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31화 악당 영애는 패배하고 싶어 (7)
* * *
잔잔한선율.
피아노소리가여성의허밍과조화를이루어갔다.
달콤한일상에대해담은가사가,아서가내뱉은연기와어우러져몽환적인분위기를만들어내니,단죄자에대해서질문한리체르카는점점더긴장되었다.
심상치않은것을느낀바텐더는,아서가 주문한 위스키한잔과칵테일한잔을올려두고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아서는질문을듣고도대답없이한동안연기만내뱉었다.아무것도듣지못했다는듯이.
“...”
저번에만났을때는꼬박꼬박대답해주었던아서가기묘하게입을다물고있으니,리체르카는답답한마음에손을움켜쥐었다.
그렇게몇초간의침묵이흐른후.
답답함을못이겨리체르카가먼저말을꺼내려고할때,아서가입을열었다.
“제가.”
무엇보다진지한얼굴로.
분위기를휘어잡으며.
“단죄자입니다.”
말을내뱉는것과동시에위스키를단번에입에털어넣는아서.
탁!
그잔을카운터위에소리가나게올려놓았다.
“...”
그대답을들은리체르카는눈을살짝떠서아서를쳐다보았다.주변이얼어붙을정도로싸늘한눈초리.분위기가차갑게식어갔다.
뒤에있던로렌스도한심스럽다는듯이아서를쳐다보았다.그의얼굴은누가봐도새빨간것이취한것처럼보였으니까.
그들은아서의말을헛소리라고단정지은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서는 진지한얼굴로계속말을이었다.
“거짓으로학생들을우롱하고속여온너희들을,오늘단죄하러왔.푸웁,푸하하하하.”
“...”
“아···이거말하는거아니었나요?요즘연극에서유행하는캐릭터얘기하는줄알았는데흐흐,호응을해주시지않는게조금아쉽네요.”
아서는멋쩍다는듯이왼손으로뒷머리를긁었다.그리고분위기를읽지못하는머저리처럼계속낄낄거렸다.
리체르카는주먹을꽉움켜쥐었다.자신은중요한얘기를하려고왔는데상대가헛소리나내뱉고있었으니까.
물론취했으니까그럴수도있었다.
애초에자신이술집에서쉬고있을때찾아온것이니말이다.
제대로된답을들으려면그가정신이말짱할때왔었어야할터.리체르카는후회했다.
또한그가말을내뱉을때까지긴장하고있던자신이바보같았다.그렇기에그녀는그부끄러움을아서에게풀려고했다.
“아서씨.장난하.”
“친구입니다.네.”
아서가리체르카에날카로운말을끊어버리고는짙게웃었다.
갑자기말을끊는무례한언행.
손찌검을하고자리를떠나려던리체르카라는,대답의내용을듣고다시자리에앉았다.
드디어그가자신이듣고싶었던것을얘기했으니까.
하지만듣고싶었던것은그게끝이아니었다.
그녀는계속질문하려고했다.
“그럼.”
“가끔만나면술한잔걸치고,선물도교환하고,시답잖은이야기나하는그런관계입니다.대답에만족하셨습니까?”
또말을끊는아서.
얘기의주도권은자신에게있다는듯이주장하는것같았다.
“...”
뭐,괜찮았다.
그가자신이원하는정보를많이아는듯했으니까.
저번에는파이프를입에물고무시하기만하던그가,눈을마주쳐오며웃어보이니위화감이느껴졌으나방금말에대한신뢰감은더커져갔다.
단죄자님의친구라는사실 말이다.
그래도의심스러운것이있었으니.
“그런데···친구라면서왜그를단죄자라고칭하시는거죠?”
“그야,그친구가다른사람한테자신의이름을밝히는것을싫어하니까요.”
아서의재빠른대답.
리체르카는이해한다는듯이짧게고개를끄덕였다.
그리고슬슬그가자신의질문을들어줄거라생각했다.
하지만.
“오르시니양.”
아서가더말을할생각이없다는듯이자리에서일어났다.그리고카운터위에벗어서올려놓은양복을갖추어입고,서류가방을들었다.
“제친구에대해서조사하시는건별로상관없습니다.그친구야그런거별로신경안쓰거든요.”
밖으로바로나갈준비가끝났을때.
아서는카운터위에잠시올려놓은파이프를다시입에물고연기를내뱉었다.
