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영원한 오빠
“언제든지 들러주세요! 가가!”
이철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탁.
특실 미닫이문이 닫혔다.
현경의 경지에 이른 기감을 가지고 이철수의 기척을 실시간으로 감지하면서 적사월은 가슴 위에 손을 얹어 달콤한 한숨을 내쉬었다.
“가, 가가가 향매라고 불러줬구나······.”
두근.
두근, 두근.
적사월의 심장이 미친 듯 뛰고 있었다.
향매.
사내가 정인이 된 여인을 부르는 애칭.
누군가에게 그렇게 불린 게 처음은 아니다. 제멋대로 반한 사내들이 그녀를 그런 식으로 불러댔으니까. 당연히 그녀가 느낀 건 극도의 불쾌함뿐. 함부로 그렇게 부른 사내를 고자로 만든 적도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머리가 마비될 것 같다. 호흡이 가빠왔다. 얼굴이 참을 수 없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의 몸이 기뻐하고 있었다.
“······가가라니, 그 아해도 없는데 내가 무슨······.”
적사월이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그녀는 희미해지는 이성의 끈을 간신히 붙잡았다.
그래.
솔직히 그녀도 알고 있었다. 60세인 그녀가 14세밖에 안 된 이철수에게 가가라고 부르는 짓이 얼마나 주책인지를.
하지만 지금만큼은 적사월이 아닌 사천제일기녀 능월향이었기에.
그렇기에 괜찮다고 적사월은 스스로 합리화했다.
“······가가, 향매······.”
서로의 호칭을 점검하던 적사월의 얼굴이 다시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가 고개를 푸욱 숙였다.
가슴이 미칠 듯이 뛰었다.
“······이, 이래서야 와, 완전히 서로 정인처럼 보이지 않느냐······.”
적사월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물론 기녀니까 일반인들과는 달리 단골손님에게 가가라고 호칭하거나, 애칭으로 불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적사월은 다른 기녀들과 달리 예기 생활을 하면서도 단 한 번도 누군가를 가가 같은 애칭으로 불러본 적 없었다.
그녀에겐 그럴 필요 자체가 없었다.
천하제일을 넘어 고금제일을 다투는 그녀의 미모에 홀린 사내들이 알아서 떠받들어줬으니까.
게다가 원래 적사월은 사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가가라고 부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가가는 어린 여자를 좋아하니까······.’
그러니 적사월 본인보다 14세 연하인 검후에게 공개 청혼을 한 게 아니겠는가?
가가라는 호칭을 선택한 것도 그래서였다.
연하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의 마음에 들고 싶었다.
두근, 두근.
심장이 뛰었다.
“······으으······.”
적사월이 고개를 숙이며 마른세수를 했다. 그녀의 귓불과 목덜미가 붉게 물들었다.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방금의 일이 떠올랐다. 유혹을 위해서였지만, 적사월은 오늘 이철수와 가장 많은 신체 접촉을 했다. 그의 손도 잡았고, 가슴과 허리를 은근슬쩍 접촉하며 그를 껴안았다.
그와 접촉한 가슴, 허리, 손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기분이 느껴졌다.
아직도 생생했다.
지금까지 사내와 신체접촉은 커녕 손조차 제대로 잡아본 적 없던 적사월이었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유혹한 건 처음이었다.
그녀의 기감에 이철수의 기척이 사라졌다. 그걸 느낀 적사월이 심호흡했다.
두근대는 심장은 가라앉지 않은 채로 적사월은 양 뺨을 두드렸다.
“정신 차려라. 본녀······. 그래, 후후. 나를 향매라고 부르다니, 가가도 결국 본녀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하였구나.”
적사월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인위적으로 꾸며낸 퇴폐적인 미소가 아닌, 순수하게 사랑에 빠진 소녀 같은 미소였다.
“역시 가가도 검후 같은 어린 년보다는 경륜과 관록이 넘치는 본녀한테 더 끌리는 것이야.”
조사에 의하면 이철수는 화전민 출신 고아.
그러니 어릴 적 여읜 어머니에 대한 동경이 있을 터. 모성 본능을 잘 이용하면 이철수를 본인의 치맛폭에 가둘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역할은 오직 60년 일생을 통해 인생의 지혜를 터득한 그녀만이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연상의 장점이다.
적사월은 그리 생각했다.
게다가 검후도 가가에게 란매라는 애칭은 못 들었을 터.
가가의 첫 애칭을 들은 여인은 바로 나다.
그 어린 년에게 한 방 먹여주었다.
적사월의 마음속에 승리감이 가득 차오른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이철수의 부탁이 떠올랐다.
“······검봉 서문청하라니······.”
