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45화 악당 영애는 패배하고 싶어 (21)
* * *
사건으로부터3일이지났다.
인질로붙잡혔었던사람들은무사히학원도시로복귀했다.특이한마법의부작용이나약물이검사되지않은채로.
천만다행이었다.
그들은단지,나와연관되어서이사건에휘말린것뿐이었으니까.
그들이학원도시밖으로나가게된과정을들었을때는,머리에핏줄이돋을정도로화가났다.
협박이나통보등다양한이유였는데,그것들모두그들의사정을정확히알아야할수있는짓거리였으니,더럽고추잡한일이아닐수없었다.
지금은다행히일이커지면서이사장님이직접손을쓰고있었다.평소에학생들이어떠한일을저질러도좌시하셨지만,이번사건에는연관되어있는교수나조교들이수없이많았으니까.
그래도정작모든사건의발단인오르시니 가의 영애 본인에게는 직접적인 피해가가지않겠지.권력이나세력이무너지고,뒷배가없는파벌학생들은퇴학처분이나교화부행을당하는것은피할수없겠지만.
학생들은그나마다행이었다.이사장님은학생에게는꽤나관대했으니까.
교수나조교들은지금까지의악행이밝혀지면서명성에금이가고,벌여왔던일이컸으면재판장에끌려갈수도있었다.앞으로의인생에커다란장애물이될터.
모든것은그들의업보였으니,동정심같은것은생기지않았다.
하지만.
오르시니영애의세력이있었기에,그나마덜지저분하고얌전하게움직였던학원도시의뒷세계가,더욱어질러지는것은피할수없는일이라고들었다.
···그것또한학원도시와관련된조직들이알아서할일.외부인으로서신경쓰지않아도되는일이겠지.
*
“아서.”
“으···건디리지···마.씨···발.”
“미츠키가왔다.”
그날저녁,아서는로한과의약속을지키기위해같이술을마셨다.그와대작하는것은오랜만이었기에,주량은생각하지도않고입에술을처박아서였을까.지금이성이제대로돌아가지않았다.
술을오크통째로마셔도멀쩡했던과거의근육질몸과는달리,지금은비쩍마른말라깽이에불과했으니,죽었다깨어나도로한의페이스에어울릴수없으리라.
미츠키는카운터에엎어져서흐느적거리는아서를보자마자한숨을내쉬었다.그리고묵묵히그를양손으로안아들었다.
“...”
일반적으로생각하면여자가남자를안아들었을때굉장히어색했겠지만,그녀는아서보다훨씬키가컸으니딱히어색해보이지도않았다.
“미츠···키.오늘은···더···크네.”
입에서코를찌르는알코올냄새를내뿜으며손을움직이는아서.미츠키의가슴위에손을올리자마자꽉쥐어잡았다.그리고특유의음란한손놀림으로계속주물럭거렸다.
미츠키는그추잡한술버릇에인상을썼다.하지만그녀가화내는대상은아서가아니었다.곧바로고개를들어로한을바라보며싸늘하게입을열었다.
“···네놈.”
대체얼마나마시게했길래이모양이냐는듯살벌한눈빛을보내는미츠키.평소같으면덜떨어진대답을할로한이었지만,지금은목숨에위협을느끼고재빨리머리를굴려다급하게대답했다.
“오해다.마신것은아서자신의의지였다.나는강요하지않았다.”
“...”
미츠키는조용히입을다물고로한을바라보면서진실여부를파악했다.그리고몸을휙돌려걸음을옮겼다.오늘은엠마가늦게까지일하는날이었으니,미츠키는그녀와함께집에돌아갈생각이었다.
그렇게술집밖으로사라지는그들을바라보며,로한은멍하니입을열고있다가어깨를으쓱였다.
어차피계산은아서가외상으로달아놓은상태였고,오랜만에그와열심히추억에대해얘기했으니,정말만족할만한하루였다고 느꼈기 때문에.
*
코끝에서씁쓸한녹차향이났다.
