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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148화 (148/171)

148화 대단한 비무

검룡 진패선은 웃었다.

하늘이 내린 검재를 타고난 그였다. 유서 깊은 구대문파, 그중에서도 검문(劍門)으로 유명한 화산파에서 역대 제일로 꼽히는 기재가 그였다.

백도제일검문(白道第一劍門)을 다투는 무당파, 남궁세가의 구도가 진패선의 등장으로 흔들렸다.

본래 무당파, 남궁세가보다 한 수 아래 검문으로 평가받던 화산파가 진패선의 존재만으로 두 문파와 자웅을 겨룰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다.

그 정도의 재능을 타고난 진패선이었다.

그는 검으로 하는 대결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 없었다. 얼마 전, 유진휘라는 새로운 하늘을 만나기 전까지는.

공동신협 유진휘.

천고일재, 천 년에 한 번 나오는 천재라는 말이 더없이 잘 어울리는 괴물. 불합리한 재능을 타고난 천재. 그의 검 아래 진패선은 처음으로 패배했다.

그것도 단 일합(一合)의 승부로 결정된 패배였다. 그날의 충격적인 패배 이후, 검룡 진패선은 본인이 재능에 취한 어린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사부도, 화산의 장로와 장문인도, 나아가 백도 무림 전체에서 그를 천하제일검재라고 치켜세워줬으며, 스스로도 화산의 검학을 대성했다 여겼다. 검룡(劍龍)이라는 칭호에 기고만장했다.

하지만 실은 화산의 검학은 대성조차 하지 못했고 천하제일검재도 아니었던 것이다.

정저지와(井底之蛙)의 신세를 깨달은 진패선은 그날 이후 폐관수련에 들어가 뼈를 깎는 고련을 거듭했다. 유진휘가 휘둘렀던 일검. 더없이 아름다우면서도 치명적이었던, 모든 검의 묘리를 담은 듯한 일검을 분쇄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그렇게 즐겼던 음주가무와 풍류도 끊었다. 용봉지회 직전까지 수련동에서 벽곡단만 먹으며 오로지 검만 파고들었다. 검에 파고들기 위해 모용 공자의 청담회 초대도 거절했다.

그리고 오늘.

유진휘의 사제인 이철수를 상대로 만난 것이다. 유진휘와 같이 공동의 검을 동문수학한 상대.

그가 상대라면 지금껏 수련해온 화산의 검을 마음껏 펼쳐낼 수 있다. 나아가, 이철수의 뒤에서 그를 투명한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는 유진휘에게 화산의 검이 이렇게 높고 화려하다고. 당신이 꺾은 건 화산의 검이 아니라고, 나도 성장했다고.

그렇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진패선은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과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공동신협 유진휘에 이어 또다시 그의 승리를 위협하는 검객이 등장했던 것이다.

공동괴협 이철수.

자격이 있는 상대가 아니라면 검을 뽑지 않겠다고 선언한 공동파의 괴짜. 직접 마주한 그의 검은 그럴 만한 자격이 충분했다. 그는 광오하지 않았다. 진실로 검의 가치를 아는 진정한 검객이었다.

실제로 방금의 검격은 날카로웠다. 조금만 움직임이 느렸어도 이미 진패선 본인은 패배했을 것이다. 다행히 의복을 내주며 회피에 성공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검의 진가를 아는 상대를 만났다. 비무에서 그를 두 번째로 위협할 상대를 만났다. 그러니 어찌 아니 기쁠 수 있겠는가?

진패선은 웃었다. 의복이 찢겨 맨몸이 드러난 건 그에게 있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비무는 결국 실전을 대비하기 위한 연습. 실전에서 옷이 찢어져 알몸이 되었다고 당황한다 해서 적이 봐주는 법은 없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하는 것처럼, 옷이 없으면 맨몸으로 싸워야 하는 법이었다.

아니다.

어쩌면.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에 검만 든 이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검객의 모습일지도 몰랐다. 거추장스러운 의복이라는 구속을 벗어던진, 나체에 오직 검만 든 이 모습이야말로.

번쩍.

진패선의 머리에 깨달음의 섬광이 번뜩였다.

알몸의 진패선이 검을 들었다. 그의 근육이 꿈틀거리며 매화 향기를 피워올렸다. 진패선의 검에 분홍색 검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곧이어 매화가 흐트러지듯 피기 시작했다.

두 번째 호적수를 만났다. 무인으로서 호승심이 가슴속에서 들끓었다. 진정한 검객의 길을, 깨달음을 가르쳐준 상대다. 은인이다. 그렇다면 최고의 검으로 예우해야 했다. 전력을 다해 비무에 임해야 했다.

그의 피가, 내력이 들끓는다. 감정에 동조한 공력이 폭발적으로 혈도를 내달리며 매화 향기가 자욱하게 비무대에 내려앉는다.

진패선이 검을 뻗었다. 그의 칼날에서, 알몸에서 흐트러지듯 피어오른 수많은 매화 송이가 꽃잎이 되어 흩날렸다. 그의 시야가 아득해졌다. 인지와 감각이 넓어지며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나체로 얻어낸 심득이 진패선의 세계를 뒤흔들었다. 깨달음에 취한 진패선이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둘렀다.

