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쾌락 없는 책임
서문세가 가주전.
천하를 위진하는 열일곱 화경의 고수, 경천십칠주(驚天十七柱)의 일좌를 차지하는 감숙제일고수 진천검왕(震天劍王) 서문현천이 기거하며 업무를 보는 전각.
진천전(震天殿).
공맹(孔孟)의 가르침을 따르는 서문세가답게 고고한 선비의 방처럼 꾸며진 이곳에서 서문현천은 난을 닦고 있었다.
진천검왕이라는 별호에 걸맞게 걸치고 있는 도포 위로 우락부락한 근육이 전부 보일 정도로 거구를 지닌 중년의 사내.
그는 난을 전부 돌본 뒤 자리에 앉았다.
“가주님, 계십니까? 총관입니다.”
“들라.”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고 그의 동생인 군자검 서문풍이 가주전 내부로 들어왔다.
“공동파 제자들의 동태는 어떠하냐?”
“어제와 같습니다. 계속해서 고급 돼지고기 요리를 요구하는 것만 제외하면······. 호빈관 내부에 머무르며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불평도 불만도 없고, 본가에 만남을 재촉하지도 않습니다.”
“흠······.”
서문풍의 말을 들은 서문현천이 침음을 흘렸다.
흑룡방과 공동파의 비무.
두 방파 사이의 비무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서문현천은 경악했다.
이대로 비무가 진행된다면, 눈 뜨고 화정현을 흑룡방에 빼앗기는 것도 모자라 공동파의 복수라는 명분으로 흑룡방을 친다는 대전략까지 무너질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공증인 입회 아래 개최된 정당한 비무의 결과다.
아무리 서문세가가 말석이기는 하지만 육대세가의 일좌에 속하는 거대 무림세가라도 정당한 비무의 결과에 왈가왈부하는 건 불가능했다.
서문세가보다 세력이 약한 문파라면 모를까, 상대는 사도팔문의 일원인 흑룡방.
그들을 상대로 억지 명분 작업이 통할 리가 없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인 상황.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공동파한테 비무를 포기시키는 방법밖에는 없다.’
공동파의 승리는 말도 안 된다는 사실을 진천검왕도 알았다.
그러니 남은 건 비무 자체를 무산시키는 거였다.
비무, 특히 지금처럼 대가를 걸고 개최하는 공개 비무는 공증인이 없다면 성립되지 않는다.
공동파가 공증인을 내세우지 못한다면 비무 성립은 불가능한 것이다.
공증인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명망 높은 무림의 명숙만이 가능하다.
그리고 공증인을 할 만한 감숙의 문파와 무림인은 전부 서문세가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들을 단속한다면 공동파는 결코 공증인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서문현천은 감숙 무림 전체에 압력을 넣고 있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공동파 제자들이 직접 세가에 찾아와서 문제기는 하지만.
‘만일 그들이 계속 공증인을 요구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대가를 좀 주는 수밖에 없겠군.’
그렇게 된다면 공동파의 체면도 상하게 하면서 손해도 막는 일석이조의 계책이었다.
대가 지불은 공동파의 재건을 돕겠다는 명목으로 돈을 빌려줘서, 빚으로 공동파를 서문세가의 산하로 자연스럽게 종속시키는 쪽이 좋겠지.
천년 전통 공동파가 서문세가의 산하로 들어오다니. 공동파에게는 멸문보다 더한 치욕이요, 서문세가에는 최상의 결과였다.
물론 세상일이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는 않는 법.
상대가 강하게 공증인을 요구한다면, 감숙 무림의 패자로서 들어주지 않을 명분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만약 결국 공증인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그때는 결국 공동파에 대가를 받아낼 수밖에 없다.
적들이 화정현을 차지한다? 화정현을 얻어도 얻은 게 아니게 만들어주면 된다.
‘공증인을 수락하는 대신 공동산에 서문세가의 비밀 분가를 세우게 해달라고 요구해야겠군.’
