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113화 (113/171)

113화 용봉지회(龍鳳之會)

소림사(少林寺).

정파제일문이자 강호 무림의 태산북두. 천 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이 깃든 백도의 거악(巨嶽), 천하공부 출소림으로 유명한 정종 무학의 종가.

당대 정파제일인을 보유한, 구파일방 육대세가의 수좌를 차지하는 천년소림답게 숭산이 있는 지역이자 소림사의 입구 역할을 하는 소도시인 등봉현(登封縣)은 소림에 방문하려는 참배객과 무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평소에도 사람이 많은 등봉현이었지만, 올해는 정파 무림의 축제인 용봉지회가 열려서 더더욱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 등봉현에 나는 서하린, 서문청하를 이끌고 마침내 발을 디뎠다.

공동산을 출발한 지 몇 달이나 지난 뒤, 겨울에서 초봄으로 계절이 변했을 때였다.

‘용봉지회라는 사실이 실감이 나는군.’

축제 분위기에 후기지수들이 넘치는 등봉현의 모습을 보니 바야흐로 용봉지회의 계절이 돌아온 느낌이 피부로 와닿는다.

용봉지회(龍鳳之會)란 무엇인가?

정파 무림의 후기지수, 그러니까 한창때 피 끓는 청춘들이 모여 즐기는 파티다.

싱싱하고 새파란 요즘 젊은 세대가 주역인 Young하고 MZ한 축제.

현대식으로 따지자면 대학교 축제.

그것이 바로 용봉지회인 것이다.

강호 무림의 최신 트랜드와 유행이 용봉지회에서 결정되며, 강호 무림의 아이돌 역시 용봉지회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내게는 아주 중요한 행사였다.

용봉지회에서 반드시 색협의 오명을 벗고 검룡으로 거듭나 강호 무림의 아이돌로 등극해야 했다.

길가에 지나다니는 아리따운 소저들의 모습이 보였다.

“저 사람이 공동괴협?”

“괴협은 무슨, 색협이라는데?”

“비무마다 아녀자들의 의복을 찢으며 희롱한다고 들었어!”

소저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음해!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기나긴 모멸의 시간도 이제 용봉지회에서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흐흐흐흐흐······.”

상남자의 미소가 입에서 절로 흘러 나왔다.

용봉지회에서 강호 무림의 아이돌로 거듭난 내 찬란한 미래가 눈앞에 떠오르고 있었다.

객잔에 들어서기만 해도 쏟아지는 무수한 소저들의 합석 세례와 공동파 산문 앞에 쌓일 소저들의 애달픈 러브 레터까지.

이번 용봉지회가 끝나면 전부 현실이 될 것이다.

“왜 저렇게 웃어?”

“멀쩡하게 생겼는데 역시 색협은 색협인 모양이군요.”

“하하. 연매. 저런 사람은 그만 보고 유람이나 하자고.”

“좋아요! 가가!”

폭풍전야.

옆에서 나를 비웃던 후기지수들에게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누가 승자인지는 용봉지회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승자의 웃음을 짓고 있던 그때.

찰싹.

내 등짝을 누군가 스매싱했다.

뒤를 돌아보자 서문청하가 있었다.

“공자님! 그렇게 웃지 말라고 제가 말씀드렸죠?! 중인들이 비웃는 거 안 보여요!”

쪽팔린다는 듯 손부채로 얼굴을 부치는 시늉을 하는 서문청하.

그녀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었다.

“사내대장부의 웃음이 뭐가 어때서 그렇지? 사매. 내 웃음이 그렇게 별로야?”

내 질문을 받은 서하린이 언제나처럼 죽은 눈동자로 우리를 바라보면서 어색한 미소와 함께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사형의 미소가 좋습니다.”

“봐, 하린이도 좋다잖아.”

어색하기 짝이 없는 부자연스러운 미소. 하지만 서하린은 원래 전생에서도 무표정 미녀로 유명했는데 미소라니 장족의 발전이다.

꽤 귀엽다.

과연 미래의 정파제일미녀.

하린의 동의를 얻어낸 내가 으쓱하자 서문청하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하여간, 정말 못 살겠네요. 어쩌다가 제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사람을 모시게 된 건지.”

그렇게 우리가 티격태격하고 있던 그때.

“은공······!!”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파파팟!곧이어 바닥을 박차고 경공을 밟아 내게 달려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이 기척과 목소리.

소검후 천소빈의 것이다. 모두 보는 앞에서 나에게 포옹을 시도하여 저번처럼 거짓 고백을 하려는 거겠지.

어림도 없다.

스윽.

행운유수의 보신경을 밟아 가볍게 천소빈의 돌진을 피했다.

“헛?!”

천소빈의 흑발과 은발이 뒤섞인 투톤헤어가 폭포수처럼 흩어졌다.

그녀의 은빛 눈동자에 당황한 기색이 떠올랐다.

“공자님. 너무해요. 소녀의 포옹을 받아주지 않으시다니! 소녀, 저번 경연부터 이번 용봉지회까지 일 년 동안 사문의 은인인 공자님을 그리며 계속 사모해왔다고요!”

