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공동괴협(崆峒怪俠)
바닥을 박차면서 뛰어오른 나는 단전에서 음양이기를 끌어올려 혼원공을 운용했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
단전에서 솟아난 내력이 혈도를 타고 흘렀다. 회음혈에 양기가 백회혈에 음기가 머물렀다.
음양전도와 수승화강에서 폭발적인 정력이 일어나 사지백해를 메웠다.
그 상태에서 검을 들었다.
햇빛을 받아 빛나는 검에서 검명이 울렸다.
복마검법은 궤이막측하면서도 실전적인 초식으로 이루어진 강검.
따라서 모든 초식이 직선적이고 치명적이었다.
시야에 위소련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당당한 표정으로 박도를 든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피를 뿌리는 쪽이 임팩트가 좋겠지.’
멋진 패배란 무엇인가.
그것은 장렬하고 비극적인 패배다.
물론 일방적인 패배는 안 된다.
아슬아슬한, 손에 땀을 쥐는 혈전 끝의 패배.
그런 패배를 연출해야 한다.
그리하여 나는 강호의 인기남 복마검협이 되리라.
나는 그대로 복마검법의 검결을 따라 위소련을 공격했다.
번쩍.
검광과 함께 거센 검풍이 비무대에 휘몰아쳤다. 내 검세를 본 위소련의 눈동자에 이채가 어렸다.
그녀가 박도를 들어 휘둘렀다.
반룡도법(攀龍刀法)
흑룡방의 정예에게만 허락된 상승의 도법.
흑룡방의 도법답게 패도적인 기세가 공간을 메운 순간.
쩌-저-저-정!그녀의 도와 내 검이 부딪히며 폭음이 터졌다.
내력과 내력이 부딪히고 검풍과 도풍이 교차했다. 찌르르 타고 올라오는 반탄력이 손아귀를 찢을 듯 울렸다. 나는 손의 고통을 무시하고 검을 휘둘렀다.
챙! 챙! 챙! 챙!
순식간에 수십 초가 교차했다. 위소련의 눈썹이 꿈틀했다.
“호오? 제법 버티는구나.”
위소련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그녀는 타고난 무공광. 내기니 뭐니 해도 비무 자체를 즐기는 모습.
하지만 내 상황은 좋지 않았다.
이류에 불과한 내력을 혼원공으로 증폭시키고, 혼신을 다한 내력과 신체 컨트롤로 보완해서 간신히 맞서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면 밀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허나 승자는 내가 될 것이야!”
위소련이 장담과 함께 도광이 번쩍이며 도풍이 사방팔방 휘몰아쳤다.
막을 수 없는 일격이 다가왔다.
‘딱 좋군.’
하지만 그조차도 내 계산 내다.
나는 검을 든 채로 역라순혈공을 운용했다. 혼원공이 음양이기를 컨트롤하는 심결이라면, 역라순혈공은 순수하게 내력을 증폭하는 역혈대법.
고고고고고고고.
내력이 증폭하며 폭주했다.
우우우우우웅!
한계치 이상의 내력을 받아들인 검이 불안정하게 진동했다. 하지만 1%.
아직 위소련의 방어를 뚫고 일격을 날리기에는 1%의 기운이 부족하다.
‘어쩔 수 없어.’
나는 다가오는 위소련의 도광을 보면서 치골미골근을 움찔했다.
미국 산부인과의 위대한 대종사 아놀드 케겔이 창안한 현대의 신공절학, 케겔 운동이 역라순혈공과 결합된 순간. 몸에서 한 줄기 양기가 치솟아 1%의 모자란 기운을 채웠다.
그와 함께 자극받은 양물이 바지를 뚫을 듯 솟았다.
“노, 놈! 비, 비무 도중에 이, 이게 무슨······!”
에베레스트처럼 솟아오른 내 불기둥을 보고 위소련이 당황한 순간. 그녀의 호흡이 흐트러지며 작은 빈틈이 생겼다.
나는 그 작은 빈틈 사이로 그대로 복마검법의 투로를 따라 검을 찔렀다.
번쩍!
은빛 섬광이 위소련을 향해 날아갔다.
위소련의 도광 또한 나를 향해 날아왔다. 피할 수 없다. 그러니 오히려 좋다. 나는 그대로 위소련의 도를 몸으로 받아내며 검격을 날렸다.
“!!”
위소련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녀는 내 검격을 피하려 신법을 운용했지만, 미처 전부 피하지 못했다.
부욱.
위소련의 흑색 장포가 찢어지면서 그녀의 왼쪽 팔뚝과 어깨, 그리고 가슴을 가리는 붕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
그와 동시에 그녀의 도격이 내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푸슉!
