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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려보니 교단 본부인 것 같긴 한데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일단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파악하고 싶어 이를 확인하기 위해 밖으로 나서본다.
‘겨울?’
그때가 봄에서 여름 사이였다면, 지금 겨울이었다.
물론 오브 세계가 한국과 사계절이 비슷한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몇 달 이상 시간이 지났다는 건 확실했다.
‘네르아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만나면 울고불고 난리치는 거 아니야?
어떻게 달래줘야 하나 싶어 고민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네르아가 보인다.
네르아는 눈이 한 가뜩 쌓인 정원에서, 흩날리는 눈을 쳐내며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는 모습.
피부나 머리카락도 새하얘서 제법 잘 어울린다.
난 이를 쳐다보다가 네르아를 불렀으나, 들리지 않는지 양 손을 감싸 안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따라가 보는 수밖에.’
늦게 온 게 미안해서 차마 소리는 못 지르겠다.
깜짝 놀래 킬 겸 이를 따라가려는데 요아가 내 옷자락을 붙잡는다.
“주인님.”
주변에 듣는 귀가 있을 수도 있으니 작게 날 부르는 모습.
그게 귀여워서 속으로 웃으면서 뒤를 돌아보니.
요아는 내게 하얀색 장갑을 껴주며 이야기했다.
“요번 겨울은 유독 춥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챙겨왔어요.”
“아. 고마워.”
“네에.”
요아는 배시시 웃어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그렇고 요아야. 저번임무로부터 얼마나 지났는지 알아?”
“으음 아까 보니 8개월 정도 지난 것 같아요.”
생각 이상으로 많이 지났다.
‘그나마 작별인사를 하고 가서 다행이네.’
안 하고 갔으면 아예 커버도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나는 복잡 미묘한 마음을 붙잡고선 네르아가 들어간 곳으로 향했다.
‘어디보자.’
네르아는 어디로 갔으려나?
교단 본부가 워낙 넓어서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난 세 갈래로 나뉜 길을 보다가 요아에게 이야기했다.
“요아야, 일단은 세이라한테 가보자.”
“언니한테요?”
요아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이야기한다.
“언니가 예쁘긴 하죠.”
뭔가 오해하는 모양.
물론 완전히 오해까진 아니지만 어쨌건 지금 당장은 그 목적이 아니었으니.
“아니 그런 의미에서 가려는 게 아니라, 네르아 때문에.”
“네르아라고요?”
가늘었던 눈이 더 가늘어지며 날 노려본다.
이대로 있다간 칼에 찔릴 판.
나는 크흠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고선 이야기했다.
“그런 거 아니라니깐. 일단 안내해줘.”
“네.”
난 볼을 부풀리려는 요아의 볼을 주물럭거리며 안내를 받았다.
그렇게 도착한 세이라의 집무실.
뭔가 두근 거리는 구먼, 나는 왠지 모를 기대감을 감싸 안으며 문을 두드린다.
“들어오세요.”
차분한 목소리.
나는 이를 들으며 들어가자 세이라가 앉아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요아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차분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한다.
“찾아오시는 게 …… 조금 늦으셨네요.”
그래 이 느낌이지.
목소리에서 질투가 묻어나오는 …… 잠시만 질투라고?
내가 뭔가 싶어서 쳐다보니 세이라는 차분한 얼굴로 이야기한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말이 한 가득이지만 …… 이곳을 지켜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 아직은 할 수가 없네요.”
지켜보는 사람이라고 표현했으나 ‘감시’라고 알아듣는 게 맞겠지.
애가 타긴 했으나, 그 이상으로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니 그 날이 끝난 이후.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해요.”
세이라는 내게 쪽지 한 장을 내밀며 말을 이어갔다.
“여기에 네르아가 머물고 있는 장소가 적혀 있어요. 이곳으로 가면 된답니다.”
내가 쪽지를 받아들자, 세이라는 다가 온 내 몸을 쫙 잡아당기더니 작게 속삭인다.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주, 주인님.”
뭐?
난 화들짝 놀라면서 세이라를 쳐다보자.
세이라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주제에,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럼. 나중을 기대하고 있을게요.”
이에 대해 좀 더 물어보려 하니.
세이라는 신성력을 이용해 나와 요아를 강제로 밖으로 내보냈다.
