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3화
프리즘 아츠는 모드겜이다.
DLC와 모드가 너무 야겜쪽으로 치우쳐져서 모두 다 야겜으로만 생각하는데 이론상으로는 오픈월드에 모드를 첨가한 게임이다.
무슨 모드가 적용됐느냐에 따라서 난이도와 분위기가 천차만별이다.
기본적으로 캐릭터들의 외형을 상향조정하는 모드부터
메인스토리의 길이를 늘리거나 줄이는 모드,
새로운 스토리를 추가하는 모드,
기존에 있던 적을 없애거나 추가하는 모드,
게이트의 등장확률을 늘리거나 게이트가 아예 등장하지 않게 변경하는 모드도 있다.
야겜적인 요소가 없는 모드만 해도 다양하다.
이것이 어디까지 적용되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네? 왜요?"
이지아를 빤히 쳐다보니 되물어왔다.
⋯귀엽다.
일단 외형 보정 모드는 확실히 적용되어 있다.
"일단 계속 둘러볼까요?"
"네, 그래요."
나는 관심 없는 척 역사관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이지아도 주변을 둘러보며 날 따라왔다.
그렇게 도착한 역사관은⋯생각보다 엄청난 규모였다.
"와아⋯."
"어이가 없네⋯."
아예 건물 하나를 새로 지어뒀다.
도대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
'아씨 꼬였네⋯.'
이 세계는 미쳤다.
그게 내가 얻은 결론이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거지?
일단 본편 스토리는 진작에 끝났다.
진작 정도가 아니다. 10년 전에 끝났다.
이 정도라면 아직 괜찮은 편이다.
더 문제는 모든 스토리 모드가 전부 적용되어서 역사가 엉망진창이 되어있다는 점이다.
연옥의 주인이 쓰러진 지 3년 이후에 연옥과 게이트가 연결되어서 연옥의 주인이 침공해 오거나,
마신이 이미 강림한 이후에 마신 강림을 위한 비밀결사가 새로 생겨나서 토벌된 역사도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정작 마신은 아직도 토벌되지 않았다.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다.
"저기 지아씨."
"네?"
"여기는 어떤가요?"
"어⋯흥미롭네요. 영웅 협회는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해 왔군요."
"뭔가 이상한 건 없나요?"
"이상한 건 딱히 없어보이는데요?"
이런 어이없는 역사가 멀쩡하게 기록되고 있다는 것이 의미하는 건 단 하나다.
모드가 꼬였다.
메인 스토리만 빠르게 해결하고 편하게 산다는 내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메인 스토리가 이미 끝나버렸는걸?
그럼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몇 없다.
그냥 이대로 살거나, 아직 미해결된 스토리 모드를 깨거나⋯.
일단 여기 전시관을 봤을 때 미궁과 관련된 스토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 같다.
미궁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다.
"왜 그러시나요?"
"아뇨. 왠지 짧은 시간에 많은 사건을 해결했다 생각해서요."
"그 만큼 영웅 협회가 대단하다는 거겠죠."
"그런가?"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아니다. 그럴 리 없다.
영웅 협회는 이렇게 대단한 집단이 아니다.
"일단 적당히 볼건 다 본 것 같은데 슬슬 나갈까요?"
"저 쪽에 전시관이 더 있는거 같아요! 전리품들을 전시해둔 것 같은데⋯."
이지아가 완전히 홀렸다.
안돼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삐리리. 삐리리리.
알 수 없는 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 이지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 도준씨 저 잠시 통화좀 하고 올게요⋯."
이지아는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으슥한 곳으로 사라졌다.
핸드폰?
프리즘 아츠 세계관에서 핸드폰은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다.
왜 아직도 저런걸 쓰고 있지?
────◆────◇────◆────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이지아는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일 있나? 라는 생각이 들 때 즈음에 이지아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볼게요. 인사를 제대로 못 드려서 죄송해요.]
뭔가 일이 생겼나보다.
그럴수도 있지.
아직 만난지 일주일도 채 안 된 사이다. 세세한 사연까진 모르는게 당연해.