살이 갈라지며 피가 튀어 올랐다. 아프다. 회귀 이후 처음으로 겪는 대형 부상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털썩.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커헉!”
그리고 입에서 핏덩이를 토해냈다. 무리한 내력 운용의 반작용인데, 이미 의도한 사항이었다.
상반신의 절반을 드러낸 흑사룡의 얼굴이 빨개졌다.
나는 찢긴 상의 사이로 드러난 위소련의 새하얀 왼팔과 어깨, 붕대로 짓눌린 가슴과 여전히 붉어진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미리 마음속으로 수없이 연습했던 여심을 홀리는 멋진 대사를 내뱉었다.
“······닿았다. 흑사룡······.”
주륵.
그녀의 왼팔에 새겨진 생채기에서 피가 한 방울 떨어져 내렸다.
“승자! 흑사룡 위소련!”
승자 선언을 하는 서문표.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져 눈을 감았다.
이로써 경지는 모자라지만 혼신의 힘을 끌어내 사파제일 후기지수 위소련에게 한 방 먹이고 패배해서 퇴장하는 비극적이고 장렬한 패배의 주인공, 공동파 협객 이철수의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다.
흐흐.
자고 일어나면 이제 내 이름 앞에 복마검협이라는 별호가 붙어 있겠지.
‘이 정도면 충분히 멋있었어. 내가 여자라도 나한테 반했겠군.’
벌써 두려워진다. 자고 일어나면 강호를 위진시킬 이 이철수의 뜨거운 인기가. 날 보러 공동파로 찾아올 아름다운 소저들의 모습이. 내게 반한 소저들의 뜨거운 시선이.
이 다음은 사형이 알아서 해주겠지.
미래의 천하제일인 화이팅.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옆구리의 쓰라린 고통을 느끼며 의도적으로 의식을 끊어버렸다.
*
이철수가 쓰러진 순간.
관중석은 무거운 침묵에 빠졌다.
공동파 제자 이철수.
그가 복마검법을 사용하는 모습까지 보여주기는 했지만, 어차피 흑사룡이 나선 이상 그의 패배는 정해진 결과라는 것이 관중들이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중론이었다.
흑사룡 위소련.
사파제일 후기지수라는 이름은 그냥 붙은 게 아니니까. 제아무리 이철수가 복마검법을 펼치더라도 위소련의 털끝 하나 건드리기 힘들 것이다.
사파뿐만 아니라 정파 관중들까지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철수가 이변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소협이······. 흑사룡의 소매를 자르다니.”
“진정 공동파에 협객이 탄생했구나! 아미타불!”
이철수의 패배에도 정파 진영에서는 환희가 사파 진영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허허. 공동파에 이런 동량지재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구려.”
“흑룡방과의 비무를 제안한 것도 이 소협이라는 소문이 있소이다.”
“그렇다면 이 소협이야말로 감숙의 의기를 지키는 진정한 협객 아니겠소이까?”
“공동파에 복마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린 것도 이 소협이니, 역시 복마검협이······.”
정파 쪽 중인들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이철수의 별호가 탄생하려던 그때.
“그런데 그 모습은 좀 망측하지 않았어요? 조금 남사스러운데······.”
“크흠. 흠. 일 승을 가져갈 때의 수법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방금 하초를 발하면서 아녀자의 의복을 찢은 모습은 조금······. 보기 민망하오.”
이철수가 협행을 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의 비무 광경이 보기 민망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양물을 세운 채로 아녀자의 상의를 찢어 속곳을 드러내는 행위라니.
이 시대 윤리 기준으로는 납득이 어려운 일이었다.
“너무 음란한 광경이기는 했지. 하지만 협을 행한 것도 분명 사실. 본래 협객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 않소?”
“그야말로 괴협(怪俠)이구려!”
“공동괴협(崆峒怪俠)의 탄생이로다!”
이철수.
그의 별호가 공동괴협으로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기절한 이철수가 알면 뒷목을 잡고 다시 쓰러질 별호였다.
‘믿을 수 없어요, 어떻게······.’
귀빈석에서도 동요는 마찬가지였다. 서문청하. 서문세가의 막내 아가씨인 그녀의 눈동자는 지금 흔들리고 있었다.
두 명.
후기지수 두 명을 상대하겠다는 그의 말을 서문청하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철수는 두 명을 상대로 승리한 것도 모자라 그 사파제일 후기지수, 화산파의 검룡과 견주어도 모자라지 않는다는 괴물을 상대로 유효타를 먹인 것이다.
거기에 복마검법을 선보이기까지.
서문청하의 손이 떨렸다.
“청하야. 괜찮으냐?”
