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사술이 틀림없다
내가 천만 배우, 칸 영화제 대상,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급 연기를 보여주자 위소련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주변에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았다.
“사제, 저, 정말로 맛있었어?”
침묵을 깬 건 사형.
그가 내게 더듬으면서 말했다.
“흐음.”
사부가 헛기침하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내 등 뒤에 있는 서하린이 입술을 깨물었다.
“마, 말도 안 된다. 그, 그걸 맛있게 먹다니······. 사, 사술이다! 사술이 틀림없다!”
그리고 내 하늘에 닿은 연기에 경악했는지 사술드립을 내뱉으며 나를 칭찬하는 위소련.
사술이라니.
내게 이런 극찬을 해줄 줄이야.
중세 무림에서의 사술은 현대 한국의 ‘게임 줫같이 하네’와 같은 레벨의 극찬.
번역하자면 ‘당신의 무위는 정말 대단하군요! 저로서는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정도가 된다.
“사술이라니, 그게 무슨 망발이란 말이오? 서 소저의 정성이 담긴 다과요. 그 깊이와 맛이 황궁의 수라상과도 견줄 수 있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물론 전생에서 황궁 수라상을 먹어보기는 했는데, 당연히 서하린이 만든 다과와는 비교가 실례일 정도로 엄청난 산해진미였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까맣게 탄 석탄 같은 물체를 다시 집어서 입 안에 넣고 씹으며 초인적인 연기력으로 웃었다.
“이래도 내 웃음이 사술로 꾸며낸 거짓처럼 보이시오?”
“······그, 그건······.”
내 미소에 위소련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경지에 이른 내 연기는 적사월의 눈으로도 간파하기 어렵다.
하물며 아직 일류따리 수준인 위소련이 내 연기를 간파하는 건 불가능하다.
“아, 아니다······.”
위소련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서 소저한테 정중히 사과해야 하지 않겠소? 아까 겁박한 것까지 전부. 설마 대흑룡방의 소방주가 본인이 한 말을 어길 생각인 건 아니겠지?”
“아니다! 그럴 리가!”
내가 소방주로서의 체면을 은근슬쩍 건드리자 펄쩍 뛰는 위소련.
그녀가 서하린을 바라보면서 헛기침하며 말했다.
“크흠. 경솔하게 행동하여 서 소저를 겁박하고 놀라게 한 점, 실언을 내뱉어 서 소저의 마음을 어지럽힌 점을 흑룡방 소방주 흑사룡의 이름으로 진심으로 사과드리오. 서하린 소저.”
정중한 말투로 포권하고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위소련.
그녀의 태도에 서하린이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사과는 잘 받았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소저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서로 인사하는 위소련과 서하린.
그 장면을 바라보면서 나는 웃었다.
그렇게 일이 마무리된 뒤.
“답신은 잘 받았소. 귀 방의 제안을 수락하겠소.”
“감사합니다.”
마침내 전영과 위소련의 서신 교환이 끝났다.
전영의 답장을 받은 위소련이 고개를 숙였다.
“시간이 늦었소. 먼 사천에서 감숙까지 찾아온 객한테 밤이슬을 맞힐 수는 없는 법. 비록 누추한 곳이지만 하룻밤 묵고 가는 것이 어떻겠소?”
흑룡방과 공동파가 원수지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위소련은 공동파를 찾아온 손님.
손님이 찾아왔으면 숙식제공을 하는 것이 이 시대의 예의기는 했다.
물론 귀하게 자란 위소련이 이런 흉가에서 묵고 갈 이유는 없지만 말이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귀 파에 폐를 끼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이미 산 아래 객잔에 숙소를 잡아뒀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살펴 가시게.”
“평안하시길.”
서로 인사를 나눈 위소련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의 시선이 나와 사형에게 짧게 머물렀다.
위소련의 새카만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녀가 고개를 돌린 뒤 문을 열고 접객당 방을 나섰다.
접객당을 나선 그녀의 기척이 빠르게 공동파 본산에서 사라지는 걸 느끼면서, 나는 공손히 앉아 사부의 말을 들었다.
“일시가 정해졌구나. 다들 비무일까지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특히 철수는 부상에서 막 회복한 몸이니 조심하고.”
“알겠습니다.”
“네, 사부님.”
나와 사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전영이 비장한 얼굴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 서문세가에 서신을 보내야겠구나. 휘아야, 네가······.”
유진휘를 보내려는 전영.
아니 서문세가처럼 혐성질과 정치질이 난무하는 거대 문파에 호구 그 자체인 사형을 보낸다고?