나는 그 사이에 이 세계에 대해서 좀 더 알아봐야겠다.
프리즘 내부를 걸었다.
지금 상태를 알게 되니 보이는 풍경도 달라졌다.
처음 풍경을 내려다봤을 때는 막막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온 세상이 평화로워 보인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건가?
진짜 프리즘 아츠를 하듯 하면 되나?
갑자기 자유도가 너무 높아져서 적응이 안 된다.
차라리 뭔가 목표라도 있었더라면⋯.
"거기 생도분! 혹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상념에 잠긴 상태로 배회하는데 누군가가 날 불렀다.
돌아보니 한 눈에 봐도 수상한 옷을 입고 있는 생도 무리가 보였다.
"저희가 지금 앙케이트를 진행하고 있거든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시간 좀 내주시겠어요?"
"아, 네."
"지금 프리즘 생도들이 진로 계획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간단히 앙케이트를 실시하고 있어요."
알고 보니 프리즘에 장수하고있는 불쌍한 인생들이였다.
수상해보였던 모습도 자신들과 비슷한 인생을 찾는 가련한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내민 설문지를 받아드니 질문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첫 번째 항목⋯ 당신은 각성자 입니까? 였다.
첫 질문부터 어렵다.
난 각성자인가?
'하늘을 가리는 열 세개의 손바닥'이라는 살면서 들어본 적 없는 수상한 능력은 생겼다.
그런데 이걸 각성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정확히 무슨 능력인지도 모르겠고⋯빈칸도⋯아,
미래 계획이 정해졌다.
물음표로 가려진 12개의 능력을 모두 찾는 것을 목표로 하자.
덤으로 아직 클리어되지 않은 모드들도 경험해보고 싶다.
야겜이라도 근본은 모드질 게임이니까.
할 일을 정했으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지금 당장 시작하자.
"아, 잠깐! 어디가세요!"
불쌍한 장수생들의 부름을 무시하고 난 프리즘의 본관으로 향했다.
────◆────◇────◆────
프리즘 본관에는 전시관이 있다.
영웅 협회의 프로파간다 전파용 전시관과는 다르게 정확하게 확인된 사실만 나열한 전시관이라 영웅 협회의 전시관보다는 신뢰도가 더 높다.
그만큼 더 재미는 없지만⋯.
담담하게 정리된 역사를 보니 더 골치가 아파진다.
도대체 연옥의 주인이 토벌됐는데 연옥에서 게이트는 왜 또 열린걸까?
게다가 다시 닫을 때 까지 연옥의 주인이 다시 토벌됐다는 내용은 없다.
게이트의 보스가 없는데 게이트가 열렸다가 닫혔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약과였다.
대미궁이라는 모드가 있다.
게이트와 완전히 별개의 던전을 추가하는 모드인데 일반적인 모드가 작은 던전을 하나쯤 추가하는 모드라면 이 모드는 아예 도시 하나를 뒤덮을 정도의 크기의 초대형 던전을 추가하는 모드다.
층수만 7층에 달하고 수많은 몬스터와 아티팩트, 히로인이 추가되는 모드인데 제작자가 꾸준히 업데이트를 하고 있어서 인기를 끄는 모드다.
당연히 나도 모드를 적용했었고, 이 세상에도 대미궁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런데⋯
"대미궁이 복사가 된다고?"
대미궁이 두 개가 있다.
흔히 이세계라고 부르는 이마니투스 대륙에 하나, 대한민국에 하나.
도대체 모드가 어떻게 충돌하면 이렇게 되는지 감도 안 잡힌다.
그래도 재미는 확실한 모드니까 시간이 나면 한번 가 봐야겠다.
두 대미궁 모두 아직 정복되지 않았다고 하는걸로 보아 아직 나에게도 기회가 있을 것 같다.
대미궁에 추가된 캐릭터중에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히로인이 있었는데⋯.
행복한 추억에 잠겨 있는데 등 뒤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한명신 학장이 있었다.
"의외로군. 이런 곳에 생도가 오다니. 보통 영웅 협회의 전시관을 많이 가는데 말이야."
