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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화 〉49화 (50/191)



〈 50화 〉49화

"일단 우리 일족의 거처로 돌아갈 거야. 그리고 내 이름이 잊혀질 때까지 기다리는 거지."


"선생님..."

"왜?"

"우리 현실적으로 좀 생각하죠. 도망치는 거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요. 제대로 현실을 마주보...고..."


현실을 마주 본다, 라...
내가 할 말이 아니구나.

"왜 그래? 표정이 이상한데."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슬슬 돌아가시죠?"


"벌써? 나 3일 만에 처음으로 쉬는 건데."


"3일 동안 한 번도 안 쉰 거에요?"


"응. 무슨 인터뷰 하고 방송 나가고 영상 촬영하고 발표하고 자료 보완하고... 한숨도  잤다니까. 이젠 지쳤어."


올리비아가 자리를 깔고 누워버렸다.
이 철없는 아이를 어쩌면 좋을까?
난 그냥 생각난 대로 말하기로 했다.


"그럼 올리비아는 여기서 살아! 엄만 갈 거야!"


"어머니?!"


엄마라는 단어에 올리비아가 반응했다.
그러고 보니 올리비아의 어머니가 유명한 분이라고 했었지.


"생각해보니 올리비아 도망쳐 나온 거였잖아요. 만약에 다시 거처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요?"

"그...글쎄...?"

"다신  나오지 않을까요?"

"...그럴 것 같기도 해."


"그럼 어떻게든 프리즘 안에서 잘 처리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너무 힘든데..."


올리비아가 징징거렸다.
생각해보면 힘들 것 같기도 하다.
나였으면 절대 못 했을 거야.
그냥 올리비아를 편하게 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래도 지금처럼 또 잠적하는 건  된다.

"한동안 라티니아의 저택에서 숨어지내는 건 어때요?"


"싫어. 난 여기에 계속 있을 거야."

"너무 그러지 말고요. 밖에 다른 애들도 있는데 인사도 하고."


"난 여기가 제일 편해."


"제가 불편해서 안 돼요. 그러지 말고 나가시죠."

"싫어! 넌 마도사놈들이 얼마나 끈질긴지 몰라. 프리즘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하루도  돼서 들킬걸?"

그새 엄청나게 시달렸나 보다.
프리즘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바로 들킨다...라,
즉 프리즘에서 벗어나면 된다는 거다.
좋아. 방법이 보인다.

"올리비아. 혹시 들키지 않고 학장님에게 가실 수 있어요?"


"응. 통로는 연결되어있어."


"그럼 학장님에게 가서 한 달 정도 잠적한다고 하고 오세요. 제가 그사이에 도피처를 마련해볼게요."

"알았어."

올리비아가 선선히 대답했다.
그런데 여전히 바닥에 들러붙은 채 요지부동이었다.


"올리비아? 알았다면서요."


"좀만 있다가 갈게. 정말 피곤하단 말이야."


"참...어쩔 수 없네요."


고생했으니까 그래도 해달란 대로 해 줘야지.
난 바닥에 앉아서 올리비아의 머리를 허벅지에 올렸다.
올리비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날 올려봤다.


"지금 당장 가라고  해?"

"고생하셨잖아요. 일단 한숨 주무세요."

"응. 고마워."


올리비아가 내 허벅지를 벤 채 눈을 감았다.
난 올리비아가 잠들 때까지 머리를 쓸어 주었다.




────◆────◇────◆────

사흘 동안 한숨도 안 잤다길래 하루종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올리비아는 금방 일어났다.
잠에서 깬 올리비아는 날 저택에  던져놓고 사라졌다.
응접실에는 놀란 토끼 눈이 된 라티니아와 나만 남았다.


"도준씨? 방금 그분은..."

"제가 말했죠? 아는 사람일 거라고."

"올리비아 교관님이셨어요? 그냥 오셨으면 되는데 왜 그렇게 수상하게 오셨었을까요?"

"들키면 또 끌려가니까 몰래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방법이  수상한 구체 안에 숨어서 오신 거고요?"

"아마 보이지 않게 숨어서 오다가 들킨 걸 거예요."