하지만 천소빈은 당황하지 않고 얼굴을 붉히면서 이쪽을 바라보며 정말 토라진 것처럼 연기했다.

그 모습을 본 서하린이 입술을 깨물고 서문청하가 천소빈을 찌릿 노려봤다.

“허허, 용봉지회라더니 벌써 이리 청춘이 들끓는 모습을 볼 줄이야.”

“공동파의 괴협이 야밤에 소검후의 침소를 찾아가 몰래 정을 통하였다는 소문이 진실인 모양이군요.”

“공동색협, 이럴 줄 알았습니다.”

“천하의 음적 같으니!”

주변의 음해가 들려왔다.

머리가 띵하다.

나는 관자놀이를 짓누르면서, 다른 손으로 복마대력수와 건곤지의 묘리를 응용하여 천소빈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따악!

“아야! 왜 또 때려요!”

“너 나 안 좋아하는 거 다 보이거든? 내가 연기 연습 더 하라고 했지?”

이마를 감싸며 억울한 표정을 짓는 천소빈.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연기 천재로서 그녀에게 연기를 지도편달하려 했다.

그때.

“호오. 그렇군요. 그럼 이 소협은 천 여협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구려.”

제삼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사형만큼은 아니지만 관옥과 견줄 정도로 화려한 미모를 자랑하는, 하늘색 무복을 입은 미남자가 있었다.

이마에는 영웅건을 묶고, 허리춤에는 검을 찬 전형적인 강호 무림의 풍류공자.

그의 무복 가슴팍에는 구름을 꿰뚫는 검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저 문양의 주인되는 가문을 알고 있었다.

육대세가를 포함한 중원 모든 무림세가의 수좌를 차지하는 천하제일가.

남궁세가였다.

그리고 저 잘생긴 외모, 재수 없는 말투에 천소빈을 노리는 시선까지······.

이 모든 특징이 겹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다.

‘옥기린 남궁청이로군.’

옥기린 남궁청.

남궁세가의 대공자이자 소가주.

어려서부터 개정대법과 벌모세수를 받고 걸음마할 때부터 무공을 배우는 무림세가의 직계 중에서도 특출난 재능을 지녀 차기 남궁세가를 이끌 기둥으로 평가받는 자.

훗날 남궁세가의 가주가 된 남궁청은 화경의 경지에 올라 창천검황이라는 별호로 불리게 된다.

그리고 강호 무림에 유명한 풍류공자이기도 했다.

풍류공자란 무엇인가? 쉽게 말해서 망나니, 난봉꾼을 돌려 이르는 말이었다.

그렇다.

남궁청의 취미는 기루 드나들기요, 특기는 작업이었다.

물론 정파답게 강제로 여자를 취하거나 하지는 않은, 강호 무림식 표현으로는 쾌남아요, 현실로 치면 인싸 미남 알파메일 같은 수준이었다.

그래서 미래에는 남궁 대협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런 남궁청이 천소빈을 졸졸 따라다닌 건 전생에서도 꽤 유명했다. 전생의 천소빈은 사부인 검후를 따라 금혼을 고집했는데도 계속 따라다니며 청혼했을 정도.

물론 천소빈이 끝까지 독신으로 남겠다 선언했기에 결국 물러났지만 말이다.

“······누, 누가 그래요? 아니거든요! 흥. 소녀와 이 공자는 이미 경연 첫날 밤에 처소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

나는 천소빈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폭탄이 터지기 전에 급하게 입을 막았다.

“읍! 읍읍읍읍!”

천소빈이 팔다리를 바둥거렸다. 그녀의 얼굴이 빨개졌다.

“벌써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이 소협. 천 소저의 말이 정녕 사실이오?”

“아니.”

나는 남궁청의 말을 즉시 부정했다.

시집도 안 간 처녀와 밤에 몰래 사통했다는 악성 루머가 강호 무림에 퍼지게 둘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유교 랜드인 이세계 중세 명나라에서 그런 루머는 내 평판에 치명적이었으니까.

“그렇구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이 소협. 나는 요즘 꽤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다오. 천 소저를 향한 내 마음은 일편단심, 단 한 번도 흔들린 적 없거늘. 천 소저는 매번 내 구애를 거부한다오. 거기에 얼마 전부터는 천 소저 역시 이 소협을 마음에 담았다고 내게 말하였소. 하지만 방금 이 소협은 천 소저가 소협을 진심으로 사모하지 않는다······.”

놈의 잘생긴 얼굴이 나를 향했다.

남궁청이 웃었다.

“······그리 말한 것 같은데. 맞소?”

“물론, 맞아.”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이 소협은 역시 동류답게 말이 잘 통하는구려! 그럼 천 소저와 나의 관계······.”

남궁청의 말끝이 흐려졌다.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

나는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

저 뒤의 말은 안 봐도 뻔했다. 천소빈과 선을 확실히 긋고 본인과의 관계를 응원해달라는 말이겠지.