공동산은 공동파의 소유라 함부로 범접할 수 없다.
하지만 공동파의 허락을 받는다면 가능하다. 평시라면 불가능하겠지만, 지금이라면 된다.
그렇게 공동산에 서문세가의 비밀 분가를 세운 뒤에, 흑룡방이 화정현에 들어오고 시간을 봐서 분가를 천하에 공개하는 것이다.
공동파가 봉문한 이후에도 흑룡방은 화정현의 껍데기만 얻은 꼴이 될 것이다.
비무의 조건은 공동파의 봉문과 영향력 제거이지, 서문세가의 분가를 거기 설치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조금 억지스럽지만, 공동파에서 먼저 요구했다고 시킨다면 공동파의 체면만 크게 상하게 될 뿐 서문세가에는 거의 타격이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흑룡방과 은원관계에 놓인 청성, 아미, 당문에서 흑룡방의 세 확장을 좋아할 리가 없기 때문에 서문세가를 적극 옹호해줄 것이다.
‘좋아. 계획은 완벽하군.’
모든 계획은 완벽하다.
외부 변수도 없다.
어느 쪽이건 전부 서문세가에 이득이다.
다 망한 공동파에 그럴 여력도 없지만, 혹시나 해서 가문의 정보 조직인 비각(秘閣)의 정보망을 가동했지만 공동파에서 다른 문파로 공증인 입회 요청 서신을 보낸 흔적은 없었다.
뭐 당연하다.
사천의 모든 상단과 표국은 서문세가에 줄을 대고 있었고, 개방 감숙 분타도 서문세가와 친밀한 사이니 어떤 경로로건 감숙성 밖 타 문파에 서신을 보냈다면 비각의 정보망에 걸려들었을 것이다.
하오문? 거긴 고려할 가치도 없다. 애초에 사파인 하오문이 공동파를 상대해줄 리 만무할뿐더러, 하오문에 의뢰하려면 돈이 드는데 공동파에 그 정도 재력은 없으니까.
공동파의 선택지는 오직 서문세가뿐이다.
그래서 전영이 두 제자를 서문세가에 보낸 것이 아니겠는가?
“일부러 평정을 가장하는 건가? 나이치고는 제법이지만, 빠져나갈 구멍은 없을 거다. 계속 주시하도록.”
“예, 가주님.”
그렇게 두 사람이 서로 주거니받거니 하고 있을 때.
“가주님! 총관님!”
드르륵.
열린 문 너머로 밋밋한 회의 무복을 입은 무사 한 명이 들이닥쳤다.
“무슨 일이지?”
“급보입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방금 비각 현장 요원을 통해 입수한 정보입니다.”
무인이 품에서 서찰을 꺼내 공손한 태도로 가주에게 바쳤다.
“흐음.”
대체 어느 정도의 급보길래?
서문현천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서찰을 펼친 순간.
“······?!”
내용을 읽은 서문현천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그의 얼굴이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비무 공증인 입회를 요청하는 공동파의 서신이 소림, 무당, 화산, 종남, 아미, 청성, 곤륜, 점창, 항산과 남궁세가, 모용세가, 하북팽가, 사천당문, 제갈세가, 개방 총단에 도착함. 청성, 당문, 아미는 이미 비무 공증인 입회를 결정. 나머지 문파도 공증인 입회를 고려 중임. 모든 문파가 비무 현장에 대리인을 파견할 걸로 예상됨.]
[천하에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이 빠르게 확산 중임. 공동파와 흑룡방의 대결은 정파와 사파 사이의 대결. 이기는 쪽이 향후 백 년간 강호 무림을 제패한다는 소문임. 천하의 민심이 정마대전 이후 50년의 평화 끝에 일어난 정사지쟁에 들끓고 있음.]
서문현천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 모습을 본 군자검이 침묵했다.
오랜 세월 경험해서 알 수 있었다.
저 상태의 서문현천을 잘못 건드리면 이쪽이 오히려 화를 입는다.