검봉 서문청하와 패배할 시 서로 몸종이 되는 걸 대가로 비무하기로 약조했다는 소문을 퍼뜨려달라.
적사월은 본능적으로 이철수의 말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사지쟁 때도 그랬다.
이철수는 사형이 천무지체라는 사실을 숨긴 채로, 하오문을 이용해 다른 구파일방 무림세가에 공증인 요청 서신을 보내고 정사지쟁이라는 소문을 퍼뜨려 서문세가를 압박해 공증인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처지로 만들었다.
어린 나이에 비해 제법 치밀한 심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철수가 이번에는 서문세가와의 비무를 꺼내들었다.
흘려들을 수 없다.
특히 상대가 올해로 이철수와 동갑인 검봉 서문청하이며, 그녀가 감숙제일미로 소문난 미소녀라는 사실이 걸렸다.
패배할 시 서로 몸종이 되기로 약조했다는 대가도 걸렸다.
적사월의 손이 떨렸다.
뜨겁게 달아오른 그녀의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역시 어린 년들이 문제군······.”
검봉 서문청하.
고작 감숙제일미밖에 되지 않는 그녀의 미모는 적사월의 발끝, 아니 털오라기 한 자락조차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나이는 올해 14세로 60세인 적사월과는 무려 46년이나 차이가 났다.
검후 그 어린 년의 나이인 46세만큼 차이나는 것이다.
그야말로 아득한 연하!
적사월에게 서문청하는 핏덩이나 다름없는 나이였다.
그녀는 이철수가 서문청하와 동갑이라는 사실은 애써 무시했다. 그녀에게 이철수는 영원한 가가였으니까.
“······핏덩이 주제에 감히 가가를 넘보다니······.”
이번 비무에서 승리하건, 패배하건 어느 쪽이건 별로 좋지 못한 결과다.
이철수가 패배한다면 가가가 그 핏덩이 년의 몸종이 될 터이고, 이철수가 승리한다면 그 핏덩이가 가가의 몸종이 되어 붙어 다니면서 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를 수도 있었다.
몸종이라면 종일 서로 붙어 다닐 수밖에 없다. 한창 청춘인 두 남녀가 그렇게 붙어 다닌다? 게다가 상대는 그녀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미소녀.
정분이 나기 딱 좋은 상황이다.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가가는 오직 그녀의 치마폭에서만 놀아야 했다. 정파의 동량지재를 사파의 치마폭에 가둔다는 계획은 아직 유효했다.
‘하지만 가가의 부탁인데······.’
이미 들어주기로 약조했다.
그 대가로 쓰담쓰담도 받았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적사월의 얼굴이 다시 발그레 물들었다.
그녀가 섬섬옥수를 뻗어 가가의 손이 닿은 앞머리를 괜히 매만졌다.
아직도 가가의 손길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뺨이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처음으로 가가가 먼저 해준 신체 접촉이었다. 그의 의지로 직접 해준. 그 사실을 떠올리니 온몸이 달아올랐다. 심장이 뛰었다.
하지만 서문청하, 그 핏덩이 년을 생각하니 다시 끓던 혈기가 차갑게 식었다.
초열지옥과 한빙지옥을 오가는 것처럼 널뛰는 기분에 적사월이 혼란에 빠진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한 가지 발상이 떠올랐다.
[제자야, 있느냐.]
적사월이 1층 밀실에 있는 제자 백면암군을 전음으로 불렀다.
곧이어 백면암군이 미닫이문을 열고 나타나 부복했다.
“찾으셨습니까. 사부님.”
백면암군의 하얀 가면을 보면서 적사월은 버릇처럼 탁자에 팔꿈치를 올리고 턱을 왼손으로 받쳐 괸 채로 웃었다.
“지금부터 본녀가 말하는 이야기를 본문의 정보망을 통해 천하에 널리 퍼뜨리거라.”
그렇게 백면암군과 적사월의 밀담이 곤화루 2층 특실에서 오간 이후.
다음날.
감숙을 포함한 중원 전역에 두 가지 소문이 퍼졌다.
하나는 공동파의 괴협 이철수와 서문세가의 검봉 서문청하가 서로 사문의 명예를 걸고 비무하여 패자는 승자의 몸종이 되기로 약조했다는 소문.
또 다른 하나는.
“자네, 글쎄 그거 들었는가? 사천제일기녀 능 소저가 드디어 가가를 찾았다더만!”
“뭐? 그게 누군가?!”
“이번 정사지쟁에서 흑룡방에 2승을 거둔 공동파의 괴협 이철수가 백화루의 능 소저와 정을 통한다는 소문이 벌써 중원에 파다하다네!”
