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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78화 (78/171)

78화 짝사랑

“왜 그러나. 이 아까운 고기를······. 내가 먹어도 되지?”

귓가에 홍취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력제를 양보하다니.

원래는 어림 반 푼 어치 없는 소리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드십쇼.”

지금은 뭘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싱숭생숭한 느낌.

우걱우걱. 쩝쩝.

옆에서 개고기 뜯는 소리가 들려왔다.

황상.

주가율.

그녀가 열 살의 태평공주였던 시절부터 내 손으로 보위에 앉히고 원화(元和)라는 연호를 선포하는 걸 지나서 환생 대법을 실행하기 직전까지.

나는 줄곧 그녀와 함께했다.

내 인생에는 황상이 언제나 함께였다.

나는 고아 출신이었다.

보육원에서 자랐고, 부모라는 작자가 누군지도 몰랐다. 보육원 동기, 학교 친구들이 있기는 했지만 가족은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악착같이 공부해 지방 국립 대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을 때도, 취직을 준비할 때도 쭈욱 나는 혼자였다.

그래서 현대에는 별 미련이 없었다. 무림이나 현대나, 가족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나의 황상.’

하지만 황상은, 공주 마마는, 아니 주가율은.

현대와 무림, 두 세계를 통틀어 만난 내 처음이자 마지막 가족이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부모에게 냉대받고, 그녀를 돌봐주던 하나뿐인 유모마저 병으로 잃어버린 열 살의 태평공주 주가율은 나를 지나치게 경계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녀를 정성으로 보살폈다. 처음에는 업무 때문이었고, 그다음은 잘린 양물을 찾기 위해 그녀를 보살폈다.

어쨌거나 서출 공주라고는 해도, 황족을 모신다는 건 곧 권력에 가까워진다는 말이었으니까.

조조의 할아버지인 전설급 환관 조등처럼 말이다.

내가 양물을 되찾기 위해서는, 주가율을 황제로 만들어야 했다.

내 임무는 그녀가 20세가 되자 끝났다. 성년이 된 주가율에게는 더 이상 내가 필요 없었다.

공식적으로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동창에 자원했다.

동창은 정보기관. 자고로 정보기관이야말로 권력의 중심에 가까워질 수 있는 곳이었다.

동창이 음침한 변태 내시 집단이기는 했지만, 아무나 받아주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주가율의 최측근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호위를 위해서라도 무공을 배웠고, 덕분에 동창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 어디로 가는 거냐. 이철수. 이건 명령이다. 가지 말거라.’

내가 동창으로 전출가던 날, 주가율은 울었다.

명령이라면서 붙잡았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그녀는 나를 끌어안았다. 뒤에서.

하지만 나는 그녀의 손을 떼어내면서 말했다.

‘마마. 염려치 마시옵소서. 소인이 동창으로 향하는 건, 마마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소인은 마마를 지킬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소인은 마마를 태화전의 주인으로 만들 것입니다. 마마를 보좌에 앉히겠습니다. 마마는 만인지상의, 억조창생을 다스리는 천자의 자리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누구도 마마를 업신여길 수 없을 것입니다. 소인이 그리 만들겠습니다. 호호호.]

내 전음을 들은 주가율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제야 나를 놓아주었다.

‘다녀오거라.’

그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생각해본다면,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주가율이 아닌 다른 황자들에게 붙는 편이 나았다.

당대의 황제인 홍광제는 맏아들이자 적자인 1황자 대신 아끼는 귀비 소생인 차남 2황자를 총애해서 황태자 책봉을 미뤄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주가율을 떠날 수 없었다.

10년이나 함께하면서, 그녀가 내 가족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여동생처럼, 때로는 딸처럼 말이다.

그래서 주가율을 황제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양물을 되찾기 위해서.

가족인 그녀를 위해서.

그렇게 10년이 더 흐른 뒤 나는 동창의 장인태감이 되었고, 주가율의 최측근이 되어 1황자와 2황자를 제거했다. 그리고 5년 뒤. 그녀와 만난 지 25년 만에 나는 홍광제에게서 양위를 받아내어 주가율을 황제로 만들었다.

그래, 그랬었지.

