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탈출
덜컹덜컹.
마차가 포장도 채 되지 않은 길을 내달렸다. 울퉁불퉁한 길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가끔씩 말을 하기 위해 입을 벌리다, 마차의 흔들림 때문에 강제로 입이 닫히며 혀를 깨물곤 하였다. 그것 말고는 딱히 불편한 점은 없었다. 아니, 불편한 점이 없다기보다는 그냥 적응 했다고 하는 편이 맞는 것 같다.
지나가던 마차 하나를 잡아 웃돈을 주고 얻어 탄 게 몇 시간 전이다. 대강 마차가 가는 대로 가고 있긴 한데, 정해진 목적지는 없었다. 정처 없이 떠돌다 보면 길이 생길까. 역마살 씌인 사람들이 할 법한 말이다.
마차 안은 고요했다. 불어오는 바람 소리, 말 달리는 소리, 그리고 고삐 쥔 마부가 ‘이랴!’ 하고 재촉하는 소리. 소리라고는 고작 이것들이 전부였다.
우리가 원래부터 이렇게 조용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분명 이야깃거리도 많았고, 서로 대화를 도란도란 나눠가며 시간을 죽여 갔다. 그런데 몇 시간 쉴 새 없이 떠들다 보니, 어느새 이야깃거리가 모두 소진되어 버린 것이다. 그때부터는 쭉 지루하기짝이 없는 여행이었다. 나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멍을 때렸고, 로비는 배가 고프다고 칭얼대었으며, 나타샤는 옆으로 시선을 돌린 채 바깥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런목가적인 분위기가 제법 나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이런 분위기가 앞으로 기약 없이 이어질 거라는 점만 빼면, 정말로 나쁘지 않았다.
잔잔하다. 묵상하듯 멍하니 앉아 있는데, 문득 로비의 눈동자가 나를 흘겼다. 장장 한 시간 만에 이야깃거리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런데 로웰님은 어떻게 성녀님이랑 친해진 건가요? 이교도잖아요.”
예상했던 질문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점심 메뉴 정도 물어볼 줄 알았는데.
“리리스랑 어떻게 친해졌냐고?”
“네.”
“음…….”
나는 침음을 흘렸다. 딱히 곤란한 질문은 아니지만, 쉬운 질문도 아니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와 리리스의 관계는 여러모로 꼬여 있었다. 설명을 하자면 내가 이 게임 속으로 떨어지기 전에 있었던 일부터 설명을 해야 하는데, 로비가 그걸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나는 나름대로 리리스에게 유대감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었고, 그녀 역시 내게 미약한 유대를 느끼고 있는 듯하였다. 우리가 단시간 내에 친해질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설명이 귀찮아진다. 대강대강 대답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냥, 나오는 대로 아무렇게나 지껄여본다.
“리리스는 사실 내 딸이야. 최근에 다시 상봉한 사이지”
“딸?!”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소리에 몸을 움찔 떨었다. 로비에게 대답했는데, 정작 반응을 보인 건 나타샤였다.
“그, 그럼 어제 그건 근친 강간 현장…….”
저 혼자 중얼거리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무언가 대단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로웰님한테 그렇게나 장성한 딸이 있었나요?”
그리고 로비는 한발 늦게 반응했다. 이쪽은 딱히 놀란 기색이 없었다. 그냥 내가 심심해서 아무 말 대잔치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사실 그게 맞긴 했다.
“내가 좀 동안이거든. 사실 보기보다 나이가 많아.”
“아니에요. 보기에도 나이 들어 보이세요.”
“…….”
나는 입을 다물고 로비를 쳐다봤다. 무표정이란 것은 생각보다 많은 말을 담고 있기 마련이지만, 로비는 이런 은유적인 행동들을 이해할만큼 생각이 깊지 못 한 듯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내뱉은 발언의 의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세요? 갑자기 말을 멈추시고.”
“……아니, 아무것도.”
“그런데, 집안이 되게 개족보시네요. 아빠는 이교도인데 딸은 성녀라니.”
“너 혹시 꿀밤 마렵냐?”
“네?”
콩!
“아얏! 갑자기 왜 때리시나요!”
