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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닭볶음면女
136. 불닭볶음면女 (1)
지왕은 얼마 전 학교에 ‘매맛자’라는 비공식 동호회가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매맛자’는 ‘매맞자’의 변형이나 오타 따위가 아니었다. 그러니 당연히 때리고 맞는 걸 즐기는 ‘SM 동호회’ 류는 더더욱 아니었다.
‘매운 맛을 보러 다니자’의 약자로, 매운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정기적으로 매운 맛집을 탐방 하는 동호회였다.
그런데 지왕이 이 동호회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에는 순수한 동기보단 동호회 취지와 연관이 없는 다른 불순한(?) 동기가 더욱 컸다. 그건 바로 이 동호회의 회장으로 있는 여학생이 지왕의 초딩 때 첫 짝사랑 상대와 꼭 닮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초딩의 얼굴과 대딩의 얼굴이 똑같을 리가 없다는 걸 지왕이 모르진 않았다. 그치만 묘하게 그 애의 얼굴이 생각나게 하는 외모에 지왕은 어쩔 수 없이 끌리고 말았다.
어느 날 저녁. 지왕은 동대문에서 유명하다는 매운 족발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거기서 동호회 정기 모임 겸 지왕의 가입 환영회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동대문에서 가본 곳이라고는 밀리오레 밖에 없었던 지왕은 길을 좀 헤맨 탓에, 식당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른 회원들이 모두 다 자리를 잡은 후였다.
가뜩이나 처음이라 뻘쭘했는데 지각까지 해버렸으니, 어쩔 수 없이 대뜸 머쓱해지고 말았다.
“에구, 미안합니다. 지하철 역에는 제 때 도착했는데 동대문 지리에 어두워서 좀 헤맸네요.”
그러자 회장女가 벌떡 일어나며 환영을 해 주었다.
“괜찮아요. 원래 주인공은 젤 마지막에 등장하는 거잖아요. 자, 이리 와서 앉으세요.”
살짝 지각한 사람에게 이 정도 환대를 해주는 것쯤이야 속이 배배 꼬인 성격이 아니라면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왠지 첫사랑을 닮아서 그런 지 지왕은 그 마저도 굉장히 고맙게 느껴졌다.
‘역시 이렇게 생긴 애는 마음도 착하다니까?’
그러면서 회장녀가 미리 비워두고 있다가 내준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이어서 지왕의 간단한 자기 소개와 인사가 있은 후, 회장녀는 모두의 잔이 채워지기를 기다렸다가 건배사를 했다.
“자, 오늘 왠지 이름에서부터 정력적으로 활동할 것 같은 기운이 팍팍 느껴지는 새로운 회원도 정식으로 왔으니 모두 힘차게 환영해볼까요? 큰 소리를 외치려니 좀 민망하긴 하지만, 그래도 하긴 해야겠죠? 후후. 자지왕 님, 환영합니다!”
그러자 나머지 회원들도 잔을 들고 복창했다.
“자지왕 님, 환영합니다!”
지왕도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건배를 했다.
“가, 감사합니다. 헤헤 …….”
옛날 같으면 이름이 큰 소리로 불리워지는 게 정말 싫었겠지만, 그런 건 이제 왕따 시절의 일이고 지금은 비꼬거나 놀리는 뜻으로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좀 민망하기만 할 뿐 꺼려지는 감정은 전혀 없었다.
회장녀는 귀엽고 앙증맞게 생긴 것 답지 않게 성격은 완전 유쾌, 상쾌, 통쾌였다. 모임 내내 분위기를 리드할 뿐만 아니라, 회원 한명 한명을 아주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 그야말로 리더의 모습 그 자체였다.
지왕은 그런 회장녀의 모습에 호감과 감동을 넘어 어느 새 살짝 존경심까지 생겨났다.
‘정말 대단하다. 이 정도면 나중에 정치해도 한 자리 하겠는데?’
심지어 매운 맛 동호회 회장답게 매운 것도 엄청, 아니 회원들 중에서 제일 잘 먹었다.
그런데 이 매운 족발이란 게 처음부터 입에서 매운 기가 확 느껴지는 닭발 같은 것과는 좀 다른 것이, 처음 한두 점 먹었을 땐 ‘그냥 좀 맵네’ 이런 느낌이라서 방심하고 있으면 어느 새 속부터 따가워지기 시작하면서 식도를 타고 매운 기가 위로 훅 올라오는 특징이 있었다.
게다가 먹다 보면 양념이 입술에도 묻어 입 주위가 화끈거려지니, 그야말로 입에서부터 위까지 ‘헬 로드(Hell Road)’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허억, 씨팔. 나도 매운 거 못 먹는 편은 아닌데 이건 뭐. 이거 내일 아침엔 입에서 똥꼬까지 완전 지옥길이 개통되겠군.’
나름 이곳에 오기 전에 위장 보호를 위한 ‘껠포스’와 창자 보호를 위한 ‘쓰멕타’까지 먹고 온 지왕이었지만, 이젠 슬슬 내일 아침, 아니 당장 오늘 저녁 집에 돌아가다가 똥꼬에 불이 나버리는 것인지 겁이 나기 시작할 정도였다.
그래서 살살 눈치를 살피며 먹는 속도를 조절하고 있었는데, 그만 회장녀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아니, 지왕 씨? 왜 안 드세요? 맛이 없어요?”
지왕은 움찔했다.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이거 은근 배가 빨리 부르네요.”
그러나 지왕의 거짓말을 단번에 간파한 회장녀는 지왕에게 막 가까이 달라붙으며 애교를 부렸다.
