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화 〉 149화
* * *
신도준과 이지아의 행위는 해가 뜨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셀리는 그들의 행위에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그만큼 그들의 섹스는 자극적이었다.
'저, 저런 물건까지...!'
다양한 체위로 박아넣는 것도 모자라서, 어디에서 가지고 왔는지 모를 다양한 성인용품까지.
신도준은 철저하게 이지아의 전신을 주무르고, 쓰다듬고, 자극했다.
이지아도 그런 신도준에 맞춰 보기만 해도 흥분이 전해지는 몸짓을 하며...
"셀리? 한숨도 안 잔 거야?"
"어? 아, 아니야."
둘의 행위를 다시 떠올리던 셀레네가 라티니아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돌렸다.
아직 잠이 덜 깬 듯 눈을 비비던 라티니아가 어제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는 셀레네를 보고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긴. 뻔히 보이는데."
"아니라니까 그러네. 아무튼 아니야."
"그래, 그렇다고 해 둘게."
"그렇다고 해 두는 게 아니라 그런 거야."
라티니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셀레네에게 다가와서 셀레네의 팔을 잡아당겼다.
힘으로는 라티니아를 당해낼 수 없는 셀레네가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물론 몸을 빼내려면 빼낼 수 있겠지만,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라티니아는 셀레네를 얌전히 침대에 눕히고 착실하게 이불까지 덮어주었다.
"저기, 언니?"
"조금 자 둬. 저택까지 돌아가려면 또 하루종일 걸어야 하니까."
하루쯤 안 자도 문제없는데,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굳이 말로 꺼내진 않았다.
라티니아에게 그런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 정도 말은 할 수 있다.
"침대는 불편한데..."
셀레네는 지금껏 침대를 이용해본 적이 없다.
항상 벽에 기대서 잠깐 자거나 어둠 속에 숨어서 휴식을 취해왔다.
그것이 셀레네의 수면법이었다.
저택에 있는 고급 침대와 비교할 바는 못 되지만, 이런 쿠션감 있는 침대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셀레네였다.
그리고 그것은 라티니아도 이미 알고 있는 사항이었다.
"이제 익숙해져야지. 언제까지 숨어지낼 순 없잖아."
"난 지금처럼 지내도 상관없어."
"내가 걱정돼서 그래. 언니 말 들어! 알겠지?"
"하아..."
저 상태의 라티니아는 누구도 못 말린다는 걸 셀레네는 경험상 잘 알고 있다.
괜히 더 말하는 거보단 얌전히 따르는 게 좋다.
'의도는 좋으니까... 하여간 못 말려.'
속으로 작게 불평불만을 터뜨린 셀레네가 얌전히 눈을 감았다.
자신의 동생들이 나란히 침대에 누운 모습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던 라티니아가 몸을 돌려 앉았다.
기왕 온 김에 자신의 일기장을 챙길 생각이었다.
물론 예전처럼 막상 일기장을 만지려고 하면 그럴 생각이 깨끗하게 사라지겠지만...
'어라?'
그런데 지금까지와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아무리 의지를 가지고 일기장을 만지려고 해도 차마 손이 안 갔었는데, 이번에는 간단히 손에 잡혔다.
뭔가가 달라졌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라티니아는 이상함을 느끼면서 일기장을 천천히 넘겨보았다.
과거의 라티니아가 적어둔 잘 꾸며진 일상이 라티니아의 눈앞에 드러났다.
'모르겠어...'
그런데 그 무엇도 라티니아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마치 다른 사람이 적어둔 소설을 읽는 것처럼,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머니를 떠나보낼 때의 슬픔도, 아라와의 행복한 일상도, 그리고 헤어짐의 쓸쓸함도.
단 한 가지 문구만이 라티니아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 라..."
일기의 마지막을 꾸민 한 줄의 문장이 라티니아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무슨 의도로, 무슨 의미로 적은 문장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를 전하고자 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정작 일기장을 쓴 자신은 그 의미를 모르지만.
라티니아는 그 일기장을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하면 사라져버린 아라와의 유대감이 되돌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
방안에 드리워진 햇살이 내 의식을 일깨웠다.
나는 가볍게 몸을 스트레칭하며 내 옆에 누운 지아를 흔들어 깨웠다.
"지아야, 일어나. 아침 먹어야지."
"으응..."
상쾌하고 컨디션이 최고조인 나와 달리 지아는 피곤한지 영 잠에서 깨질 못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그만큼 어젯밤에는 많은 일이 있었거든.