‘말 하는 걸 들어보니 ……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단순히 꿈속에서 100일간 지냈다! 하는 정도의 그런 느낌이 아니다.
마치 내가 게임에서 세이라를 키워줬었던 거를 기억하는 듯한 느낌.
겁나 궁금해 미치겠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니 참는 수밖에.
‘그럼 일단은 네르아한테 가볼까.’
난 네르아가 울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쪽지에 적힌 장소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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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렇게 세이라의 집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있는 방.
일부러 구석에 있는 장소에 네르아의 거처를 정해줬는지.
깊숙하게 들어가지 않으면 잘 눈에 안 띄는 장소에 배치 되어 있었다.
‘그래도 신경 많이 써준 게 느껴지는게.’
다른 방에 비해 더 화려하고 깔끔하단 느낌이 확연히 들었으니까.
나는 이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네르아의 방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화들짝 놀라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뭔가 무서워하는 모양. 나는 어쩔 수 없이 안심 시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었다.
“네르아?”
그제야 부산스러운 소리가 사라지며 문이 열린다.
아니, 정확히는 네르아의 얼굴만 살짝 나올 수 있을 정도로만 열렸지만.
“……”
네르아는 문을 열자마자 나를 노려보며 입술을 쭉 내민다.
아무래도 단단히 화난 모양.
이를 어쩌지 하고 고민하고 있자니 네르아가 내게 뭐라도 말 해보라는 눈빛을 보내온다.
“미안.”
일단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을땐 사과부터 박도록 하자 그 편이 제일 나았으니.
내 사과를 들은 네르아는, 여전히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한다.
“너무 늦었어.”
“……”
“내가 ……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그저 압도적으로 미안할 뿐이라 그저 곧이곧대로 듣기로 결정했다.
“말했잖아 나 여기서 쫓겨났었다구, 물론 한 사람한테 쫓겨난 거라 그 사람한테만 안 들키면 괜찮긴 하지만 그래도 무서워서 ……”
“진짜 미안해 누나.”
“…… 미워, 밉다고.”
이거 보니깐 오늘 하루 만에 안 풀릴 모양.
나는 그렇다면 성물공세라도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자니, 네르아가 이런 말을 한다.
“가 …… 연우 너 미워.”
얼마나 화났으면 저런 말까지 하는 건지.
일단 나는 네르아가 진정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선물을 사러갈겸 가려고 하자.
네르아가 울먹이며 외쳤다.
“저, 정말 가는 거야? 나는 엄청 기다렸는데! 바로 가는 거야?”
어 선생님? 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서 갈팡질팡하고 있자니, 네르아가 날 잡아당긴다.
이제 그만 들어오라는 의미. 나는 져주듯 끌려가며 방으로 들어왔다.
‘확실히 세이라가 상당히 신경써주긴 했나보네.’
배치되어 있는 가구건, 놓여 있는 음식들이건.
모두 다 네르아를 위해 맞춰놓았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들었다.
‘가구들도 전체적으로 작은 편이고, 음식들도 여자애들이 좋아할만한 걸로 가져다 놓았네.’
이 정도면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었을 터.
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보고 있자니, 네르아가 입을 열었다.
“…… 그래서 딱히 할 말 없어?”
뭔가를 원하는 듯한 얼굴.
나는 고민하다가 한 가지 치트키를 써보기로 결정했다.
“보고 싶었어요 누나.”
그 말을 하면서 안아주니 네르아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표정이 느슨해지며 이야기했다.
“흠흠 그래?”
곧바로 화가 풀린 모양이다.
하여간 단순해서 귀엽다고 생각하다가, 나는 말을 이어갔다.
“그건 그렇고 누나 질문 하나 해도 돼요?”
“응? 뭔데?”
벌써 화가 풀린 모양인지 내 말을 받아주었다.
“누가 누나를 쫓아낸 거예요?”
지극히 단순한 이야기다.
이 상황은 누가 보더라도 썩어버린 교단의 행태를 보여주고 있었으니.
‘교단 본부는 이렇게나 사치스러운데. 그 외의 지역은 빈민촌 못지않다? 이건 안 봐도 교단이 겁나게 썩어버렸다는 뜻이지.’
지켜준다는 명목하에 어마어마하게 세금을 걷어 사치를 부리고 있다는 것이 안 봐도 뻔할 노릇.