나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물론 천소빈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녀가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전생에서도 이번 생에서도 천소빈은 남궁청을 안 좋아했다.

좋아하지도 않는 사내에게 여인을, 그것도 미소녀를 넘겨준다?게다가 그 상대가 인싸 알파메일?

‘절대 그럴 수는 없지.’

사촌이 신도시 개발예정토지를 평당 10만원에 매입한 것보다 더 배가 아프고 오장육부가 뒤틀릴 지도 모를 일이었다.

“난 너를 응원할 생각이 추호도 없어. 천 소저는 절대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

내 말을 들은 남궁청의 얼굴에 금이 갔다.

그의 눈썹이 꿈틀했다.

“절대로 안 좋아한다? 그 말 장담할 수 있소?”

“물론이지. 천 소저도 그렇게 생각할걸?”

나는 막고 있던 천소빈의 입을 풀어주었다.

그때.

꼬옥.

천소빈이 내 품에 뛰어들어 날 끌어안으면서 옥기린 남궁청을 향해 말했다.

“흥. 당연하죠! 누가 뭐래도 소녀가 사모하는 사람은 오직 이 공자님뿐인걸요! 당신처럼 여인도 많고 불성실하고 별호만 번드르르하고 실속 없는 사내보다는, 괴협이기는 해도 사문의 은인이며 성실한 우리 이 공자님이 훨씬 더 멋지다고요!”

내게 안겨든 천소빈을 바라보며 얼굴이 굳는 남궁청.

나는 그녀를 품에서 떼어내면서 말했다.

“들었지?”

“들었소. 하지만 그래도 이 남궁 모는 천 소저를 향한 불타는 마음을 포기하지 못······.”

“포기해.”

“흐음······. 그래도 아까 분명 이 소협을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던 것도 같소. 좋아. 그렇다면······.”

남궁청이 웃었다.

“······이 소협과 명일 개최될 용봉지연에서 강호의 방식으로 결판을 낸다면, 어떻소? 두 분 모두 이 남궁 모의 마음을 인정해주시겠소?”

용봉지연.

용봉지회 개최 전날에 열리는 후기지수들의 비공식 파티다. 현대에서 클럽에 VIP 금수저들이 모여서 여는 파티를 생각하면 이미지가 비슷할 것이다.

물론 혈기왕성한 청춘들이 모여서 건전하게 놀 리는 절대로 없다. 그래서 용봉지연은 동물의 왕국이나 다름없다. 거기에서 벌어지는 비공식 비무 또한 그중 하나다.

지금 남궁청은 내게 비공식 비무를 제안한 것이다.

물론 말이 비공식이지 난다 긴다 하는 후기지수들 전부가 모이는 파티장에서 일어나는 비무다.

비무 결과는 삽시간에 강호 무림 전역은 물론, 용봉지회 결과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정도였으니 그 무게가 절대 가볍지 않았다.

‘안 그래도 채화음적의 오명을 씻을 제물이 필요했는데, 옥기린 정도면 딱 적당하군. 남궁세가의 소가주를 이긴다면 내 인기가 끝도 없이 치솟겠지.’

내게 남궁청의 제안은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었다.

안 그래도 빠르게 명성과 인기를 얻어야 하는 나였다. 하지만 공동파는 아직 위상이 낮아 그들만의 리그이자 친목 파티인 용봉지연의 초대장을 얻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남궁청이 내게 용봉지연의 비무를 신청한 것이다. 물론 결과는 당연히 내 승리다. 용봉지연도 참석하고 비무도 하고 이겨서 이름값도 올리고 일석삼조나 다름없는 찬스를 내가 거절할 이유는 없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서문청하, 서하린, 남궁청, 천소빈은 물론 이 자리에 있는 다른 후기지수들과 양민들의 시선마저도.

모두가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남궁청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러도록 하지.”

내 말을 들은 서문청하의 눈썹이 꿈틀하고 서하린의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천소빈의 얼굴이 어색하게 굳었다.

마지막으로 남궁청.

그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역시 이 소협은 풍류를 아는 사내답게 말이 잘 통하는구려! 좋소! 그럼 명일 용봉지연에서 뵙도록 하겠소! 배첩은 하인을 시켜 이 공자의 숙소로 전달하도록 할 터이니 안심해도 좋소! 내 명일 반드시 천 소협에 대한 이 남궁 모의 마음을 증명하고야 말 것이오!”

남궁청이 웃으면서 자리를 떠났다.

좋아.

이렇게 1승 제물이 넝쿨째 굴러들어올 줄이야.

운이 좋군.

내가 남궁청의 뒷모습을 보며 웃던 순간.

“쯧쯧. 잘하는 짓이네. 잘하는 짓이야. 이 오빠.”

어디선가 익숙하면서도 더없이 불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그녀가 있었다.

꿈에서도 잊을 수 없는, 선명히 기억하는 녹안이 인상적인 15세 외형의 미소녀.

천하제일돌팔이 당영령이 1회차 때와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얼굴을 와락 구기며 말했다.

“돌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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