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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131화 (131/171)

131화 정신 나간 대화

‘검후 이 년이 정신이 나가버린 것인가?’

적사월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체면과 명분을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정파다.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놈들을 협의지사로 포장하는 놈들이다.

그런 정파 무림의 정점에 선 검후다. 당연히 함부로 홍안의 소년을 향해 연심을 품었다고 고백할 수 없다. 그런데 해버렸다.

적사월은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들끓는 의념과 그에 반응하는 공력을 제어하면서 말했다.

“그렇군요. 명망 높은 백도 무림의 명숙인 은 여협께서 아들뻘 항렬인 이 소협을 연모하고 있을 줄이야. 소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적사월이 요염하게 끈적이는 목소리로 검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예의 바르게 돌려 말했지만, 결국 정파 주제에 염치도 체면도 없냐는 의미였다.

하지만 검후는 능월향의 도발에도 전혀 당황하지도, 흔들리지도 않았다.

용봉지연 참석을 포기하고 능월향을 찾아가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그녀의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후의 은빛 시선이 적사월을 향했다.

‘뭐지?’

당황한 건 오히려 적사월이었다. 정말 인정한다고? 정파 주제에 정말로? 그렇게 되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적사월의 머릿속에 수많은 상념이 스쳐 지나간 그때.

“······은공께서는 이미 제게 성년이 되면 도전하겠노라고 구주팔황에 천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일 년 전 교류 경연 때 은공께서 도전하기 전까지 다른 도전자는 받지 않겠노라고 강호 무림의 동도들이 보는 앞에서 선언했습니다.”

검후는 차분한 목소리로 적사월에게 설명했다.

“그러니 저와 은공은 정혼한 사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은공께서는 성년이 된 이후 저와의 비무에서 승리할 것이고, 저는 그때까지 은공을 제외한 그 어떤 사내도 곁에 두지 않을 거니까요.”

검후의 말을 들은 적사월이 손을 떨었다.

궤변이다. 하지만 일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검후는 연심을 인정하냐는 그녀의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도리어 검후 본인을 옭아매던 결혼 비무 선언을 역으로 이용해서 적사월을 압박했던 것이다.

검후에 비하면 능월향은 배분도 나이도 낮다.

정파가 아무리 명분을 따진다더라도 결국 정파인도 강호 무림의 일원.

명분이란 철저히 힘 있는 자의 편이며, 다소의 궤변도 강자가 말하면 용납되는 것이 적사월이 위선적이라 여기는 정파 무림의 세계였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힘을 가진 건 염희 능월향이 아닌 검후 은설란이었다.

검후가 배분을 앞세워 능월향을 찍어 누른 것이다.

‘······빌어먹을. 감히 본녀 앞에서 저렇게 세 치 혀를 가볍게 놀리다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것이 건방지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아닌 검후 앞에서 사파제일인이라는 본래 신분을 드러낼 수도 없는 노릇.

그렇다면 이쪽도 언변으로 검후를 상대해야 하지만······.

‘가가가 저 어린 년을 이길 가능성이 없다······. 지금 본녀가 그렇게 말할 수는 없어.’

적사월 본인보다야 하수지만, 검후 역시 화경의 절대고수.

강호 무림에 단 열일곱뿐인 절대고수를 갓 성년이 된 후기지수 이철수가 이길 리 없다.

물론 이철수는 약관도 안 된 나이에 초절정에 오를 정도로 전도유망한 후기지수다. 하지만 초절정과 화경을 가로막는 벽은 높다. 어린 나이에 초절정을 돌파한 기재가 평생 수련해도 화경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흔하다.

화경.

절대고수를 논할 수 있는 경지란, 단순히 재능과 노력만으로 올라설 수 없다.

현실적으로 보면 그렇다. 그러니 검후 저 어린 것이 이철수의 승리를 장담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검후 본인이 패배를 이미 결심한 게 아닌 이상은 말이다. 하지만 적사월은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능월향은 이철수를 사모하고 있었다. 이철수의 용봉지회 승리를 위해 불공을 올린다는 것이 능월향이 소림에 머무르는 명분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철수의 미래 승리를 부정한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주장한다?