이건 유치원생이 봐도 당연히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다음은 성녀를 쫓아냈다란 부분인데.’
이를 누가 쫓아냈는진 감은 잡히나, 확신을 할 수가 없어서 물어보았다.
이 대답에 따라 이 교단이 어디까지 썩어 있는지 알 수 있었으니.
‘보나마나 교황이겠지.’
이런 예상을 하며 물어보자, 들려오는 대답은 의외의 대답이었다.
“우리 엄마.”
“……?”
갑자기 탈룰라가 되어버렸네.
당황스러워 하고 있자니, 네르아가 손을 내저으며 이야기했다.
“아 이렇게 설명하면 안 되겠구나. 으음, 교황이야.”
그러니깐 썩어버린 교황은 네르아의 엄마이고.
네르아는 그 교황의 딸이자 성녀란거지?
갑작스레 느껴지는 복잡한 가정사, 이에 난색을 표현하자니 네르아는 쓰게 웃었다.
“엄마라고 말은 했지만 …… 엄마는 아니야. 어릴 적에 …… 절연 당했으니까.”
자기 딸을 절연?
게다가 딸이 성녀인데?
점차 내용이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사단이 일어난 거야?’
난 그런 생각을 하며 차분히 이에 대해 물어보았다.
“혹시 말해줄 수 있으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
내 물음에 네르아는 어색하게 웃음 지으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괜스레 정리한다.
“나중에 말해도 될까 ……?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서.”
툭하고 건드렸다가 울 것만 같아서 나는 괜찮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그렇다면 일단은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
확실한 건 이 교단 내엔 배신자들이 득실거릴 뿐만 아니라, 교단은 썩을 대로 썩어버렸단 거겠지.
‘그리고 교황도 마찬가지고.’
역시 독점과 무력이 합쳐진 곳은 썩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일단은 밥이나 먹으러 갈까요?”
“응.”
일단 네르아를 달래주면서 정보를 획득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나는 세아 누나도 찾아가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식당을 안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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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한 사람한테 쫓겨났다고 했지.’
그 한 사람은 흐름 상으로 보았을 때 교황일 확률이 높다.
즉 자기 어머니한테 쫓겨났을 확률이 높은데. 도대체 이유가 뭐야?
이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자니 문뜩 요아가 이런 말을 해온다.
“옛날에 왔을 때 보다 식당 안이 많이 비어있네요. 크루세이더님이나 팔라딘님들도 거의 안 보이고 …… 임무하러 가셨을리는 없을 테고, 뭔가 문제가 있는 걸까요?”
사치하러 간 거 아니야? 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뻔했으나 애써 참았다.
썩어버린 교단의 고위 간부들이 안 보이면 딱 그것 밖에 할 게 없으니.
‘얼마나 썩은 건지.’
난 이 오브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며 밥을 먹고 있자니, 문뜩 네르아가 이런 말을 한다.
“나 여기서 밥 먹을 동안 세이라 언니 말고는 크루세이더나 팔라딘 거의 본 적 없어.”
그 말에 요아가 의문을 표한다.
“네 정말요? 대회의 할 때는 여기로 먹으러 오시는데 거의 못 보셨다고요?”
“응. 성기사들은 많이 봤지만.”
“……”
요아는 뭔가 이상함을 눈치 챈 모양이다.
나는 이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제 아무리 사치를 하러 다닌다고 해도, 몇 달 내내 거의 안 보이는 건 좀 이상한데.’
암만 썩었다고 해도 기본적인 업무 자체는 진행할 테니, 한 달에 몇 번 정도는 얼굴을 비추는 게 당연하건만.
안 보인다는 건 그런 것조차 안하고 있었단 소리니까.
‘그 정도로 썩었다고 하기엔 너무 극단적인데?’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와중, 요아가 이런 말을 해온다.
“아 그리고 동료들한테 들었는데 …… 교황님도 최근에 활동을 거의 안 하셨다고 해요.”
교황 얼굴도 안 보이고, 고위 간부진들도 도통 모습을 볼 수가 없다라.
나는 이를 들으며 두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납치, 배신.’
그래 악마들이 자주 이용하는 수법들이었다.
나는 혹시 이 교단은 이미 악마들의 소굴이 아닌가란 생각을 하며 팔짱을 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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