“괜찮, 습니다. 오라버니.”
옆에 있던 서문표의 말에 서문청하가 애써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왜냐하면 흑룡방 다음 비무 상대가 바로 그녀였으니까.
서문청하가 입술을 깨물었다.
서문청하 앞에 앉아 있던 검후의 가슴은 뛰고 있었다.
“사부님! 보셨나요? 저 이철수라는 사내. 흥. 제법 검을 잘 쓰긴 했지만 그뿐. 중인환시리에 어떻게 저렇게 당당히 남사스럽게 음란한 행위를 할 수 있는지, 역시 사부님의 배필로는 한없이 모자란 사내······.”
소검후 천소빈이 팔짱을 끼면서 이철수를 깎아내렸지만, 검후의 귀에는 그녀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크, 크기가······. 사, 사내들은 저렇게 다 큰 거야?!’
검후의 머릿속에는 우뚝 솟은 이철수의 대물이 아직 선명했다.
게다가 이철수는 아직 성장기이지 않는가? 성인이 된다면, 앞으로 그를 낭군으로 모시게 되어 첫날밤을 함께 한다면······.
검후가 무의식적으로 배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망측한 상상이 스쳐 지나갔다.
검후 은설란의 얼굴에 홍조가 수줍게 피어올랐다.
그리고 대기석에 앉은 유진휘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사제가······.”
피를 흘렸다.
사제가 상처받았다. 지켜주기로 약속했는데. 무리하지 말라고 부탁했는데.
그런데 사제는 피를 뿌리면서까지 흑사룡에 맞섰다.
전부 사문을 위해서였다. 사제는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사문을 위해 모든 걸 불태운 것이다.
유진휘의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알고 있다. 사제가 선전한 것도. 흑사룡 위소련이 사제의 공격에 당황한 것도.
하지만 가슴으로는 용납할 수 없었다.
하나뿐인 사제였다. 소중한, 가족 같은 사제. 이제는 떼어놓을 수 없는 사제였다.
지켜주기로 결심했다. 천하가 사제를 저버리더라도, 그녀만큼은 사제의 곁에 있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지키지 못했다. 사제를 상처입혀버렸다.
나의 사제.
‘얼마나 아플까. 사제.’
유진휘가 이를 악물었다.
옆구리가 갈라졌다. 피가 튀었다. 사제는 끝내 혼절했다.
그 고통을 유진휘는 상상하는 것조차 싫었다.
“공동파의 유진휘! 비무대 위로 올라오시오!”
서문표의 목소리가 유진휘의 귓가에 들려왔다.
유진휘의 눈동자가 스산하게 빛났다.
그녀가 전영의 배웅을 받고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그녀의 시야에 위소련의 모습이 보였다.
사제에게 찢긴 장포와 옷을 이미 갈아입었는지, 멀쩡한 흑의가 보였다.
유진휘의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제는 역시······. 강한 여인이 좋은 걸까?’
비무 시작부터 그랬다. 검후를 향한 사제의 고백. 이성적으로는 납득할 수 있었다. 항산파는 공동파 대신 구대문파의 자리를 차지한 문파. 사문의 재건을 위해서는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이었다.
그렇기에 사문의 명예를 위해서 검후에게 도전을 자처한 것이리라.
하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인정할 수 없었다.
사형으로서, 사제의 배필로 검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항산파의 장문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나이 차이가 사제와 심하게 났기 때문이었다.
사제의 배필은 반드시 인성부터 외모까지 모든 게 완벽한 또래 소녀여야만 했다.
그래서 심기가 불편했던 유진휘였다.
그런데 방금, 사제가 상처를 입었다.
다름 아닌 저 사마외도의 무인 따위에게.
“네가 공동파의 유진휘로군. 일대기재라는 소문을 들었다. 내 오늘 너한테 천하가 넓다는 사실을 알려주겠다.”
위소련의 도발도 유진휘의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감히 사제를 상처입힌 년이 저기 있었다. 감히, 나의 사제를 아프게 한 년이. 감히······. 대지에 두 발을 디디고 서 있었다.
그렇게 둬서는 안 되었다.
유진휘의 심장이 뛰었다. 그녀의 호흡이 가빠졌다.
감히.
사제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상처를······.
나의 사제. 나만의 사제.
사형이 전부 지켜줄게.
네 몸에 손댄 놈들에게 곱절 이상의 대가를 돌려줄게.
미안해, 아프게 해서.
스르릉.
유진휘가 검을 뽑았다.
그녀의 사고가 끝없이 가속된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풍경이 시야에 펼쳐졌다.
그녀의 몸에서 삼음진결과 소양심법이 동시에 일어났다. 일 갑자에 이르는 음양이기가 일어난 순간 유진휘가 혼원공의 구결을 읊었다.
