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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48화 (48/171)

48화 아침에는 운기조식

어느새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른 저녁.

공동파 본산 외진 구석에 자리한 측간 근처에서 유진휘는 서하린과 마주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측간에 간 사제가 너무 오래 나오지 않아서 걱정하던 유진휘였다.

혹시 무슨 변고가 생겼나 싶어서 기다리던 끝에 직접 사제를 살피고자 몸을 날린 그녀였다.

하지만 그런 유진휘가 발견한 광경은 사제와 서하린이 서로 담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광경을 발견한 유진휘는 그녀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기척을 줄였다.

“······오늘 밤 이 공자의 처소에······.”

“······공자님의 배필······.”

기감을 통해 드문드문 들려오는 서하린의 말을 들은 유진휘가 입술을 깨물었다.

배필.

여인의 몸으로 천무지체를 타고나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 천형을 지닌 그녀로서는 감히 꿈꿀 수조차 없는 자리였다.

천하의 그 누구도 불임인 여인을 배필로 맞이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녀는 평생 여인으로 살아갈 수 없다.

그런 사실이 서하린의 모습을 보니 실감이 났다.

각오한 바지만, 그렇지만······.

서하린의 눈동자를 본 유진휘가 입술을 깨물었다.

백금발 머리에 푸른 하늘빛 눈동자를 지닌 미소녀인 서하린은 그녀가 봐도 천하에 몇 없는 절색이었다.

사내라면 누구나 배필로 탐낼 정도.

엉덩이를 보니 장차 장성하면 아이도 잘 낳을 것 같았다.

“유 공자님?”

“사제와 어떤 이야기를 하셨소?”

유진휘는 스멀스멀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면서 말했다.

장차 공동파의 장문인 될 자로서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면 안 된다.

그리 다짐했지만, 서하린 앞에서는 계속 무너지고 말았다.

“그건······.”

서하린이 말끝을 흐렸다.

요리는 못하지만, 그를 제외한 재능은 거의 만능에 가깝기 보유한 서하린이었다.

유진휘는 유독 이철수에게 집착했으니까. 거기에 서하린은 유진휘에게 왠지 모를 끈적하고 질척한 감정을 느꼈다.

유진휘는 사제를 만나고 난 뒤부터 변했다.

거기에 그녀를 견제하는 시선까지, 그것이 서하린이 유진휘에게는 거래 제안을 하지 않은 이유였다.

그녀가 볼 때, 이철수와의 대화를 전부 말한다면 유진휘의 심마(心魔)를 자극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건 서하린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만일 비무가 공동파의 승리로 끝난다면, 그렇다면 공동파에 입문하기로 거의 결심한 서하린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진휘가 비무에서 활약해줘야 했다. 나아가 장차 사형이 될 유진휘와의 관계도 원만하게 해야 했다.

하지만 유진휘는 유난히 사제, 이철수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예민해지는 영향이 있었다.

그러니 최대한 부드럽게 말한다.

“······소녀는 이 공자의 배필이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배필.

짐작은 했지만, 차마 듣고 싶지 않던 말을 들은 유진휘의 마음에 거친 파도가 일어났다.

유진휘가 주먹을 꾸욱 쥐었다.

‘배필, 이라고?’

그것도 사제가 아닌, 서하린 쪽에서 먼저 제안이라니.

대체 왜.

왜 하필 지금 이런 때에······.

유진휘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 그때.

서하린이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 공자께서는 소녀의 제안을 거절하셨습니다······. 아무리 아녀자라도 지아비한테 본인의 운명을 전적으로 맡기지 말라고 하시면서요.”

그가 거절했다.

그 사실을 들은 유진휘의 얼굴이 살짝 풀렸다.

그녀의 심장이 살짝 뛰었다.

‘역시 사제야······.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아!’

일반적인 사내라면 서하린의 구혼에 넘어갔을 터.

하지만 사제는 다르다.

사제는 여인의 유혹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다.

‘사제······. 의심해서 미안해······.’

유진휘가 잠시나마 사제를 의심했던 스스로를 반성하고 있던 그때.

서하린의 말이 그녀의 귓가에 들렸다.

