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신도
“사실 나는 중증의 치매를 앓고 있다.”
“니가 치매인 건 척 보면 알아. 본론만 말해.”
나타샤가 나를 째려봤다. 닥치고 경청이나 하란 뜻인 것 같다.
“뜻대로 합죠.”
어깨를 으쓱거리며 합죽이를 했다.
껄렁껄렁한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나타샤는 한 번 더 나를 째려본 후 말을 이었다.
“……수명을 늘리는 연구를 하다 부작용으로 치매를 얻었지. 그런데, 아까 전 네 신을 만난 이후로 치매가 조금 호전되었다. 몸 상태도 훨씬 좋아진 것 같고.”
치매가 호전되었다라. 그래서 아까 전보다 멀쩡하게 대화가 통하는 걸까.
그러고 보니, 그녀의 레벨이 느껴지질 않는다. 원래 25레벨이란 걸 알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녀가 어느 정도로 강한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내가 레벨을 가늠할 수 없는 경우는 딱 한 가지, 상대의 레벨이 나보다 더 높을 때이다. 그러니까, 현재 나타샤의 레벨은 27레벨 이상이란 이야기이다.
치매가 호전되면서 까먹었던 마법 주문들이라도 되살린 걸까. 하기야 엘프가 그 긴 수명을 마법 연구에 꼴아 박았는데 겨우 25레벨이란게 더 말이 안 되긴 했다.
“아직도 치매가 완전히 치료된건 아니다. 사실 지금도 정신이 오락가락 해. 그러니, 너를 따라다니면서 내 치매를 치료할 실마리를 찾고 싶다.”
“치매를 치료하기 위해 우리 교회의 신도가 되고 싶으시다?”
“그래.”
나는 옆에 비껴메고 있던 가방에서 사도 기본 장비 중 모자 부분을 꺼내 썼다. 아, 아. 목소리를 가다듬고, 친절한 어조로.
“-자매님, 잘 찾아오셨습니다.”
“으으, 소름! 소름 돋았다!좆같은 어투 쓰지 마라!”
“……그러면 이제 맹세만 해주시면 가입 절차가 끝나시고요, 자 제 말을 따라해주세요. ‘나, 나타샤 욘스뭐시기는 악신을 신봉하는 신도가 되겠습니다.’”
“나타샤 욘스도티르. 욘의 딸 나타샤라는 뜻이다.”
“이름이야 아무튼. 맹세나 빨리 하라고. 자, ‘나, 나타샤 욘스도티르는 악신을 신봉하는 신도가 되겠습니다.’”
“으음…….”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녀는 입을 열었다.
“나, 나, 나…….”
저거 하나 말하는 게 그렇게 힘든 걸까. 내 조카가 가나다라 중에서 ‘나’까지밖에 못 배웠을 시절에 꼭 저랬던 것 같다.
“나, 나타샤 욘스도티르는…….”
“빨리 말해. 왜이렇게 더듬거려.”
“나……나, 위대한 마법사 나타샤욘스도티르의 저력을 맛봐라!”
“아 시발 또 시작이네.”
미친 치매 노인네.
맹세하나 시키려다 치매가 도지는 게 말이나 되는 상황인가. 결국 나는 그녀의 맹세를 받아내는 것을포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흐리멍텅한 얼굴로 소리치는 나타샤를 잡아끌어 올리비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녀는 내게 이끌려 오는 나타샤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 흑마법사는 제가 교단까지 이송할게요.”
“아니, 굳이 안 그래도 돼.”
치매 노인네이긴 해도 나보다 강하다. 기껏 얻은 신도를 잃을 순 없지.
“얘가 노망이 나서 오락가락하잖아. 그냥 내가 데려갈게.”
“하지만…….”
“똑바로 회개시켜 놓을 테니까 걱정 마.”
“…….”
그녀의 인식 속 나는 저주를 짊어진 흑마법사 사냥꾼이다. 그런 내가 흑마법사를 맡겠다고 했으니, 나에게 무언가 생각이 있을 거라고 그냥 넘길 가능성이 높다. 안 되면 뭐,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때는 그냥 교단에 넘겨야지.
