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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120화 (120/171)

120화 태평공주

달마동에서 나온 나는 곧바로 산을 내려와 탑림에 도착했다.

탑림.

탑의 숲이라는 이름답게 나무처럼 빽빽이 들어찬 승탑은 장관이었다.

다비에서 사리를 남긴 고승(高僧)만이 세울 수 있다는 승탑이 즐비한 탑림의 풍경은 소림이 어째서 정파제일문파인지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석탑으로 만들어진 숲 사이에 그가 있었다.

“사제!”

이제는 익숙한 고운 목소리. 옅게 풍기는 들꽃 향기와 함께 사형이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피하지 않고 그를 안아주었다.

“보고 싶었어. 오래 걸려서 걱정했어. 별일 없었어?”

“원극대사님의 가르침 덕분에 작은 성취를 얻었습니다.”

내 품에 안긴 사형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나는 사형을 품에서 살짝 떼어내면서 말했다.

뭐 신승이랑 한바탕했다는 이야기는 사형에게 할 수 없으니, 이런 식으로 포장하는 게 최선이다.

실제로 경지가 오르기도 했고 말이다.

내 말을 들은 사형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그의 시선이 나를 바라봤다. 뒤이어 사형이 배시시 웃었다.

“사제. 성취가 깊어졌구나. 축하해!”

초절정에 오른 나보다 본인이 더 기쁜 모양인지 순진하게 웃는 사형.

안 그래도 여자보다 더 예쁜 사형인데다, 최근 성별에 대해 의심이 드는 상황이라 그런지 쓸데없이 예뻐 보였다.

정신 차리자.

상대는 남자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원극대사께서 본 파와 소림의 동맹을 제안하셨습니다. 아울러 대환단 두 알과 소환단 세 알도 주신다 약조하셨습니다.”

“정말? 잘됐어. 그래도 사제가 아무 일 없어서 정말 다행이야.”

사형이 내 손을 붙잡고 내게 말했다.

순진하게 웃는 사형. 사형이 정말 여자라면?

기분이 자꾸 묘해졌다. 나는 사형에게서 손을 빼내면서 말했다.

“시간이 제법 늦었습니다. 이제 숙소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응!”

고개를 끄덕이는 사형.

나는 사형과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로 탑림에서 다시 소림사 본찰로 들어왔다.

원래 고요해야 할 소림사 내부는 강호인들이 구름처럼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사형과 함께 인파를 헤치며 객당으로 향하던 그때.

[공동파의 이철수.]

귓가에 낯설면서도 익숙한, 기분 나쁜 내시 목소리가 울렸다.

전음.

그것도 동창이 주로 사용하는 전음 수법이었다. 이 변태 같은 목소리는 환관 목소리가 확실했다.

동창에서 나를? 대체 왜?

머릿속에 수많은 가능성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내가 경계 태세를 취한 순간.

[태평공주 전하께서 너를 찾으신다. 대웅보전으로 오도록.]

뒤이은 전음에 나는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태평공주.

이 호칭의 주인을 내가 모를 리 없었다.

‘황상?’

황상이 소림사에 나를 찾으러 왔다.

아마도 불공을 드린다는 핑계를 댔겠지. 소림사는 백도제일문파면서 중원 선종 불교의 종주이기도 했으니. 황족이 불공을 드리러 오는 건 제법 흔한 일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타이밍에 나를 만나러 올 줄은 몰랐는데.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제, 무슨 일 있어?”

앞서가던 사형이 자리에 멈춘 채로 나를 돌아봤다.

사형의 목소리에 나는 그제야 상념에서 깨어났다. 일단 황상이 나를 불렀으니, 만나러 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 우제가 잠시 달마동에 놓고 온 물건이 떠올라서.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먼저 객당에 가 계십시오.”

“놓고 간 물건······. 그거라면 나도 같이 가면 안 될까?”

사형이 내게 물었다.

뭐 사형이 같이 가자고 답하리라는 것도 이미 예상했다. 사형과 지낸 세월만 해도 벌써 3년이 넘어간다. 척하면 척이다.

