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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83화 (83/171)

83화 80% 천하제일미

“이 바보 천치 멍청이 같으니! 그럴 거면 대체 여기 왜 데려온 거죠?!”

그녀의 뾰족한 목소리가 공동산을 울렸다.

나는 그녀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아니 이 맹랑한 아가씨는 대체 무슨 이상한 상상을 했길래 저렇게 억울하게 내게 적반하장으로 따지려 드는 것인가?

수궁사 운운했던 건 언제고.

“너랑 둘이 이야기하려고 데려온 거지.”

지금 내가 곤화루로 간다면 필시 적사월이 나를 만나려 들 터.

아직 적사월과 접촉할 때가 아니다.

그렇다고 사형이나 사매를 보낼 수도 없는 노릇.

사부에게 가라고 하는 건 더 말도 안 된다.

그러니 만만한 서문청하를 보내는 게 맞다.

아무튼 내 시비가 아닌가?

“아무튼 갈 거야, 안 갈 거야.”

“흥. 비무 도박이라니, 사파나 할 일을······.”

“너 우리 사문 꼴을 보고도 지금 그런 이야기가 나와?”

서문청하의 말을 나는 중간에 끊었다.

내 말에 서문청하가 입술을 우물거렸다.

폐허가 된 주변을 보니 그녀도 할 말을 잃은 모양.

그녀가 내 손에서 목패를 낚아채면서 말했다.

“흥. 좋아요. 공자님의 명령이라면, 어쩔 수 없이 따라야죠. 저는 공자님의 전속 시비니까요!”

대놓고 입술을 쭈욱 내미는 서문청하.

그녀가 내 앞에서 몸을 날려 사라졌다.

하여간, 어차피 할 거면서 말이 많기는.

나는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정말이지 믿을 수 없어요. 제가 왜 이런 쓸데없는 심부름을······.’

서문청하는 속으로 구시렁대면서 공동산을 빠르게 내려갔다.

전속 시비가 되겠다고 말한 건 그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진짜 하녀 취급 받을 줄은 몰랐다.

감히 검봉 서문청하를 진짜 시비로 부려먹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제가 그런 말만 안 했어도······.’

하지만 결국 그 또한 서문청하 본인이 내뱉은 말. 자존심 때문이라도 서문청하는 이철수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지금의 그녀는 전속 시비였으니까.

서문청하는 꿍얼거리면서 사람들에게 곤화루의 위치를 물어 화정현 유흥가로 향했다.

낮이라 그런지 불이 꺼진 화정현의 환락가.

분 냄새와 향이 뒤섞인 환락가를 걷는 서문청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흥.”

서문청하가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환락가를 걸어 곤화루 앞에 도착했다.

“어서 옵······. 어라, 아가씨가 여긴 어인 일로······.”

“이철수 공자님께서 보내서 왔어요. 이 목패로 여기서 비무 도박 배당금을 받아오라던데요?”

탁.

하 총관을 만난 서문청하가 품에서 목패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으면서 말했다.

“······이 소협이 말입니까? 본인이 안 오고요?”

“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사색이 되는 하 총관의 얼굴을 본 서문청하가 되물었다.

그녀가 세상 물정 모르고 자란 아가씨이기는 하지만, 도박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정도로 무지하지는 않았다.

이철수가 내어준 목패는 그 자체로 배당금을 받을 수 있는 증표나 마찬가지.

목패만 있다면, 사람이 누구건 배당금을 내어주어야 했다.

반면에 서문청하를 본 하 총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서문청하가 누군지 몰라서가 아니었다.

오늘, 이철수가 공동파 본산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전한 뒤부터 하오문 화정현 지부의 지부장을 맡은 직속상관 능월향이 아침부터 꽃단장을 하면서 오매불망 이철수를 기다려왔기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임을 기다리는 정인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온 사람이 임이 아닌, 임이 보낸 소녀라니.

‘아, 안 돼!’

저번에 이철수가 곤화루 특실에 들르지 않고 배당금을 맡기고 간 뒤에 얼마나 곤욕을 치렀던가.

하 총관의 눈앞이 아득해졌다.

“배당금. 안 주고 뭐 하는 거죠?”

그런 하 총관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서문청하가 목패로 탁자를 탁탁 치면서 말했다.

그녀로서는 이런 불쾌한 기루 따위에 일각도 더 있고 싶지 않았다.

하루빨리 나가고 싶었다.

‘흥. 이철수는 대체 왜 이런 곳에 드나들었던 걸까요? 소문대로 능월향과 통정하려고?’

