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Indian pink (5)
지민이 바로 앞에서 있는 여자의 옷차림이 너무나 화려했다.
화려함을 넘어 과감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긴 머리를 한쪽으로 몰아, 반대쪽 어깨를 타고 가슴까지 내려와 있었다.
새하얀 미니스커트가 아슬아슬하게 여자의 엉덩이를 바짝 감싸고 있었다.
몸매가 너무나 날씬했다.
특히 새하얀 스커트 윗부분이 타이트하게 둘러져 있는 허리가 유독 잘록해 보였다.
키는 지민이보다 조금 작아 보였지만, 전체적인 몸의 밸런스가 작은 마론 인형 같았다.
그 여자가 서 있는 몇 발자국 뒤,한 젊은 남자가 그 둘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 남자의 옷차림도 모델처럼 화려했다.
멀리서 보기엔 지민이 앞에 서 있는 여자와 그 남자가 일행 같아 보였다.
지민이의 지인 같았다.
왜냐하면,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여자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승무원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뭔가 조금 이상했다.
소파에 앉아, 그 여자를 올려다보고 있는 지민이의 표정이 뭔가에 놀란 것처럼 완전히 굳어 있었다,
그리고 급하게 술을 마셔, 붉게 달아올라 있던 뺨이 더욱 빨갛게 변해 있는 걸 나는알 수 있었다.
지민이 앞에 서 있는 여자는 우연히 만난 지민이를 무척 반가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쪽으로 완전히 넘겨진 긴 머릿결 때문에, 여자의 얼굴이 가려져 내겐 보이지 않았다.
화려한 옷차림의 여자가 앉아 있는 지민이의 손을 두 손으로 꼭 감쌌다.
그리고 무슨 말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굳어 있던 지민이의 표정이 조금씩 풀어져 갔다.
지민이도 웃으며 그 여자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지만, 뭔가 당황한 그 표정은 완전히 지워지진 않았다.
둘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여자가 손에 들고 있던 은색으로 반짝이는 명품백에서 뭔가를 꺼내 지민이에게 건네줬다.
그러자 지민이도 옆에 있던 백에서 하얀 조각 하나를 꺼내 그 여자에게 건네줬다.
서로가 주고받은 건 명함 같아 보였다.
그때.
화려한 옷차림의 여자가 한쪽 얼굴을 가리고 있던 긴 머리칼을 귀 뒤로 천천히 넘겼다.
내게 완전히 숨겨져 있던 여자의 한쪽 얼굴이 완전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어!!!”
내 입에서 놀란,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저기 고객님?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네?”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얼굴을 돌려보니, 프런트에 서 있던 호텔 직원이 생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고객님....체크인 도와드릴까요?”
“아....네....”
나는 프런트로 다가갔다.
하지만 다시 뒤로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아...강루아.....강루아로 예약했어요....”
“네. 고객님 잠시만요......”
직원이 데스크에 있는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동시에 내 얼굴이 점점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단 몇 분 만에 체크인을 하고 카드키를 받았지만, 지민이가 앉아 있는 그곳을 쉽게 돌아볼 수가 없었다.
화려한 옷차림으로 지민이 앞에 서 있던 여자는 분명......나리였다.
시간이 그렇게 흘러버렸지만, 분명 나리가 맞았다.
다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땐,
소파에 지민이 홀로 앉아 있었다.
지민이는 고개를 아래로 떨궈 놓고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거 같았다.
“지민아!”
“네?”
지민이가 깜짝 놀라면 답했다.
“체...체크인 했어요?”
지민이의 존댓말....
“응. 올라가자.....”
지민이가 백을 들고 소파에서 일어나자, 나는지민이의 손을 꼭 잡았다.
지민이의 손이 온통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룸으로 올라와 지민이는 커다란 전면 유리 아래.....도심의 야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통유리에 비치는 지민이의 얼굴이 내게 완전히 드러나보였다.
무슨 깊은 걱정과 근심에 빠진 것처럼....
지민이의 그런 얼굴은 지금까지 처음 보는 거 같았다.
지민이의 백 속에 들어 있던 스마트폰이 울렸다.
조용히 야경을내려다보고 있던 지민이가 원목 테이블에 올려놓은 백을 열어,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그리고 답장을 보내고 있었다.
커다란 욕조 속에우리는 함께 들어가 있었다.
지민이의 부드러운 등이, 내 가슴에 완전히 닿아 있었다.
욕조를 막아 세우고 있는 한쪽 창을 통해서도 화려한 도심의 야경이 내려다보였다.
우리는 한동안서로 아무런 말이 없었다.
마치 각자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것처럼...
“루아씨?”
“응?”
“나 사실......아까....”
“응?”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민이가 호텔 로비에서 나리를 만났다고 말을 할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아니야...말이 잘못 나왔어. 호홋.....”
지민이가 조금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행이었다.
3주전, 지민이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인천공항에서 나리를 만났다는 말을 내게 전해줬었다.
하지만.....
내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이었다.
나리.....고 나리....
그냥 예전 내 여자친구였던 여자......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루아씨, 우리 정말 같이 살까?”
“지금 프러포즈 하는 거야?”
프러포즈는남자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호호홋......너도참....”
지민이의 입에서 드디어 진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민아.”