“뭐라고?! 그럼 백화루에서 능 소저를 만날 수 없던 이유가······.”
지금까지 정인은커녕 단 한 번도 누군가를 가가라고 부른 적 없던 도도하고 오만한 사천제일기녀 능월향의 정인이 이철수라는 소문이었다.
하오문의 정보망에 힘입어 소문은 기정사실로 여겨졌고, 천하의 풍류공자들은 능월향의 연애 소문에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그 이철수라는 자가 대체 어떤 짓을 했길래! 우리의 염희 능 소저의 마음을······!!”
“이철수 그자는 정사지쟁 때 하초를 발하면서 흑사룡 위 소저의 상의를 찢어 속살을 드러낸 파렴치한이 아닌가! 괴협은 무슨! 쌍발색검이 더 맞는 별호일세!”
“그런 무도한 자가 어떻게······. 역시 불쌍하고 가여운 능 소저가 놈한테 속은 게 틀림없네!”
“만인의 연인인 능 소저를 빼앗아 가다니······! 나는 쌍발색검을 용서할 수 없네!”
특히 염희 능월향을 사모하던 공자들의 민심은 험악해져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사파제일인 염왕 적사월의 마수가 정파의 소년 고수 이철수를 향해 뻗치는 순간이었다.
*
나는 휘파람 소리와 함께 흥겨운 발걸음으로 본산으로 귀환했다.
돼지고기도 실컷 먹었고, 품 안에 전표도 있으니 몸도 마음도 배불렀다.
그렇게 산문에 도착한 나는 현천궁에 들러 전영에게 복귀 보고를 끝낸 뒤, 검후가 머무르고 있는 접객당으로 향했다.
검후 은설란.
그녀는 아직 공동파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내가 일어날 때까지 공동파의 그 폐가 같은 접객당에서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물론 소검후도 같이 말이다.
뭐, 나야 좋다.
검후가 항산으로 돌아갔다면 서신을 보냈을 텐데, 아무래도 서신보단 직접 대면해서 말하는 쪽이 편하니까.
그동안 보수를 좀 했는지, 흉가에서 폐가 수준으로 변한 접객당 앞마당에 도착하자 소검후가 나를 맞이했다.
“흥. 왜 이제 오는 건가요? 사부님께서 이 흉가에 머무르면서 그동안 당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요? 일어났으면 바로 사부님께 문안 인사를 드렸어야죠!”
소검후 천소빈이 나를 흘겨보며 말했다.
은색과 흑색이 뒤섞인 그녀의 투톤헤어가 노을을 받아 반짝였다.
소검후는 강호의 다른 여고수들처럼 검후를 동경하는 소녀.
강호 무림에 검후의 팬덤이 한둘은 아니었다. 하지만 소검후는 검후 팬덤에서 랭킹을 매기자면 1호 열혈사생팬 수준으로 검후를 과보호한다는 게 문제였다.
제자보다는 시녀에 가까울 정도.
“이제라도 왔으니 다행 아니오? 검후 선배께 내가 왔다고 전해주시구려.”
“제가 왜요?! 게다가 곧 밤인데, 외간 남자가 야밤에 아녀자의 처소를 사사롭게 방문하는 일이 얼마나 실례인 건지 모르는 건 아니겠죠?!”
내 말에 소검후가 소리친 순간.
“들어오십시오. 이 공자님.”
접객당 너머에서 검후의 부드러운 미성이 들려왔다.
“사부님께서 접견을 허락하셨네요. 영광으로 아세요!”
흥.
고개를 돌린 소검후가 삐걱거리는 문을 열었다.
그녀를 따라 도착한 객실은 낡아빠진 접객당 중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관리가 되어있는, 서하린의 아버지가 공동파에 들를 때마다 묵는 방이었다.
낡기는 했지만 멀쩡한 방 안에 그녀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신비로우면서도 투명한 은빛 머리카락과 달빛을 닮은 은빛 눈동자가 인상적인, 눈처럼 새하얀 피부를 보유한 20대 중반처럼 보이는 미녀.
검후 은설란이었다.
내가 그녀의 맞은편에 앉자 은설란이 눈길을 피하면서 말했다.
“어떤 일로 소······. 아니, 저를 찾으셨습니까?”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검후 선배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어떤 부탁입니까?”
검후는 여전히 시선을 못 마주치면서, 테이블 위 찻주전자에 손을 대었다.
그러고 보니 탁자 위에는 과자가 놓여 있었다.
뭐지. 미리 다과를 준비해놓은 건가?
그녀의 손에 내력이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곧이어 찻주전자에서 김이 솔솔 피어올랐다.
