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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100화 (100/171)

100화 이게 아닌데

힐끔.

나무 뒤에서 자꾸 고개를 빼꼼 내밀면서 나를 쳐다보는 검후를 바라보면서, 나는 한 발짝 앞으로 다가가며 입 안에서 혓바닥을 움직인 뒤 미리 생각해둔 변명을 천천히 풀어놓았다.

“이 동혈은 검후비동의 입구입니다.”

내 말을 들은 검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스윽.

검후가 그제야 나무줄기 뒤에서 몸을 움직여 내 앞으로 다가왔다.

펑퍼짐한 무복으로도 가릴 수 없는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달빛을 받아 흔들렸다.

“검후비동이라니. 그게 무슨······. 그 말이 정말입니까? 이 공자가 대체 어떻게 검후비동의 위치를 알고 있었던 겁니까?”

검후의 은빛 눈동자가 이쪽으로 향했다.

굳은 표정. 하지만 목소리는 그녀답지 않게 약간은 다정하고 어린아이를 타이르는 기색이었다.

검후비동.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존재 자체는 항산파의 기밀로 역대 검후 사이에서 대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항산파 장문인의 과업과 항산파의 숙원이 초대 장문인의 유산인 검후비동을 찾는 것일 정도.

그런데 지금 문파 외부인인 내 입에서 대를 이어 찾던 사문의 비원이 언급된 것이다.

수상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정도라면 기도를 해방해 나를 압박할 줄은 알았는데, 검후는 그러지는 않았다.

더한 상황도 각오했는데, 좋다.

나는 검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지금부터 제가 왜 검후비동의 위치를 알고 있었는지, 그 이유를 얘기할 예정입니다. 이제부터 제가 말하는 이야기는 저와 검후 님. 둘만의 비밀입니다.”

우선 밑밥을 깔아놓는다.

내 말을 들은 검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녀의 몸에서 은빛 기세가 피어올랐다. 휘이잉. 그녀의 부드러운 기파가 나와 그녀 둘을 감쌌다.

절정에 이른 고수부터 사용 가능한 기예, 내력으로 된 투명한 반구형 장막을 펼쳐 장막 내부의 소리가 외부로 새어나가는 걸 차단하는 차음막이었다.

“둘만의 비밀······. 알겠습니다. 이 공자. 공자께서 무엇을 말하건, 이 은설란. 사문의 이름을 걸고 지금 나눈 이야기는 무덤까지 가져가겠습니다. 차음막을 쳤습니다. 안심하고 말씀하셔도 됩니다.”

검후가 진지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면서 한 발짝 내게 다가왔다.

어느새 그녀와 나의 거리는 주먹 하나 들어갈 정도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검후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은은한 향기가 코 끝에 스쳤다.

그녀의 눈처럼 새하얀 피부와 은빛 눈동자, 은빛 머리카락이 시야에 보였다.

언제 봐도 예쁘다.

역시, 내 여자로 만들어야 한다. 반드시.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검후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숙여 예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검후 선배. 그럼 지금부터 비밀을 이야기하겠습니다.”

검후가 귀를 쫑긋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준비했던 변명을 내뱉었다.

“저는 사실······. 혼원검제 무극자 님의 전인(傳人)입니다.”

내 말을 들은 검후의 몸이 살짝 떨렸다.

혼원검제의 전인.

내 말에 틀린 구석은 없었다. 실제로 혼원비동에서 진법을 통과하고 혼원검제의 잔류사념을 만나 혼원무극도를 전수받은 건 나였다.

사형이 아니라. 그러니 혼원검제의 진전을 이은 전인이라 자처해도 아무 문제 없었다.

어차피 300년 전에 돌아가신 양반이다. 사문의 재건을 위해서인데 이름 좀 빌려 썼다고 쪼잔하게 화내지는 않겠지.

“그동안은 저와 본 파가 혼원검제 선조님의 이름을 감당하기에는 아직 미욱하여 세간에는 숨기고 있었습니다. 원래는 본 파의 재건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밝힐 생각이었지만······.”

나는 말끝을 살짝 흐리면서 검후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혼원검제.

300년이라는 까마득한 옛날에 활약했던 고수. 하지만 그의 이름값과 흔적은 현재 강호 무림에도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명나라의 개국공신이자 태조 주원장에게 관무불가침의 묵계를 허락받은 인물. 초대 무림맹주이자 생사경의 고수이며 혈세신마의 목을 자른, 강호 무림을 넘어 천하만민이 떠받드는 불세출의 영웅.

