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직속상관의 상태가 이상하다 (17)
그녀를 따라 막사로 돌아왔다. 바통터치라도 한 듯이 이번에는 아이셀과 마주치게 되었다.
“말 데려다 놓고 온 거야?”
“네. 이제 어떡하랍니까?”
“일단 기다리고 있으라고만 했어. 곧 결정을 내려주시겠지.”
싸움을 준비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 평화롭고 맑은 날이었지만, 은근한 불안함이 엄습해 있었다.
아이셀은 싱긋 미소 지으며 아스틴을 보려 의무실로 들어갔다. 나도 그녀를 따라갔다.
휑한 의무실에는 아스틴 혼자 누워 곰 인형을 끌어안고 있었다.
“아스틴?”
우리가 오는 줄도 모르고 얼굴을 묻고 있던 그녀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아… 무, 무슨 일이세요?”
“그냥 잘 있나 보러 왔어. 아픈 건 이제 다 나은 거야? 왜 그런 거래?”
아이셀이 침대에 걸터앉으며 묻자 아스틴은 난처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어깨를 으쓱하자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횡설수설했다.
“아, 음… 그, 그러니까… 몸이 좀 아팠어요. 의무관님께는 별일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쉬었는데, 금방 괜찮아졌어요. 이거 때문일 것 같아요. 이… 상처들 때문에. 네….”
아스틴은 붕대가 감겨있는 몸을 쓸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럼 다행이고. 팔은 풀었네?”
아이셀은 이제야 그것을 발견하고 아스틴의 팔에 손을 대고 살살 주물렀다.
“네, 팔은 일단 괜찮아졌어요. 이제는 무기를 쥐고 움직여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아스틴은 주먹을 쥐어 보이며 자신 있게 웃었다.
“무리는 하지 마. 아직은 너 없어도 괜찮으니까.”
다소 차갑게도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에 아스틴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팔 나은 기념으로 내가 사다 줄게.”
사준다고? 그때 분명 한 푼도 안 남기고 다 썼을 텐데?
“저… 그럼 초코타르트….”
“알겠어. 가자.”
아이셀은 내 팔을 끌고 나왔다.
“돈… 있으십니까?”
“없지. 네가 사줘. 한 번에 다 갚을게.”
갚는 거야 그렇다 치고… 내 돈으로너무 생색내잖아.
일단은 막사에서 나왔다.
불안감을 뒤로하고, 마을의 제과점으로 향했다.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비라도 오려고 그러나.”
“비?”
아이셀은 하늘을 보았다.
“그러게. 빨리 가야겠다.”
그러고서 속도를 냈다. 물론 그럼에도 걸음에는 명확한 목적성이 없었다. 아이셀은 주먹구구식으로 길을 찾아다녔다. 제과점이 어디 있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모양이다.
“어디야? 알아?”
급기야내게 물어왔고, 나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 그녀의 팔을 잡고 식료품점들이 많은 골목으로 향했다.
“여기 있네요.”
“뭐야. 알고 있었으면 진작 좀 말하지. 바보 같은 모습 보면서 즐기고 있었던 거야?”
아이셀은 살짝 짜증을 내면서도 입가에는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제과점에서 곧 바로 ‘내 돈’으로 아스틴에게 줄 초코 타르트와 아이셀이 개인적으로 먹고 싶어 하는 것들을 몇 개 골라 샀다.
기사 학교에 있는 동안 돈 쓸 곳이 없어 반강제로 모아 놓은 돈들은 그렇게 가난한 상관에 의해 착실히 새어나가고 있었다.
“잘 먹을게.”
“어차피 아이셀 씨 돈인데, 제가 인사드려야죠. 잘 먹겠습니다.”
혹시나 하는 상황은 사전에 차단해 놓았다. 나도 그녀도 서로 마주 보며 미소 지었다.
다시 아스틴에게로 돌아가는 동안 하늘은 어두컴컴해졌지만, 비는 쉽사리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아스틴, 알프렌이 사줬어.”
“아닙니다. 아이셀 씨가 사주신 겁니다.”
아스틴은 초코 타르트를 받아 들고 당황한 눈으로 나와 아이셀을 번갈아 보았다.
“아무튼… 잘 먹을게요. 고맙습니다.”
결국 둘 모두에게 인사했고, 나는 억지로 미소 지으며 아이셀을 끌어당겨 밖으로 나왔다.
“아이셀 씨, 부하 돈 갈취하는 부조리를 저지르시려는 건 아니겠죠?”