“아~, 난 매운 거 잘 먹는 남자가 좋은데. 왠지 멋있는 것 같기도 하고 …….”
그러면서 눈망을 반짝거리며 자신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회장녀의 모습에, 지왕은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고 말았다.
‘헉! 귀, 귀여워!!’
그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족발을 한 젓가락에 두세 점 씩 막 집어 먹기 시작했다.
“음음, 이거 배가 부른 데도 막 들어가네요. 역시 매운 음식은 이래서 좋다니까. 느끼하지도 않고. 하하.”
그러자 회장녀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지왕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역시. 내가 사람은 제대로 봤다니까. 자, 술도 한잔 하시고요. 자 건배~! 짠!”
지왕은 이내 속이 뒤틀려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내색도 못하고 계속 회장녀 옆에서 헤헤 거리며 술과 고기를 흡입했다.
그런데 회장녀가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갑자기 거기에 있던 남자 회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지왕에게 말했다.
“회장 사교성이 좀 끝내주죠?”
“네? 아, 예. 좀 남다르긴 하네요.”
“남다른 게 그것 뿐만이 아니에요.”
“네?”
지왕은 좀 얼떨떨했다. 특히나 회원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다 진지해져서는 자신을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 어리둥절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회원들은 화장실 쪽의 눈치를 살피며 사뭇 다급해하기까지 하며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저희들 입으로 직접 말하긴 뭐하지만, 아마 오늘 밤 회장에게 신고식을 당할 거예요. 그때 ‘뒤’는 꼭 조심하세요.”
“네? 신고식을 당한다고요? 그리고 ‘뒤’라는 게 무슨 뜻 …….”
하지만 그때 회장이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이 보이자, 회원들을 당황해하며 대화를 서둘러 마무리지어버렸다.
“아무튼 지금 우리들이 해준 말은 회장한테 꼭 비밀 지키시고요. 모쪼록 ‘뒤’를 조심하세요.”
그러고는 회장이 자리로 돌아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하거리며 화제를 금세 딴 데로 돌렸다.
뜬금없어 하던 지왕은 그제야 동호회의 인적 구성이 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챘다. 회장을 제외하면, 모임에 나온 나머지 회원들이 모두 남자였던 것이다.
‘뭐지? 전부 다 나처럼 회장 얼굴 보고 여기에 가입한 건가? 그래서 회장이 나한테 유독 잘 해주는 거 같으니까 견제하려고 그딴 말을 한 거? 그것도 모두 한 통속이 돼서? 그나저나 여자 회원은 정말 한 명도 없는 거야? 아니면 우연히 오늘만 안 나온 거야?’
그러나 계속 자기 옆으로 가까이 오며 이야기를 붙이는 회장녀의 행동에 그런 의구심은 이내 망각의 저편으로 스리슬쩍 잊혀져버리고 말았다.
급기야 지왕은 슬슬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얘가 날 좋아하나?’
어릴 적 첫사랑을 연상케 하는 애가 자기를 좋아한다니, 그건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일이었다.
그렇게 2차까지 이어진 모임이 끝나고, 지왕이 곧 ‘쓰라려질 것 같은 예감이 팍팍 드는 배’를 부여잡음과 동시에 마찬가지로 곧 ‘항문이 매워서 아려질 것 같은 느낌에 절로 경련이 일고 있던 엉덩이’에 힘을 팍 주면서 별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모두가 자리를 뜬 것을 확인한 회장녀가 지왕에게 바짝 달라붙으며 수줍수줍 속삭였다.
“지왕 씨, 우리 집에 와서 불닭볶음면 먹고 갈래요?”
“예?”
지왕은 순간 얼떨떨했다.
‘아니 라면 먹고 갈래요도 아니고 불닭볶음면이라고? 풋, 누가 매맛자 회장 아니랄까봐. 그치만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첫사랑과 닮은 여자랑 만나자마자 응응~이라? 우왓, 나에게도 이런 일이!’
그러고는 마찬가지로 머뭇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 그래도 된다면 저야 영광이죠 …….”
그러자 회장녀는 언제 수줍어했냐는 바로 지왕에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정말요? 그럼 얼른 가요. 제가 ‘회장님의 특제 불닭볶음면’을 만들어 줄게요. 어서요.”
“예? 아, 네. 그, 그래요. 가요 …….”
지왕은 그렇게 마치 뭐에 홀린 것처럼 회장녀의 집으로 갔다. 아니 끌려갔다.
회장녀의 원룸은 웬만한 서민 가정집을 능가할 만한 크기와 살림을 자랑했다.
‘우와, 집이 디게 잘 사나 보네. 요즘 세상이 학생이 이런 원룸에 살다니.’
회장녀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싱크대 쪽으로 갔다.
“거기 앉아서 TV나 보고 있으세요. 금방 불닭면 만들어 드릴게요.”
지왕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헉! 지, 진짜 그거 먹이려고 하는 거였어? 아, 벌써 속이 쓰려오는데. 이러다 섹스 도중에 화장실 가는 불상사가 일어날지도. 아, 불안불안 ……. 배부르다고 거절할까? 아냐, 그랬다가는 자칫 그 이후의 섬세한 작업을 못하게 될 위험이 ……. 크흑, 어떻게 해야 하나 ……. 아! 그냥 지금 폰을 사용해서 바로 섹스 타임으로 들어가 버려? 그치만 첫사랑과 닮은 애를 그렇게 인위적으로 하기가 ……. 으으! 미치겠네!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