“정사지쟁(正邪之爭)이라고? 모든 구파일방과 육대세가가 비무 현장에 대리인을 파견하고, 당문과 청성, 아미는 이미 공증인 입회를 결정했다고?!”
지금까지 세운 모든 계획이 완전히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말이 소문이지, 이 정도면 이미 천하 무림에서 이번 비무를 단순한 비무가 아닌 정사지쟁으로 간주한다는 뜻과도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구파일방과 육대세가가 고작 방파 간의 비무로 그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일 리가 없다.
일이 정사지쟁으로 커진 이상, 서문세가의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공증인 입회.
대가를 거는 것도 불가능했다.
이미 당문, 청성, 아미에서 공증인 입회를 결정했으니까.
서문세가가 참여하지 않아도 비무는 열릴 것이다.
오히려 여기서 서문세가가 공증인 명단에서 빠지는 게 더 이상했다.
어쨌거나 서문세가는 감숙제일문파였으니, 체면 때문이라도 감숙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어떤 식으로건 관여해야 했다.
특히 정사지쟁 같은 대형 사고라면 더더욱.
문제는 일이 이렇게 된다면, 서문세가가 얻을 이득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손해만 발생한다는 거였다.
이대로면 온갖 더러운 뒤치다꺼리는 전부 서문세가가 도맡으면서 욕도 서문세가가 먹을 판국이었다.
그야말로 쾌락 없는 책임이었다.
진천검왕의 뇌리가 분노로 가득 차올랐다.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다. 이 빌어먹을 공동산 말코 도사 놈들이 무슨 짓을 한 거야!!”
대체 어떻게.
다른 문파에 서신을 발송했단 말인가?
대체 어떻게 소문을 퍼뜨렸다는 말인가?
“하오문인가? 역시 하오문이야. 공동의 말코 새끼들이 그 빌어먹을 사파 놈들과 붙어먹은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빌어먹을 일을 저지를 수가 없지!!”
탕!
진천검왕이 탁자를 내리치자, 고급 원목으로 만들어진 탁자가 반으로 쪼개졌다.
당했다.
그것도 무시하던 공동파에게.
퇴로는 없었다.
진천검왕의 말을 들은 군자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의 말에서 서신의 내용과 서문세가의 상태를 전부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하오문과 공동파가 손을 잡았다는 증거는 있느냐?”
서문풍이 물었다.
마지막 희망은 오직 그뿐이었다.
다 몰락한 공동파였다. 정보 조직 따위가 있을 리 없다.
그러니 필시 서문세가의 눈이 닿지 않는 정보 조직, 하오문과 손을 잡았을 것이다.
심증은 확실하다.
문제는 심증만 확실하다는 사실이었다. 서문세가는 백도 문파. 명분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다.
둘이 손을 잡았다는 확실한 물증이 필요했다.
그 물증만 있으면, 그렇다면······.
“······이미 찾아봤지만, 증좌는 없습니다. 개방 감숙 분타에서도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무사의 말로 서문세가의 마지막 희망까지 산산 조각났다.
사도련주와 하오문주가 직접 나선 일이다.
증거 따위를 남겨둘 리가 없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서문풍의 얼굴이 굳었다.
“······풍아, 어찌하면 좋겠느냐.”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형님. 일단은······. 공증인 입회 요청을 수락하는 것이 그나마······.”
서문풍이 말끝을 흐렸다.
퇴로는 없다.
무려 화경의 고수를 보유한 거대 세가인 서문세가가 고작 공동파 따위에게 철저히 농락당했다.
물론 실제로는 9999세의 권신, 망탁조의와도 호형호제가 가능한 간신배 이철수에게 당한 거지만 군자검도 진천검왕도 그 사실을 알 리 없었다.
그 사실을 확인받은 진천검왕이 분노를 삼켰다.
더 이상의 분노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
아무리 화경의 고수이자 서문세가의 가주라한들, 이미 그의 통제 범위 밖을 벗어난 일을 어떻게 할 재주는 없었다.
진천검왕이 이마를 짚었다.
