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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155화 (155/171)

155화 정파제일 후기지수

용봉지회가 끝나고 몇 달 뒤.

하남에서 출발한 나와 일행은 마침내 그리운 나의 집, 공동파 본산에 도착했다.

“드디어 도착이군.”

우뚝 솟은 공동산의 모습이 보였다.

서래제일산(西来第一山)이라는 별칭답게 경치 좋은, 익숙한 풍경들이 스쳐 지나갔다.

전생에서도 생각했지만, 이놈의 중원은 왜 그렇게 땅덩이가 넓은 건지 모르겠다. 복귀하는 데 개월 단위나 걸리다니.

괜히 인터넷에서 대륙의 기상이니 뭐니 하는 게 아니다.

서문청하와 서하린, 그리고 사형의 눈에 이채가 맴돌았다.

“와아! 여기가 이 오빠랑 유 형이 머무르는 공동산이구나!”

옆에서 불청객 같은 목소리가 들어왔다.

공동파의 식충이, 아니 식객이 된 당영령의 목소리였다. 진짜 아이처럼 와아하고 신나하는 모습이 꿀밤이 마렵다.

빨리 경지를 올려서 저 빌어먹을 돌팔이 이마에 딱밤을 먹이던가 해야지.

“갑시다. 당 선배.”

나는 소란 떨고 있는 당영령을 데리고 공동산을 올랐다.

경공을 펼치며 공동산을 올라가니 귓가에 바람 소리가 스쳤다. 주마간산(走馬看山)처럼 주변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익숙한 산문이 보였다.

공동파.

웅장한 필체로 쓰인 현판이 걸린 산문은 내가 처음 공동파에 왔을 때와는 다르게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이게 다 내가 뼈 빠지게 굴러서 벌어온 돈으로 문파를 재건한 덕분이다.

산문 앞에 선 나는 문을 끼이이익 하고 열고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사부님.”

“왔느냐?”

산문 너머, 이제는 제법 재건된 전각들이 들어찬 공동파 본산에는 그가 있었다.

현(現) 공동파 장문인.

내 사부인 복마검객 전영이었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하지만 우리 일행을 보고 제법 반가운 듯한 눈빛을 보여주면서 내게 말했다.

“철수야. 용봉지회 우승으로 본 파의 위명을 드높였다는 사실을 들었다. 참으로 고생이 많았구나.”

전영이 살짝 뿌듯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제자의 별것 아닌 공을 치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부님.”

“휘아랑 린아도 먼 길 다녀오느라 수고했다. 청하도.”

모두와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은 전영의 시선이 당영령에게 머물렀다.

당영령이 공동파의 식객이 되기로 했다는 사실 정도는 사부도 서신을 봐서 알고 있을 터.

하지만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인지 사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당 선······.”

“선배 아니야! 그렇게 부르지 마! 영령이는 과년(瓜年)이니까!”

사부의 말허리를 자른 당영령이 양팔을 바둥바둥 흔들면서 말했다. 그녀의 트윈테일이 흔들렸다.

저 웃기지도 않는 과년 컨셉은 대체 언제 그만두는 거지?

“아, 알겠습니다.”

“영령이! 공동파가 마음에 들었어! 산도 좋고 물도 좋고! 전각도 생각보다 괜찮아! 그럼 앞으로 영령이 잘 부탁해!”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는 사부와 돌팔이.

그렇게 해후(邂逅)가 마무리된 뒤, 일행을 각자 숙소로 돌려보낸 후에 나는 오랜만의 현천궁에서 사부와 일대일 대면 자리를 가졌다.

“흠흠. 먼 길 오느라 다시 한 번 수고가 많았다.”

쪼르르.

사부가 내게 차를 따라줬다. 옛날에 마시던 싸구려 엽차가 아닌, 중등품의 녹차였다.

나는 사부가 따른 차를 공손히 받아들고 마셨다.

“용봉지회 이야기는 소식통을 통해 잘 들었다. 결승에서 검룡 진 소협과 나체로 비무했다고······.”

사부의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초인적인 컨트롤로 간신히 뿜으려던 차를 목구멍 너머로 꿀꺽 삼키면서 말했다.

“······비무 도중에 일어난 불가피한 사고였습니다. 사부님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할 따름입니다.”“아니. 되었다. 풍진강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법. 의복이 찢어지는 건 사고 축에도 못 끼느니라. 그런 사소한 흠결로 너를 책망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철수 너는 용봉지회에서 우승하여 본 파의 위명을 구주팔황에 떨치지 않았느냐?”

사부의 입가에 진지한 웃음이 걸렸다.