매화성류(梅香成流)

초식 이름대로 매화 향기가 물결이, 노도(怒濤)가 되어 이철수에게 몰아닥친 순간.

번쩍.

분홍색 섬광이 비무대를 가득 메웠다.

*

‘이 미친놈이······!’

갑자기 각성이라도 한 것처럼 하남자 같은 매화 향기를 마구 뿌려대는 광룡의 행각에 나는 경악하면서 행운유수의 보신경을 밟아 회피했다.

매화검법.

정식 명칭은 이십사수 매화검법. 이십사수라는 말 그대로 스물네 초식으로 구성된 매화검법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황궁무고에 보관된 매화검법의 비급 덕분이었다.

그래서 지금 진패선이 펼친 초식도 어떤 초식인지 잘 알고 있었다.

매화성류. 매화 향기가 물결처럼 밀려든다는 초식명답게 빠른 검격을 수없이 반복해 노도(怒濤)처럼 적을 쉴 틈 없이 몰아세우는 초식.

나는 놈의 검격을 전부 쳐냈다. 깡! 깡! 깡! 깡!

내 흑색 검기와 놈의 핫핑크 검기가 부딪히며 스파크가 튀었다.

손아귀가 찢어질 정도의 반탄이 전해진 순간.

스스스스스스스.

놈의 핑크색 검기가 유형화되어 고운 실타래처럼 늘어지기 시작했다. 검기의 상위 기예인 검사(劍絲)였다.

검룡의 경지는 대외적으로 절정. 절정의 경지에서도 제한된 상황이라면 검사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놈의 검사는 절정의 고수가 내뿜는 검사와는 달랐다.

자유자재로 이루어지는 내력 수발과 온몸에서 피어오르는 매화 향기.

‘설마······.’

나는 놈의 눈을 바라보았다. 핫핑크 안광이 인상적인 검룡의 눈동자는 이미 무아지경에 취해 있었다.

그렇다.

놈은 지금 나와의 비무에서 깨달음을 얻어 절정에서 초절정으로 도약한 것이다.

검룡, 아니 광룡 이 놈이 정말 미쳐버린 것인가? 대체 나체가 되면서까지 무슨 깨달음을 얻은 것인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무아지경에 빠진 상태다. 내가 잘못 건드렸다가는 주화입마가 와서 폐인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럼 안 되지.’

이곳은 생사결이 아니라 비무 현장. 그것도 그냥 비무가 아닌 용봉지회의 결승전이다. 백도 무림의 권력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구대문파이자 정파제일기재를 폐인으로 만든다?

뒷감당이 어렵다. 남 좋은 일은 안 하는 주의지만, 이번만큼은 놈의 무아지경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내 승리를 쟁취해야 했다.

검룡 너 이 새끼, 오늘 대가는 내가 톡톡히 이자까지 쳐서 평생 받아낼 거야.

나는 검을 다시 잡았다. 내력을 불어넣었다. 흑색 검기가 유형화되더니 실처럼 길게 늘어졌다. 검사였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내 몸에서 피어오른 흑색 기파와 검룡의 핫핑크 기파가 서로 부딪혔다.

파츠츠츠츠츠츠츳!

놈의 검사와 내 검사가 뒤엉킨 순간.

“하압!”

놈이 기합을 내질렀다. 그와 함께 검사로 이루어진, 유형화된 핑크색 매화가 화려하게 피어났다.

허초와 실초가 구분되기 어렵게 섞였다. 초입이라더라도 같은 초절정의 검객이 펼친 매화검의 절초다. 빠르게 파쇄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면 검룡에게 주화입마를 입힐 위험이 있다.

어쩔 수 없다. 육참골단의 수를 사용할 수밖에. 나는 흑색 검사가 타오르는 검을 들어 보신경을 밟으며 역으로 검룡의 품을 향해 파고들었다.

파스스스스스스스!

놈의 검격을 맞은 내 흑색 무복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오랜 단련으로 만들어진 내 탄탄한 전신 근육과 케겔, 젤크, 행잉의 삼대운동으로 단련된 우람한 양물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이제는 공동괴협까지 알몸이 되었소!”

“에구머니나! 망측해라!”

“나체 비무라니! 이런 남사스럽고, 남 보기 부끄러운 결승은 용봉지회 사상 최초요!”

“눈 뜨고 봐주기 어렵군!”

씨발.

내가 알몸이 되는 건 절세미녀와의 음양합일 직전에서라고 맹세했거늘. 저 빌어먹을 광룡 놈 때문에 알몸이 되다니. 하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반드시.

무조건 승리해야 했다. 알몸이 되더라도 그리해야 했다. 이왕 알몸이 된 거, 진 병신보다는 이긴 병신이 되어야 했다.

현경의 심득을 일깨우면서 역라순혈공을 운용한다. 음양이기가 역혈의 경로로 흐르며 혈도를 찢어발길 듯 증폭된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알몸이 된 내 몸에서 흑색 기파가 피어올랐다. 그 상태에서, 나는 드디어 이지를 찾아가는 검룡 진패선을 바라보며 검을 치켜들었다.