어렸을때,어머니의품에껴안겨있었을때이런기분이었을까.열차안에서몸이흔들리듯,잔잔하게전달되어오는진동이너무나도편안하게느껴졌다.
부드럽고따듯한누군가의체온.마음을안정시켜주는푸근한심장의고동.터벅터벅소리와함께조금씩머리에정신이돌아왔다.
“아···.”
“정신이들었나.아서.”
가깝게눈을마주쳐오는미츠키의시선에정신이번쩍들었다.급하게지금어떤상황인가머리를굴린다음조심히입을열었다.
“그···내려주실수있으십니까?”
내떨리는목소리를들은미츠키는그자리에멈춰섰다.그리고어느때와같이담담하게말했다.
“혼자서걸을수있겠나?”
“아,네.물론입니다.”
내가대답하자미츠키는살짝고개를끄덕이며,내다리가조심히땅에닿게팔을움직였다.
“윽.”
술에취해서일까.아니면계속안겨있어서그런걸까.다리에제대로힘이들어가지않아몸이앞으로휘청거리며무릎을땅에대었다.다행히손으로빠르게짚어서넘어지는것은막을수있었다.
“아서.다시도움이필요한가?”
“아뇨,진짜괜찮습니다.”
미츠키가걱정스럽게물어오는것에곧바로대답했다.방금까지의그자세는,남자라면수치심을느낄수밖에없는자세였으니까.
곧바로마력을사용해서취기를발산하고다리를자극하려했다.어떻게든움직이기위해서.
“...”
하지만몸에피대신술이흐를정도로마신나머지,식은땀만흐를뿐마력이제대로움직이지않았다.
“우욱···.”
오히려헛구역질이날정도로머리가어지러울뿐.
그것을보다못한미츠키가조용히입을열었다.
“아서.나는이번일로네가혼자짊어지지않고다른사람에게부탁하는법을배웠다고생각했다.”
살짝서운하다는듯말하는미츠키의말에,억지로웃어보이며입을열었다.
“그럼···저기있는공원의자까지옮겨주실수있겠습니까?”
“알겠다.”
나의부탁에미츠키는나를번쩍들어올렸다.내가누군가에게안겨있는것을거북하다고느낀것을알아챈것일까.이번에는짐짝처럼겨드랑이에파지하며들어주었다.이것도심히기분이미묘했지만···.
털썩.
“저기···미츠키씨?”
“왜그러지.”
무심하게대답하는미츠키.그녀는공원의자에앉아서내머리를자신의무릎에올려놓았다.
연인이나할법한행동.하지만그녀에게는일절부끄러운감정이느껴지지않았다.드래곤이어서이런부분에익숙한걸까.
“···아닙니다.”
그녀가부끄러움을느끼지않는다면거절할이유가없었다.머리에부드러운감촉을느끼면서하늘의별을쳐다보는것은남자에게더할나위없는행복이었으니.
그후몇분간서로아무말도하지않았다.
근처에있던가로등이조금씩깜박이고멀리서새의울음소리가조금씩들렸지만,어색하기그지없었다.
누구도찾아오지않을것같은 어두운 이 공간.덕분에나는편하게입을열었다.
"미츠키씨.고맙습니다."
조금부끄러울수도있는이야기를하기위해.
"부러웠습니다."
“당신의냉정함.힘과능력.드래곤이라는사실까지.”
“과거에어떠한상황에서도올바르게행동하시고,침착하게사건을마무리짓는그태도가너무나도찬란해눈부셨습니다.”
“그리고그게지금까지이어져,이번사건에서도저에게큰힘이되었습니다.정말···정말고맙습니다.”
말을끝마친다음그녀의예전모습이머릿속에떠올랐다.
악인은벌을받는것이마땅하다면서강간,고문,살인을기본으로저질렀던나와는다르게,그녀는깔끔하게일격으로죽이거나제압해서범죄전문헌터들에게넘겼다.
마법에온갖감정을담아서휘두르는나와는달리,그녀는검에감정따위담지않았다.
언제나단한번의섬광과함께.상대가더이상악행을저지르지않도록만들었다.