“공자께선 설령 여인이라 할지라도 스스로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소녀의 운명을 개척하고 싶다면 비무가 끝난 뒤에 공동파에 입문하라 권하셨습니다. 전 대협과 가친(家親)께서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라고······.”

공동파 입문.

그 말을 들은 유진휘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가 이윽고 가라앉았다.

사제의 말이 맞았다.

서하린이 입문을 원한다면, 서 대인도 사부님도 반대하지 않을 거다.

사제가 비무라는 해결책을 내놓기 전부터, 서 대인도 사부님도 서하린을 공동파에 입문시키기로 결정했으니까.

게다가 공동 객잔은 말이 산하 사업장이지 사실상 몰락한 공동파의 유일한 자금줄이자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 존재. 서하린의 입문을 반대할 명분이 유진휘에게는 없었다.

“그렇구려.”

그렇기에 유진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사제에 이어 이번엔 사매가 생긴다.

홀로 공동파에서 수행하던 1년 전이라면 순수하게 기뻐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사제가 서하린의 제안을 거절하고 입문을 권유한 이유는 하나뿐이다.

‘이번에도 본 파를 위해서였겠지.’

사문의 재건은 그녀 홀로 절대고수가 되어서 이룰 수 있는게 아니다.

구파일방이 절대고수가 없어도 명문정파라 불리는 이유는 문파의 전통과 그를 지키는 어르신,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문의 재건을 위해서는 문호를 개방하고 제자를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공동파에 입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쩌면 비무에 이겨도 진짜 기재들은 공동파에 입문하지 않으려 할지도 몰랐다.

그런 의미에서 무재는 몰라도 신뢰는 검증되었으며 꼼꼼한 성격의 서하린은 쓸 만한 재목이었다.

사제는 그런 점을 간파한 것이리라.

‘사제는······. 스스로를 위하지 않아.’

1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유진휘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역시 사제에게는 사형인 내가 없으면 안 된다.

“······유 공자께서는 제가 탐탁지 않으신 겁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유진휘는 서하린이 껄끄러웠다.

사매로 들인다면 물론 잘해줘야겠지만, 사제만큼 정이 가지는 않았다.

사형제 사이의 혼인은 제법 흔한 일이었다.

게다가 서하린은 불임인 그녀와는 달리 아들을 임신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여인이 아닌가?

지금이야 사제가 서하린의 유혹을 뿌리쳤다지만, 그녀가 사매가 된 뒤에도 그럴 수 있을까?

‘······안 돼.’

사제와 서하린,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떠올린 유진휘의 손이 떨렸다.

그런 광경은 보고 싶지 않다.

역시 서하린은 아직 사제의 배필이 될 자격이 부족하다.

설령 그녀가 사매가 되더라도.

하지만 사매가 되는 걸 막을 수는 없으니, 사형으로서 그녀가 사제의 여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 검증하는 수밖에는 없다.

유진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소? 남도 아니고 서 소저의 입문이라면 언제건 환영이오.”

서하린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놓치지 않았다. 유진휘의 눈빛에 무수한 고민의 빛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역시······.’

무언가 있다.

서하린이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내일, 사제와 함께 난주로 떠날 예정이오.”

유진휘가 서하린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서문세가로 가시는군요.”

“그렇소. 장거리라면 장거리 여행이 될 터이니, 서 소저는 안전한 본산에 사부님과 함께 머무르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전 대협을 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서하린의 말을 들은 유진휘가 등을 돌렸다.

그녀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서하린은 무공을 익히지 못해 이번 여정에 함께할 수 없다.

그러니 서문세가로 가는 여정은 그녀와 사제, 둘뿐이다.

뭔가 이긴 기분.

그 생각을 하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럼 이만.”

인사를 남긴 뒤 경공을 펼쳐 사라지는 유진휘의 모습이 서하린의 푸른 눈동자에 담겼다.

‘무공이라······.’

무공을 익혔다면, 그분과 동행할 수 있었을까?

그녀의 손이 꽉 쥐어졌다.

*

위소련이 다녀가고 서하린과 깊은 대화를 나눈 다음 날 아침.