저대로 왔다 간 정체를 들키기 이전에 이미 신고가 들어갔을 거다.
저택의 호위에게 걸려서 모습을 드러낸 거겠지.


"그렇군요."


"너무 힘들다고 도망가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런데 혹시 라티니아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요? 자랑할만한 내용은 아니지만, 저도 아무 힘이 없어요."

"라티니아가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이마니투스 대륙으로 도망갈 생각이다.
그래도 왕녀인데 뭐가 있어도 있지 않을까?
라티니아라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난 내가 생각한 방법을 라티니아에게 말했다.


"저희 왕국으로요?"


"어렵다면 어쩔 수 없고요."

"아뇨. 가능할  같긴 해요. 약간 그림이 안 좋긴 한데..."

그림이 안 좋다?
라티니아도 뭔가 사연이 있나 보다.
하긴 사연이 없으면 프리즘에 왔을  없지.

"그럼 그냥 없던 일로 하죠."


"아뇨! 올리비아 교관님은 저도 관심이 많아요.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해볼게요."


"고마워요. 라티니아."

"아뇨. 저도 관심이 있으니까요."

라티니아가 스마트워치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어딘가에 연락을 돌리던 라티니아가 급하게 나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라티니아가 날 재촉했다.


"도준씨? 어서 나갈 준비 하세요."

"...어딜요?"

"만날 사람이 있어요. 그분이 도와주실 거에요."


라티니아의 인맥이 빛을 발했나 보다.
그런데 나는 왜 필요하지?
내가 말을 꺼낸 거라 가긴 하겠다만...
대충 옷을 갈아입고 라티니아를 따라서 저택을 나섰다.


라티니아는 프리즘의 본관으로 향했다.
학기가 마무리된 상황이라 본관에는 만날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을 텐데?


"라티니아. 누굴 만나러 가시는 거예요?"

"학장님이요. 프리즘에 올 때도 학장님이  도움을 주셨었거든요."

"학장님...이요?"

한명신이라면 지금 본관에 남아있을 수도 있겠다.
지금 학장실로 가면 올리비아도 같이 있을 거고.
괜찮은 것 같다.

"왜 그러시나요? 혹시 학장님이 불편하시다면..."

"아뇨. 학장님이 불편하진 않아요. 그냥  의외여서 그랬어요."


"그랬군요. 아마 만나보시면 다르게 생각되실 거에요. 생각보다 부드러우신 분이시거든요."


그건 나도 안다.
생각보다 말이 많은 것도 알고.
학장님에게 할 말을 맞추던 우리는 학장실 앞에 도착했다.
라티니아가 노크를 하려 해서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갔다.

"도준씨?!"


 생각대로 학장실에는 한명신 학장님과 올리비아가 마주 앉아 있었다.
학장님은 올리비아를 대견하게 바라보고 있고 올리비아는 평소와 다르게 쭈뼛쭈뼛하고 있었다.
아직  안 했나?

"안녕하세요. 학장님."

"신도준 생도? 자네가 오다니 의외로군. 음? 호오..."


문을 열고 들어온 날 의외인 듯 바라보던 학장님이 날 뒤따라서 들어오는 라티니아를 보고 곧바로 납득했다.


"라티니아님이 데려오신다고 한 분이 자네일  몰랐군. 일단 앉지."


난 올리비아의 옆에 앉았다.
당연한 듯 라티니아도  옆에 앉았다.
...자리가 좁다.

"저기 라티니아...님? 여기 자리가  좁지 않나요? 반대쪽은 넓은데."

"그렇게  부르기로 했잖아요."

"아니 그래도 학장님도 '라티니아님' 이라고 부르시는데 어떻게 제가 감히..."

학장님처럼 대단하신 분도 라티니아님이라고 부르신다.
생각해보면 지아도 라티니아씨라고 부르고 루퍼스도 라티니아님이라 부르고 정체불명의 비밀 호위도 왕녀님이라고 불렀었다.
라티니아를 존칭 없이 부르는  나랑 비비앙 뿐이다.

"아무튼! 존칭은 금지에요!"

"우리 공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따라야죠. 네."


"공주님도 금지!"

"두 분 사이가 참 좋으시군요."