가벼운 섹스에서 시작해서 어른의 장난감을 사용하기까지.
나는 철저하게 지아의 몸을 가지고 놀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새벽까지 이어서 할 생각은 아니었다.
이대로 끝내는 게 아쉽다고 하듯 챙겨뒀던 어른의 장난감을 주섬주섬 꺼내는데, 어떻게 이대로 끝내?
결국 지아는 본인이 꺼내놓은 장난감들을 한 번씩 전부 쓰고 나서야 완전히 잠이 들었다.
그대로 잠들어서 씻기는 데에 애를 좀 먹었어.
"하루쯤은... 걸러도..."
"얘가 큰일 날 소릴 하네. 다른 애들은 어쩌고?"
"다른 분들은... 괜찮으실 거에요..."
지아가 눈도 못 뜨고 침대에서 비비적거리며 말했다.
어지간히 피곤한가 보다.
그래도 다른 애들한테 말은 해야 하지 않나?
"아침만 먹고 다시 자자. 응?"
"으응!"
지아를 가볍게 달래볼 생각이었는데 지아가 어울리지 않게 앙탈을 부리며 내 손을 떼어냈다.
잠이 덜 깨면 이런 반응을 하는구나.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박돌아."
"삐이?"
셀레네가 말한대로 자기가 야행성이라는 걸 증명하듯 해가 뜨자마자 축 처진 박돌이가 힘없이 대답했다.
일단 울음소리가 '삐이'가 됐잖아.
그래도 지금 믿을 건 박돌이 뿐이다.
"저기 거실로 가서 우리는 아침 거른다고 말 좀 전해줄래?"
"삐익! 삐이이!"
"뭐? 싫다고? 좀 도와줘!"
"삐이이..."
"피곤한 척해도 안 돼."
"삐익, 삐익!"
"그래, 나중에 또 보여줄 테니까 좀 갔다 와줘. 올리비아는 조심하고."
다음 섹스의 직관권을 약속한 후에야 박돌이가 방을 나섰다.
쟤도 어지간히 특이한 녀석이야.
아무튼 이제 마음 놓고 잘 수 있겠다.
"자, 그럼 더 잘까?"
"네에... 좋아요. 헤에..."
나는 잠에 취해 내게 엉겨붙는 지아를 끌어안고 침대에 몸을 맡겼다.
부드러운 침대 시트와 그것보다 더 부드러운 지아의 살결이 내 온몸을 휘감았다.
나는 지아의 온몸을 가볍게 만지작거리며 지아가 일어나길 기다렸다.
아니, 너무 심심하더라고.
게다가 그 부드러움을 뻔히 경험해본 이상 눈앞의 유혹을 뿌리칠 순 없었다.
이만하면 귀찮고 간지러워서라고 일어날 만 한데도 지아는 전혀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좋은 꿈이라도 꾸는지 헤픈 웃음을 흘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결국 아침은커녕 점심시간까지 지나고 나서야 지아가 부스스 눈을 떴다.
"하암... 어라? 도준 씨?"
"잘 잤어?"
"아, 안녕히 주무셨어요...가 아니라, 지금..."
"응? 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시늉을 하며 내가 만지작거리던 지아의 가슴을 계속 주물렀다.
아니, 안 일어나더라고.
처음에는 팔이나 어깨를 가볍게 쓰다듬고 주무르는 데에서 시작했는데 하도 안 일어나길래 점점 만지는 부위가 중앙으로 이동했다.
더 늦게 일어났으면 아마...
"그, 거긴 그만..."
"뭘 그만해?"
"어젯밤에 그렇게 만지시고도 만족을... 흐윽,"
"에이.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지."
한번 만졌다고 만족하기엔 지아의 가슴의 마성이 너무 강하다.
가슴뿐만 아니라 전신이 이런 모양새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야.
내 반응에 얼굴이 새하얘진 지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또, 또 해요?"
"뭘?"
"흐윽,"
좋으면서 괜히 그러네.
이렇게 질린 반응을 해도 막상 시작하면 본인이 더 좋아한다.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마침 시간도 점심을 먹기엔 늦었고 저녁을 먹을 때까진 여유가 있으니까 연장전을 해도 문제 없을 거야.
난 어제 지아에게서 받아둔 클리 링을 지아의 눈앞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어제 이것도 안 썼잖아? 이대론 아쉽지 않아?"
"앗, 아아..."
지아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세상 일은 내 생각대로 안 되는 법이다.
결국 우리는 저녁 시간마저 놓쳤다.
