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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50화 (50/171)

50화 어떤 일로 방문하셨나요?

“컥, 커걱!”

마혈을 제압당한 모양인지 바닥에 처박힌 채로 가만히 온몸을 부르르 떠는 총관.

화정현이라는 시골 출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이류라는, 암흑가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강한 실력을 가진 총관이었지만 사형 앞에서는 범 앞의 하룻강아지에 불과했다.

탁탁.

일수 만에 총관을 제압하고 마혈을 짚은 사형이 손을 털었다.

“제압했어. 사제.”

과격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그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절세미남인 그가 웃자 칙칙하고 살풍경한 기루 1층 내부가 일순간 환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마치 내가 던진 프리스비를 낚아채서 달려온 사모예드처럼 칭찬을 요구하는 귀여운 표정과 눈빛.

귀엽다고?

‘내가 미쳤군.’

남자를 보고 순간이나마 귀엽다고 생각하다니.

이러면 안 된다. 나는 마음이 큰 거유 글래머 미녀를 좋아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성욕과 취향의 소유자.

남자 따위는 외모가 어떻건 절대로 끌리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사형.”

나는 지극히 사무적인 말투로 포권을 취하며 한 발짝 떨어져 안전거리를 유지했다.

그 모습을 본 배수 소년이 몸을 떨었다.

털썩.

그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소년의 눈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넌 가봐도 된다. 앞으로 배수 일로 남 전낭 털어먹는 건 그만두고 좀 정직하게 돈 벌면서 성실하게 살아라. 알겠냐?”

나는 소년을 보면서 문 쪽으로 나가라는 의미로 턱짓했다.

우리를 미행하긴 했지만 죽을 죄를 진 건 아니다. 내가 소년을 꼬리라고 지칭하긴 했지만, 하오문 전체로 보면 꼬리가 아니라 한 오라기의 털조차 못 되는 놈이다.

이런 꼬맹이까지 굳이 죽일 필요는 없다.

후환이 될 만한 놈도 아니고.

이런 뒷골목 사정이야 뻔하다. 고아들 모아다가 앵벌이 저 총관 놈이 앵벌이를 시켰겠지. 미행도 시키니까 했을 테고.

“네, 네! 가, 감사합니다! 대협! 개과천선하고 절대 배수 일 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겠습니다!!”

내 말에 군기가 빠릿빠릿 든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쌩하고 도망치는 배수 소년.

나는 시선을 돌려 몸이 굳은 총관을 응시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총관이 입을 열었다.

“으으······. 하오문이라니······. 미행이라니······. 나, 나는 모르는 일이오······. 왜 이리 나를 겁박하시오······.”

“그럼 무공을 배웠으면서 왜 일반인인 척하고 있었지?”

“알다시피 기루에서는 힘쓸 일이 많지 않소? 그래서 저잣거리에 나도는 보잘것없는 삼류 무공을 조금 배웠을 뿐이오······. 그쪽이야말로 내가 하오문도라는 증좌가 있소?! 무복을 보아하니 공동파의 문도들 같은데 정파를 자처하는 공동파의 무인이 어찌 이리 손속이 독랄하단 말이오?!”

정말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 총관.

그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렀다.

“사형.”

“응, 사제.”

“아까 소란을 피웠으니 곧 왈패들이 위층에서 여기로 내려올 겁니다. 놈들의 제압을 부탁드립니다.”

“알았어.”

내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형.

총관의 말에는 틀린 구석은 없었다.

현대와는 달리 남미 뺨치는 개판 치안을 자랑하는 중세 무림에서 장사할 때 목숨을 지키려면 보호비나 기부금을 내서 지역 문파에게 보호를 받던가, 아니면 직접 왈패들을 고용해야 했다.

일반 상점은 전자가 많았고 진상이 많은 기루는 후자가 많았다.

그러니 이 기루 또한 문제를 주먹으로 해결하는 용도로 고용한 왈패들이 있을 거다.

현대에서는 바운서라고 불리는 놈들 말이다.

뭐 그래봤자 영세한 하오문 출장소 기루 특성상 등장할 왈패들도 뒷골목 삼류 떨거지들이겠지만 말이다.

내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1층으로 통하는 계단으로 험상궂게 생긴 왈패 대여섯이 칼, 몽둥이 같은 연장을 들고 들이닥쳤다.

“무슨 소란······. 크헉!?”

“어디서 감히······. 으으흐아악?!”

쾅! 콰광!

하지만 그들은 등장한 지 1초 만에 대사 한 마디 못 내뱉어 보고 맨손의 사형에게 모조리 제압당했다.

탁탁.

바닥에 떡대 여섯을 처박은 뒤에 다시 손을 터는 사형.

그 모습을 본 총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래? 그 증좌는 내가 찾아서 보여주지.”

어차피 정체를 시인할 거라고 기대도 안 했다.