안 그래도 매일 공동파 디스랩 배틀을 개최하면서 어떻게 우리를 벗겨 먹을까 고민하고 있을 서문세가다.
그런 용담호혈(龍潭虎穴)에 사형이 가면 눈 뜨고 코가 베이는 걸로 모자라 장기까지 탈탈 털릴 거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사형이 예뻐서가 아니다.
지금 막 기지개를 펼려고 준비하는 단계인 공동파가 서문세가에 호구잡히면 앞으로 내 영웅호색 십년대계에 심각한 애로사항이 꽃필 거다.
그러니 서문세가에는 내가 가야 한다.
내 주지육림을 위해서라도.
나는 이제 슬슬 오기 시작하는, 서하린의 다과를 복용한 부작용으로 얻은 복통을 참아가면서 말했다.
“서문세가에는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사형 대신 날 보내달라고 하면 이제 부상에서 회복한 놈이 어딜 장거리 여행을 가는 거냐면서 안 먹힐 게 뻔하다.
그러니 같이 간다고 말해야 했다.
“철수 네가?”
“예. 이번 서문세가행은 사실상 사형의 첫 강호행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제로서 사형의 첫 강호행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사형제는 일심동체(一心同體)니까요. 제자의 몸은 이미 전부 나았으니 괜찮습니다. 가는 길에 수행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설득에는 이성적인 설득과 감성적인 설득이 있다.
여기서는 감성적인 설득을 써야 먹힌다.
그러니까 사형제의 우애를 들먹이는 것이 즉효라는 뜻이다.
뭐 일심동체라는 말은 틀린 건 아니다. 육체적인 관계가 아니라 비즈니스적 관계로서 사형과 나는 이미 한 배를 탄 사이니까 말이다.
사형이 잘나가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허허허. 그래. 알았다. 철수도 휘아와 함께 동행하도록 하거라.”
예상대로 내 말을 들은 전영이 웃으며 허락 사인을 보냈다.
내 말을 들은 사형의 눈빛이 부담스럽게 반짝였다.
그 모습을 본 직감이 경종을 울렸다.
사형과 지낸 지도 어언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저런 모습과 눈동자의 사형은 100% 스킨십을 내게 시도한다.
그런 횡액(橫厄)을 일부러 당해줄 필요는 없다.
꾸르르르륵.
때마침 배에서 천둥소리가 울렸다.
뱃속은 이미 극독에 버금가는 서하린의 다과를 먹은 탓에 전쟁터였다.
나는 배를 움켜쥐면서, 고개를 숙여 낯빛을 핼쑥하게 만든 뒤에 아픈 목소리로 말했다.
“사부님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사부님, 제자······. 속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측간에 좀 다녀와야할 것 같습니다.”
“크흠. 그래. 다녀오거라.”
“사제, 또 아프면 안 돼.”
내 말에 헛기침하는 사부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사형.
그리고 물끄러미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숙이는 서하린.
나는 그들에게 인사한 뒤 문을 닫고 빠르게 행운유수의 보신경을 펼쳐 측간으로 향했다.
‘윽······!’
그렇게 눈썹이 휘날리도록 측간으로 몸을 날린 나는 시원하게 볼일을 본 뒤, 문을 닫고 나왔다.
“후우.”
시간은 어느새 빨간 노을이 뉘역뉘역 지고 있는 저녁.
한 번 배출하고 나니 속은 좀 가라앉았지만, 아직도 니글거리는 건 그대로였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측간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래도 쪼그려 앉는 자세가 하체 트레이닝에 도움이 되는 자세라서 다행이다.
나는 한껏 튼튼해진 허리 근육에 만족감을 느끼면서, 케겔 운동을 행하며 생각했다.
서하린에게 앞으로 절대 요리는 안 시켜야지.
내가 그렇게 다짐하고 있던 그때.
“······공자님.”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서하린이 내 앞에 나타났다.
서하린의 등장에 나는 빠르게 소양심법을 운용, 양기가 깃든 내력을 얼굴로 흘려보냈다.
얼굴에 양기가 감돌자 복통과 설사 때문에 핼쑥해졌던 얼굴이 빠르게 홍안(紅顔)으로 변했다.
“괜찮으십니까?”
서하린이 텅 빈 눈동자를 이쪽으로 향하며 내 앞에 불쑥 나타났다.
얘는 왜 이렇게 기척이 희미해.