“꿀밤 마렵냐고 물으니까 ‘네’라며. 당연히 때려달라는 말인 줄 알았지.”
“아니 그게……히잉…….”
그녀는 체념한 듯 울상을 지었다. 매 억울하게 축 쳐져 있던 눈매가 더욱더 볼썽사납게 쭈그려졌다.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로비는 보면 볼수록 괴롭히고 싶게 생긴 외모의 소유자였다. 특히 저 억울하게 내려가 있는 눈꼬리가 그러했다.
할 짓도 없었고. 그리 투닥거리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던 차였다.
애옹-
익숙한 고양이 소리가 들려와, 나는 하고 있던 행동을 멈추었다.
“……애옹?”
무심코 그 소리를 따라하며 시선을 옮겼다.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은 나타샤의 로브 안쪽이었다.
“쉿! 쉬잇……! 조용하라고 했잖아!”
나타샤는 깜짝 놀라 검지를 입술에 대고 쉿 소리를 내었으나, 이미 고양이 소리가 우리 주의를 끌어버렸다.
결국 그녀는 한숨을 쉬며 로브 안쪽에 숨겨뒀던 생물을 꺼냈다. 말해 무엇하랴. 단또였다. 나타샤가 단또의 양쪽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서 들어 올리고 있었는데, 그 탓에 단또의 몸이 빨랫줄에 매달린 것 같은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뭔데 이거.”
이놈의 검은 고양이는 따로 데려가려고 한 적도 없는데 자꾸 이상하게 얽히는 감이 있었다. 저번엔 로비 어깨에 타고 합류를 하더니, 이번엔 나타샤 로브 속에 숨어서 합류를 했단 말이지.
“그, 새벽 즈음에 창문을 넘어서 제 방에 들어왔더라고요. 솔직히 좀 귀엽게 생겼잖아요. 그래서 몰래 데려가려고 로브 안쪽에서 숨겨놓은 건데…….”
내가 내뱉은 말이 자신을 겨냥한 질문이라고 생각한 건지, 나타샤가 우물쭈물 중얼거렸다. 정신연령 1000살 짜리 나타샤였으면 고양이 하나 데리고 가는 걸로 저리 저자세로 나오지 않았을 텐데,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도 조심스러운 어린 나타샤의 태도가 묘하게 어색했다.
“혹시 데려오면 안 된다거나 하는 건…….”
“아니, 뭐, 그건 아닌데.”
단또를 데려오는 것 정도는 괜찮은데, 사실조금 이상하긴 했다. 상황만 보면 나타샤가 단또를 데려온 것이었지만, 내가 보기엔 단또가 알아서 우리를 따라온 것이었다. 마치 떠날 날을 알고 있었다는 양 타이밍 좋게 나타샤의 방에 찾아든 것부터가 수상쩍지 않은가.
나는 눈가를 좁힌 채 단또를 응시했다. 단또도 나를 응시했다. 서로 눈을 맞추고 의중을 살핀다. 당연하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고양이 새끼랑 이게 다 뭐 하는 짓인지.
애옹- 애옹-!
그때 갑자기 단또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잠에서 막 깬 아기의 울음소리와 비슷하게 느껴질 정도로 커다란 소음이었다. 마차 안에 느긋하게 앉아 있던 일행들이 깜짝 놀라 귀를 틀어막았다. 앞쪽에서 달리던 말들이 흣칫 놀라 울고, 마부는 우리에게 고양이를 조용히 시키라고 주의를 주었다.
“조심 좀 하시오!”
애옹-!
그러나 단또는 도무지 조용할 줄을 몰랐다.
“야, 야! 닥쳐!”
다급히 그 입을 막아봤으나, 단또가 내 손을 깨물어버렸다. 콰직, 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 같다.
“악!”
피슛-!
피가 새어나왔다. 비명을 지르며 손을떼어내자 단또가 더 큰 소리로 울어댄다. 아니, 운다는 건 너무 점잖은 표현인 것 같다. 저 정도면 이미 짖는다고 하는 게 맞았다. 단또는 개새끼처럼 짖었다. 로비와 나타샤도 단또의 입을 막으려도 해봤지만, 이놈의 고양이 새끼는 도무지 울음을 멈추질 않았다.