“후우.”
그가 분노를 애써 삭이면서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공동파 제자들을 불러라.”
“예, 가주님.”
고개를 숙인 군자검이 무사를 데리고 나갔다.
탁.
미닫이문이 닫힌 걸 확인한 진천검왕이 소리를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공동파 개새끼들아!!”
갈 곳 없는 울분이 가주전에 휘몰아쳤다.
*
군자검의 안내를 받은 우리는 서문세가의 가주전인 진천전 앞에 도착했다.
진천전(震天殿).
일필휘지로 쓰인 현판이 걸린 서문세가 가주전은 중심이 되는 전각답게 고루거각이 즐비한 서문세가에서도 가장 높고 크고 화려한 건물이었다.
“들어가십시오.”
가주실 앞에 도착한 군자검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양옆에 선 무인들이 미닫이문을 열었다.
드르륵.
문이 열렸다.
나는 살짝 긴장한 사형을 데리고 여유 넘치는 마음으로 가주실로 입장했다.
탁.
문이 닫혔다.
시야에 우람한 체구를 지닌 중년인이 앉아 있었다.
이자가 바로 진천검왕 서문현천.
중견 무림세가였던 서문세가를 육대세가의 일좌로 올린 화경의 절대자다.
물론 그래봤자 내게는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에 불과하다.
“사해에 이름이 드높은 서문세가의 가주, 감숙 무림의 대형이자 정파 무림을 수호하는 오정(五正)의 일원인 진천검왕 서문현천 대협을 만나서 영광입니다. 공동파의 이철수라고 합니다.”
나는 포권을 취하면서 서문현천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내 웃음을 본 서문현천의 눈동자가 떨렸다.
마치 귀양 가기 직전 발악하던 대신들을 보는 느낌.
이래서 티배깅이 신나는 거다.
“진천검왕 서문현천 대협을 만나서 영광입니다. 공동파의 유진휘입니다.”
“허례는 됐네. 앉게나.”
진천검왕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으며 우리에게 자리를 권했다.
태연한 척 가장하고 있지만, 정치질의 고수인 내게는 진천검왕이 속으로 부들부들하는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나와 사형이 자리에 앉았다.
탁자 위에는 그래도 손님이라고 향 좋은 차와 과자가 놓여 있었다.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들어가세. 자네들은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서 비무를 하려는 건가?”
서문현천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몸에서 자연스러운 군림자의 기세가 흘러나왔다.
기도 해방은 아니었다. 화경의 고수인 그였다. 고작 공동파의 제자 따위를 압박하기 위해 기도를 해방할 리가 없었다.
아직은, 지금 단계에서는 말이다.
군림자의 기세로 우리를 압박할 생각이겠지.
화경의 고수이자 감숙성의 패자이며 서문세가의 가주로서 그가 지닌 지배자의 기품과 기도는 강호에서 수위에 꼽히는 수준.
다른 사람이었다면 여기서 쫄았을 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니다.
만인지상(萬人之上)에 올라 대명제국의 천하를 지배했던 나였다.
고작 일개 성의 패자 따위가 풍기는 기도로는 나를 압박할 수 없다.
나는 그의 기도를 자연스럽게 받아내면서 손을 뻗어 탁자 위의 과자를 집어 천천히 소리 없이 씹어 삼키며 부드럽게 웃었다.
내 웃음을 보던 진천검왕의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당연히 강호의 의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지요. 사파의 무리가 감히 정파의 땅인 감숙을 범하려는 형세입니다. 백도의 일원으로서 좌시할 수 없었습니다. 사마외도의 무리는 결코 감숙 땅을 밟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내 정론을 들은 진천검왕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진천검왕의 표정을 보면서 과자를 삼켰다.
고급 과자라서 그런지 길거리 당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단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오늘따라 과자가 정말 꿀맛이네.
아.
서문세가 참 좋은 곳이야.
만나는 사람마다 날 저렇게 얼굴 전체를 동원해서 극찬하잖아.