나는 언제나처럼 우뚝 솟은 하물의 기분 좋은 묵직함을 느끼면서, 케겔 운동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서 가부좌를 틀었다.

“흐읍, 후우.”

아침 운기조식을 실행하자 들숨을 통해 들어온 자연지기가 소양심법의 운기 경로를 따라 혈도를 내달렸다.

움찔!

나는 운기행공과 함께 케겔 운동을 시작했다.

자극받은 치골미골근과 소양심법의 양기가 만나면서 아침부터 온몸에 넘치는 정력이 느껴졌다.

나는 기분 좋은 뻐근함을 느끼면서 자리에서 일주천을 마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아침에는 운기조식이지.’

아침부터 피로가 싸악 날아가며 상쾌한 기분.

나는 어제 미리 싸둔 봇짐을 확인한 뒤에, 양물을 가라앉히고 문을 열려던 순간.

“이 공자님, 기침하셨습니까.”

드르륵.

문이 열리며 서하린의 인형 같은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기감으로 이미 기척을 감지했기에, 나는 당황하지 않고 인사를 받았다.

“그렇소. 서 소저는 간밤에 잘 주무셨소?”

“네.”

서하린이 고개를 숙였다.

“오늘 난주로 떠나신다 들었습니다.”

“그렇소. 갖고 싶은 물건이라도 있소?”

난주는 감숙성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성도. 감숙의 모든 물자가 모이는 도시이다.

당연히 시골 읍내 수준인 화정현과는 취급하는 물건의 숫자가 하늘과 땅 차이일 수밖에 없다.

“······딱히 없습니다.”

“알겠소.”

나는 신발을 신고 툇마루를 벗어났다.

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사부에게 잘 다녀오겠다고 문안 인사도 드려야 하고, 서문세가에 들르기 전에 미리 조치할 일도 있었다.

“이 공자님.”

내가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다듬고 출발하려던 그때.

등 뒤에서 서하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아침 하늘 아래, 눈부시게 아름답게 빛나는 백금발의 미소녀가 서 있었다.

그녀의 텅 빈 눈동자에 살짝 생기가 차오른다.

서하린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먼 길 조심히,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어색하기 짝이 없는 미소.

하지만 마음에 들었다.

그래, 사람이 좀 웃고 살아야지.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소저도 잘 지내고 계시오.”

인사를 끝낸 나는 그대로 몸을 날려 현천궁으로 향했다.

현천궁 앞에 도착한 내가 만난 사람은 사형이었다.

“사제, 늦었네.”

평소와는 달리 왠지 삐진 표정의 사형.

아니 갑자기 왜 저래?

“죄송합니다. 서 소저와 잠시 담소를 나누고 오느라······.”

내 말을 들은 사형이 괜히 돌부리를 툭툭 찼다.

그가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서 소저? 으응. 그렇구나. 무슨 이야기······. 했어?”

아니 갑자기 왠 추궁이지?

나는 그에게서 한 발짝 물러서면서 말했다.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먼 길 떠나는데 조심히······. 다녀오라고요.”

“그렇구나······. 응. 알았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형.

그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갑자기 저기압에서 고기압으로 변한 느낌.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 된다.

하긴 남자의 마음 같은 건 굳이 자세히 알 필요도 없다.

어디까지나 비즈니스 파트너니까 말이다.

나는 사형의 모습에 신경을 끄면서 말했다.

“그럼 사형. 사부님께 문안 인사를 드리고 오죠.”

“알겠어.”

나와 사형은 현천궁 안의 사부님에게 문안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문안 인사를 끝낸 뒤, 사형을 내보낸 나는 사부와의 독대 자리에서 내 계획에 필요한 사부님의 친필 서신을 획득할 수 있었다.

“사제! 빨리 와!”

서신을 조심스럽게 봇짐에 넣고 신법을 펼치며 도착한 산문 앞.

사형이 기쁜 표정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출발하죠. 사형.”

탁.

그의 옆에 잠깐 몸을 멈춘 내가 말하자, 사형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와 동시에 나와 유진휘는 산 아래를 향해 몸을 날렸다.

내 첫 강호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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