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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의 비석을 찾아서
사공현은 허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석가세존께서 우주의 이치를 더욱 높은 경지에서 깨우치고 우주와 하나가 됨을 넘어 우주자연을 지배하는 참호흡의 도리를 따로 남겨 놓았단다. 그것을 번역해야 진짜 안반수의경이란다.”
사공영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어요. 불교는 천축에서 쇠하고 중원에서 흥했어요. 중원의 승려들이 얼마나 열심히 천축에서 불경을 구해와 번역했는데 그렇게 중요한 것이 빠졌겠어요?”
사공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기비록에는 바로 그래서 빠졌다고 되어 있더라. 천축에서 불교가 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절전되었다고 말이다.”
사공영아는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기가 막히는군요. 그 얘긴 진시황의 지하궁전보다 훨씬 더 황당해요.”
“동감이다. 하지만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관심대상이 될 수는 없었다. 그 책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았거든······.”
사공영아의 웃음소리가 높아졌다.
“호호호! 공상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만든 이야기를 그냥 옮겨 놓았군요.”
사공현은 그녀의 웃음이 그치기를 기다려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세 번째 장소는 달랐다. 구체적인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공영아의 눈이 다시 초롱거리기 시작했다.
“그곳이 어디여요? 빨리 말씀하세요.”
사공현은 고개를 들어 동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물었다.
“영아! 너는 고구려라는 나라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사공영아는 즉각 고개를 끄덕였다.
“듣다 뿐이겠어요. 사서 중에는 그 나라 이름을 하구려(下句麗)라고 적은 책도 있어요. 너무 자주 쳐들어와서 꽤나 얄미웠나봐요.”
사공현은 공허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중원과 고구려의 관계는 그저 얄미운 수준이 아니었다. 고구려의 존재는 중원 왕조 최대의 위험요소였다. 만약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키지 못했다면 중원대륙은 고구려의 땅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사공영아의 표정이 사뭇 심각해졌다.
사공현은 동남하늘에서 시선을 떼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영아! 너는 고구려가 낳은 왕 중의 왕, 호태왕(好太王)이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사공영아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처음 들어요. 전 단지 고구려라는 나라가 중원과 자주 싸웠다는 것만 알아요.”
“호태왕은 영락대왕(永樂大王)이라고도 불리웠다. 우리는 지금 바로 그 영락대왕의 비석을 찾아가고 있다.”
사공현은 그 말을 하며 한결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사공영아의 안색도 그에 따라 납덩이처럼 무거워졌다.
한 줄기 소슬바람이 관도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사공영아와 사공현의 옷깃은 바람결을 타고 나비처럼 나풀거렸다. 사공영아는 물었다.
“수년 전 붕어하신 우리 명나라의 영락제말고 옛날 고구려에 영락대왕이라는 분이 있었단 말인가요?”
“그렇다.”
사공현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영락대왕은 고구려가 낳은 최고의 정복군주이다. 그런데 천기비록에 그의 비석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대체 어떤 내용인데요?”
사공현은 바로 답하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람이 세졌는지 구름의 흐름이 빨라졌다.
한 무리의 실구름이 천군만마(千軍萬馬)의 이동처럼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오고 있었다.
사공현은 구름의 장엄한 행진을 주시하며 불쑥 물었다.
“영아! 너는 조선(朝鮮)이라는 나라를 아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