“하지만저에대해서조사하는건그만두셨으면좋겠습니다.”
모든것을알고있다는어감으로아서가입을열었다.
“···무슨말씀이신가요?”
그순간,리체르카는조금놀랐으나겉으로는아무렇지도않은체했다.지금까지누군가에게들킬만한흔적을남긴적은없었으니까.
아서는질책하지않았다.
단지계속말을이어갔다.
“다알지않습니까?너무열렬하게조사하셔서저에게사랑이라도빠지셨는줄알았습니다.”
“...”
“이거야원,제가좀잘생겼어야지 말이죠.”
아서는뻔뻔하게웃으며입을열었다.
리체르카는어이가없었다.
비실비실해가지고,얼굴도양아치같이생긴게자기취향하고는상당히거리가멀었다.
아서는그녀가질색하는표정을짓든지말든지마지막말을내뱉었다.
“지금까지저에게행하셨던것들은봐드리겠습니다.두번다시저에대해서알려고도,조사하려고하지도않으신다면말이죠.저는오르시니양이랑은별로어울리고싶지않으니까요.”
아서는그말을끝으로,곧바로재즈바의밖으로걸어나갔다.
결국리체르카에질문에단하나밖에대답하지않은아서.
하지만리체르카는그를붙잡지않고,나가는것을지켜보면서입가를올렸다.꽤나건방졌지만단죄자님의친구라말하는것은진짜같았으니.
어차피그를굴복시키면대한모든것을들을수있을터였다.
리체르카는로렌스에게질문했다.
“이번에는어땠나요.”
리체르카에질문에로렌스는방금까지있었던상황을머릿속으로되뇌었다.
그리고어느정도생각이정리되었을때입을열었다.
“그는타인을속이는데일류인것같습니다.단죄자와의연관점말고도많은것을숨기고있을겁니다.저런경우는많이봐왔지만,잡았을때끝이좋은경우는얼마없었으니,이쯤에서무시하는게좋을듯합니다.”
오랜만에사냥을그만두자는로렌스의권유.
이런일은과거에도종종있었지만.
“로렌스.저는비밀이많은사람들이좋답니다.그들은비밀을하나하나까발려질때마다,당황하는것이서서히보이니까요.”
자신이사냥을실패했던적은없었으니.
이번에도상대의목을조르듯이계획을짜면될일이었다.
“거트본인보고약점을알아낼때까지직접움직이라고하세요.”
“흠.”
로렌스는짧게생각했다.
거트는저번일에이대한실패로이를갈고있을터.
B급범죄자출신인그가미행에만신경쓰면들킬일도없을것이다.상대가S급헌터라도되지않는이상말이다.
“좋은생각입니다.”
로렌스는곧바로거트에게명령을내렸다.
***
경매장에올린그그림.
그것을내가그렸다는것을곧바로아는사람이있을줄은.
후
연기를내뱉으며생각을계속했다.
오늘오르시니가의영애랑나누었던대화에대해서.
스스로단죄자라는것을진심을담아말했지만그들은믿지않았다.
아니,정확히는알아보지못했다.
타인의진심을분간할줄아는사람이면,단죄자의명성에두려움을느끼며접근하지않았을텐데.
뭐,분간할줄모르는놈들이면,지금내상태에서도별로신경쓰지않아도될정도였다.
무엇보다그때.
내가어떠한말을했든지간에,그녀는앞으로도나에대한조사를계속하겠지.
탄네르자매와나를떨어트리기위해서.
혹은단죄자에대해서알아내려고.
하지만신기했던것은,단죄자였던내과거에그녀가가진감정은증오나원한같은게아니었다는것이다.
기대감.
혹은허상.
그런이상한환상을가지고있었다.
그녀는스스로는숨겼다고생각하는것같았지만,누가봐도사랑에빠진공주님표정을짓고있었으니까말이다.
대체어디에서그런환상을가지게된걸까.
연관점은별로좋지못한소문몇개하고내가과거에그렸던그림밖에없을터인데.
설마···.
“...”
머릿속에말도안되는생각이이것저것떠올랐지만,말그대로헛소리에가까웠기에 나는더이상생각을그만두었다.
***
챙!
튕겨져나가는칼날.
“크윽.”
상대가신음을흘렸다.
리체르카는이기회를놓치지않고몸안쪽으로파고들어레이피어를내질렀다.