나는 준비했던 변명을 꺼냈다.

“······저는 괜찮습니다. 우제의 사적인 일로 사형을 고생시킬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거기에 사매와 일행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본 파의 장문제자인 사형께서 먼저 가서 안심시켜 주십시오. 우제는 곧 뒤따르겠습니다.”

사적인 일의 강조와 장문제자로서의 책임을 강조하는 내 말을 듣자 사형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가 말했다.

“응. 알았어. 그럼 먼저 갈게. 사제 금방 와야 해!”

“알겠습니다.”

나는 객당 쪽으로 사라지는 사형을 바라보면서 등을 돌렸다. 사형을 보냈으니 이제 황상을 만나러 갈 차례였다.

소림사 경내를 다시 거슬러 올라갔다.

객당 근처에 있던 인파는 대웅보전으로 향할수록 점점 사라지더니, 대웅보전 입구에 이르자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게 되었다.

대신 거기에는 환관 복장을 하고 칼을 찬 무사들이 있었다.

동창 요원들이었다. 수염 하나 없는 매끈한 턱과 고자 무공 때문에 음기가 쌓여 남자보다는 여자에 가까워진 그들의 체형이 눈에 띈다.

저들의 가슴에도 압박 붕대가 감겨 있겠지. 여유증을 가리기 위해서.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을 테고.

고자 시절이 떠올랐다. 끔찍했다. 양물은 곧 목숨과도 같다. 1회차의 나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양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양물을 되찾아서 다행이군.’

나는 동창 무사들을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비석이 줄줄이 세워진 대웅보전 마당을 가로질러 향화용 거대 향로가 세워진 문 앞에 섰다.

대웅보전(大雄寶殿).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를 봉안하는, 모든 불교 사찰에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건물이다.

소림사의 대웅보전은 천년소림답게 웅장하고 거대했다.

붉게 칠해진 기둥 위로 대웅보전이라 용사비등하게 적힌 현판이 보였다.

그리고.

이 문 너머에 그녀가 있다.

나의 황상.

내 유일한 가족이, 날 만나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온 그녀가 있다.

언젠가는 만나리라 생각했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하지만 막상 그녀를 만나기 직전의 상황이 되자, 나는 멈칫했다. 이대로면 만나서 아무 말도 못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내가 주저하고 있을 때.

“······공동파의 이철수는 대웅보전으로 들라.”

대웅보전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익숙한 황상의 목소리였다.

내가 매일 같이 밥도 먹고, 놀아줬던 그녀였다. 무공 수련도 함께 했다. 매일 같이 자고 싶다고 떼를 쓰면 그녀를 재우기 위해 동화를 적당히 각색해서 들려주며 그녀를 재웠다.

그래.

그랬었지.

비록 양물은 없었지만, 그때만큼은 조금 행복했던 것 같다.

현대에서도 없던 가족이라는 게 생겼던 것 같아서.

언제나 혼자뿐이었던 내 인생에 내 편이 생긴 것만 같아서.

지금까지 뭘 두려워했던 걸까. 황상은 그대로인데.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마마.”

나는 전생처럼, 그녀에게 그렇게 말하며 대웅보전의 문을 열었다.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렸다. 거대한 법당 내부, 황금빛으로 빛나는 불상 아래.

그녀가 있었다.

흩날리는 갈색 머리카락, 미인인 어머니를 닮아 앳되면서도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화려한 붉은 공주 복식을 입은 그녀.

태평공주 주가율이 나를 보고 있었다.

탁.

나는 문을 닫고 들어왔다.

그녀의 모습은 전생과 같았다. 하지만 반응은 아니었다. 이맘때의 황상은 내게 마음은 열었지만, 또래 소녀처럼 짖꿎은 장난꾸러기였다.

하지만 지금의 황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나와 같은 회귀자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또래답지 않게 침착했다.

눈동자가 깊었다.

그녀의 몸은 11세였지만,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기도는 철권을 휘두르며 천하를 통치하던 원화제 주가율의 기도 그대로였다.