능월향과의 통정.

그 소문을 떠올린 서문청하의 마음이 불편해졌다.

거기에는 그녀도 얽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능월향과 이철수와 그녀 본인이 삼각관계라느니 하는 헛소리들 말이다.

심지어 그 소문은 아직 강호에 남아 떠돌고 있었다.

옛 정인 공동색협 이철수에게 가기 위해 서문청하가 일부러 기쁜 심정으로 패배했느니, 공동파로 돌아가 정인을 만난 그녀가 반색했느니 하는 식으로 말이다.

‘마, 말도 안 돼요. 제가 그런 새, 색마와 통정한다니······.’

말도 안 되는 소문이었다.

중인환시리에 그녀의 옷을 갈기갈기 찢은 이철수였다. 물론 그 이후 당황한 모양인지 겉옷을 벗어 둘러주기는 했지만······. 그 옷의 감촉과 체취가 제법 괜찮았기는 했지만······.

이상한 생각을 떠올리던 서문청하가 고개를 도리도리한 순간.

“······위로 들라십니다. 이 층 특실입니다. 거기에서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답니다.”

하 총관의 목소리가 서문청하의 귓가에 꽂혔다.

“그래요.”

서문청하가 목패를 들고 2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영업시간 전이라 조용한 2층에서 그녀는 특실이라는 명패를 발견했다.

드르륵.

그녀가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서문청하의 몸이 굳었다.

그녀의 코 끝에 달콤한 향초 향기가 스쳐 지나갔다.

화려하게 꾸며진 특실의 중심에는, 일순간 눈이 환해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폭력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미녀가 있었다.

흑단처럼 검은 머리카락, 보석처럼 반짝이며 매력적인 붉은 눈동자, 탐스러운 붉은 입술과 하얀 피부를 지닌, 얇은 나삼 아래로 완벽한 엉덩이와 가슴, 허리 곡선이 드러나는 약관의 나이 정도로 보이는 미녀.

감숙제일미.

그렇게 불리며 나름대로 미모에 자신 있던 서문청하였다. 용봉지회에서도 수없이 많은 공자들의 구애를 받았던 그녀였다.

하지만 눈앞의 퇴폐적이면서 요염한, 세상의 모든 미를 집약한 듯한 미녀를 만난 순간, 그녀는 본인이 추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미소녀라 평가받던 그녀가 봐도 마음이 흔들리고 자격지심이 일어날 정도로 폭력적이고 충격적인 미녀였다. 사내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그녀에게 구애할 게 틀림없었다.

그녀보다 아름답다 생각되던 서하린이나, 정파제일미녀 검후는 그래도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눈앞의 여인은 아니었다. 인간의 수준을 초월한, 마치 별세계에 있는 듯한 아름다움.

‘대, 대체······.’

설마 이 사람이······.

사천제일기녀 능월향이라는 말인가? 이런 사람하고 통정했다고? 이런 사람이 이철수를 짝사랑했다고?

충격을 받아 멍하니 선 서문청하를 본 능월향, 아니 적사월의 적안이 가늘어졌다.

‘저 년이란 말이지.’

검봉 서문청하.

서류와 용모파기로 수없이 접한 인물이었다. 봉(鳳)의 이름을 받을 정도로 정파 무림의 유망한 후기지수. 감숙제일미.

그녀에 대한 정보는 전부 외우고 있는 적사월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서하린, 검후.

가가의 옆에서 알짱거리는 다른 여인들의 정보도 모조리 외우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46살이나 어린 것 말고는 역시 그녀보다 모든 면에서 부족했다.

그 사실에 적사월은 조금의 위안을 얻었다.

역시 미모로 천하에 그녀를 따라올 존재는 그 누구도 없다. 본래 미모의 팔 할 정도만 구현한 능월향의 모습으로도 사내는 물론 여인조차 정신을 못 차리지 않는가.

그래.

원래 이래야 정상이다.

이철수가 이상한 거다.

적사월은 속으로 이를 뿌득 갈면서 그녀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곤화루의 루주를 맡은 능월향이라고 합니다. 서문 소저. 문을 닫으시고 자리에 앉으시죠.”

“네, 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서문청하가 미닫이문을 닫고 적사월의 맞은편에 앉았다.

코 끝에 스치는 향기가 서문청하의 감각을 혼란시켰다.

‘저, 정신 차려야 해요!’

의자에 앉은 서문청하가 허벅지를 꼬집었다.