여기서 본인이 하오문도라고 인정했다면 오히려 의심했을 거다.

정보 요원이 물증이 없는데 먼저 자백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물증이 없다면 찾으면 된다.나는 자리에서 일어선 뒤에 콧노래를 흥얼대며 사형을 불렀다.

“사형.”

“사제, 또 부탁할 일 있어?”

내가 부르자마자 강아지처럼 달려와 눈을 반짝이는 사형.

꼬리가 있었다면 살랑살랑 흔들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꼬리?

남자의 꼬리라니, 그런 역겨운 발상을 하다니. 미치겠군.

나는 생각하는 것만으로 정신이 오염될 것 같은 상상을 머릿속에서 지워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네. 저쪽이랑 저쪽에 기감을 펼쳐서 지하나 벽 너머에 밀실이 있는지 탐지 좀 부탁드립니다.”

나는 손가락으로 카운터 쪽과 주방과 창고 쪽을 가리켰다.

기루의 구조를 보아하니 저 두 군데 중 한 군데에 모은 정보를 서류 형태로 보관하고 하오문 감숙 분타와 연락을 주고받는 용도의 밀실이 있을 것이다.

밀실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놈이 하오문도라는 사실과 우리의 미행을 지시받았다는 증거를 찾아낼 수 있다.

사형은 천무지체의 무골을 타고나서 선천적으로 기감이 열려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기감을 사용 가능한 괴물인 사형은 무공을 익히고 임독양맥을 타통하면서 그 감각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가히 인간 레이더, 소나나 다름없는 사형의 기감을 내가 활용 안 할 이유는 없었다.

“응!”

이렇게 부탁만 해도 뭐든 들어주는데 말이다.사형이 내력을 끌어올렸다. 그의 눈에 안광이 번쩍인 순간.

“찾았어. 부엌 쪽 지하에 커다란 공간이 있어.”

사형의 말에 총관의 안색이 변했다.

그가 눈에 띄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빙고라는 뜻이다.

과연 미래의 천하제일인이자 천무지체와 일대종사의 재능 보유자.

아직 제대로 재능이 개화 안 했는데도 이 정도 쓸모라니.

역시 공동파에 들어오길 잘 했다.

“사제! 나 잘했지? 응? 잘했지?”

이제는 눈빛과 표정뿐만 아니라 대놓고 말로 칭찬을 요구하는 사형.

대체 왜 이렇게 자꾸 달라붙는지 모를 일이다.

남자 주제에,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고.

나는 비즈니스 스마일을 지으면서 사형에게 사무적인 말투로 말했다.

“잘하셨습니다. 사형.”

“고마워! 사제!”

내 말에 신난 표정으로 웃는 사형.

나는 그를 무시하면서 웃었다.

좋아, 이제 비밀의 방에 들어가 증거를 까볼까?

증거를 깐 이후에 총관 놈을 몰아붙인 뒤 다음 단계로 빨리 나아가야 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막 뗀 순간.

[이 소협.]

귓가에 아리따운 여인의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전음(傳音)이었다.

전음을 보냈다는 건 최소 일류의 고수라는 뜻.

그렇다는 건, 이 목소리의 주인이 쓰러져 신음하는 총관의 상관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난주의 하오문 감숙 분타도 아니고 이런 시골 출장소에 일류의 고수가 있다고?

인력 낭비가 따로 없다. 원래라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아무리 하오문이라도 일류 고수가 무슨 동네 개 이름도 아니고 이런 중요도도 떨어지는 시골 출장소에 배치할 여력은 없다.

‘적사월 때문인가?’

아니 생각해보니 고수가 배치될 이유가 있긴 했다.

염왕 적사월.

하오문의 태상문주이자 사도련주이며 사파제일인.

그녀를 보조하기 위해 화면호검의 정체를 아는 인물이자 적사월의 제자인 하오문주가 화정현 출장소에 일류 고수를 파견을 보낸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불쌍한 하 총관은 이제 그만 괴롭히시고 2층 특실에서 저와 단둘이 오붓한 시간을 가지는 건 어떠세요? 후후.]

끈적하고 요염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듣는 것만으로 심장 박동수가 올라가는 듯한 느낌.

이 느낌은······.

‘미염공이군.’

누가 하오문 소속 기녀 아니랄까 봐, 시작부터 수작질을 건다.

평범한 사내라면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음심이 동했을 테지만, 나는 평범한 사내가 아닌 색도의 일대종사.

오히려 불쾌하기만 했다.

이게 누굴 색마로 아나.

어디서 수작질이야.

어쨌거나 상관이 나온 이상 1층의 총관에게 더 이상 볼 일은 없다.

“사형. 2층의 하오문 고수로부터 독대를 원한다는 전음이 날아왔습니다. 잠깐 2층에 다녀올 테니 1층을 부탁드립니다.”