주가율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내 모습을 본 그녀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녀의 손이 떨렸다.

“······.”

주가율이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녀의 눈동자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가 치맛자락을 꼼지락거렸다.

뭐라 말하려다 말을 못 하려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귀여웠다.

황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내 가족이다.

왠지 안심됐다.

나는 대웅전 바닥에 그녀와 늘 만날 때처럼 엎드려 절했다.

“······공동파의 무부(武夫) 이철수가 공주 전하를 뵙습니다.”

내가 황상에게 인사를 올린 그때.

스윽.

옷자락 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그녀의 손이 내 손을 덮었다.

“······노야······.”

황상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녀가 내 손을 잡고 나를 일으켰다.

황상의 눈에서는 이미 눈물이 주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노야, 보, 보고······. 싶었습니다······.”

나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운 황상이 나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몸에서는 언제나 그렇듯 화려한 꽃향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자연스럽게 황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랜만이었다. 그녀의 머리를 이렇게 쓰다듬는 것도.

황상은 머리를 쓰다듬는 걸 유난히 좋아했다. 포옹도. 그래서 보위에 오른 이후에도 단둘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칭찬해달라며 내게 포옹과 쓰담쓰담을 요청했다.

“저도 보고 싶었습니다.”

“······대웅보전 내부에는······. 저와 노야 둘뿐입니다.”

황상이 까치발을 들고 내 귓가에 속삭였다.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황상답게 이미 동창을 수중에 넣고 수족으로 부리는 모양이었다. 주변에 느껴지는 기척은 아무도 없었다.

더불어 여기서 나눈 대화를 듣는 귀도 아무도 없었다.

진실로 여기에는 나와 황상, 둘뿐이었다.

“······노야께서도······. 제가 보고 싶다 말씀하셔서······. 다행입니다.”

“소인이 마마를 안 보고 싶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폐하가 아닌 전하라고 황상을 부르는 건 오랜만이군요.”

“그렇습니다. 오랜만입니다. 노야.”

황상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내가 없이도 혼자서도 더 잘 할 사람이기는 하니까.

하지만 안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내 가족이었으니까.

내 말을 들은 황상이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얼마나 울었을까.

그녀가 내 품에서 천천히 떨어졌다.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닦아낸 황상이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노야······. 그······.”

황상이 그녀답지 않게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녀가 애꿎은 대웅보전 법당 바닥을 발로 툭툭 차면서 말했다.

“······안색이 밝아지셨습니다······. 몸도 듬직해지셨습니다. 전생의 노야가 아름다웠다면, 현생의 노야는 기개가 준수하고 용모가 관옥과 같습니다. 저는 어느 쪽이건 전부 좋습니다. 공동파 생활은 좀 맞으십니까? 되찾은······. 사내의 몸은 좋으십니까? 그토록 바라던 운우지락은······.”

황상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의 입에서 횡설수설이 나왔다.

운우지락.

단어를 언급하기조차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문득 회귀 전이 떠올랐다.

운우지락이 그렇게 좋냐고 외치면서 울던 황상의 모습이.

그 황상이 지금 시간을 거슬러서 여기 있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구름과 비의 즐거움은 아직 누구와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까? 그렇군요. 어째서입니까?”

내 말에 갑자기 말이 빨라지는 황상.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진정한 운우지락이란 육체의 교합이 아닌 서로의 마음까지 통해야 이룰 수 있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소인은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하기도 했고 말입니다.”

“···마음이 통해야······. 그렇군요. 과연 노야의 말이 맞습니다.”

내 말을 들은 황상이 배시시 웃었다.

그녀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나는 황상을 바라보면서, 머리 위에서 손을 떼었다.

“아······.”

황상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황상과의 해후는 어느 정도 했으니.

이제 내가 묻고 싶던 질문을 할 차례였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마마.”

“말씀하세요. 노야.”

“······어째서······. 환생 대법을 행하셨나이까.”

내가 묻고 싶었던 질문.

그건 어째서 환생 대법을 행했느냐였다.

내 질문을 들은 황상의 표정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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