"안녕하세요 학장님. 영웅 협회의 전시관에 가 봤는데 성공한 역사만 전시해 뒀더라고요. 저는 정확한 역사를 알고싶은거지 승리한 역사만 알고싶은게 아니라서 이 쪽으로 왔습니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드는듯 학장님이 인자하게 웃었다.
"요새 보기 드문 참한 생도로군. 혹시 전시내용 중에 궁금한 사함이 있나? 내가 아는 한 알려주지."
"아 그럼⋯."
나는 학장님에게 대미궁에 대해서 물어봤다.
두 대미궁이 똑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는지.
왜 서로를 구분하는 별도의 이름이 없는지.
왜 아직 정복되지 않았는지.
등등⋯
내 질문을 듣던 학장님이 대답했다.
"대미궁이라⋯. 추억이 되살아나는군."
아니, 대답이 아니였다. 그것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내가 아직 현역이던 시절, 대한민국은 혼란스러웠지. 매일같이 새로운 게이트가 만들어지고 토벌이 늦어지면 몬스터가 쏟아져나와서 대한민국을 뒤덮었다. 대한민국의 각성자는 모든 게이트를 닫기에 역부족이였고 갓 연구되기 시작한 마법은 실전에 투입하기엔 무리였지. 그렇게 악전고투하며 점점 국토를 회복해나가던 도중 발견한 것이 대미궁이였다."
"그럼 여유가 없어서 정복하지 못했던 건가요?"
"그것 뿐만이 아니다."
잠시 숨을 고른 학장님이 말을 이었다.
"혹시 생도는 대미궁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지?"
"총 7층이고 자체적인 레벨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바로 그것이 문제야. 대미궁은 그 자체로 다른 법칙이 적용되는 별세계같은 곳이였다. 제 아무리 강력한 각성능력을 가졌더라도 대미궁에 입장하면 대미궁의 법칙이 적용되어 약해지기 때문에 대미궁에 관심이 적어진거야."
"아, 그렇군요. 그럼 마도사들은 관심을 안가지는건가요?"
"마도사들도 새로운 마법체계를 익혀야된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각성자들보다는 상황이 낫긴 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각성자와 마도사의 대우 차이를 아는가?"
"각성자가 더 대우를 받죠."
"그렇지. 사회가 마도사에 관심이 적기 때문에 더욱 대미궁에 관심이 적어진게야. 물론 최근 게이트의 발생 횟수가 적어지고 대미궁산 마석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대미궁을 정복하는 움직임이 시작되려는 모습이 보이더군."
"그랬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얼. 언제든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편하게 물어봐도 돼."
학장은 뭔가 만족한 듯 나에게 명함을 남기고 끌끌대며 사라졌다.
그저 말동무가 필요했나보다.
이 명함의 무게⋯보통이 아니다.
그저 종이 한 장인데 거기에 적힌 번호가 무게감을 더한다.
한명신 학장과 가까워지는게 쉽지 않은데 이렇게 쉽게 얻게 되다니 운이 좋았다.
행운의 여신이 나에게 웃어주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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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식으로부터 정규 강의 시작까지 일주일간의 여유시간이 있다.
예비생도들은 프리즘의 다양한 시설을 이용하여 각자 필요한 준비를 할 수 있다.
그 준비의 일환으로 나는 지금 노예 시장에 와 있다.
정식 명칭은 마법 보조 재료 시장.
그런데 게임을 하는 입장에서 마법 시약같은 건 살 필요가 없고, 결정적으로 모종의 이유로 인권을 박탈당한 인간이나 이종족도 판매하기 때문에 편의상 노예 시장이라고 부른다.
프리즘 생도는 매 학기 1개의 보조 재료를 무료로 얻을 수 있다.
나는 그 노예를 다른 사람들이 채가기 전에 먼저 마음에 드는 캐릭터를 선점하기 위해 찾아왔다.
노예 히로인⋯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어감이다.
합법적으로 상하관계가 규정된 히로인. 생각만 해도 꼴린다.
그 노예시장에서 나는,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