그녀가 목패를 꺼내면서 말했다.

“배당금을 받으러 왔어요.”

“······다른 말은 없었나요?”

“네?”

적사월의 말에 서문청하가 반문했다.

서문청하를 바라보면서, 적사월이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가가께서 제게 전하라 한, 다른 말이요. 아니면 서신이라던가.”

그녀는 가가라는 말을 강조했다.

그래.

가가와 그녀의 사이는 아직 어린, 미모조차 부족한 핏덩이 따위가 끼어들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가가께서 이 핏덩이를 내려보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분께서는 귀환해서 바쁜 것일 터.

당연히 그녀에게 전하는 전언을 서문청하에게 들려 보냈을 게 분명했다.

적사월은 그렇게 기대했다.

‘가가라니······.’

서문청하는 적사월의 말을 듣고 혼란에 빠졌다.

가가.

그건 여인이 정인을 부르는 말이 아니던가?

정말 통정하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던가? 아니다. 이철수는 능월향에 대해서 전언도 서찰도 남기지 않았다.

그저 돈을 받아오라고 했을 뿐이었다.

그럼 설마.

······능월향이 일방적으로 이철수를 사모한다는 소문이 사실이라고?

서문청하는 차분한 목소리로 적사월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없었어요. 그저 돈을 받아오라고 한 말밖에는······.”

서문청하의 말을 들은 적사월의 얼굴이 일순간 굳었다.

탁자 아래에 있는 그녀의 손이 덜덜 떨렸다.

서신도, 서찰도 없었다니.

말도 안 된다.

가가라고 불렀다. 향매라고 답해줬다. 서로 정인이나 마찬가지였던 사이가 아니던가.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천하의 모든 사내를 홀리는 천하제일미인 그녀를 두고 어째서······.

적사월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나요?”

믿을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거절당한다는 사실이.

······이철수에게 차였다는 사실이, 적사월은 믿고 싶지 않았다.

적사월의 애처로움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서문청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감정마저 동요할 정도로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적사월을 보면서 서문청하가 말했다.

“네······.”

“······그렇군요······.”

적사월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붉은 입술을 깨물었다. 가가께서 온다고 해서 아침부터 신나서 매일매일 분을 바르고, 입술에 붉게 입술연지를 칠하고, 향기로운 향낭을 고르고 향초를 피웠다.

그런데 어째서······.

적사월의 손이 떨렸다. 그녀의 감정이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동요했다.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미리 준비해뒀던 전표 뭉치를 꺼내 탁자에 올려뒀다.

“······배당금······. 이에요. 가가께 전해주세요.”

“알았어요.”

서문청하가 배당금을 챙겼다.

그녀의 시선이 적사월에게 향했다. 누가 봐도 지금의 적사월은 정인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여인처럼 가련하게 떨고 있었다.

······이런 여인을 차버린다고?

서문청하의 손이 떨렸다. 그녀의 머릿속에 지난날이 자동으로 재생됐다. 지금까지 여인이 아닌 하녀 취급을 하던 이철수의 모습.

생각해보면 이철수가 유일하게 정중하게 대하며 호감을 표현한 건 오직 검후 은설란뿐이었다.

‘설마 이철수는 검후 선배를······!’

서문청하의 머리에 결론이 내려졌다.

이철수.

그가 검후에게 했던 공개 비무 신청. 다들 그 구애를 검후 선배를 향한 모욕이라 여겼고 서문청하 역시 그랬다.

공동파와 항산파의 관계는 좋다고는 빈말로도 할 수 없는 사이니까.

그런데 그 구애가 진심이었다면?

정말로 이철수가 검후를 사모하고 있다면?

그렇게 된다면 모든 사정이 설명되었다.

20대인 능월향을 저렇게 매몰차게 뿌리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서문청하는 적사월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녀가 봐도 능월향의 짝사랑은 애절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힘내세요. 당신 사정은 공자님께 제가 잘 전달할게요.”

덥석.

전표를 가져간 서문청하가 응원의 한마디를 남긴 뒤 특실을 떠났다.

홀로 남겨진 적사월이 입술을 깨물었다.

“나쁜 새끼······. 본녀가······. 본녀가 너한테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까지······.”

적사월의 적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녀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이렇게 슬프고, 마음에 아픈 건 처음이었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하염없이 계속 흘러내렸다. 만나주지 않는 그가 야속했다.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폭주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적사월은 이철수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하염없이, 그를 생각하며 첫사랑을 짝사랑으로 시작한 소녀처럼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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