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끔찍한 시간
화향루(華香樓)
간판에 그렇게 써진 주루 안으로 들어간 순간.
코 끝에 묘하게 불쾌한 냄새가 스쳤다. 사람의 기분을 들뜨게 하는 효능을 발휘하는 향초를 태운 향 냄새와 여인의 분 냄새와 향수 냄새.
마지막으로 사람과 사람의 살이 부대낄 때만 피어오르는 체취와 체액 냄새까지.
50년간의 환관 생활 덕분에 후각이 예민해진 나였기에 알 수 있었다.
난교 파티는 이미 행해지고 있었다.
눈을 돌리자 흔들리는 황촉의 희미한 불빛과 곳곳에 피워진 향초의 불빛이 아스라이 뒤섞였다.
곳곳에 술을 마시는 후기지수의 모습은 물론, 서로 살을 섞는 후기지수들의 모습도 보였다.
귓가에 민망한 소리가 들려왔다. 적나라한 육체의 교합, 살결의 향연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남녀의 교합만 있는게 아니었다. 사내와 사내, 여인과 여인, 다 섞여서 교접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야말로 난잡함의 극치.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전생에서도 이런 육체적인 쾌락만을 위한 연회는 참석해본 적이 없어서 더 그랬다.
뭐 주변 환관 놈들이야 남색 파티를 열기도 했지만, 나는 게이가 아니라서 가지 않았다. 거기다 전생의 나는 고자. 어차피 고자라서 할 수도 없는데 그런 난교 파티에 참석해봤자 희망 고문일 뿐이다.
그래서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보니 생각보다 심한데?
“헤헤, 헤헤헤헤헤······. 딸꾹!”
무언가에 취한 건지 몽롱한 눈으로 헤실헤실 웃는 사내도 보였다.
취한 상태로 서로 관계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사형이 내 팔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하긴 순진하기 짝이 없는 호구인 사형이다. 이런 자극적이고 적나라한 광경을 직관하는 건 처음이니 식겁할 지경이겠지.
[사, 사제는 내가 지켜줄게······.]
내 옆에 찰싹 달라붙은 사형이 내 귓가에 전음을 보냈다.
누가 누굴 지킨다는 건지.
탁.
기루 문이 닫혔다.
“어떻습니까? 이 소협. 본가에서 본 회의 귀빈들을 위해 준비해둔 여인들과 약주(藥酒)입니다. 하하하하하. 여인이 질리신다면 저와 닮은 미동(美童)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모용위가 자랑스럽게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미동?
이 새끼가 아주 대놓고 내게 남색을 권하는구나.
나는 이 역겨운 화제를 바꾸기 위해 모용위에게 물었다.
“그렇군요. 구 부인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구 부인이 나를 찾는다고 모용위 본인이 직접 언급했으니, 그 여자를 만나야 했다. 내 말을 들은 모용위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가 말했다.
“구 부인께서는 본 주루의 최상층에서 두 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따라오시지요.”
모용위가 술 냄새와 분 냄새, 향내와 살 내음이 뒤섞인 난잡한 난교 파티장을 가로지르며 계단으로 향했다.
나와 사형은 그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사형. 제가 수신호를 보내면 바로 구 부인을 전력으로 일수에 제압하십시오. 제압하기 힘들 것 같으면 사살해도 좋습니다.]
전생에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구 부인은 무공을 익히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호신용일 뿐 고수의 수준은 아니었다. 세가의 직계에게만 전수되는 모용세가의 절학은 배우지도 못했다.
하지만 구 부인이 내 심증대로 혈교의 끄나풀이 맞다면, 본래의 무위를 숨기고 대외적으로는 호신용으로 한수 배웠을 뿐이라고 위장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형이 위험할 일이 없기는 하겠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다.
실제로 저번 검후비동에서는 무려 화경의 고수인 검후를 고전시킨 게 혈교 놈들이다.
사형도 방심하면 안 된다.
‘사형을 데리고 구 부인을 제압한 뒤에는 호각을 불면 되겠지.’
옷 안쪽에 달랑거리는, 목에 걸린 호각의 감촉이 느껴졌다.
특수한 구조로 만들어진 이 호각을 불면 특수한 청술(聽術)을 배운 고수만이 들을 수 있는, 일반인은 듣지 못하는 음역대의 소리가 나왔다.