사문의 재건이 평생 소망이었던 사람이라 그런가. 무뚝뚝하고 무표정했던 평소와는 달리 제법 웃음이 많아졌다.

“이로써 본 파의 재건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되었다. 전부 철수 너의 덕분이니라.”“과찬 감사합니다.”

사부와 나름 훈훈하게 대담을 주고받던 그때.

“······휘아가 본인의 성별을 너와 하린이한테 공개했다 들었다.”

“그렇습니다. 사형이 여인일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사부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형을 남장시킨 건 당연히 사부일 터. 사부의 선택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풍진강호에서는 사내가 확실히 유리했다. 특히 사형은 장문제자라 더 그랬다. 장차 사문을, 그것도 몰락한 사문을 재건할 일대기재가 여인인 것보다는 사내인 쪽이 더 유리했다.

그래서 남장을 시킨 것이리라.

“나는 휘아한테 선택권을 주었다. 동문인 너와 하린이한테 성별을 밝힐 것인지, 아니면 숨길 것인지 말이다. 나라고 해서······. 휘아한테 모든 짐을 떠맡길 생각은 아니었다.”

사부가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의 얼굴이 씁쓸함에 잠겼다.

“······하지만 서찰을 받고 보니, 어린 휘아한테 남장을 강요한 건 내 잘못이라는 사실을 통감하였다. 용서를 구하고 싶구나.”

1회차에서 사형은 내가 죽을 때까지 사내로 지냈다.

그때의 사형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산전수전 공중전 전부 겪은 나였지만, 사형의 속내까지는 알 수 없었다.

직접 대면한 적이 몇 번 없기도 했지만, 만났을 때도 나는 사형이 인형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강호 무림에서 대협으로 추앙받는 검성이지만, 협객이 아닌 마리오네트 인형 같은 사람.

근본적으로 착한 건 맞지만, 어딘가 텅 비어있는 공허한 사람.

그게 내가 사형에게 받은 인상이었다.

지금 감정을 풍부하게 드러내는 모습과는 천양지차였다.

“······그건 저한테 할 말씀이 아닙니다. 사형한테 직접 말씀하셔야지요.”

“그래. 철수야. 네 말이 맞다. 휘아한테 직접 말해야겠지······.”

사부가 말끝을 흐렸다.

오늘따라 사부의 어깨가 유난히 작아 보였다.

전생의 사형은 천하제일인의 자리에 올라 끝내 공동파를 재건해냈다.

그때 사부는 행복했을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품에서 주섬주섬 주머니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풀어놓았다.

갈색 영단(靈丹) 하나가 청량한 향기를 풍겼다.

소림사의 대환단이었다.

“이건······.”

“사부님 몫의 대환단입니다. 신승(神僧)께서 주셨습니다.”

“이런 귀한 물건을······. 내가 받아도 되겠느냐?”

“저는 용봉지회 우승 상품으로 받은 대환단이 한 알 있어서 괜찮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전부 영단을 복용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 말을 들은 사부가 떨리는 손으로 대환단을 조심스럽게 집었다.

“이건 사형이 복원한 혼원일기공의 비급과 사형이 직접 창안한 복마구소검의 비급입니다.”

나는 품에서 서책 한 권을 꺼냈다. 내가 손수 작성한 혼원일기공과 복마구소검의 비급이었다.

“······고맙구나.”

그의 눈가에서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렸다.

남자의 눈물이라니, 별로 보고 싶지 않다.

“제자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고생했다.”

나는 사부와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고는 현천궁에서 나와 입구에서 호법을 섰다.

곧이어 현천궁에서 상서로운 기파가 기감에 감지되었다. 기파가 가라앉은 뒤, 나는 현천궁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거기에는 가부좌를 틀고 앉은 사부가 있었다. 사부가 눈을 뜨자 서광(曙光)이 눈동자에 어렸다가 사라졌다.

전영도 대환단의 힘으로 일류를 돌파하고 임독양맥을 타통하여 절정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대공을 축하드립니다. 사부님.”

“나야말로 고맙구나. 목욕부터 해야겠구나. 내가 목욕하는 동안 손님이 온다면 네가 본 파를 대신해서 맞이하도록 하여라.”

사부가 내게 말했다.

임독양맥을 타통해서 그런지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노폐물들이 무복에 시커멓게 묻어나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손님?

손님이 올 일이 있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부를 목욕하러 보낸 뒤에 현천궁을 지키면서 손님 대접용 과자를 까먹고 있었다.

그때.

“장문인! 장문인 계시오? 내 전해줄 소식이 있어 직접 이렇게 산에 올라왔소이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에서도 주향(酒香)이 묻어나는 듯한, 가래가 낀 걸걸한 음성.