뒤늦게 거실로 내려가 보니 올리비아와 비비앙이 거실에 사이좋게 모여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어! 도대체 뭘 했길래 하루종일 코빼기도... 앗!"
"삐이익!"
"꺄악!"
우리를 추궁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돌이가 우리에게 날아왔다.
망설임 없이 지아의 품으로 돌격한 박돌이가 삐익거리는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우리에게 무언가를 하소연했다.
뭐? 무서웠다고?
"얘가 갑자기 왜 이럴까요? 괜찮아, 괜찮아."
지아는 박돌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나름 어림짐작으로 박돌이의 의지를 때려 맞추며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 와중에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한 게 지아의 대단함 점이야.
섹스각만 나왔다고 하면 다른 데에 신경을 전혀 쓰지 않는 점만 빼면 정말 눈치가 빠르다.
나는 지아와 박돌이에게서 시선을 떼고 올리비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네. 왜?"
"아니, 하루종일 안 보이길래 무슨 일 있나 했지. 뭐, 보아하니 별일 없었겠구만."
"응, 맞아. 지아 방에 같이 있었어."
"적당히 하라고, 적당히. 나도 필요하니까."
올리비아가 내 아랫도리를 지긋이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사람을 보조배터리로 생각하는 건 멈춰줘.
진심으로 무섭다고.
"농담이야, 농담. 아, 맞다!"
"응?"
"네가 없는 사이에 그 모기년한테서 통신이 왔어."
"그래? 뭐라고 하던?"
"사정이 있어서 내일 돌아온대. 별일은 아닌 거 같았어."
"그래? 뭐 사정이 있겠지."
세상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어쩌다 보니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먹은 것처럼, 그쪽에서도 뭔가 일이 있겠지.
별일은 아닌 거 같다고 하니 그냥 내일 출발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럴 줄 알고 셀레네가 돌아온 다음 날 바로 영원의 숲으로 보낸 거였다.
아직 시간은 있어.
"그건 그렇고, 배고프네. 뭐 남은 건 없어?"
나는 별로 배가 안 고픈데 지아는 배고플 테니까.
지아를 위해 질문을 해봤는데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그런 거 없는데."
"거참 너무하네. 좀만 덜어두지."
"안타깝게도 니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준비를 못 했네.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그거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었어?
하여간 보기와는 다르게 올리비아도 속이 참 좁다.
나는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올리비아를 보며 과장스럽게 난감한 척 머리를 긁적였다.
"그럴 수도 있지. 지아가 배고플 텐데 어쩌나..."
사실 애들이 뭘 준비했을 거라곤 생각 안 했다.
올리비아도 비비앙도 성격이 그렇고 그러니까.
다만 올리비아를 좀 놀려보려고 한 말이다.
"어쩔 수 없네. 내가 만들어서 먹어야겠다. 지아랑 단둘이서."
"뭐라고?"
아주 약간 미안한 기색을 보이던 올리비아의 표정이 돌변했다.
거기까진 생각 못했나 봐?
"너희는 이미 먹고 깔끔하게 치우기까지 했다고 했지? 잘됐네. 둘이서 먹으면 되니까."
"앗, 그..."
"왜요?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먹은 사람을 위해 음식도 안 남겨주신 분이 무슨 볼일이시죠?"
"이익! 몰라! 너네 알아서 해!"
제 양심이 찔린 올리비아가 씩씩대며 쇼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쇼파 무너지겠다, 야.
나는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올리비아에게 씩 웃어주고 지아에게 손짓했다.
자기 지정석에 앉으려던 지아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날 바라봤다.
뭐해? 밥 안 먹을 거야?
뒤늦게 내 손짓의 의미를 알아카린 지아가 밝게 웃으며 내 옆으로 따라붙었다.
어느새 비비앙도 내 옆에 서서 내 옷깃을 붙잡았다.
움직이는 기척도 안 느껴졌었는데 언제 여기까지 온 거야?
"그럼 간다. 잘 있어, 올리비아."
"으으..."
나는 일부러 천천히 거실 밖으로 나갔다.
내가 문을 닫기 직전에 혼자 쓸쓸하게 자리에 앉아서 끙끙대던 올리비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 나도 먹을 거야!"
"그래? 또 먹어?"
"또 먹어! 뭐, 불만 있어?"
"푸하하!"
"이익! 웃지 마!"
우리는 티격태격 대며 사이좋게 식당으로 향했다.
주방장한테는 미안하지만 설거지 거리를 조금 더 만들어야 할 것 같아.
뭐, 이해해 주겠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