그렇게 더 많은 세월을 그녀와 함께했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황제인 주가율이지만, 내게는 딸이나 여동생과도 같았다.

그래서 남겨두고 올 때 솔직히 가슴이 아팠다. 그랬었다.

회귀 이후에 명성을 떨치고 나면 황상을 보러 갈까 생각했었다. 내가 없는 황궁에서 잘 지내고 있는 건지 걱정이 되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회귀한 이후의 태평공주 주가율은, 내가 아는 내 가족인 그녀가 아니었으니까. 남남이니까. 먼발치에서 잘 지내는지 확인하고, 혹시 안위가 위험해지면 몰래 도와주자.

딱 그 정도 생각이었다.

그런데.

‘······돌아왔다니.’

내가 아는 미래의 황상이 회귀했다.

그 사실만으로 내 넋이 나가기에는 충분했다.

천하 모든 미녀를 전부 품을 수 있는 나였지만, 황상만큼은 예외였다. 가족이니까.

가족끼리 그런 거 하는 거 아니다.

하지만 거꾸로 가족이기에 보고 싶었다. 한번 만나고 싶었다.

어쨌거나 황상은 두 세계를 통틀어 내 하나뿐인 가족이니까.

“어허. 이 사람. 기운 내게. 복수할 대상이 저승으로 도피한 데에 대한 허망함,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제 복수 대상이 죽었으니 원한은 묻고 자네의 삶을 위해 살게나.”

툭툭.

옆에서 홍취개가 뭘 오해한 건지 손으로 내 어깨를 토닥였다.

“아, 알겠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뭘. 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나는 포권을 취한 뒤에 관제묘를 빠져나와 공동산 초입으로 향했다.

저 멀리, 북경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이 절로 향했다.

황상은 허수아비 황제가 아니다. 그녀의 정무 감각과 정치적 능력은 나와 버금가거나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황상이 회귀했다면, 반드시 나보다 더 미래 시점에서 회귀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정치 천재인 황상에게 나보다 더 많은 미래 지식이 더해진다면······.

자금성에서 황상을 막을 수 있는 자는 그 누구도 없을 것이다.

내 도움이 없더라도, 황상은 당대 황제인 홍광제로부터 보위를 탈환할 것이다.

나 없이도, 뭐든 잘 할 수 있을 거다.

그래, 나 없이도. 이번에 내게 메시지를 보낸 건 그런 의미일 거다.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안심하라고. 같이 지낸 세월이 얼마인데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 딸내미가 다 큰 모습을 보는 아버지의 심정이 이런 건가.

왠지 싱숭생숭하다.

이제 우리 황상도 어른이구나. 그러니 시집도 가야 할 텐데. 전생처럼 쓸데없이 평생 독신으로 살지 말고.

그래야 나도 안심하고 하렘을 차리건 말건 할 것 아닌가.

‘황상, 잘 지내시는 거죠?’

나는 들릴 리 없는 질문을 던지면서 공동산 위로 몸을 날렸다.

황상이 회귀했고, 무사하다는 것까지 확인했으니. 이제 내 일에 전념을 다할 차례였다.

그녀 또한 그걸 바랄 테니까.

*

같은 시각.

곤화루 특실.

거기에는 적사월이 있었다. 곱게 묶은 검붉은 머리카락과 매혹적인 적안이 인상적인, 세상 모든 미(美)를 집약한 듯한 천하제일미녀.

새하얀 피부와 신이 빚은 듯한 아찔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나삼을 입은 적사월의 인상은 형편없이 구겨져 있었다.

하지만 미간을 찌푸린 그 모습마저 적사월은 아름다웠다. 마치, 가슴앓이병 때문에 늘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 모습마저 아름다워 세상을 홀렸다는 전설적인 미녀 서시(西施)의 고사를 재현하는 것 같았다.

적사월이 입술을 깨물었다.

“감히 본녀와의 만남을 거부하다니······. 나쁜 새끼······. 네놈이 그러고도 사내더냐!”

적사월의 손이 떨렸다.

이철수가 곤화루에 들를 거라는 사실 정도는 적사월도 알고 있었다. 매일 같이 그의 동선에 대해 보고를 받을뿐더러, 그가 이번에도 정사지쟁 때처럼 비무 도박을 할 거라는 사실도 예측했으니까.