당연히 청술을 배운 건 천지회 소속 정보원들. 게다가 여기는 천지회의 수장인 신승이 있는 소림사가 아닌가? 당연히 주변에 정보원들이 깔려 있을 터. 그러니 내가 호각을 부는 즉시 천지회 요원들이 이 장소에 도착할 것이다.
게다가 나는 신승, 적사월과 안면이 있으니, 뒷수습은 그 노친네들에게 맡기면 된다.
어차피 혈교 관련 일이니 알아서 잘하겠지.
[알았어. 사제.]
사형이 내게 대답하면서 내 손을 꽈악 쥐었다.
[내가 지켜줄게.]
오늘만 대체 몇 번째 듣는 이야긴지.
뭐 나쁘지는 않았다. 미래의 천하제일인, 현재 화경의 절대고수가 날 지켜준다는 이야기니까 말이다.
그렇게 모든 대비책을 전부 세워둔 나는 모용위를 따라 구 부인이 머무른다는 최상층에 도착했다.
겉보기에는 깔끔해 보이는 최상층, 나무 문 앞에 선 모용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부인. 이 소협과 진 소저를 모셔왔습니다.”
“들라 하세요. 공자.”
끈적이는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후후후후후후. 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두 분 모두 즐거운 시간 되시길.”
끼이익.
마찰음과 함께 나무 문이 열렸다. 문 너머로 보이는 광경은······.
주루 1층보다 더 심각할 정도로 음란했다.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정체불명의 향기가 코 끝을 자각했다. 신체가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삼음진결의 구결을 읊었다. 차오르는 음한지기가 들끓는 양기를 억눌렀다. 나는 그 상태로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그녀가 있었다.
구옥련.
모용세가의 비선실세.
어두컴컴한 방 내부, 희미한 조명을 보면 언뜻 20대 후반의 농염한 미시처럼만 보인다.
하지만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내 시야에는 훤히 보였다.
40대 특유의 자글자글한 눈가 주름과 팔자 주름, 그리고 흘러내리는 것 같은 뱃살이.
으윽.
끔찍하다.
구 부인이 우리를 바라보며 웃었다.
“호호호호. 두 분이 바로 구주팔황에 이름이 드높은 공동괴협 이 소협과 신비고수 일검유희 진 소저군요. 자리에 앉으세요.”
구 부인이 자리를 권했다. 나는 사형과 함께 준비된 테이블에 앉았다.
방 가운데 놓인 향로에서 타닥타닥 타고 있는 정체불명의 약초. 딱 봐도 이지를 흐트러트리고 춘기(春機)를 북돋는 색혼향이다.
쪼르르르.
구 부인이 나와 사형 앞에 놓인 찻잔에 차를 따랐다.
“이 소협께서 금주 중이라는 사실을 모용 공자한테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술 대신 차를 준비했으니, 드셔주세요.”
가까이서 보니 주름을 두꺼운 분으로 가린 흔적이 역력했다.
나는 차를 내려다봤다.
딱 봐도 삼류 색협지처럼 차에 춘약을 탔을 게 분명했다. 어두워서 일반인들은 판별할 수 없겠지만, 전문가인 내 눈에는 보였다.
보통의 녹차보다 살짝 탁하고, 바닥에 가라앉은 이물질이. 범인들은 차 찌꺼기라고 여길 만하지만 내 눈에는 아니었다.
이건 춘약을 탄 흔적이었다.
흔한 색협지에 나오는 클리셰처럼 이 이세계 중세 무림에서 춘약은 독이 아니었다. 따라서 설령 만독불침의 경지에 이르더라도 춘약의 자연적인 해독은 불가능했다.
춘약을 해독하는 방법은 셋 중 하나였다. 특수한 해독법을 익혔거나, 해약을 먹거나, 아니면 음양의 교합을 통해 해독하거나.
그리고 나는 동창 요원으로서 현장 업무를 위해 춘약 해독법을 배운 전적이 있었다. 반면에 사형은 아니다.
사내인 사형과 음양의 교합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내가 먹어야 했다.
거절하는 쪽보다는 마시는 쪽이 구 부인의 의심을 덜 살뿐더러.
‘춘약을 먹어서 탁기는 배출하고 약효만 흡수할 수 있다면, 내 정력도 진일보할 것이다.’
춘약은 정력에 좋았다.
약독동원. 약이 곧 독이고, 독이 곧 약인 것처럼 춘약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약재를 나쁘게 쓰면 춘약이지만, 바르게 쓰면 정력제다. 춘약이라는 명칭부터가 춘기(春機)를 북돋는 약이 아니던가? 이 춘기를 북돋는 약효를 잘 갈무리해 흡수한다면 내 정력의 경지가 한층 더 상승할 수 있는 것이다.
