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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女 (1월)
199. 주먹女-(1월) (1)
그렇게 지왕이 한참 갈등을 때리고 있는데 갑자기 갤넉시 Sex 노트가 짧게 진동하며 알림벨 소리를 냈다.
지왕은 뭔가 싶어 폰을 확인했다.
“이 와중에 뭐야? …… 응? 시스템 업데이트 ……를 완료했다고? 뭐야, 그런 것도 해줘?”
그런데 바탕화면에 못 보던 앱 아이콘이 하나 생겨나 있었다.
“Hypnosis? 최면? 이건 또 뭐야?”
지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이콘을 터치해 앱을 실행시켜보았다. 그러자 제일 먼저 매뉴얼 창이 떴다.
“최면 실행 버튼을 누르면 화면에 동영상이 뜨면서 소리가 나옵니다. 그러면 최면을 걸 상대에게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소리를 듣게 하십시오. 그렇게 10초가량 있으면 폰에서 띵똥 하는 알람이 울릴 것입니다. 그때 최면을 걸 내용을 상대자에게 또박또박 말해주세요. 그런 다음 ‘최면을 거는 데 성공하였습니다.’라는 음성이 나오면 모든 것이 끝. 만약 최면을 거는 당사자 또한 화면을 보고 있으면 같이 최면에 걸릴 수가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지왕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이거? 지금 딱 필요한 기능이잖아? 정말 도대체 이 폰의 정체는 뭐야? 거 참. ……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얼른 시험을 …….”
그리고 최면 실행 버튼을 누르고 폰 화면을 유나의 눈앞에 가져다댔다. 유나는 여전히 눈의 초점이 풀려 있었지만, 멀거니 뜬 눈으로 폰 화면을 따라갔다.
그때 띵똥 하고 알림음이 떴다. 지왕은 또박또박 최면을 걸 내용을 말했다.
“내가 방에서 나가면 머릿속에서 나의 존재와 나와 관련된 기억은 모조리 잊는 거다. 알았냐?”
그리고 사뭇 긴장한 표정으로 폰에서 완료 메시지가 나오길 기다렸다.
…….
드디어 폰에서 “최면을 거는 데에 성공하였습니다.”라는 음성이 나왔다.
“간단한데? 그런데 설마 이거 가짜이거나 에러나는 건 아니겠지? …… 흐음, 아닐 거야. 이 폰이 날 실망시킨 적은 없었잖아? 믿어 보자.”
지왕은 그러고는 유나의 팔을 결박하고 있던 줄을 풀었다. 유나가 그간 얼마나 몸서리를 치고 버둥거렸는지 팔뚝이 피가 제대로 통하지 않아 시뻘겋게 부어 있었고, 곳곳에 새하얀 밧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결박을 풀자마자 팔에 한꺼번에 많은 피가 급격히 흐르면서 마치 전기가 통하듯 저린 느낌이 물밀 듯이 몰려 왔다. 유나는 그 느낌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막 펄떡거리며 파르르 떨었다.
“흐으으, 으으으 …….”
그러면서 재차 괄약근의 힘이 풀려버리는 바람에 말 등위로 노란 국물을 좌르륵 지려져버렸다.
지왕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이, 정말 더럽게 구네. 아무튼 정신 들면 다리에 묶은 줄이랑 입에 물린 재갈은 니가 풀고 가라. 그럼 난 간다~, 애마 공주. 하하!”
그렇게 방을 나온 다음 모텔을 나서려는데 카운터에 있던 폰팔이 사장이 지왕에게 말을 걸었다.
“손님, 즐거우셨습니까?”
지왕은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덕분에요. 역시 이곳에서 추천해주는 방은 한번도 기대를 벗어난 적이 없더군요. 저 근데 …….”
“예?”
“지금 방에 남겨져 있는 애의 항문에 딜도가 박혀 있는 상태인데, 혹 그걸 빼다 대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
“네? 아, 그건 걱정 마십시오. 저희 종업원들은 베테랑들이니까요.”
“역시, 그렇죠? 다행이네요. 아무튼 매번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저희야 말로 고맙죠. 아, 그리고 이걸 …….”
“네?”
폰팔이 사장이 꺼낸 건 수갑과 젤(Gel) 세트였다. 지왕은 어리둥절해하며 사장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건 ……?”
사장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수갑이야 설명 안 드려도 잘 아실 테고, 젤은 흥분제와 이뇨제 효과를 동시에 볼 수 있는 특수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왕이 궁금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근데 이걸 왜 저한테 …….”
“서비스로 드리는 것입니다. 가지고 다니시다보면 분명 조만간 쓰일 데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요 ……?”
지왕은 좀 얼떨떨하긴 했지만 폰팔이 사장의 예지력이야 지금껏 여러 번 경험했으니, 그의 말에 따라서 손해 볼 건 없을 거란 생각에 군말 없이 그것들을 챙겼다.
“뭐 아무튼 고맙습니다. 잘 쓸게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예, 안녕히 가십쇼.”
모텔을 나온 지왕은 별로 할 일도 없고 해서 집에 가서 좀 쉬자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집 근처의 한 상가 건물 옆을 지나던 도중에 문득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상한 것을 보았다.
아무생각 없이 땅을 쳐다보며 거기에 드리워진 상가 건물의 그림자를 따라 밝으면서 걷고 있는데, 불쑥 발 앞쪽으로 둥근 그림자가 생겨나는 것을 봤던 것이다.
