감을 사기가 더욱 쉬워진다고 서책으로 배운 여심 공략법에도 적혀 있었다.

평생 고자로 살아 여심은 잘 모르지만, 이미 이론은 서책으로 전부 마스터한 나였다.

이제 실전으로 옮기면 그만이었다.

물론 사파와 정파라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뛰어넘는 벽 때문에 원활한 정을 통함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건 그거대로 묘미가 있다.

그렇게 서로 성인이 될 때까지 밀당을 이어가며 마음을 숙성시키면 되는 것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이미 손자 이름까지 전부 정한 상태로 흑사룡을 바라봤다.

흑사룡이 내게서 한 발짝 물러나며 말했다.

“기분 나쁜 눈빛이로군······. 대신 진다면, 너를 내 몸종으로 쓰겠다.”

나를 몸종으로 삼아 굴욕을 줄 셈인 모양.

어차피 질 리가 없는 대결이다.

내가 흑사룡의 제안에 답하려던 그때.

“잠깐, 기다리시오. 사제 대신 내가 몸종이 되겠소.”

사형이 나와 흑사룡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가 비장한 표정으로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의 말에 흑사룡의 표정이 묘해졌다.

뭐야.

갑자기 왜 저래? 다 된 밥에 재를 묻히는 것도 유분수지.

내 사업을 이대로 사형이 방해하게 둘 수는 없다.

나는 다시 흑사룡이 답하기 전에 재빨리 사형의 말허리를 잘랐다.

“사형께서 굳이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옛말에 이르길 남아일언중천금이라 하였습니다. 저 역시 당당한 한 명의 사내 대장부인 바, 제 말의 무게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리고 본 파는 절대 사마외도를 상대로 지지 않습니다. 본 파는 이번 대전에서 반드시 승리하여 공동 객잔과 화정현의 안녕을 지킬 것입니다. 저는 흑사룡의 오라버니가 될 거고요. 그러니 사형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안 일어날 일이니까요.”

남아일언중천금, 사형이 그 말을 작게 중얼거리더니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사제. 그래도 너무 힘들면 말해야 해?”

“알겠습니다.”

겨우 사형을 물러나게 한 내가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

“정말 눈물겨운 사형제의 우애로군. 대단해.”

위소련이 우리를 보면서 웃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조소가 걸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유진휘의 얼굴이 굳었다.

“사형제는커녕 형제도 없이 홀로 자란 네가 우리의 마음을 알까? 당연히 모르겠지. 흑사룡.”

사형이 차가운 말투로 쏘아붙였다.

그 모습을 본 위소련이 다시 몸을 풀었다.

그렇게 2차 기싸움이 일어나려던 그때.

“흑룡방에서 온 전령이요?”

열린 산문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검은 무복을 입은 중년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등장했다.

공동파의 장문인 전영이었다.

“그렇습니다. 흑룡방 소방주 흑사룡 위소련이라 합니다. 방주님의 답신을 가져왔습니다.”

전영을 본 위소련이 공손히 포권을 취했다.

갑자기 분노조절이 잘되는 모습을 보니 아까는 의도한 도발이었던 모양.

하여간 무림인들 분노조절잘해는 알아줘야 한다.

“나는 공동파의 장문인을 맡은 복마검객 전영이라 하오. 일단은 손님이니 흑사룡 소협을 접객당으로 모시도록 하겠소. 철수야, 손님을 접객당으로 안내해라.”

“네, 사부님.”

그렇게 사부의 개입으로 허무하게 시작도 전에 끝난 기싸움을 뒤로 한 채로, 나는 흑사룡을 데리고 접객당으로 향했다.

본격적인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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