“……로웰님의 뜻을 존중하겠습니다. 그녀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비장한 표정을 꾸며 최대한 진중하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진심이 닿은 걸까, 그녀 역시 진지한 표정을 지어주며 마주 고개를 끄덕인다. 뜻이 맞는 동료란 건 참 좋은 것이었다.
대강의 이야기를 끝마친 우리는 곧바로 던전을 거슬러 올라갔다. 들어올 때 이미 모든 적들을 퇴치해놓았기 때문에, 돌아가는 길은 제법 한적하고 여유로웠다. 곳곳에 깔린 해골과 부서진 뼛조각들이 조금 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문제도 없었다.
그리 계속해서 길을 나아가다, 조금 어두운 바닥에 희끗희끗 보이는 인영들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발견하자마자 멈춰섰다. 갑자기 멈춘탓에 뒤따라오던 나타샤가 내 뒤통수에 머리를 박았다. 콩!
“왜 그러세요?”
“밑에 봐봐.”
“어……이 분들은…….”
올리비아는 밤시야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는지 바닥의 인영들을 확인하기 위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요한 씨랑 스티브 씨…….”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인영. 그것은 일전에 떠나보낸 우리 파티원의 시체였다.
“아직 시신이 그대로 남아 있었네요…….”
“여기 시체 파먹는 놈은 없으니까. 우리가 안 건드리면 앞으로도 계속 여기 남아 있겠지.”
“그건 조금 쓸쓸하네요…….”
나는 요한과 스티브의 시신을 찬찬히 훑었다. 죽은지 시간이 제법 지난 탓에 피부가 새파랬다. 과학실 인체 모형도 저것보단 생기가 넘치지 싶었다.
요한이 차고 있는 장비들과 스티브가 차고 있는 장비들. 대부분 싸구려지만, 요한의 검만은 내 것보다 좋은 제품이었다. 마침 아까 전 불꽃 검을 시험해본다고 내 검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진 참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거적데기 하나씩만을 남겨두고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저기, 뭐 하세요……?”
“유품을 챙기는 거야. 길드에 가져다주면 유가족들에게 전달되겠지.”
“아!”
물론 이 검은 내가 가질 거다. 나머지는 쓸데가 없으니까 선심 베풀어서 가져다주자.
“시신은 안 챙기세요?”
“그것까지 운반하긴 힘들 것 같은데……할매?”
“나, 위대한 마법사 나타샤 욘스도티르의……!”
“알았으니까 시체 좀 일으켜봐.”
“시체를 말이냐?”
“얼씨구, 갑자기 또 대화가 되네.”
나타샤가 힘을 부리자 요한과 스티브의 시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동굴 내부에 시린 환경이 조성되어 있던 탓인지 시체의 보존 상태는 제법 나쁘지 않았다. 으어어어-하고 불길한 신음소리가 조금씩 들린다.
“이대로 운반하면 되겠네.”
“뭔가 하면 안 될 짓을 하는 기분이네요…….”
“괜찮아. 의외로 흑색 마탑에서 이런 일들을 자주 해주거든.”
의외의 사실이지만, 흑마법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적당한 규칙만 지켜주면서 사용하면 합법이다. 시체는 기증된 시체나 국가에서 인증해준 시체만 사용한다거나, 특수한 상황에만 인증되지 않은 시체를 일으킬 수 있다거나, 뭐 그런 자잘한 규칙들 말이다. 실제로 시체를 먼 거리에 옮길 일이 생기거나 할 때에는 흑색마탑에서 도움을 주는 경우가 왕왕 있다.
물론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하는 일이라도 기본적으로 흑마법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바닥에 가깝다.
“하지만 이 상태로 도시까지 끌고 가면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까요? 이 상태로 운반하긴 힘들 것 같은데…….”
“니가 운반해달라며. 뭐 더 나은 방법 있어?”
“그건 아니지만…….”
“없으면 말을 말어.”
대강 그렇게할 일을 끝마친 우리는 다시 길을 재촉했다. 던전을 벗어나자 바깥공기와 햇살이 온 몸에 나부꼈다. 태양은 새삼 밝은 빛으로 눈을 찔러들었다. 눈이 따갑다.