지왕은 의아해하며 상가 건물 위쪽을 쳐다봤다.
“뭐지?”
그러다 이내 깜짝 놀라고 말았다. 웬 긴 생머리의 젊은 여자가 건물 옥상 난간에서 치맛자락을 나부끼며 위태롭게 서 있었던 것이다.
여자는 마치 모든 걸 포기한 것 같은 표정으로 지왕이 있는 아래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지왕은 가슴이 철렁했다.
“저, 저 …….”
그러나 여자 쪽을 향해 당장 뒤로 물러나라고 소리치진 못하였다. 자칫 잘못 놀래키거나 자극을 했다간 여자가 중심을 잃고서 떨어져버릴 지도 몰라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또 여자와도 이미 서로 눈이 마주친 상황이어서 굳이 소란을 피운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그때 지왕의 머릿속으로 좋은 생각이 스쳤다.
지왕은 허겁지겁 폰을 꺼내 재빨리 여자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간절하고 다급한 마음으로 손가락으로 사진 속 여자의 가슴팍을 세게 탁 튕겼다.
‘제발, 제발 효과가 있어라 …….’
그러자 옥상 난간 위의 여자가 마치 정면에서 장풍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이 뒤로 확 밀쳐지며 옥상 바닥으로 떨어졌다.
“꺅!”
지왕은 곧바로 옥상 쪽으로 달려갔다. 6층짜리 건물이었지만 급한 마음에 엘리베이터를 찾을 겨를도 없이 곧장 계단을 타고 내달렸다.
여자는 다행히 지왕이 옥상에 도착할 때까지 여전히 옥상 바닥에 넘어져 있는 그대로였다. 여자의 얼굴엔 방금 일어난 일이 믿기지 않아 얼떨떨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왕은 황급히 여자를 살피며 물었다.
“괜찮아요? 다친 덴 없고요?”
“네 …….”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거긴 왜 올라가 있었어요? 설마 …….”
여자는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여자의 그러한 반응에 지왕은 여자가 자살을 하려 했던 게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역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죽는 건 아니죠. 다 이겨내고 여봐란 듯이 살아야죠.”
그러나 여자는 딱히 마음이 돌아서는 표정은 아니었다. 지왕은 거듭 여자를 설득했다.
“혹시 괜찮다면 저한테 무슨 일인지 이야기해주겠어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거면 다 할게요.”
여자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당신은 도울 수 없어요.”
그러나 지왕은 물러서지 않았다.
“얘기도 안 해보고 그걸 어떻게 알아요? 당신이 날 다 알아요?”
“그거야 …….”
지왕은 잠시 망설였다가 재차 말했다.
“조금 전에 저기 난간에 서 있다가 돌연 뒤로 밀렸죠?”
여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걸 어떻게 ……?”
지왕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거 내가 한 거예요.”
“네? 어떻게 ……?”
“어떻게 했는지는 이야기할 수 없지만, 최소한 저한텐 남들에겐 없는 능력이 좀 있어요. 그러니까 말을 해봐요. 왜 죽으려고 하는지. 그럼 어쩌면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생길 지도 모른다고요.”
여자는 그제야 비로소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기색이었다.
“…….”
지왕은 여자에게 말했다.
“일단 여긴 추우니까, 우리 집으로 가요. 이 근처가 우리 집이에요. 가서 천천히 얘길 나눠봐요.”
여자는 지왕의 얼굴을 바라봤다. 지왕도 마찬가지로 여자의 눈을 바라봤다. 둘은 그렇게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잔뜩 굳어져 있기만 했던 여자의 얼굴이 다소 풀렸다. 그러더니 주섬주섬 일어났다.
지왕은 여자가 드디어 마음을 돌린 것이라 생각하고 안도했다. 그리고 방금 전 이야기 한 대로 자신의 집으로 여자를 안내했다.
집으로 온 지왕은 곧바로 집의 난방을 켠 뒤 여자에게 따뜻한 코코아를 내왔다.
“코코아 괜찮죠? 제가 단 걸 좋아해서 집에 커피나 다른 차가 없네요.”
여자는 두 손으로 코코아가 담긴 머그컵을 감싸들며 대답했다.
“아니요. 저도 코코아 좋아해요.”
그렇게 대꾸하는 여자의 목소리와 표정엔 한결 여유가 묻어났다. 차갑게 굳어져 있기만 하던 얼굴에도 서서히 생기가 돌았다.
지왕도 그제야 여자를 관찰할 여유가 생겼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황급하고 당황해서 미처 몰랐는데, 눈처럼 하얀 피부에 약간 갈색 티가 나는 긴 생머리, 딱히 립글로스 같은 걸 바른 것 같지도 않은데도 핑크 빛이 나는 작고 귀여운 입술, 특별한 눈화장을 하지 않았는데도 방울처럼 동그란 눈 등은 막 애니메이션에서 나온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귀엽고 예뻤다.
한마디로 걱정 따윈 모르고 자란 부잣집 귀여운 막내딸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뭣 때문에 죽으려고 한거지? 집에 무슨 사고라도 생겼나? 혹시 아버지 사업이 쫄딱 망해서? 흐음 …….’
그렇게 말없이 코코아만 홀짝거리기를 한 30분 정도가 흘렀을까? 여자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 …….”
지왕은 얼른 대꾸했다.
“네, 이야기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