“응?”
“3주 동안 나 너 기다리는 거 너무 힘들었어”
“정말?”
“응”
“우리 저녁 먹을 때 니가 말한 것처럼,
나도 너 자주 만나고 싶어.
근데. 나 때문에 너무 무리해서 비행스케줄 조절하고 그러진 마.
그건 내가 바라는게 아니야.
너를 조금이라도 자주 보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지만, 니가 지금 하고 있는 일까지 지장을 주면서 그러긴 싫어.
지민아.
나 너......정말 좋아해.
너하고 매일 같은 침대에서 잠들고 싶고,
매일 같은 음식 먹고 싶고....그래........
그리고 너도 괜찮다면, 너 하고 결혼하고 싶어.”
욕조 물에 반쯤 잠겨 있는 지민이의 가슴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하지만 지민이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그거 뺏어....”
“뭐를?”
“임프라논....피임.....”
“아....”
“그래서 아까 거기서 그랬던 거야.....콘돔....”
“그랬구나. 앞으로 내가 조심하게....”
내 어깨를 기대고 있는 지민이의 얼굴이 나를 향해 천천히 돌려졌다.
립스틱이 지워졌지만, 여전히 붉은 입술이 조금씩 열렸다.
“아음...”
지민이와 그렇게 많은 키스를 했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뭐라고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 입술에 전해지는 그 느낌이 이전과는 분명 다르게 느껴졌다.
그렇게 키스를 하며, 한껏 부풀어 있는 지민이의 가슴을 씻어내듯 두 손으로 천천히 쓰다듬었다.
미끈거리는 손바닥에 단단하게 변한 유두의 그 느낌이 너무나 좋았다.
“자기야....하고 싶어.....”
“근데....콘돔이 없어.
아! 미니바에 있을까? 잠깐만....”
“그냥....해도 돼....니가 하고 싶은 대로....”
벌어진 내 다리 속에 들어가 있던 지민이의 엉덩이를 슬며시 끌어올렸다.
내 성기가....지민이의 엉덩이골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지민이의 엉덩이가 물의 부력을 타고 내 배 위에 올려져 있었다.
지민이가 물속에 있는 내 자지를 살짝 쥐었다.
내 배 위에 올려져 있던 지민이의 엉덩이가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내 자지 끝이, 물 속의 온도보다 조금 더따스한 곳에 닿아 있었다.
그리곤 천천히 그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아아아.....”
지민이의 머리가 내 어깨 뒤로 완전히 넘어가 있었다.
활짝 열린 붉은 입술이내 뺨 바로 옆에 닿았다.
“아....아아......루아씨....아아....”
잔잔하던 욕조의 물이 작은 파도처럼일렁이기 시작했다.
“아! 아! 아!
너.....하고 싶은 대로 해....
나는 괜찮아......아아아!!”
내가 하고 싶은 대로하라는 지민이의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아아!!! 자기야!!! 으으읍!!!”
일렁이던 물이, 어느새 욕조의 경계를 빠르게 넘어가고 있었다.
[할머님! 안녕하세요. 저 지민이예요!]
[네! 호호호..
할머님. 잘 지내셨어요?
저 여기 왔는데.
시간되시면 뵈러 가려고요]
차에서 지민이가 깔깔대며 할머니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호호호...네 알겠습니다.]
“자기야! 할머님 정말 반가워하신다.”
“집에서 좀 쉬지....괜찮겠어?”
“할머님한테 드릴 거 있어서 꼭 가야 돼”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한동안 만류를 했지만, 지민이는 할머니를 보러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어제와는달리,
오늘의 지민이는 이전의 그 화사한 미소의 얼굴로 완전히 돌아와 있었다.
불필요했던 어제의 그 생각지도 못한 만남을 모두 지워낸 것처럼....
그런 지민이의 얼굴에 내 마음도 한층 편해졌다.
“너희들 왔니!”
대문 안쪽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할머님. 저 왔어요!!!”
“어이구...그래 잘 왔어! 지민아....”
대문이 열리자 할머니가 지민이를 살갑게 맞았다.
지민이를 살갑게 반기는할머니의 모습에 이상하게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누가보면지민이가 할머니의 손녀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이거요.....할머님 드리려고 제가 사왔어요.”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지민이가 오늘 아침 캐리어에서 꺼낸 그것을 할머니에게 안겨 드렸다.
“응? 이런 걸 왜 사와....그냥 오지.....”
“헤에....할머님한테 너무 잘 어울릴 거 같아서요,
홍콩에 비행 갔을 때 샀어요.
한번 열어 보세요.”
지민이의말에 할머니가 포장된 상자를 조심스레 풀었다.
“어머! 이거 스카프잖아?”
색감이너무나 화사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스카프였다.
“어떠세요? 저는 이거 보고 할머님이 하시면 정말 잘 어울릴 거라 생각했어요.”
“어머.....너무 예쁘다.
근데 여기 꺼 비싼 건데...”
“호호호...괜찮아요! 저 돈 많이 벌어요!”
“아이고.....애 말하는 것 좀 봐! 호호호....”
듣기 좋은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거실에 한참 동안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 있다는.....
내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내가 숨을 쉬고 살아가고 있다는 그런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