그래, 이제 무아지경에서 벗어났으니 확실히 팰 수 있겠군.

우우우우우우우웅!

내력을 받아들인 검이 떨렸다. 쿠웅! 아직 개방되지 않은 중단전이 흔들렸다. 강제로 의념을 이끌어내 내력과 합일시켰다.

불안정한 모습으로 실처럼 늘어졌던 흑색 검사가 의념과 합일하며 서서히 제대로 유형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칼날에 검은 별빛이 내려앉았다. 검강(劍罡)이었다. 초절정의 끝자락이자 현경의 심득으로 구현한 불안정한 흑색 검강을 나는 그대로 진패선을 향해 내리꽂았다.

콰-과-과-광!

비무대가 흔들렸다. 기파가 부딪히며 폭탄이 터지는 듯한 폭음이 울렸다.

“커헉!”

그와 함께 검룡의 외마디 비명이 비무대를 진동시켰다. 검룡이 입에서 피를 뿜으며 비무대 밖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일부러 적당히 조절해서 비껴서 맞췄으니, 생명에 지장은 없을 것이다.

털썩.

검룡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 광경을 본 나는 내력을 거둬들였다. 억지로 일으킨 불완전한 검강이 빠르게 사라졌다.

‘큭.’

목구멍까지 핏덩이가 올라왔지만, 나는 뱉지 않고 삼켰다. 지금은 약한 모습을 보여줄 때가 아니었다. 검룡 놈이 날 알몸으로 만든 덕분에 이미지 세탁은 반쯤 물건너가긴 했지만, 그래도 마무리는 강한 척을 해야 했다.

엉망진창이 되어 부서진 비무대가 보였다. 그 너머, 장외로 떨어진 검룡이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보였다.

“스, 승자는 공동파의 이철수 소협이오!”

곧이어 심판 역할을 하는 무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침내.

용봉지회 승리가 내 손에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관중석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도서관이 개장된 듯한 느낌.

“사제. 옷 입어.”

스윽.

언제 다가온 건지, 내 뒤로 온 사형이 내 몸에 흑색 무복을 걸쳐줬다.

나는 빠른 속도로 옷을 입었다. 이제 좀 덜 쪽팔리는군.

“믿을 수 없군.”

“공동괴협이 검강까지 사용할 정도의 고수였을 줄이야!”

“화산파의 진 소협도 마찬가지요. 그가 초절정의 반열에 오른 고수일 줄은 몰랐구려.”

“두 사람 모두 진작에 후기지수의 수준은 뛰어넘었구려. 허허허허. 이런 두 기재가 백도 무림의 후기지수라니, 정파의 홍복(洪福)이 따로 없소!”

“나체 비무는 민망하기 짝이 없지만, 확실히 대단한 비무가 틀림없소.”

“솔직히 두 사람의 몸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천하의 무문을 상대로 비무행에서 전승한 공동신협 유진휘에 이어 공동괴협 이철수의 용봉지회 승리라니······. 이제는 공동파가 완전히 부활했다고 봐도 되겠소.”

슬슬 웅성대기 시작하는 관중들.

나는 관중들의 말을 들으면서 살짝 웃었다.

그래. 이거지.

“그나저나 용봉지회에서 우승했으니, 공동괴협한테도 용봉(龍鳳)의 칭호를 내려야 할 텐데, 무엇이 좋겠소?”

“공동괴협한테 어울리는 용봉의 별호는 하나밖에 없지 않소. 괴룡(怪龍) 말이오!”

“괴룡이라! 아랫도리에 용이 똬리를 틀은 공동괴협한테 정말 딱 들어맞는 별호구려!”

“괴룡이 정파제일 후기지수의 자리에 오르는 건 정파 무림 사상 최초일 거요.”

“괴룡 이철수의 용봉지회 승리라니, 백도 무림에 한바탕 파란이 일겠구려.”

하지만 뒤이은 관중들의 말을 들은 나는 표정 관리를 급하게 해야 했다.

뭐?

검룡이 아니라 괴룡?

이런 미친놈들이. 내가 검룡 별호 하나 달자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확.

내가 혀를 차던 그때.

“공동파의 이철수!”

저 멀리서 기분 나쁜 내시 목소리가 비무대를 쩌렁쩌렁 울렸다.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무림맹주 도황(刀皇)을 제치고 귀빈석에서도 가장 상석에 앉은 황상이 있었다. 황상의 옆에는 동창 호위무사들이 있었다.

그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공주 전하께서 우승자와 독대하여 부상을 하사할 예정이다! 영광으로 알고 의관(衣冠)을 정제하거라!”

그의 말을 들은 내 시선이 황상을 향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황상의 표정은 무표정했지만, 뺨은 살짝 분홍색으로 달아오른 상태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웃으면서 예를 취하며 말했다.

“은혜가 망극하옵니다. 전하.”

이제, 황상에게 승리를 바치러 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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