그녀가죽여버린상대는그녀의감으로느껴졌을때,더이상참회가불가능할정도로악인이었겠지.
언제나올바른드래곤.
다이아몬드처럼단단하고찬란한그녀.
하지만그녀는스스로를 그렇게생각하지않는걸까.내가말을끝내자잠시생각한다음입을열었다.
“아서.네가나에대해서어떻게생각하는지잘들었다.”
그리고내머리에손을올려몇번쓸어내린다음말을계속했다.
“하지만네가생각하는것만큼나는그렇게완벽한존재가아니다.”
“미츠키.”
“과거에이야기를좀하자면.”
그녀는말을하다말고입을다물었다.과거의괴로운일을떠올렸던걸까.몇초쯤망설임과동시에곰곰이생각하더니말을이었다.
“···수많은실수와잘못된선택속에서 나는 레어로도망친 적이 있다.한동안,바깥의소식을모두단절하기위해서.”
말하면서잠시손을떠는그녀.대체얼마나힘든일이있었던것일까.
“내가알고있는너의행적에서,너는어떠한상황에서도도망친적이없는것으로알고있다.”
“몇년을살던그건절대쉬운일이아니다.그런의미에서나또한너를존경한다아서.”
“그리고···.”
“...”
“나중에···나중에내가도움이필요하면네가도와주면되는일이다.계산적으로생각하는관계가아닌,그저서로가잘못된선택을하지않도록,그상황을후회하지않도록도와주는게.”
“친구니까요.”
갑작스럽게내가말에끼어드니,그녀는눈을동그랗게뜨고고개를숙여내눈을마주보았다.
그리고짧게웃었다.굉장히아름다운모습으로.
나또한그녀를마주보며어렴풋이웃었다.그리고고요하게흐르는이밤의적막이,이감정이조금이라도더계속되기를바랐다.
*
"듣고계시나요.오르시니양.”
결벽증걸린환자가생활할것같은새하얀이사장실.리체르카는이사장과단독대면중이었다.
“당신이몇몇사람들에게접근해서불미스러운일을저지른것을저는묵인했습니다.그런일을겪어야성장하는사람도있을뿐더러,당신이상대를망가트리는경우까지몰고가는일은없었으니까요.”
“티나지않게쓰레기들을한곳에모으는것도신경쓰지않았습니다.쓰레기통은언제나필요하니까요.”
“그런데.”
“연관되지않은사람들을단체로납치하는건너무하지않습니까?”
이사장의차가운목소리.
리체르카는몸이저절로떨리는것과동시에등에한줄기의땀이흐르는것을느꼈다.하지만최대한마음을다잡고대답했다.
“···다음부터는하지않겠습니다.”
그녀는죄송하다고말하며사과하지않았다.사과해야할대상은이사장이아니었으니까.꼿꼿이허리를펴고그저그를마주볼뿐.
드르륵.
그에이사장은일어섰다.그리고입을다물고그녀에게한걸음한걸음다가갔다.
이사장이직접자신에게다가오자,리체르카는몸이얼어붙는느낌이었다.곧바로뒤도안돌아보고다리를움직여서이사장실에서도망치고싶었다,
너무나도무섭게느껴졌으니까.두려워서버티기힘들었으니까.
하지만.
하지만자신이패배한상대는그가아니었으니.
주먹에힘을꽉쥐고이를꽉깨물며,뒷걸음질치지않고눈에힘을주고이사장을바라보았다.
이사장이리체르카에게다다가왔을때는,허리를잠깐숙이고그녀와눈을마주쳐왔다.
분명그의눈은웃고있고있었지만,그눈동자는그녀의기억을헤집고있었다.
그리고.
리체르카의감정과기억을전부다파악했을때.
“하하하하.”
유쾌하게웃으며압박을거두었다.
그제서야저절로몸에힘이빠지는것을느끼는리체르카.호흡곤란이왔던사람처럼크게숨을들이마셨다.
“그런생각을하고계셨군요.네,확인했습니다.차후학생의회에서내린결론과저의의견을종합해당신의처벌을결정하고알려드리겠습니다.이제나가셔도좋습니다.”