안 봐도 뻔했다.

‘홍취개로군.’

개방 화정현 지부의 장을 역임 중인 삼결제자가 공동파에 도착한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경공을 펼쳐 산문 앞으로 향했다.

끼익.

문을 열자 얼굴이 주취로 벌겋게 물든, 꾀죄죄한 거지 한 명이 봉을 등산지팡이처럼 짚고 서 있었다.

“응? 이거 사해만방에 그 이름이 드높은 정파제일 후기지수 검룡 소협이 아니오? 하하하하하. 오랜만이구려!”

나를 본 홍취개가 반가운 목소리로 아는 척을 해댔다. 거지 특유의 꼬랑내가 코 끝을 찔렀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검룡.

그래, 흐흐흐흐.

내가 검룡이라는 말이지. 입가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거기에 정파제일 후기지수라니!

그야말로 여심(女心)을 휘어잡을 모든 칭호가 내 수중에 떨어진 셈이다.

“맞소이다. 흐흐흐흐흐흐. 내가 바로 검룡(劍龍)이요! 그래, 본 파에는 무슨 일로 오셨소? 사부님께서는 지금 잠시 부재중이라 내게 장문 대리를 맡기셨소이다.”

나는 기분 좋은 목소리로 홍취개를 안으로 들이면서 말했다.

뭐 무슨 이야기를 하러 온 건지는 대강 짐작이 갔다.

개방은 기본적으로 정파 무림의 이목(耳目) 역할을 하는 문파. 정보 의뢰를 하지 않아도 찾아왔다는 건, 타 문파나 무림맹에서 개방을 전령 역할로 고용해서 그런 것이다.

이 경우는 무림맹이고, 내용은 아마도 천마의 전언을 들은 무림맹이 다시 개방을 고용해서 공동파에 소식을 전하라 시킨 모양이다.

“장문 대리라, 뭐 좋소. 어차피 검룡 소협과 관계없는 일도 아니니. 소협께 말하겠소.”

탁.

홍취개를 경내로 들인 나는 산문을 닫았다.

나는 그를 접객당으로 안내했다. 내가 입문할 때까지만 해도 흉가처럼 반쯤 무너진 접객당은 보수가 완료된 상황이라 이제 제법 멀쩡한 건물로 변해 있었다.

접객당의 객실로 홍취개를 안내한 나는 서문청하에게 전음을 보내 다과를 내오라 시켰다.

“흥. 여기 있어요!”

드르륵.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온 서문청하가 퉁명스러운 얼굴로 탁하고 다과상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녀가 나를 찌릿하고 바라보더니, 흥하고 콧소리를 내면서 문을 닫고 사라졌다.

“드시지요.”

쩝쩝.

과자와 차를 물처럼 들이킨 홍취개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우. 이제 좀 살 것 같구만.”

“전언이 무엇이오?”

내 말을 들은 홍취개가 운을 뗐다.

“천마(天魔)가 검룡 소협의 제안을 수락했소. 천산에 방문할 흑백양도의 후기지수들한테 천마의 이름으로 절대 안전 보장을 약속한다고 하오.”

신승의 예견대로였다.

천마는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나는 무조건 마교에 가야 할 수밖에 없는 몸이 되었다.

“맹에서는 공동파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기로 결정하였소. 곧 무림맹 감숙 분타주가 교체될 예정이오. 도황 대협이 직접 공문까지 하달했으니 믿어도 좋소.”

도황은 나와 한 약속을 지켰다. 무림맹에서 공동파 지원 확대를 천명했다. 감숙 분타주의 교체는 당연했다. 지금의 감숙 분타주는 서문세가와 긴밀한 관계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도련에서도 마교의 제안을 수락했소. 사파의 후기지수인 사파제일룡인 흑사룡 위소련과 하오문주 백면암군의 이제자(二弟子)인 휘봉(輝鳳) 연소월이 지금 마교로 가기 위해 이곳 감숙으로 오고 있소.”

하지만 마지막 소식은 나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위소련의 참가는 예상 범주 내였다.

하지만 휘봉 연소월의 참가는 예상 밖의 일이었다.

게다가 그 둘이 이곳, 감숙으로 온다는 사실도 어이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휘봉 연소월.

백면암군의 둘째 제자라고 널리 알려진 그녀는······.

화면호검 여예령, 염희 능월향을 이은 적사월의 세 번째 부캐였기 때문이다.

아니 또 적사월이야? 게다가 이번엔 후기지수?

나이가 몇인데 후기지수라니.

어이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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