“자꾸 이럴 거면 그냥 내리시오! 더 이상은 못 태워주겠구려!”
결국 참다 못 한 마부가 우리를 내려두고 저 혼자 떠나버렸다. 당연하지만 환불은 없었다. 돈 먹고 그냥 날라버린 것이다. 잘 생각해보니까 우릴 내려두고 떠날 때 미묘하게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던 것 같다. 좋은 꼬투리를 잡았다고 생각한 거겠지. 시발.
애옹- 애옹-!
어안이 벙벙한 와중에, 단또는 계속 짖었다.
“야, 너 이 새끼…….”
애옹-
화풀이 삼아 발로 한 대 걷어 차려드니, 단또가 잽싸게 뛰어 몸을 피했다. 쓸데없이 약삭빠른 놈이었다. 양심이 있으면 한 대 맞아주는 게 도리 아닌가. 금수 새끼한테 양심을 따져 무엇하겠냐만은, 짜증이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놈은 앞으로 몇 발자국 걷더니, 뒤돌아 우리를 빤히 쳐다봤다. 괜히 약이 올라, 나는 다시 한 번 달려가 발길질을 했다. 단또는 재빠르게 몸을 피하더니, 다시 일직선으로 몇 걸음 달린 뒤 우리를 뒤돌아봤다.
“이게……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욕지기를 내뱉으며 다시 단또를 쫓아가 발길질을 날리고, 단또는 도망치고, 다시 쫓아가 발길질을 날리고. 헛짓거리가 몇 번인가 반복되었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화가 나 눈에 뵈는 게 없어졌다.
“아저씨, 그만해요. 솔직히 조금 한심해보여요…….”
“아니, 넌 화도 안 나? 이건 호모 사피엔스의 수치라고! 두고 보라지. 만물의 영장을 우습게 본 죄를 묻고 말 테니까!”
“…….”
나타샤는 입을 닫았다. 아, 그래. 이건 이른바 암묵적인 동의라는 게 아닐까. 동료의 허락도 떨어졌겠다, 이젠 정말로 거리낄 게 없었다. 나는 당근 쫓는 당나귀처럼 단또를 계속 쫓았다.
“로웰님! 힘내요!”
“응원하지 말고 아저씨 좀 막아봐!”
“하지만 로비는 힘이 없는 걸요. 그보다, 그냥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지 않나요?”
뒤에서 느긋하게 걸어오는 일행들. 그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들린다는 표현엔 어폐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단지 소리를 듣고만 있을 뿐 제대로 머리에 들어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내 신경은 온통 저 빌어먹을 고양이에게 쏠려 있었다. 어디 언제가지 도망갈 수 있을지 보자. 한 대라도 때리면 내 승리다.
“허억, 허억…….”
그리 단또를 쫓다가. 어느 순간 나는 기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도망치는 단또를 쫓아 도달한 이 장소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저거…….’
게임 내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저 멀리 보이는 산이 눈에 익었다. 험준하게 깎아지른 산들 몇 개가 모여 이루어진 산악. 풀도 몇 포기 없는 척박한 바위산들이 익숙하다.
주변을 인지하고 보니 문득 단또의 행동이 기묘하게 여겨졌다. 그냥 그대로 도망가버리면 될 것을, 저 검은 고양이는 꼭 도망을 치다가 말고 뒤돌아 나를 응시하는 것이었다. 마치 쫓아와 보라는 듯, 이쪽으로 오라는 듯이. 단지 착각일 뿐일까. 정말로 길안내라도 하는 것 같은 행동거지였다.
‘평범한 고양이? 네 눈엔 저게 그냥 고양이로 보이니?’
하필 이 순간 마녀 샬롯이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오른 것은 그저 우연에 불과할까.
단또가 그저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라는 듯한 뉘앙스의 말이었다.
단또가 향하고 있는 저 바위 산악 말이다. 저곳에 무엇이 살고 있는지 떠올려 보면, 샬롯의 말이 새삼 기묘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용이 기거하는 산’
게임 내에서 저 산악을 지칭하는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