웃으면서손바닥을들어올리는이사장.리체르카는부들대는다리를겨우돌려문으로걸어갔다.그리고혹시나하는마음에이사장을흘깃쳐다보았다.
“아서군이라면한동안현장학습나가있습니다.몇주동안볼수없겠죠.”
생각을읽은것처럼대답하는이사장.하지만듣고싶었던정보였으니,그녀는고개를살짝꾸벅이고밖으로나가문을닫았다.
이사장은짙게웃으며리체르카가나가는것을보고생각했다.
천재에대하여.
그들은인생에서실패해본경험이적었다.중요한국면에서크게한번미끄러지면,다시고쳐쓰기 힘들정도로멘탈도약하고.
누구나어렸을때빨리실패를경험해보는게가장좋았지만,그들이실패를겪을때는보통정신적으로성장을끝마쳤을때였으니.
그녀의둘째오빠,그또한두뇌가명석했지만,실패를너무늦게겪은나머지완전히망가져버리고후계자경쟁에서탈락했다.
반면오르시니후작의자식들중가장똑똑했던그녀가가장먼저실패를겪었으니,그녀는얼마나크게성장할까.
“...”
어느때와같이이성적인그녀였다면.
단죄자가섞여있지않은상황이었다면.
일이더커지고한치앞을모를정도로복잡해졌겠지.그녀가감정적으로계속잘못된선택을한덕분에,이번사건은나름쉽게마무리되었다.
그리고아서라는목줄까지생겼으니,그녀는이제커다란사고를치지도않을터.
영영살면서실패라고는몰랐을정도로살았을그녀가이제얼마나발전할까.또얼마나아서군에게도움이될까.
이사장은그게너무기대가되었다.학생들이성장하는것을보는게,그의삶의낙이었으니까.
*
수많은카메라가자신에게플래시를터트렸다.걸음을내디딜때마다무엇이그리궁금한지질문을한차례쏟아낸다.
간간이나를욕하는것도들렸다.직접적으로욕하는사람은없었지만.
이럴때길을열어주던로렌스는이제없었다.이번사건으로조교자격을박탈당했으니까.
“...”
권력,세력.나에게이제얼마만큼의 힘이남을까.학생의회가섞여있다고해도대부분은이사장의재량에따라결정될터였다.
“후훗.”
하지만왠지모르게웃음이나왔다.
어렸을때부터나의생각을결정하던것들이사라졌으니까.도움이되었지만무겁기까지했던것들이었으니개운하기까지했다.
리체르카는자신의어깨에걸쳐져있는그남자의양복을붙잡았다.그리고또다시과거를떠올렸다.
다타버린그림.
내가흘린애액하고그가남긴정액들.
불빛은잔잔했으며소리는일절없었으니,너무나도적막하고외로웠던그시간.
하지만 그 영겁과도 같았던 시간 속에서, 그가남겨준양복이계속위로해주는것같았다.앞으로다른삶을결정할수있도록.
그는누군가에게자비를베풀 따듯한사람처럼보이지않았는데.
발걸음을내디딜때마다과거의미련이사라진다.
인생에서살아왔던의미가.처음으로느꼈던황홀한시간들에대한기억에의해뒤덮인다.
상상속의단죄자님이었으면그만한쾌감을주지못했을것이다.자신과동등하거나강한상대에게지는건당연하다고수용했을테니까.
이렇게처절하고,비참하게,느끼면서절정하지못했겠지.그낙차가있었기에더짜릿하고흥분되는기억.
“아···.”
그림이타버리고남은재가거름이되어,새로운감정에 싹이튼다.
내가멋대로상상했던단죄자님이아닌,실제존재하는대상에게전보다더큰감정을느낀다.
이제더이상패배하고싶지않았다.한번더패배하는순간,지금의기쁨이,추억이무뎌지고흐려질것같았으니까.
오히려그를자신에게사랑에빠지게해승리를맛보고싶었으니.
“아서님···.”
리체르카는사랑하는그의이름을달콤하게발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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