공동파에서도 개파조사인 광성자, 중시조인 교성진인 비홍자와 함께 공동삼조(崆峒三祖)로 공경받으며 주천검부에 모셔지는 인물.

그런 혼원검제의 전인을 자처하는 일이다. 위험부담이 없을 수가 없다. 내가 그동안 혼원검제의 전인이라는 이야기를 안 꺼낸 건 다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해야 했다.

검후에게 검후비동의 위치를 내가 알고 있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빌드업을 끝낸 나는 본론을 내뱉었다.

“······검후 선배께서 검후비동의 위치를 아는 연원을 제게 물으시니,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저는 혼원검제 선조님의 전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이 년 전, 저는 사형과 함께 공동산을 헤메다 혼원비동을 발견했습니다. 그곳에서 기문진의 시험을 통과하여 혼원검제 선조님의 전인이 된 건 저였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통과한 제가 수습한 혼원검제 선조님의 유산 중에는 복마검법은 물론 검후비동의 정보와 위치가 적힌 장보도도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혼원검제 님과 이십대 검후 님께서 서로 교분을 나눈 전우 사이였다는 사실은 검후 선배도 아시겠지요? 물론 본 파가 아닌 타 문파의 기밀이 적힌 장보도였기에, 저는 내용을 외운 뒤에 외부 유출을 염려해 장보도를 파기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장보도의 내용이 진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밤 산책을 핑계로 여기 온 것입니다. 물론 위치를 확인한 뒤에는 당연히 항산파에 정식으로 알릴 생각이었습니다. 검후비동은 항산파의 정당한 소유물. 타 문파의 외부인인 제가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니까요.”

나는 말을 끝낸 뒤에 검후를 바라보았다.

내가 한 말은 논리적으로 완벽했다. 실제 300년 전 이십대 검후와 혼원검제는 교분을 나눈 전우 사이였다. 세간에 떠도는 야사에는 두 사람이 서로 정인 관계라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둘이 친했다는 것이다.

뭐 실제로는 검후비동의 위치 따위는 혼원비동에 없었지만, 혼원검제가 비동에 검후비동의 위치를 남길 가능성은 충분했다는 말이었다.

어차피 기문진의 시험 내용을 아는 건 나뿐이다. 사부와 사형의 경우에는 전음을 보내면 알아서 동조해줄 터다. 문파에 이득이면 이득이지 손해는 아닐 터이니.

“혹시 혼원검제의 전인이 아니라는 제 말을 믿기 어려우시다면, 사부님께 확인하셔도 좋습······.”

“아닙니다. 이 공자.”

내 말허리를 자르면서 검후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차가운 얼굴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확인까지는 필요 없습니다. 저는 이 공자의 말을 믿습니다. 복마검법도······. 혼원검제 님의 유산을 통해 복원한 것이었군요.”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미리 언급해주니 다행이군.

내 말을 들은 검후가 입술을 다물었다.

분홍색으로 물든 그녀의 하얀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 공자, 아니 사문의 숙원을 해결해주셨으니 은공이라고 불러야겠군요. 으, 은공······.”

검후가 살짝 말을 더듬었다. 표정은 안 보였다.

은공이라니 갑자기?

싫은 건 아니지만······. 뭐 좋다. 의심하면서 항산파로 돌아가자는 반응보다는 낫다.

나는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

“은공이라니, 과분한 호칭입니다. 적어도 전대 검후 님의 유산을 수습한 뒤부터 그리 불러주십시오.”

“아닙니다. 은공. 그동안 천하를 헤집어도 찾을 수 없었던 검후비동의 위치를 찾아준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어쩌면······. 혼원검제 님과 전대 검후님의 사이는 세간의 소문처럼······. 아, 아닙니다.”

검후가 고개를 저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좋게 흘러가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검후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두 분 사이는 서로 시를 지어줄 정도로 친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누군가······. 우리보다 먼저 검후비동의 위치를 알아낸 뒤에 기관장치를 부수고 침입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부서진 혼원비동의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혼원검제 님이 남긴 기록에서는 검후비동 입구에 월녀검을 펼치지 않으면 문이 열리지 않는 기관장치를 설치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문 자체가 없습니다. 누군가 강제로 기관장치를 연 것입니다.”

내 말을 들은 검후 얼굴의 홍조가 사라졌다.