‘······연모하는 상대를 믿지도 못하는 여자가 되겠지.’

안 그래도 미혹이라 생각하고 있는 검후다.

검후는 능월향의 진심을 의심할 것이다. 그것도 믿지 못하냐면서, 역시 이철수를 미혹하려는 것 아니냐면서 능월향을 몰아붙일 것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 진퇴양난이 따로 없는 상황.

“설마 은공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겠죠?”

“······믿습니다. 안 믿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검후의 말에 적사월의 붉은 눈동자가 그녀를 향했다.

“······가가가 미래에 검후 님을 이긴다고 해서, 반드시 검후 님과 혼인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적사월의 질문에 검후가 살짝 당황했다.

검후와의 비무에서 승리한 사내가 그녀와 혼인한다.

강호 무림에 그리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진다면, 비무에 승리한 뒤에 혼인을 거부하는 것도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궤변에 가까운 말이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적사월이 검후와 같은 수법으로 그녀를 공격한 것이다.

“그, 그건······. 하지만 은공께서는 반드시 저를 은공의 여인으로 만들어준다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살짝 당황한 검후는 곧바로 평정심을 되찾으면서 말했다.

검후의 머릿속에 이철수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상공께서는 몇 번이고 그녀를 본인의 여자로 삼는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검후는 미래의 부인으로서 상공을 믿었다. 그러니 여기서 저 요녀의 요설에 흔들릴 수는 없······.

“가가께서는 한창 젊음이 넘치는 시기입니다. 아직 어려서 그리 말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가가께서 성인이 된다면······. 다른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지요. 자고로 세상 모든 사내는······. 말이 잘 통하는 또래 여인을 좋아는 법입니다.”

한 번 주도권을 붙잡은 적사월이 웃으면서 검후를 몰아붙였다.

오늘만큼은 이십 대의 능월향인 적사월이었다. 나이로 마음껏 검후를 공격할 수 있었다.

한 갑자하고도 이 년을 더 살아온 적사월이었다. 그래서 알고 있었다.

나이 든, 특히 시집도 못 간 노처녀를 공격하는 데에는 나이 언급이 절초 중의 절초라는 사실을.

적사월의 입가에 서린 미소가 짙어졌다.

“가가의 주변에는 이미 풋풋한 또래와 연하의 소녀들이 즐비합니다. 검후 님께서는 소녀를 신경 쓸 시간에, 가가의 주변부터 둘러보는 게 어떠한지요?”

반면에 검후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상공께서······. 변심한다고?’

검후는 상공을 믿었다. 상공께서 하는 말들을 전부 믿었다.

하지만 변심의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었다.

능월향의 말이 맞았다.

사내는 보통 또래나 연하의 여인을 선호하는 법. 높은 배분과 나이는 사내들에게 부담을 줄 뿐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그녀를 향한 도전자의 발길이 끊긴 이유가 그 때문이다.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상공은 다르다. 몇 번이고 불안했던 그녀를 안심시켜줬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상공의 곁에는 서하린, 서문청하 같은 그녀보다 훨씬 젊은 또래 소녀들이 수두룩하다. 거기에 소검후도 상공을 노리고 있다.

소검후와는 달리 서하린과 서문청하는 상공을 연모하는 눈치였다. 그것도 모를 정도로 검후는 어리석지 않았다.

나이도 먹고 세대도 배분도 달라 말도 잘 안 통하는 그녀와는 달리,

하지만 그녀들 모두 검후에게는 딸뻘인 배분이요, 항렬이다. 마흔 여덟이나 먹고 딸 같은 소녀들에게 진심으로 질투하다니.

그것이야말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거기에 소검후는 그녀의 하나뿐인 직전 제자이지 않은가.

자칫하다가는······.

‘아, 안 돼······!’

검후는 머릿속에 떠오른 나쁜 상념을 몰아냈다. 검후의 시선이 능월향을 향했다.