“독대? 안 돼. 사제. 위험해. 나도 같이······.”

내 말을 듣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사형.

그가 내 소매를 당겼다.

“괜찮습니다. 사형 우제를 믿어 주십시오. 별일 없을 겁니다.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위험은 무슨.

그 어떤 함정이라도 나는 돌파할 자신이 있었다.

황궁의 비선실세, 조고와 십상시, 위충현을 뛰어넘은 최악의 환관, 망탁조의와 비견되는 망국의 간신배 호칭은 고스톱으로 딴 게 아니다.

나를 믿어달라.

내 말을 들은 사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가 잠시 침묵하다가 내 소매를 놓아주면서 말했다.

“응. 믿을게. 사제는 내 사제니까, 사제가 하는 말은 무슨 말이건 전부 믿을 거야. 그래도 조심해. 무슨 일 있으면 꼭 신호 보내고.”

“알겠습니다.”

나는 사형의 걱정을 뒤로 한 채로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나무 계단을 타고 올라가자 전형적인 기루 모습이 펼쳐졌다.

복도 양옆으로 있는 미닫이문.

아직 영업 전인지 사람의 기척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면으로 계속 오시면 된답니다. 소협. 후후.]

나는 전음의 인도를 따라 복도를 이리저리 돈 뒤에야 마침내 2층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특실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드르륵.

내가 문 앞에 도착하자 미닫이문이 저절로 열렸다.

거기에서 나는 마침내 내게 전음을 보낸 기녀와 마주할 수 있었다.

미닫이문 너머, 화려한 꽃 병풍을 등지고 한 미녀가 그림처럼 앉아 있었다.

얼굴을 가리는 면사를 썼지만, 아름다움이 면사를 뚫고 나오는 듯한 자태를 지닌 미녀.

한 쌍의 수밀도(水蜜桃)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수박처럼 큰 가슴과 유려한 허리 곡선, 풍만한 엉덩이 라인이 언뜻 비치는 고운 비단옷을 입은 흑발의 절세가인.

나는 그녀의 정체를 보자마자 이미 알아차렸다.

사천제일미 염희 능월향.

별명답게 사천성 최고 미녀는 물론 차기 천하제일미 후보로 꼽히는 예기(藝妓). 사천성 제일 청루(靑樓)인 성도(成都)의 백화루의 유일한 천(天)급 기녀. 평소에는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며, 금기서화(琴棋書畵)의 시험을 통과한 풍류남아만이 맨얼굴을 볼 수 있는 사천제일기녀.

백화루에서 그녀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거문고와 서예뿐이고, 시험을 통과한 자라도 능월향의 손가락 하나 건드릴 수 없다.

시험에 통과해봤자 아이돌 콘서트처럼 그녀를 화초처럼 그저 바라보면서 거문고 연주를 들으면서 술만 먹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데도 능월향을 보기 위해 시험에 응시하는 풍류남아들은 구름처럼 많았다. 사천성 밖에서도 소문이 나서 다른 지방에서 원정까지 올 정도. 게다가 그녀와 함께 술자리를 한 남자들은 하나같이 전부 만족했다고 한다.

물론 기녀가 하오문에 소속되어 있는 건 거지가 개방에 소속되어 있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가 보통 기녀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동창의 정보에 따르면 염희 능월향은 화면호검에 이은 적사월의 두 번째 부캐였다.

그렇다.

사파제일인 염왕 적사월, 그녀가 또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화면호검은 어쩌고 염왕의 두 번째 부캐를, 그것도 하필 지금 여기서 마주친단 말인가.

어이가 없다.

빌어먹을 부캐 컨셉충 같으니.

“자리에 앉으세요. 이 소협.”

거칠고 호전적인 말투를 사용하는 화면호검의 모습과는 다르게 사근사근 조용하면서도 고혹적이고 친절한 목소리와 태도로 내게 자리를 권하는 적사월.

도저히 화면호검과 동일인이라 생각할 수 없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적사월 역시 한 연기 하는 모양.

적사월이 또 나온 건 예상 밖이지만, 오히려 좋다.

나는 능월향, 아니 적사월의 권유를 받아들여 의자에 착석했다.

드르륵, 탁.

아까 미닫이문을 연 기녀 두 명이 종종걸음으로 나가면서 문을 닫았다.

나름 꾸민다고 꾸민 정원이 그대로 내려다보이는 특실, 술 대신 차가 올려진 탁자를 가운데 두고 나는 능월향의 모습을 한 적사월과 마주 앉았다.

“그래서, 본문에는 어떤 일로 방문하셨나요?”

적사월이 예의 끈적이는 목소리로 말한 순간.

내 기감이 경종을 울렸다.

그녀의 미염공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하면서, 적사월의 전신에서 사내를 유혹하는 끈적한 색기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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