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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상! 색가사상
중원의 역사에 있어서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만큼 군웅이 할거했던 적은 없다.
수많은 나라들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었고, 수많은 사상들이 꽃을 피우던 시절이 바로 춘추전국시대였다.
제자백가라 불렸던 그 많은 사상 중 후세에까지 널리 알려진 것은 공자(孔子)의 유가(儒家), 노자(老子)의 도가(道家), 한비자(韓非子)의 법가(法家) 등이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위대한 사상이 존재했음을 아는 자는 거의 없다. 인간이란 존재의 근본을 철저히 꿰뚫고 일체의 위선과 체면을 벗어 던진 그 순수한 사상!
음양(陰陽)으로 구성된 우주만물의 존재를 너무도 정확히 터득하고 그 이치를 설파했던 위대한 사상! 그것은 너무도 탁월하여 그 시대에는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다.
하자(河子)의 색가(色家).
바로 이 색가사상이야말로 제자백가의 사상 중 가장 뛰어났지만 시대를 너무 앞섰기 때문에 통치이념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더구나 어느 사가(史家)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 하자의 일생은 후세에 전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수많은 세월이 흐른 후 색가사상은 중원 무림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비운의 사상가인 하자의 삶을 추적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궁성에는 강연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강연회의 주인공은 허름한 마의(麻衣) 차림의 초로인이었다.
이 초로인이 바로 색가사상을 설파하며 천하를 주유하던 하자라는 인물이었다.
하자는 제나라의 군주 제환공(齊桓公)과 그 아래의 수많은 대부(大夫)들 앞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성교는 육체의 결합을 통해 영혼과 영혼이 교류하는 행위입니다. 육체적 즐거움과 정신적인 충만함을 같이 얻는 행위입니다.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성교에 임함으로써 웃음과 행복이 가득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나라가 앞장서서 널리 보급하면 온갖 범죄가 절로 사라지며 부조리, 부정부패도 줄어드는 것입니다.”
하자는 입가에 묻은 침을 스윽 닦으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강연의 마지막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상 설명했던 것처럼 남녀간의 사랑이야말로 한 나라를 지탱하는 초석이요, 국력의 밑바탕입니다. 무릇 선정(善政)을 베풀려면 사랑에 굶주리는 남녀가 없도록 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이야말로 왕도정치(王道政治)를 능가하는 정치의 최고 경지인 색도정치(色道政治)입니다.”
제환공은 음! 하고 침음성을 발하며 턱을 끄덕거렸다. 그 동안 여러 사상가의 말에 귀를 기울여 봤지만 이처럼 진한 감동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하자는 열띤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럼 색도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 여러 산적한 문제가 있지만 우선은 색의 불평등을 바로 잡는 일이 시급합니다.
그 구체적 실천방안으로 색치십대방략(色治十大方略)이 있습니다.”
“색치십대방략이라! 어서 설명해 보시오.”
제환공은 진한 호기심을 느끼고 재촉했다.
하자는 심호흡을 크게 한 뒤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첫째는 관제개혁입니다. 색이호예병형공(色吏互禮兵刑工)의 일곱 조직으로 관제를 정비해야 합니다. 또한 색부(色部)는 재상이 직접 관장하며 모든 조직의 으뜸이 되어야 합니다.”
제환공은 무릎을 탁 쳤다.
“색부라! 과연 그럴 듯 하오. 인간의 삶에서 그렇게 중요한 것을 나라에서 다루지 않으면 말이 되지 않지.”
여러 대부들 속에서 옳소! 하는 소리가 차례로 흘러나왔다. 하자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둘째, 5년에 한번씩 백성들의 성생활 실태를 조사하여 정책의 기본자료로 삼아야 합니다. 셋째, 가난이나 추한 용모 또는 불구 등 각종 이유로 이성의 외면을 받는 자들을 구제해야 합니다.”
“······.”
“이를 시행하는 기관으로 색부에 성균관(性均館)을 설치해야 합니다. 성균관은 이름 그대로 성의 균등한 분배를 추진하는 기관으로 사랑에 굶주린 불우한 남녀가 짝을 찾도록 중매를 전담합니다.
하나 그래도 구제 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 특수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하자는 거기에서 말을 끊고 좌중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중인들의 눈에는 짙은 호기심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하자는 더욱 높아진 음성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우선 가여운 추녀들을 위해 건장한 청년으로 특무기관인 위안대(慰安隊)를 창설해야 합니다. 이것이 네 번째 방략입니다.”
그 말에 좌중의 표정이 일제히 굳어들었다. 추녀들을 위해 의무봉사하는 위안대를 만든다니 어이가 없었다.
제환공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건 별로 현명한 조치가 아닌 것 같소. 나라에서 중신을 서도 안 되면 그냥 제 운수소관에 맡기고 내버려둬야지. 어디 위안대라니··· 살다보면 스스로 짝을 만날 수도 있는데··· 거 참!”
하자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짝을 못 찾은 모든 여인들을 위해 위안대를 만드는 게 아닙니다. 아이를 기르는 과부 중 재가하고 싶지만 안 되는 특수한 경우에만 위안대를 쓰자는 것입니다.”
제환공은 눈매를 좁혔다.
“아이를 기르는 과부 중 재혼이 안 되는 경우에만 쓴다?”
하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욕에 굶주린 과부는 아이들을 학대합니다. 학대받은 아이들은 정서불안에 걸리고 공격적인 성향으로 자라기 쉽습니다. 자칫하면 우범자가 될 가능성도 있지요.”
“······.”
“나라가 평화로우려면 정서가 안정된 선량한 백성이 많아야 합니다. 따라서 어린 자식을 기르며 성욕에 굶주린 과부들을 위안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제환공은 턱에 왼 손 엄지를 가져갔다.
“일리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하지만 추물 과부를 위안하는 일을 누가 나서서······.”
하자는 바로 말을 받았다.
“위안대에 자원하는 자에게는 군역(軍役)을 면제해 주고 각종 혜택을 주면 됩니다.”
“음!”
제환공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이때 대부들의 거의 모두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정반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의 태도를 보이는 자들도 일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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