“의기, 의협심. 좋은 말이지. 하지만 그것도 힘이 받쳐줘야 가능한 일이네. 지금의 공동파는 명백히 영락한 문파. 힘없는 협의는 그저 만용일 뿐이네. 지금이라도 비무를 포기하게나. 그렇다면 내 본가에 일러 공동파의 재건을 돕도록 지시하겠네.”
예상대로 비무 포기를 종용하는 진천검왕.
진퇴양난의 늪에 빠진 놈으로서는 우리의 GG선언만이 유일한 탈출구겠지.
하지만 난 아쉽게도 해줄 생각이 없었다.
공동파 재건 지원?
딱 봐도 저건 함정이다.
재건을 돕는다는 핑계로 돈을 빌려줘서 채무로 공동파를 서문세가에 종속시키려는 수작이겠지.
정치 좆밥의 생각 같은 건 안 봐도 뻔하다.
“만용이 아닙니다. 이길 자신이 있어서 한 말입니다. 진다고 생각하면 처음부터 흑룡방에 비무첩을 보내지도 않았을 겁니다.”
내 말을 들은 서문진천이 잠시 침묵했다.
“이철수라 했느냐? 패배를 생각하지 않았다니, 어린 나이에 광오하구나. 천하가 넓다는 사실을 내 오늘 강호의 선배로서 너한테 친히 가르쳐주겠다.”
서문현천이 그렇게 말한 순간.
고오오오오오오오오.
놈의 도포 자락이 펄럭이면서 공간을 짓누르는 압도적인 기도가 일어났다.
태황패력공(泰荒覇力功).
서문세가의 직계만이 배우는 상승의 심법에서 비롯된 기도가 나에게 쏟아졌다.
마치 험준한 절벽을 마주한 느낌. 온몸이 유압 프레스로 짓눌리는 기분.
진천이라는 별호 그대로 하늘이 흔들리는 압도적인 기도가 내게 쏟아졌다.
과연 화경의 고수, 전력의 극히 일부만 해방했는데도 이 정도라니.
그리고 나는 놈이 이렇게 나올 걸 예상하고 있었다.
결국 막다른 데로 몰린 서문세가가 할 일이라고는 강호의 방식으로 무력을 쓰는 것뿐이니까.
그리고 그에 대한 대응책도 있었다.
조금 무리지만, 전력으로 해방한 기도도 아니고 나를 시험하려고 전력의 일 할 정도만 사용한 기도였다.
그 정도라면 나라도 조금 무리한다면 놈의 기도를 받아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내가 역라순혈공을 운용하려던 그때.
“서문 대협.”
탁.
사형이 일어나 나와 진천검왕 사이를 가로막았다.
고오오오오.
사형의 몸에서 일어난, 음유하면서도 거친 삼음진결의 기도가 서문현천의 기도와 정면으로 맞부딪혔다.
쿠콰콰콰!
사형과 진천검왕의 기도가 허공에서 쟁투하면서 기파가 사방팔방 뻗어나갔다.
서문현천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 이상 본 파를 무시하는 발언은 삼가시길 부탁드립니다. 아무리 본 파가 영락했다 한들, 사마외도의 무리를 징치할 정도의 여력은 남아 있으니까요.”
사형이 공손하지만, 약간의 분노를 품은 말투로 진천검왕을 응시하며 말했다.
[사제, 몸은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내상은? 저번처럼 내상 입은 건 아니지? 걱정되는걸······.]
그와 함께 귓가에 걱정스러운 사형의 말이 울렸다.
전음이었다.
아니, 벌써 전음을 이렇게 숙련되게 쓴다고?
천무지체 이거 사기네.
내가 그렇게 천무지체의 성능에 감탄하고 있을 때.
[앞으로도 사제는 내가 지킬 거야······. 사형으로서······. 그러니까 무력은 믿고 맡겨줘.]
사형이 소년 만화 주인공처럼 오글거리는 대사를 전음으로 전달했다.
윽.
돌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