푹!
그녀의칼날이상대의갑주사이를정확히꿰뚫었다.
그순간,상대의몸은연기로변하여경기장내에서사라졌다.
“그만!리체르카의승리다!”
끝을알리는조교의외침소리.
그와동시에교수는고개를두번끄덕였다.
마음에든다는듯이말이다.
수많은함성소리가경기장에울려퍼졌다.
학생들은찬사와동경을담아리체르카에대해얘기하고,스포트라이트또한그녀에게떨어지니.
리체르카는당연하다는듯이입가에살짝미소를띤채경기장에서내려왔다.
“고생하셨습니다.아가씨.”
로렌스가다가와서그녀에게수건을건네주었다.
“고마워요,로렌스.”
리체르카는수건을받아서땀을닦았다.
모두가선망하듯이그녀를지켜보았다.
리체르카는롱부츠를바닥에부딪히며,방금까지자신과대련을치렀던상대에게다가갔다.
“···비웃으러 왔냐?”
리체르카가상대앞에서니,상대였던여학생이고개를들어그녀를노려보고으르렁거렸다.
그녀는리체르카가꼴보기싫어서코를납작하게해주기위해일곱번째도전해왔지만,단한번도이기지못했다.
리체르카는그녀를보고후훗웃으며입을열었다.
“밀리아.경기가끝나고서로인사를하는것은예의랍니다.”
“크흑···.”
상대였던여학생은고개를푹숙이고굴욕적이라는듯이인상을찡그렸다.하지만예전처럼반박하거나소리지르지는않았다.
리체르카는그것을보면서생각했다.
자신또한누군가에게지면저런꼴이되겠구나하고.
하지만자신은애초에상대를보는눈이있었기에,패배할게임자체를하지않았다.
상대를고르는것또한실력.
그것을하지못하고오기를부르던그녀는처음부터자신에게지고들어간것이다.
리체르카는상대였던여학생이더이상말을하지않자,몸을획돌렸다.
다시한번자신에게달려들어서더시합해달라했으면,귀여워라도해줬을텐데.
마음이꺾여버린패자하고는말할가치도없었다.
꺾여버린꽃은시간이갈수록가치가급감했기에.
그녀가꺾이지않고계속이악물고도전해왔기에그나마봐줄만했었는데.이번에꺾이면서그별볼일없던가치마저완전히사라졌다.
더이상물을주듯이그녀에게관심을줄필요가없었다.
그렇게리체르카가상대였던여학생을떠나몇걸음옮겼을때.
갑자기 등뒤에서는 소녀의 흐느낌이들렸다.
“...흑, 흐윽."
아아.
그래.
이거야.
나는 이걸 듣고 싶었어.
"후훗."
이것으로충분했다.
지금까지상대해주었던것에대한보답은.
리체르카는계속웃음이흘러나온나머지,손을들어올려입가를가리며로렌스와함께밖으로걸어나왔다.
그녀는지금,그저흐느낌속에상대가느꼈을굴욕감을기억하며,와인을한잔마시고싶었다.
리체르카는학교에있는자신의개인실테라스에이동했다.
그리고그곳에앉아서사람들을내려다보고는잔을들었다.
경기장에서나오며해맑게웃으며대화를나누는학생들과,분개하여눈물을흘리고있는학생들.
누가봐도승자와패자가명확했으니.
리체르카의눈에는세상에단두종류의인간만있는것같았다.
물론 그녀 자신은언제나승리자가될것을믿어의심치않았다.지금까지그렇게살아왔듯이.
그때.
쾅!
문짝을부수듯거칠게문이열렸다.
그리고누군가가화가난상태로그녀에게성큼성큼걸어왔다.
쿵.
그는그녀의근처에오자마자,어깨에메고있던무언가를바닥에던졌다.
“...”
바닥에짐짝처럼엎어져있는그것은.
누런 이를가진덩치의사내거트였다.
그리고그것을던진것은스스로단죄자의친구라고말하는아서였으니.
“내가두번다시하지말라고했잖아.”
그는낮은목소리로말하며,테라스에앉아있는리체르카를노려보았다.
리체르카는갑작스러운아서의태도에놀라잔을놓쳤다.잔에있던와인은그녀의옷과가슴사이로흘러내렸다.
그리고.
쨍그랑.
잔이바닥에부딪혀깨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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