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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소女
115. 직소女 (2)
그런데 지왕이 잘못 생각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오늘이 수요일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인즉슨 아직 대부분의 애들이 시험 기간 중이라는 얘기.
지왕은 생각나는 애들한테 다 톡을 날려봤지만, 시험이 오늘 끝나는 애들은 하나도 없고 가장 빨리 끝나는 애도 내일이 시험이 끝나는 날이었다.
그렇게 된 건 지왕이 시간표를 ‘아직 왕따 탈출을 하기 전 가급적 같은 과 애들하고 겹치지 않도록 짰었던 탓’이 컸다.
‘에이씨! 하필이면….’
결국 지왕은 집에서 혼자 낮술이나 처마시기로 하고 마트에서 장을 봐오는 길이었다.
‘후우, 옛날에 왕따일 땐 혼자 먹는 게 이력이 나서 맛있는 거 듬뿍 사와 집에서 먹는 것도 재미가 꽤 쏠쏠했는데. 이젠 혼자 먹으려니까 영 기분이 그렇네. 괜히 옛날 생각도 나고……. 거참, 내가 그새 그렇게 변했나? 사람 마음은 정말 간사해? 불과 두 달 전 일인데 말이야, 쯧.’
발걸음도 예전 왕따 시절엔 가벼웠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발에 추라도 매단 것처럼 무겁게 터덜터덜 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도중에 저 멀리서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응? 설마 …….’
눈에 힘을 주고 유심히 살펴보니, 바로 두 시간 전 지왕에게 망신살을 안겨줬던 바로 그 여자 강사였다.
‘시험 감독만 하고 바로 가는 건가? 걸어가는 걸 보니 집이 이 근처인가 보네? 근데 하필이면 지금 마주칠 게 뭐야? 가뜩이나 술맛도 안 날 것 같아서 기분 꿀꿀한데.’
걷는 속도까지 늦춰가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지왕은 결국 강사를 무시하기로 하고, 길 가장자리로 비켜나 죄 지은 사람 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옆으로 피해갔다.
그러나 까칠한 성격의 강사는 자신을 그냥 지나치는 지왕을 발견하곤 그냥 보내질 않았다.
“이봐, 학생!”
지왕은 얼굴을 구겼다.
‘아 씨팔, 그냥 조용히 지나쳐주면 어디 덧나냐?’
그러고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돌아서서, 눈만 슬쩍 위로 치떠 강사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자 강사는 아주 못마땅한 표정으로 지왕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학생. 설마 날 모르는 건 아니겠죠?”
“아, 아니요. 잘 압니다…….”
지왕의 눈에 힐끔 비친 강사의 얼굴은 그야말로 기고만장이었다. 마치 ‘너 잘 걸렸다. 건수 잡은 거 두고두고 울궈먹어주마!’라고 대놓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런데 왜 봐놓고도 아는 척을 안 해요? 선생을 만났으면 인사를 해야 할 거 아녜요?”
“네? 저 그게 …….”
지왕은 살짝 어이가 없었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아는 척을 안 하고 그냥 지나치려했던 것 자체는 잘못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슨 초딩도 아니고 길거리에서 마주친 건데, 게다가 서로 껄끄러운 상황인데 굳이 이렇게 불러 세워서까지 훈계를 늘어놓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나이 차이가 그리 많이 나는 것도 아니고…….
한편 지왕이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자, 무시당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무안해진 강사는 열이 더 확 뻗쳤다.
“흥, 하긴 선생의 몸을 더러운 눈길로 훑는 녀석 따위한텐 내가 선생이 아니라 만만한 여자로만 보였겠지.”
지왕은 울컥했다.
‘이게 보자보자하니까, 내가 보자기로 보이나?’
그래서 바로 버럭 대들었다.
“듣자 하니 말씀이 너무 지나치신 거 아닙니까?”
강사는 어이가 없었다.
“뭐? 지나쳐?”
“네. 물론 아까 시험 시간엔 저도 모르게 교수님께 눈길이 간 거 인정합니다. 그치만 끝까지 뚫어져라 쳐다본 것도 아니고, 우연히 눈길이 가 있다가 교수님이 불편해하는 걸 알고 바로 고개를 돌렸으니 도덕적으로 그렇게 큰 잘못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아마 그게 잘못이라면 이 세상 모든 남자들은 다 감옥행이겠죠.”
강사는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이 뻔뻔한 …….”
자연 이런 부류의 사람이 거의 그렇듯, 강사는 말문이 막히자 괜히 울컥해서 더 목소리를 높여댔다.
“변태 새끼! 그럼 어디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볼까? 스승의 몸을 음흉한 눈으로 훔쳐보는 게 과연 정상인 건지.”
그러더니 정말로 당장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물어볼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헉! 씨팔, 그냥 조용히 물러나려고 했더니만 …….’
그러고는 어쩔 수 없이 손에 쥐고 있던 폰을 몰래 켜서 아까 강의실 밖에서 찍었던 강사의 사진을 불러내 조작했다.
바로 앞에 강사가 있어서 폰을 눈으로 보며 조작할 순 없었지만, 이미 여러 차례 이런 식으로 해본 터라 별로 어려울 건 없었다.
그리하여 ‘바닥에 떨어진 시험지를 줍느라 허리를 숙여 엉덩이를 지왕 쪽으로 향하고 있던 강사의 사진’에서 조개 부위에 해당되는 부분을 손끝으로 터치해 ‘원격 자동 애무’를 ‘강’으로 걸었다.