“······은공은 그럴 분이 아닙니다. 제자인 소빈이가 은공을 연모한다 고백했을 때도, 제자의 연심을 거절하고 저를 선택하신 분이 은공입니다. 당신은 모르겠죠. 됐습니다. 이런 정신 나간 대화 따위, 시간 낭비입니다. 경고는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능 소저. 다음번부터는······.”

검후가 말끝을 흐렸다.

능월향뿐만이 아니다. 검후 본인에게도 하는 말이었다.

상공께서는 흔들리지 않는다. 아내로서 그분을 믿어야 한다. 소빈이가 유혹했을 때도 흔들리지 않은 상공의 마음이다. 이제 와서 흔들릴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런데도.

어린 소녀들에 대한 질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변심에 대한 불안감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났다.

검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능월향에게 지금 표정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은 여협. 이대로 가시는 건가요?”

등 뒤에서 능월향의 질문이 들려왔다. 예의바르게 포장했지만, 속뜻은 이대로 도망가냐는 의미였다.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실례가 많았습니다. 은공을 위한 불공, 꼭 열심히 드리시길.”

검후는 그렇게 말하고는 미닫이문을 열고 나갔다.

그녀의 입술이 떨렸다.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죄송해요, 상공······. 소첩은······. 상공이······. 보고 싶어요······.’

검후는 차오르는 눈물을 꾸욱 참으면서, 처소로 향했다. 지금은 혼자 있고 싶었다.

검후가 떠난 뒤. 홀로 남겨진 적사월의 마음도 편치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당당히······. 어떻게 그렇게 본녀 앞에서 눈을 똑바로 치켜뜨고······.’

검후는 당당했다.

체면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그녀를 압박했다.

먼저 시비를 걸어온 건 검후였다. 그렇기에 물리쳤다. 이번 설전은 분명 그녀의 승리일 터였다. 하지만······.

왠지 진 기분이었다.

상처뿐인 승리였다.

‘본녀였더라면······.’

나였더라면. 사도련주 적사월의 신분이라면.

검후처럼 거리낌 없이 그렇게, 당당히 행동할 수 있었을까?

적사월은 자문해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거기에······. 그녀가 했던 나이 언급, 또래와의 격차는 전부 적사월 본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원래라면 나이 따위는 신경 안 쓸 그녀였지만······.

‘그 건방진 어린 것의 가슴······.’

서하린.

그녀의 천하제일, 아니 고금제일을 논할 만한 수밀도를 본 이후부터.

적사월은 내심 나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답답했다. 마음 한쪽이 허전하고 아프다. 숨 쉬기가 힘들다. 적사월이 입술을 깨물었다. 싫다. 싫은데 자꾸만 이철수의 모습이 생각났다.

신경 쓰였다. 무시하고 싶은데도 계속.

“으으으으······. 본녀가 대체 왜 이런 쓸데없는 것을 신경써야 하는 것이더냐!”

쾅.

적사월이 탁자를 내리쳤다. 그녀의 뺨이 부르르 떨렸다.

결국 적사월은······.

검후처럼 행동할 수 없었다. 그녀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분하다. 불안하다. 신경 쓰인다. 아프다.

······자꾸 그 놈이 눈에 밟힌다.

얼굴이라도 마주하고 싶다.

‘본녀는······. 본녀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이더냐.

적사월이 뒷말을 삼켰다.

그를 생각하면 원망스럽다. 한편으로는 설렌다. 한편으로는 가슴이 뛴다.

한편으로는 신경 쓰이기도 했다. 분했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뒤죽박죽이다.

처음 겪어보는 감정이었다. 62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온 그녀도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적사월의 적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그렇게 두 소녀의 쟁투는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며 양패구상의 형세로 끝을 맺었다.

*

사형, 서문청하, 소검후.

세 명의 짐덩이를 달고 마침내 용봉지연에 도착한 나는 지금.

“이제 일전의 약조대로 소협과 본 공자가 천 소저를 놓고 서로의 무를 겨룰 차례요. 승자가 천 소저의 마음을 차지하는 것이오!”

남궁청과의 비무를 앞두고 있었다.

아니, 근데 누구 맘대로 소검후 마음 같은, 줘도 안 받는 걸 비무에 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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