그래서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물론 대놓고 티를 내지는 않았다. 짝사랑이 아니었으니까. 절대로.

그렇게 곤화루로 오는 이철수의 기척을 감지했을 때부터, 적사월은 단장을 시작했다. 저번보다 더 아름답게, 분을 칠하고 향낭을 고르고 향초를 피웠다.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가가를 사로잡을 수 있도록.

짝사랑이 아닌, 정인이 될 수 있도록.

물론 적사월이 아닌 능월향의 정인이었다.

하지만 곤화루에 입장한 이철수는 그녀를 만나러 오지 않았다.

하 총관과 이야기만 나누고 가버렸다.

“때려 죽어도 안 본다니······. 이 나쁜······. 나쁜 놈······.”

이철수의 말을 떠올린 적사월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의도적이었다. 그가 그녀를 만날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 사실을 알았기에, 적사월은 이철수를 그냥 보내면서 이를 갈았다.

누군가에게 이토록 매몰차게 거절당한 건 그녀의 한 갑자 일생을 통틀어 처음이었다.

아름답다.

적사월의 미모는 이미 평범한 미인을 아득하게 초월해 있었다.

불가해의 영역에 이른 그녀의 미모는 뭐든 가능하게 만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에게 친절했고, 단 한번도 부탁이 거절당한 적 없었다.

능월향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천제일기녀이자 모든 풍류공자의 우상인 그녀의 부탁을 감히 거절하는 사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적사월의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감히 본녀가 가가라고 불러줬는데······.’

적사월의 손이 떨렸다. 그녀의 어깨가 떨렸다.

그를 만나기 위해서 치장하고,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철수는 그녀를 차버렸다.

무심하게도.

단 한 번도 만나지 않고.

반면에 검후, 그년은 공증인이라는 핑계로 항산파로 가지 않고 아예 공동파 본산에 눌러앉은 상태였다.

이대로라면······.

그녀의 머릿속에 검후, 그리고 서하린과 하하호호하는 이철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양옆에 검후와 서하린을 낀 이철수가 그녀를 냉랭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습도.

‘차인다고, 내가. 천하제일미인 내가, 천하 사내들의 마음을 전부 홀린 내가······.’

차인다. 만날 수 없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경지에 오른 미모 하나로 모든 사내의 마음을 손바닥 위에 놓고 조종했던 그녀에게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던 말이었다.

뜻대로 할 수 없다.

무력감이 그녀의 몸을 지배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적사월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가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그럴 리가 없어. 나, 나를 향매라고 불러줬으니까······.’

적사월의 머릿속에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향매라고 다정하게 불러주던 이철수의 목소리, 품에 안긴 그의 체온이, 그가 쓰다듬던 손의 감촉이 아직 생생했다.

그러니까 나중에 배당금을 찾으러 올 때, 다시 만나줄 거다.

그래, 그럴 거다.

사내라면, 그녀에게 반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건 이철수 역시 마찬가지일 터.

그러니까 그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적사월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걱정과 불안을 애써 밀어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가 흐르는 눈물을 소맷자락으로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나쁜 새끼······.”

*

황상의 회귀를 알아차린 이후부터는 특별한 일은 없었다.

개인 수행에 집중하던 나는 비무 보름 전 공동산을 떠나 비무 장소인 난주로 이동했다.

사부, 사형, 사매, 그리고 공증인이 되어줄 검후, 소검후와 함께 말이다.

뒤이어 난주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검후의 지원으로 난주의 고급 객잔 별채를 빌려 머물렀다. 당연히 나는 수행에 집중했고.

마침내 비무 당일이 되었다.

난주.

감숙성 제1의 대도시답게, 정사지쟁 때와는 차원이 다른 숫자의 군중이 모인 비무대 위에서 나는 마침내 그녀를 만났다.

“용케 도망치지 않고 비무대 위로 올라섰군요. 그 기개만큼은 인정해주죠. 쌍발색검.”

검봉 서문청하.

그녀의 말을 들은 나는 웃으면서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드디어.

공동파 대 서문세가의 감숙성 챔피언 결정전이 곧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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