전생에 공동파 음공(陰功)의 고수로 명성을 날린 이유가 선천적으로 기척이 희미해서 그런 건가.
그녀의 예쁜 얼굴이 이쪽을 향했다.
나와 동갑인 신체 연령, 아직 피어나기 전인데도 충분히 천하제일을 다툴 만한 절정의 미모가 눈앞에 떠올랐다.
고자라서 남성 호르몬 한 방울 안 나왔던 전생과는 달리, 건강한 남자의 몸을 가진 덕분일까?
질풍노도의 시기인 신체에서 쓸데없이 남성 호르몬이 활발하게 분비되기 시작했다.
나는 초인적인 통제력으로 신체를 제어하면서 말했다.
“보다시피 괜찮소. 혈색도 멀쩡하고 내상도 전부 나은 지 오래요.”
그녀가 날 왜 찾아왔는지는 알 것 같다.
저번의 돼지고기 사건으로 그녀도 알았을 것이다.
본인이 요리를 못 한다는 사실을.
그런데도 내가 그 끔찍한 물체를 맛있게 먹었던 이유가 궁금한 거겠지.
내 말을 들은 서하린의 투명한 하늘색 눈동자가 내 얼굴을 살폈다.
“괜찮아 보이니 다행입니다.”
안색이 멀쩡하다는 걸 확인한 서하린이 고개를 숙였다.
“전부 서 소저의 정성스러운 병 수발 덕분이오. 고맙소.”
그녀의 말에 나는 천연덕스럽게 간호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실제로 요 일주일 동안 그녀가 내 간호를 정성스럽게 한 건 사실이니까 말이다.
“아닙니다. 그나저나······. 정말 제가 만든 다과가······. 맛있었습니까?”
서하린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의 그녀는 본인의 다과가 맛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상태.
그 상황에서 내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러니 답변은 신중해야 했다.
게임으로 치자면 히로인의 호감도를 결정하는 중대한 선택지가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1회차에 무성했던 소문처럼 사형에게 서하린을 내주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서하린의 호감도는 올려둘 필요가 있었다.
대체 이럴 때 어떻게 답해야 하지? 현대의 나는 모쏠이었고, 무림에 전이된 뒤의 나는 고자가 되어 여인과 이런 종류의 대화를 나눌 기회조차 없었다.
생각해보니 황제를 제외한 여인과는 깊은 대화를 한 적이 없다. 내 주변에는 오직 고자 놈들 아니면 황제 둘 중 하나뿐이었으니까.
심지어 황제는 황위에 오른 뒤에 자금성의 궁녀들을 나이 든 자들을 빼고는 대량으로 정리해고했다. 덕분에 나는 궁녀들과 말할 기회조차 없었다.
그때는 고자라서 어차피 미녀라고 해봤자 못 먹는 떡이라 별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좀 이상하네. 황상은 대체 왜 그랬던 거지?
아무튼 중요한 건 여기서 어떻게 답하는가이다.
나는 일생일대의 고민 앞에서, 조정에서 동림당 대신 놈들을 상대할 때보다 더 빠르게 머리를 굴린 뒤에 최적의 답안을 도출했다.
“······맛있었소.”
“여기서까지 거짓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소녀의 요리 실력이 아녀자답지 않게 일천하다는 사실은 소녀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내 말에 서하린의 눈동자가 시커멓게 죽었다.
안 그래도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이 더 섬뜩해졌다.
“거짓말이 아니오. 물론 미각적으로는 맛이 없다고 할 수 있겠소. 하지만 손님 앞에서 다과를 내오기 위해 부엌에서 애썼던 서 소저의 정성은······. 산해진미와도 같을 정도로 맛있었소. 그리고.”
내가 말을 끊자 서하린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흑룡방 놈들은 서 소저의 진짜 원수가 아니오? 그 흑룡방의 소방주를 골탕 먹이는 것도 꽤 좋은 경험이었소.”
좋아.
이 정도면 모범 답안이다.
역시 황제도 탄복하고 동림당 대신과 북경의 사대부, 초야의 선비들도 요설(妖說)이라 상소로 비난하던 내 말솜씨는 녹슬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그때.
“······이 공자님.”
서하린이 나를 불렀다.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말하시오.”
“공자님은 대체 왜 소녀한테 이렇게 잘해주시는 것입니까. 혹시······.”
혹시?
서하린이 말끝을 흐렸다.
이거 왠지 불길한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서하린이 나를 바라보면서 흔들리는 눈동자로 말했다.
“······소녀를 몸을 취하고 싶으신 겁니까······?”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