그러자 막 저멀리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고 그를 부르러 달려가려던 강사가 돌연 멈칫하며 다리를 비비 꼬았다.
“아흣! …….”
지왕은 속으로 나이스를 외쳤다.
‘됐다! …… 흥, 너 오늘 좃 돼봐라!’
하지만 그런 속마음을 감춘 채 강사의 등 뒤로 다가가 능청스럽게 물었다.
“교수님, 왜 그러세요? 어디 편찮으세요?”
강사는 다리를 꼬며 파르르 경련하느라 목소리까지 다 떨렸다.
“아, 아니. 괜찮, 괜찮아 …… 아흣! …….”
하지만 강사의 눈동자는 벌써부터 초점이 희미해지기 시작하면서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하으읏! …… 왜 갑자기 거기가 …… 하윽! 못 참겠어! …… 아항~! …….’
결국 강사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나 강사의 무릎이 땅에 닿기 전 지왕은 재빨리 강사의 겨드랑이에 팔을 걸어 부축했다.
“앗! 교수님 왜 그러세요?”
강사는 이젠 지왕에게 제대로 대꾸할 정신조차 없는 지경이었다.
“하으읏! …… 다, 다리 사이가 …… 거기가 …… 하으흥~! …….”
지왕은 웃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억지로 참으며 못 알아듣는 척 물었다.
“네? 다리요? 다리가 왜요? 삐기라도 한 거예요?”
그러자 강사는 답답한 마음에 손을 사타구니로 가져가며 힘겹게 말했다.
“아, 아니 …… 다리가 아니고 여기, 여기가 …… 하으읏! …….”
지왕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흥, 뭐야? 콧대 높게 굴더니만 1분도 못 버티잖아?’
그러더니 꽤나 진지한 얼굴로 연기를 했다.
“아 그래요? 그렇담 제가 좋은 곳을 알고 있어요. 그리로 가서 도와드릴게요. 자, 어서 가요.”
그러고는 바로 강사를 부축해 앞의 건물로 데리고 갔다. 거긴 바로 지왕의 단골, ‘SM 모텔’이었다.
우연히도 그 모텔 앞에서 강사와 마주친 지왕이었지만, 이제 그런 우연엔 익숙해져버렸기에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안으로 들어갔다.
‘이 앞을 지나면 언제나 뭔가 좋은 일이 생기는군. 담번에 아예 그냥 한 번 서성여봐? 큭.’
그렇게 여유를 부리며 들어온 지왕이었지만, 그러나 카운터에 있던 알바를 보고는 금방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 당신은?”
그 알바는 ‘원래 이곳에 근무하고 있었지만, 지난 번 파워블로거女를 데리고 갔던 시내의 다른 모텔로 근무지를 옮겼다던 바로 그 알바’였다.
“설마 한달 만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거예요?”
알바는 빙그레 웃었다.
“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치만 지왕은 여전히 얼떨떨했다.
‘뭐야? 얘는. 꼭 날 따라다니는 것 같잖아?’
알바는 지난 ‘파워블로거女’ 때처럼, 이번에도 강사를 힐끔 살펴보더니 지왕에게 바로 방을 추천했다.
“오늘은 여기 ‘작업실을 테마로 한 방’이 어떠신가요?”
“네?”
알바가 펼쳐 보인 안내판에는 각종 공구와 도구 등이 있는 마치 실내 작업장 같은 분위기의 방 사진이 있었다.
‘설마 이 여자가 건축학과 출신이라는 것을 눈치 챈 거? 뭐야? 무당이야?’
지왕이 그렇게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알바는 제멋대로 지왕을 그 방으로 결정시켰다.
“평일 낮 시간이니까 할인 들어가서 2만원입니다. 쉬었다 가시는 거 맞죠?”
“예? 아, 네 …….”
지왕은 얼떨떨해하면서도 아주 자연스럽게 강사의 백에서 2만원을 꺼내 알바에게 건넸다.
“여기요.”
“예, 감사합니다. 그럼 여기 키 받으시고요. 402호입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그런데 그때 계속 혼자 흥분하고 있던 ‘강사女’가 돌연 가늘고 긴 신음 소리를 내뱉으며 어깨를 유난히 심하게 부르르 떨었다.
“하읏! 흐으흐응~~ …….”
지왕은 처음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혼자 아주 신이 나셨네.’
그러나 곧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앗! 뭐야?”
정체 불명의 액체가 강사의 다리 안쪽을 타고 시냇물처럼 졸졸 흘러내리고 있던 것이었다.
“에이, 뭐야? 벌써 지린 거야?”
지왕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알바를 쳐다봤다.
“이거 어떡하죠?”
그러나 알바는 이런 건 이골이 났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제가 치울 테니 얼른 여자분을 모시고 가세요.”
“그래요? 고마워요. 그럼 …….”
지왕은 자기가 다 미안한 마음에 강사녀를 데리고 후다닥 엘리베이터에 올라 방으로 직행했다.
방으로 들어선 지왕은 방 한가운데에 있는 아이템을 보고 금세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으아닛! 저건 직소(jig saw)?!”
----☆《작가의 말》☆----
‘직소’가 무엇인지 생소한 분이 있겠지만, 극적 재미를 위해 자세한 설명은 다음 화에 하겠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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