삼매진화의 묘리를 응용해서 내력으로 식어버린 찻물을 데운 것이다.
화경의 고수인 검후이기에 할 수 있는 내공 컨트롤이었다.
쪼르르.
검후가 양손을 모아 공손하게 찻주전자를 들어 내 앞에 놓인 찻잔에 차를 채웠다.
그녀의 은빛 머리카락이 창살 너머로 들어온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맑은 차향이 낡은 방 안에 가득 퍼졌다.
“흥.”
나와 검후 옆에 앉은 소검후가 입술을 삐죽이는 모습이 보였다.
“······변변찮지만 직접 제가 손수 준비한 다과입니다. 드시면서 이야기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감사 인사를 건네면서 검후가 따라준 차를 한 모금 음미했다.
그녀의 은빛 눈동자가 이쪽을 힐끗힐끗 바라봤다.
나는 과자도 한 조각 집어 먹었다.
“차가 향이 훌륭하군요. 과자도 차와 먹기 딱 좋은 맛입니다.”
내 말을 들은 검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그녀의 뺨이 살짝 붉게 달아올랐다.
“감사합니다. 제게 말씀할 부탁은 어떤 부탁인지요?”
“······곧 서문세가의 검봉 서문청하와 사문의 명예와 패자가 승자의 몸종 되기를 놓고 공개 비무를 벌일 예정입니다. 서문세가와의 비무에 공증인으로 참여해 주십시오.”
“몸종······. 말인가요?”
내 말에 검후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몸종 이야기는 검봉 쪽에서 먼저 제안했습니다.”
이건 팩트다.
난 그냥 비무만 하려고 했는데, 몸종이니 뭐니 헛소리를 먼저 한 건 서문청하니까.
검후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살짝 머뭇거리다 말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공증인······. 이 된다면 서문세가와의 비무가 열릴 때까지 좀 더 공동파에 손님으로······. 머물러야 하겠지요?”
검후의 말에는 틀린 구석이 없었다.
공증인이 된다는 건 곧 이해관계자가 된다는 뜻. 당연히 공동파의 손님이 되었기에 원칙적으로는 공동파에서 숙식을 제공해야 했다.
저번 정사지쟁 때야 서문세가가 감숙제일문파의 체면 때문에 공동파 측 공증인인 검후와 청성, 당문, 아미의 장로들의 체류 비용을 지원하고 숙소도 객잔을 통째로 대여해서 제공해서 우리가 꿀을 빨았지만, 지금은 그 서문세가와 척을 지려는 상황.
당연히 공동파의 돈으로 검후와 소검후에게 숙식을 제공해야 했다.
하지만 공동파의 상태가······. 이런 귀신 나올 것 같은, 간판만 접객당인 폐가는 나라도 안 머무를 거다. 버려진 관제묘나 다리 밑 움막에 머무르는 개방 거지들도 심각한 고민에 빠질 수준의 접객당이다.
공동파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검후를 잘 대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당연히 예민한 검후가 단기를 넘어 장기 투숙하기에는 부적합한 숙소. 눈앞의 검후 역시 숙소 문제 때문에 머뭇거리며 고민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검후를 내칠 수도 없다.
어쩔 수 없군.
피 같은 내 비무 토토 배당금을 써야 하나······.
마음속으로 피눈물과 함께 정력제에게 작별 인사를 하면서 나는 검후에게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검후 선배를 모시기에는 좀 많이 누추한 접객당이라 죄송합니다. 원한다면······.”
“아니요. 누추하다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검후가 내 말허리를 잘랐다.
괜찮다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나마 관리가 되는 멀쩡한 방인데도 궁벽하기 짝이 없는 내부가 시야에 들어왔다.
“정말······. 괜찮습니까? 원하신다면 제가 어떻게든 화정현 객잔 별채를 대여······.”
“······저는 정말로 괜찮습니다. 이 공자. 한때는 밤하늘을 이불로 삼아 노숙한 적도 있던 몸입니다. 그러니 제게는 그저 비바람을 가려줄 천장과 벽만 있으면 족합니다. 그러니 공자의 공증인 제의를 받아들여 공동파에 손님으로 조금만 더 신세지겠습니다.”
검후가 단아하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옆에서 소검후의 입술이 툭 튀어나온 게 보였다. 나는 소검후를 무시하면서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알겠습니다. 그래도 불편한 점이 있다면 언제건 말씀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공자.”
검후의 말을 들은 나는 속으로 웃으며 찻물을 들이켰다.
좋아.
이제 공증인을 포섭했으니, 남은 건 서문세가와의 비무뿐이다.
기다려라, 검봉 서문청하.
내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