[사형, 약을 탄 것처럼 보이니 제가 먹겠습니다. 사형은 거절하십시오.]
나는 사형에게 전음을 보낸 뒤에 그대로 차를 들이켰다.
먹자마자 뜨거운 약효가 온몸에 퍼졌다. 하지만 나는 전생에 무려 현경의 고수였던 몸. 현경의 감각을 통해 혈도에 흐르는 약효를 억제하고 탁기를 몸 밖으로 자연스럽게 흘리며 약효를 사지백해로 퍼뜨렸다.
온몸에 춘약의 이로운 기운이 스며들면서 한층 더 양기와 정력이 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음 좋아.
“차가 맛있군요. 아, 진 소저는 이제 금식(禁食)해야 할 시간이라. 제가 나머지도 먹겠습니다.”
나는 사형 몫까지 차를 들이키면서 마찬가지로 춘약을 해독했다.
내 모습을 본 구 부인이 끈적하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이 소협과 진 소저, 두 분 모두 용모가 출중하군요. 선남선녀(善男善女)라 할 만합니다. 특히 이 공자께서는 그야말로 천상의 미동(美童)이 따로 없군요.”
뭐?
나더러 미동, 그러니까 게이 같은 미소년이라고?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지금은 아직 화를 표출할 때가 아니다.
나는 참으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후후. 오늘 본가에서 준비한 연회는 어떻습니까? 마음에 드십니까?”
“마음에 드는군요. 모용세가가 풍류로 유명하다더니, 과연 그 말이 맞습니다.”
“이 소협도 풍류에서는 천하제일을 다툰다고 들었습니다. 후후, 풍류에는 여색(女色)이 빠질 수 없죠.”
나와 대화를 나누던 구 부인의 시선이 음흉하게 변했다.
그녀가 입맛을 다셨다. 이쯤 되면 춘약의 기운이 전부 퍼졌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양기를 얼굴로 보내 얼굴을 붉게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숨소리도 가쁘게 연기했다.
“그 말이 맞습니다. 운우지락이야말로 풍류의 시작이자 끝이라 할 수 있죠.”
이건 진심이었다.
풍류의 최종 목적은 운우지락.
섹스야말로 궁극의 쾌락이다.
“이 소협의 말이 참으로 옳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저, 그리고 진 소저와 함께 셋이서 구름과 비의 즐거움을 즐기는 건 어떠합니까?”
사르륵.
구 부인이 윗옷을 벗었다. 그녀의 흘러내리는 피부와 기름진 뱃살, 그리고 풍성한 수풀이 보였다.
끔찍하군. 눈이 오염될 것 같다. 인터넷에서 봤던 수많은 테러용 혐짤이 떠올랐다. 차라리 사내기는 하지만 우리 사형이 훨씬 낫다. 순간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구 부인의 몸에서 달콤한 향기가 피어올랐다. 그녀의 안광이 번쩍였다.
“호호호호호호.”
구 부인이 웃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내력이 깃들었다. 몸에서는 무형지기가 피어올랐다.
춘약도 모자라서 이제는 미염공에 섭혼술까지.
19금 만화식으로 표현하자면 구 부인이 내게 최면어플을 쓴 것이다. 그것도 제법 강력하고 위력적인 수준이었다. 미염공으로 현경의 경지까지 오른 적사월 수준은 아니지만, 웬만한 고수들도 홀릴 정도로 고절한 섭혼술의 기운이 구 부인의 안광을 통해 내게 쏟아졌다.
하지만 구 부인의 섭혼술은 내게는 아무 효력이 없었다. 천하제일미 적사월이 사용하는 미염공마저 아무 효과가 없었던 나다.
그런데 나이가 일 갑자를 넘은 적사월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이는 아줌마 주제에 섭혼술을 쓴다?
색도의 일대종사인 내가 고작 최면 어플 따위에 걸릴 리가 없다.
아주 종합 선물 세트가 따로 없다.
“제가 오늘 공자한테 진짜 운우지락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극상의 쾌락을······. 한 번 경험하면 다시는······. 잊지 못할······.”
구 부인이 흉측한 반라(半裸)의 몸으로 내게 다가오려던 그때.
덥석.
나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으면서 말했다.
“······구 부인, 이건 올바른 운우지락이 아니요.”
이 미친년이 어딜 만지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