도시에 들어가기 전. 우리를 따라다니는 시체가 비주얼적으로 좋지 못 하기에 가방에서 붕대를 꺼내 얼굴을 싸매놓았다. 좀비는 걸어 다니는 미라가 되었다.
“이 새끼들 으어어- 거리는 것도 거슬리는데 음소거 안 되냐?”
“알겠다.”
아니 이게 되네.
나타샤가 손가락을 딱 튕기자 시체들이 입을 다물었다.
도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경비병들이 우리를 막아섰다.
“정지! 뒤에 미라들은 뭐지? 더러운 흑마법사들! 너희는 우리 도시 안에 한 발자국도 들일 수 없다!”
상당히 비장한 어조로 손을 달달 떨면서 창을 겨누는데, 당하는 입장에서는존나 이게 뭐지 싶었다.
“이, 이 분들은 던전 탐사 도중에 순직하신 분들이에요. 유가족 분들에게 시신을 돌려드리려고 이렇게 운반 중이예요.”
“……사제님 얼굴을 봐서 들여보내 드리는 겁니다. 다음부터 저런 걸 끌고 올 일이 있으면 미리 귀띔해주십시오.”
그리 폼을 잡으면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창을 치우는데, 누가 봐도 안도하는 기색이 빤히 보여서 솔직히 조금 우스웠다.
길드 안으로 들어왔을 때의 반응은 한층 더 가관이었다.
“저 놈 저거 뭐야.”
“미라? 미라 같은데. 시발 저거 언데드 아니냐?”
“흑마법사다! 흑마법사가 시발 나타났다!!”
“아이에에에!!”
“흑마법사? 흑마법사 왜?!”
“긴급 경보! 긴급 경보!!”
반응들이 하나같이 격하기 그지없는 것이, 이 세계에 흑마법사 리얼리티 쇼크 같은 질병이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것들을 진정시키는 데만 또 한 세월이었다. 올리비아가 우리 일행이라는 게 정말 다행이었다. 그녀의 선한 외모와 사제복이 발정난 개새끼마냥 짖어대던 모험가들을 가라앉히는데 큰 도움이 된 것이다. 처음 의뢰를 나설 때는 파티에 사제가 있다는 사실이 심히 아니꼬왔는데 이렇게 또 도움이 되니까 이런 게 새옹지마인가 싶었다.
그리 고생에 고생을 해가며, 우리는 팽배하게 부풀어 오른 긴장감 속에서 길드 접수원 앞까지 당당하게 시체를 끌고 걸어갈 수 있었다. 어차피 공익을 위해서라면 흑마법을 사용해도 불법이 아니니 나는 꿀릴 게 없었다.
“로웰……? 뒤에 그건 도대체 뭔가?”
“요한이랑 스티브. 던전 탐사하다 죽었어.”
“내가 묻고 싶은 건, 그걸 왜 여기까지 끌고 왔냐는 말일세.”
올리비아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로 접수원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우리 파티 사제님이 유가족들에게 시신을 전달해주고 싶다잖아. 나는 파티 내 발언권이 약해서 까라면 깔 수밖에 없었어.”
“저기, 그게 왜 그렇게 되나요?”
“유가족? 미안하지만 요한이랑 스티브는 천애고아야. 유가족도 없지.”
아 씁. 기껏 끌고 왔는데.
“그럼 길드에 남은 관짝이라도 있냐?”
“없다.”
길드에 그딴 게 있을 리가 없긴 하다. 플러스 수치까지 호감도 쌓은 사제는 처음이라 조금이라도 더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끌고 왔더니 존나 처치 곤란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할매, 혹시 이 새끼들 방생할 수 있냐?”
“할 수 있다. 도시 바깥에 적당히 인적 드문 곳에 알아서 땅을 파고 들어가 묻히도록 설정해 두겠다.”
아니 이게 되네.
‘흑마법, 좀 유용할지도……?’
존나 스게에엣 하고 일본식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오는 유용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