그녀의 입술이 떨렸다.

“기관진식에 능통한······. 정체불명의 흉수가 본 파의 유산을 노리고 침입한 것이로군요. 감히······.”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본 파로 돌아가 지원을 요청하는 건 하책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흉수가 먼저 유산을 약탈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시가 급합니다. 촌각을 다투는 일이니 장보도를 외워 비동 내부의 지형을 아는 저와 모든 변수에 대처 가능한 고절한 무공을 지닌 검후 님. 우리 둘이 함께 지금 당장 비동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나는 비동을 가리키며 검후를 설득했다.

혹시라도 이제 와서 다시 지원을 요청하자고 하면 안 된다. 내 말대로 그건 하책이었다.

혈교 놈들이 지금 비동의 어디까지 도달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당장 비동에 진입하지 않으면 놈들이 먼저 전대 검후의 유산을 탈취할 거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1회차 때처럼 비동에 함정을 설치하고 장보도를 뿌려 정사마를 상잔시키려고 하겠지.

‘그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지.’

감히 내 영웅호색 십년대계를 방해한 놈들이다. 결코 놈들이 좋은 일을 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겨우 혈교의 꼬리를 잡았으니, 앞으로도 철저히 방해해주리라.

내 말을 들은 검후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리 둘······. 지금 당장······. 좋습니다. 공자, 아니 은공의 말을 따르겠습니다.”

검후의 허락이 떨어졌다.

좋아.

이제 설득은 다 끝났다.

남은 건 비동 공략뿐이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비동에 진입하겠습니다. 차음막을 해제해 주십시오.”

“예, 은공.”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감에 차음막이 해제되는 기척이 감지되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비동 입구 앞에 섰다.

내 옆에 검후가 나란히 섰다.

비동 입구는 두 명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비좁았다. 끝을 알 수 없는 무저갱처럼 검은, 내부가 보이지 않는 비동 내부에서 찬바람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하나 둘 셋 하면 비동에 뛰어들 겁니다. 준비되셨습니까?”

“네, 으, 은공······.”

내 말에 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은빛 머리카락이 비동 안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렸다.

“하나, 둘······.”

나는 숫자를 세면서 낙법을 준비했다.

전생의 기억과 장보도에 따르면, 비동은 지하에 있다. 입구에서 낙하해서 떨어지는 곳은 바닥이 아닌 물이 가득 들어찬 동굴 연못이었다.

그렇기에 신법으로 피해를 최소화해야했다.

내력을 일으켰다. 음양이기를 혼원공으로 통제했다. 내력이 기혈을 거꾸로 돌며 폭발적인 힘을 신체에 부여한다.

“셋!”

나는 셋과 함께 그대로 검은 동굴 입구 아래로 몸을 던졌다.

슈우우우우우우우우우!

귓가에 날카로운 파공성이 울렸다.

그와 함께 섬뜩한 낙하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떨어졌다.

이제 이 아래에 연못이 있을 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행운유수의 보신경을 운용하던 그때.

“위험해요! 은공!”

한 줄기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그와 함께 은빛 섬광이 눈앞에 번쩍한 순간.

내 몸 전체에 부드럽고 푹신한 살결의 감촉과 함께 체온이 느껴졌다.

검후 은설란.

그녀가 공중에서 몸을 움직여 낙하 직전의 나를 공주님 안기 자세로 끌어안은 것이다.

아니, 안 위험한데.

내가 뭐라 말하려던 그때.

은설란과 나는 동시에 연못을 향해 떨어졌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물거품과 함께 동굴 연못의 차가운 물결이 사방팔방 튀어 올랐다.

“은공, 괜찮으세요?”

은설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차가운 동굴 연못 수면에 나를 꼬옥 안고 둥둥 떠 있는 은설란의 모습이.

물에 푹 젖어서 요염하게 변한 은빛 머리카락, 마찬가지로 물에 젖어서 몸에 착 달라붙어 안 그래도 거대한 가슴과 개미 같은 허리 라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녀의 모습까지.

그리고 얼굴을 붉힌 은설란의 아름다운 모습까지.

물에 젖은 미녀라니. 그것도 글래머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이러면 안 돼.

이건······.

우뚝.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거대한 하물이 그대로 하늘을 향해 꼿꼿이 솟았다.

그렇다.

나는······. 그것을 세워버린 것이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검후 은설란의 품 안에서.

이게 아닌데······. 엿 됐다.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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