양기가 타통된 독맥을 타고 백회혈로, 음기가 임맥을 타고 기해혈로 향했다. 단전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이철수와 달리 임독양맥을 모두 타통한 유진휘는 혼원공의 전력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순식간에 음양전도를 이룬 유진휘가 검을 들었다.
우우우웅.
증폭된 내공을 받아들인 철검이 약하게 떨리며 아지랑이 같은 흑색 검기(劍氣)가 피어오른 순간, 유진휘의 뛰어난 오성이 최적의 투로를 계산해냈다.
촌각의 순간 준비를 마친 유진휘가 위소련을 향해 검격을 날렸다.
번쩍!
번개 같은 섬광이 비무대를 강타했다.
콰-과-과-광!
곧이어 폭음이 비무대를 울렸다.
“크윽!”
그와 함께 위소련이 어깨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그녀의 왼쪽 소매가 다시 뜯기며 피가 솟았다.
위소련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두려움이 깃들었다.
‘탐지하지 못했다.’
기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전조도 없었다. 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대체 무슨 초식을 쓴 건지 감이 잡히지도 않는다. 애초에 초식이 맞긴 한 걸까.
‘이 내가······. 내가······.’
위소련의 몸이 떨렸다. 그건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 마치 초식동물이 포식자를 보고 긴장하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각인된 두려움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었다.
싸움이란 서로 대등할 때 성립되는 법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상대는 인간이 아니었다.
괴물.
불가해의 재능을 지닌, 섭리를 벗어난 불합리한 존재였다.
아버지인 광마도군도 화경의 절대고수였다. 하지만 불가해하다 여겨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유진휘는 다르다.
그에게서는 인간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껴져야 할 존재감이 없었다. 무섭도록 공허하고 초점이 없는 눈빛, 불합리한 재능의 화신만이 거기에 있을 뿐이었다.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그녀의 앞에 있었다.
저런 존재가 이 땅에 존재한다는 것이, 같은 하늘 아래 숨쉬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자, 잠······.”
번쩍.
다시 섬광이 터졌다.
“크윽!”
이번에는 옆구리였다. 오른쪽 옆구리, 이철수와 똑같은 부위에 상처를 입은 위소련이 상처 입은 팔로 옆구리를 감쌌다.
그녀의 흑의가 피로 젖었다.
탐지는커녕 전조도 기수식도 준비동작도 없는, 하지만 빈틈을 정확히 찔러오는 일격.
저런 것과 맞서라고?
위소련은 깨달았다. 이미 유진휘는 이미 이 공간 전체를 장악했다는 사실을. 유진휘를 공격하고 싶어도 빈틈이 없었다. 몰려드는 압박감에 숨이 턱하고 막혔다. 숨쉬기가 괴롭다.
온 세상이 적의를 띄고 있었다. 심지어 공기마저 그녀의 목을 조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도법을 펼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무너지지 않는 철벽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일대기재라니.
그녀 또한 기재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유진휘에게는 닿을 수 없었다.
그 소문은 터무니없는 과소평가다. 저건 괴물이다. 말도 안 되는······.
유진휘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위소련을 향했다. 그녀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압도적인 기도가 위소련을 압박했다.
뛰어난 기감으로 자연에 흐르는 기의 흐름과 상대방의 내공 운용을 볼 수 있는 그녀에게 위소련은 굳이 복마검법을 펼칠 가치조차 없는 하수에 불과했다.
위소련이 펼치는 도법 따위는 진작에 비무를 관전하면서 모든 투로를 분석한 지 오래였다. 그녀는 지금 기세만으로 위소련이 펼칠 수 있는 도법의 모든 투로를 원천 봉쇄하고 있었다.
유진휘가 다시 검을 들었다.
이 정도로는 안 된다. 이 정도로는······. 사제에게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면, 상대는 피눈물을 흘려야 한다. 사제는 훨씬 더 아팠을 거다. 아아, 나의 사제. 나만의 사제. 내 불쌍한 사제.
사형이 지금 지켜줄게.
유진휘가 다시 내력을 끌어올리려던 그때.
“기, 기권하겠소······.”
위소련의 말이 비무대에 울렸다.
그녀의 말을 들은 서문표가 소리쳤다.
“스, 승자! 공동파의 유진휘! 이 비무의 승자는 공동파요!”
공동파의 최종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관중의 함성이 비무대를 메웠지만, 유진휘는 웃을 수 없었다.
‘사제······.’
그녀는 속으로 소중한 사제를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휘잉.
공동산에서 불어온 바람이 유진휘의 몸을 휘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