“아, 아니야. 내가 돈 쓰지도 않았는데 썼다고 하면 이상하잖아.”
그런가? 하지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아니 준다니까 왜 그렇게 쪼잔하게 굴어? 너는 아스틴한테 선물해 주는 게 그렇게 억울해?”
갑자기 적반하장으로 나오자 나도 할 말이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아이셀 씨는 조금 아까우신가 보죠? 밤일도 못 하게 하는…….”
아이셀은 바로 내 입을 막고 웃었다.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사람들 듣겠네.”
뭐… 나도 괜히 돈 같은 거 가지고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셀에게 쓰는 건 어쨌든 별로 아깝지는 않으니까.
“좀 봐줘. 미안해.”
결국 사과를 받아내자 기분이 묘해졌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저도 그냥 장난한 겁니다.”
그때 누군가가 급하게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정찰 나갔던 기사였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아이셀을 붙잡았다.
“저, 저기 단장님은 안에 계시죠? 급히 전할 말이 있습니다!”
아이셀은 그와 함께 단장실로 가주었다.
잠시기다리고 있자, 단장실의 문이 쾅하고 열렸다.
“당장 전 군 집합시켜!”
침을 꿀꺽 삼키고, 그 내용을 전파하기 위해 움직이는 아이셀을 따라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삽시간에 사열대 앞에 정렬한 기사단은 기사단장의 긴장감 서린 표정에 덩달아 모두 긴장하고 있었다.
“몰링 호수에 미르티스의군대가 나타났다. 규모는 약 천여명이다!”
그, 그렇게 많은 군대가 갑자기 어디서….
“당장 진군하고 있지는 않지만, 몰링 호수를 근거지 삼아 자원을 채집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인근 기사단이 도착할 때까지 돌출 행동을 하지 못 하도록 최대한경계해야 한다.”
천여 명의 군세와 싸운다면 이 정도 기사단 인원으로는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더구나 상대방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방어를 한다면 더더욱.
“모두 출정 준비하고, 각 전투대장은 내게 와 작전 구역을 지정받는다. 해산!”
아이셀은 바로 돌아서 우리들을 보았다.
“아스틴은 들어가 있어.”
“하, 하지만… 그렇게 많은 녀석들이 왔으면….”
“의욕이 있다고 짐이 안 되는 건 아니야 아스틴. 말 들어.”
아이셀이 여지없이 딱 잘라 말하자 아스틴은 분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알프렌이랑 파르안은 이런 일 처음이지? 전투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준비해. 몬스터들 상대하는 거랑 비슷하게 생각하면 돼.”
내 어깨를 다독이고 그녀는 단장에게로 갔다.
아이셀이 떠나고 파르안은 바로 움직였다.
“가자 알프렌. 준비가 너무 늦으면 안 돼.”
“네.”
바로 방으로 돌아간 나는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갖춰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갑옷을 전부 입고 방패와 검을… 그리고 며칠 보내야 한다면 필요할 물건들을 챙겼다.
방에서 나오자 모든 기사들이 다급히 밖으로 뛰어나가고 있었다. 이번엔 대부분이 제대로 된 갑옷들을 입고 나섰다.
내가 밖으로 나오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단장의 지시에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대열의 끝에서 아이셀은 나와 파르안을 양쪽에 두고 무엇을 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호수 근처에 전투대별로 포위 진지를 구축하고동향을 살필 거야. 상급 기사들은 전투대장 제외하고는 기사단에서 대기야.”
아이셀의 말대로 꽤 많은 수의 기사들이 말에 탄 채 단장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희는 셋이서 합니까?”
아이셀을 제외하고는 우리 전투대에는 상급기사가 없으므로 셋이서 진지 구축을 해야 했다.
“물론 우리는 인원이 부족한 관계로 단장님이랑 함께 다닐 예정이야.”
아이셀은 싱긋 웃으며 양팔로나와 파르안의 팔에 팔짱을 꼈다.
“우두머리 옆에 있으면 죽을 일 거의 없다고.”
“그, 그렇긴 하겠죠.”
내가 당황하며 대답하자 파르안도 멋쩍게 웃었다.
호수 근처에 다다라서는 전투대별로 각 대장의 통제하에 흩어졌다. 우리들은 단장을 포함한 몇몇 간부들과 함께했다.
그들이 돌아다니며 각 전투대의 위치 현황을 살피는 동안 우리는 지휘소 천막을 설치하고 주변에 땅도 파 놓으며 곧 쏟아질 것 같은 비에 대비했다.