"아뇨! 그런 건..."


학장님이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라티니아도 뒤늦게 지금 학장님이 앞에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부끄러워했다.
그 모습을 올리비아가 부러운  바라보고 있었다.





엉망이 된 분위기가 가라앉은 뒤 난 입을 열었다.
일단 내가 당사자니까 내가 말을 꺼내야지.


"학장님. 혹시 올리비아에게 어디까지 들으셨어요?"

"호오. 올리비아라고 부르는 건가? 많이 친해졌나 보군."


"학장님..."


"크흠. 미안하네. 어디까지 들었나, 라... 아직 아무것도 못 들었네."

역시 아직 올리비아가 말을 안 꺼냈나 보다.
우리가 너무 빨리 왔나?
오히려 잘 됐다. 올리비아가 잘 말할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학장님에게 천천히 말을 꺼냈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학장님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볼만했다.


"⋯그렇게 되어서 말이죠. 또 말없이 잠적하는 것보다 다음 학기가 시작될 때까지 이마니투스 대륙으로 피신할  있을까 하고 찾아온 거예요."

"그래서 신도준 생도가 찾아온 거군."

"네. 그렇죠."

"자칫하면 또 도망간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마침 라티니아가 공주...가 아니라 왕녀니까요. 왕녀님이 관심을 보여서 본국으로 데려갔다는 식으로 보도자료를 뿌리면 될 거예요."


"라티니아님은 신분을 그다지 노출하고 싶지 않아 하시던데?"

"저는 괜찮아요. 도준씨 도움이 된다면야..."

"그렇습니까? 호오...흐음..."

한명신 학장님이 뭔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진지한 계산인가 했는데 올리비아를 중간중간 힐끗 쳐다보는 게  아닌 것 같다.
이 양반이 정말⋯.

"몇 가지 방법이 떠오르는군."

"정말인가요? 알려주실  있을까요?"


"그 전에 혹시 자네는 무력 수준이 어떻게 되나?"

 무력 수준?
예전에 김어쩌구 하는 포스트 히틀러랑 측정했을 땐 측정 불가가 나왔었다.
그런데 살면서 싸움이란  해본 적 없는데...

"영웅 협회의 측정기로 측정했을 때는 기계가 박살 나서 측정이 안 됐었어요. 그런데 막상 저는 싸움을 해본 적이 없어서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흠...그런가?"


"제 무력 수준은 왜요?"

"자네의 계획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네.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중요한 건?"

"과연 올리비아가 자네를 두고 이마니투스 대륙으로 갈까?"


그 질문에  올리비아를 돌아봤다.
올리비아는 명백하게 동요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른인데 알아서 잘하지 않을까요?"

"어른이라니? 올리비아는 아직 성인식도 치르지 않았네. 아직 어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 외모에 미성년자라니 농담도 정도가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없다.

"내 말을 오해했나 보군. 마녀는 성장이 느려서 성인식을 다른 이종족보다 늦게 하네. 올리비아는  이전에 뛰쳐나온 거고."

"지금 저게 성장이 느린 거라고요?"

"정신적인 성장을 말한 거네. 일단 스무 살은 넘었으니까 인간 기준이라면 충분히 어른이지. 그래도 정신적으로 충분히 성장하려면 적어도 10년은 더 필요할 거야."

"그렇다면 이해가 되네요."

올리비아는 진짜 몸만  애새끼였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반응이 다 이해가 된다.
그럼 섹스할 때 성격이 돌변한 건 뭐지?

"아무튼, 그래서 자네가 함께 가야 되는데 명분이 없어."


"제가 같이 가야 된다면 확실히 문제가 있네요."

"그리고 자네도 혼자서 갈건 아니지 않나? 그래서 자네의 새로운 신분이 필요한 거였네."

"그래서 제 무력 수준을 물어보셨던 거군요."

"가장 간편한 게 용병이니까. 마침 옛날 동료 중에 아직도 현역 용병으로 활동하는 친구가 있거든. 그자에게 도움을 받으면 유령 용병단을 만드는 건 간단하지."


"일단 그 방법도 생각해 둬야겠군요. 다른 방법은 어떤 건가요?"

"다른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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