25명 정도가 들어가 잘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천막을 짓는 동안 마을의 마법사와 자경단원들이 찾아왔다.
“마족이 나타났다고 들었습니다.”
“아,네 맞습니다. 도와주러 오신 겁니까?”
내가 응대하고 있는 사이, 반대쪽에서 천막을 고정하던 아이셀이 급히 달려왔다.
“어서 오세요. 마법사님들은 안쪽으로 들어가 주시고, 자경단원님들은 저희와 교대로 이곳의 경계를 서주시면 됩니다.”
자경단원들은 다 해서 10명. 그럭저럭 장비를 갖추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알아서 순번을 정하고 두 명씩 천막 앞을 지키기 시작했다.
천막 안에서 마법사들은 항시 빛나는 마법구와, 멀리 까지 말을 전달 할 수 있는 마법도구들을 설치했다.
어느 정도 지휘소의 모습이 갖춰지자 간부들이 돌아왔다.
“수고들 했네. 마족들은 특별한 움직임 없이 우리와 대치만 하려는 모양이야. 그들 입장에서야 이곳에서 필요한 자원들을 채집하고 돌아가면 그뿐이라 굳이 싸우려 들지는 않을 생각이겠지.”
단장의 이야기에 아이셀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저곳에서 얻는 자원들은 결국 아군의 피해로 직결될 겁니다. 한시라도 빨리 제압하는 게….”
“물론이네만. 우리끼리 공격했다가 큰 피해를 볼 수 있어. 신중해야 할 일이야.”
곧 옆에 서 있던 부단장이 척후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단장에게만 귓속말로 들은 내용을 전달했다.
표정으로 봐서는 미르티스라도 직접 본 듯한 얼굴이다.
“미르티스가 올 수도 있다…….”
아, 이런….
“네?”
“어쩌면 마을까지도 공격하려는 의도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전방에서도 계속해서 교전이 일어나고 있기도 하고. 지금 저들처럼 후방을 교란하는 작전을 할 가능성을 들었다만….”
이쪽에 나타날 줄 상상도 못 했겠지.
어쩌면 저들이 저렇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이 호수 속 마력석의 존재 때문인지도 몰랐다. 저것을 활용할 특별한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했으니 그게 맞는 것 같다고 강한 확신이 들었다.
“저대로 두면…….”
“정말 큰 일이 날 수 있다.”
단장의 감이 불길한 곳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다. 후방이 쉽게 공략당한다면 제국이 무너지는 것도 순식간이다.
하지만 저들의 지휘관이 미르티스… 내 어머니이고, 아버지의 이야기뿐이었지만 좋은 관계로 남아 있다고 했다. 찾아간다면 어떻게든 방법이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비가 오기 시작했다.
“재수도 없군. 출정 대기중인 기사들은 우선 들어가 있으라고 해.”
단장은 비를 피했고, 부단장과 부관들이 비옷을경계병들에게 전달했다.
우리 역시 천막으로 비를 피했다.
조금씩 내리던 비는 점점 거세졌다.
포위망을 만들고 있는 기사들이 걱정이다. 나부터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니, 공격 의도가 드러난 시점에서 단장의 머릿속은 끝도 없이 복잡할 것이다.
나는 아이셀의 손을 잡고 구석으로 왔다. 좁은 공간이었지만, 귓속말 정도는 들키지 않고 할 수 있었다.
“제가 미르티스를 만나보면 어떨까요.”
“제정신이야?”
아이셀의 놀란 반응에도 나는 침착했다.
“아시잖습니까. 제 어머니라는 거. 다른 녀석들만 와 있다면 모르겠지만, 미르티스를 직접 볼 수 있다면 괜찮을 겁니다.”
“아, 안 돼. 그건 너무 위험한 생각이야.”
아이셀은 고개를 저으며 절대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해 말했다.
“그냥 좀 쉬고 있어. 괜한 생각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보다 나은 방법은 없을 것 같다. 아니, 적어도 밑져야 본전인 상황 아닐까 싶다.
내가 혼자 가서 해결할 수 있다면 좋고, 아니라도 기사단에는 큰 마이너스가 없다.
잠시 구석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저, 저기 하늘에 이상한 게 보입니다!”
그때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볼 수 있는 하늘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저 정도의 강렬함이라면….
“미르티스가 정말로 나타났잖아!”
단장의 목소리에 이곳에 있는 모두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더라도 저 모습은 지옥문을 열고 나온 악마같이 무서웠다.
내, 내가 저 배에서 나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