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46화 현장 학습을 가는 이유 (1)
* * *
“···마.”
“...”
“···엠···마.”
“......”
“엠마!!”
“아앗!”
금요일 이른 아침, 주방에서 무엇인가 타들어가는 냄새가 났다.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것을 보아, 프라이팬 위에 있던 요리는 이미 새까맣게 변했으리라.
아서는 커피를 마시다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엠마에게 걱정스럽다는 듯이 다가갔다.
“괜찮습니까?”
“아, 고마워 아서. 정신을 깜빡 놓고 있었네.”
엠마는 어설프게 웃어보이고는, 다시 요리하겠다며 프라이팬에 손을 올렸다.
“제가하겠습니다. 가서 앉아계세요.”
하지만 아서는 그것을 내버려두지 않고 엠마의 손목을 잡았다.
“···응, 미안.”
단호한 목소리에 엠마는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따끔하게 혼내는 것은 아니었으나, 목소리에 조금 힘이 들어갔으니. 자신이 돌봐야 할 아이에게 폐를 끼쳤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진 것이었다.
아서는 엠마가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재빨리 손을 움직였다. 학원도시에 온 이후 직접 요리 한 적은 없었지만, 과거에 스승님과 같이 여행을 다니던 탓에, 아서의 실력은 꽤나 훌륭했다.
프리실라의 입맛은 굉장히 까다로웠다. 자신의 기준을 넘지 못하면, 먹지 않고 디저트로 대신 배를 채울 정도로.
간단하게 치킨스톡과 닭가슴살 그리고 야채들을 이용해서 치킨수프를 만드는 아서. 향긋한 냄새가 주방에서 엠마가 있는 테이블 까지 전해졌다.
몸에 좋은 뿌리야채들과 레몬에 의해 괜찮은 보양식이 만들어졌다. 기력이 빠져있는 엠마에게는 딱 맞는 음식이었으니. 아서는 완성되자마자 국자로 넓은 접시에 옮겨 엠마 앞으로 가져다 주었다.
씻어가지고 머리가 부스스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크서클을 숨길 수는 없었으니, 요새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걸까.
아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도중, 그녀의 눈에 조금씩 생기가 돌아와 숟가락으로 스프를 떠서 입에 가져다 대엇다.
“···맛있어 아서.”
엠마는 배시시하게 웃으면서 아서를 바라보았다. 진심이 담겨 있는 그 웃음에 아서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빵을 가져와서 같이 식사하며 그녀를 계속 바라보았다. 걱정스러운 마음은 변하지 않은채로.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엠마는 식사를 마치고 아서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엇다. 요리에 대한 칭찬을 하면서.
그렇게 엠마는 설거지는 미츠키에게 부탁해달라는 말과 함께 먼저 출근했다. 힘없이 신발을 신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보엿지만, 그녀는 드래곤이었으니 자신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애써 생각했다.
*
평소와 같은 일과를 보내고 점심을 먹은 이후, 이사장님의 호출에 그를 찾아갔다.
똑똑.
“아서 입니다.”
문을 두 번 두들기니, 곧바로 안에서는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덜컥 하고 문을 연 다음 안에 들어갔을 때, 이사장님이 바로 입을 열었다.
“왔군요.”
말씀하시면서도 계속 손을 움직이시는 이사장님.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를 내시며, 눈을 모니터에서 때지 않으셨다.
“...”
평소 같으면 이 쪽을 흘끔흘끔 처다보는 이사장님의 비서, 엘레나 씨도 정면에 있는 모니터만을 바라본채 묵묵히 일만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도 엠마와 같이 다크서클이 진하게 생겨있었으며, 사납게 인상짓고는 식사대용 젤리를 입에 물고 있었다.
이 모든 원인은 저번 사건 때문이었다.
리체르카의 세력이 무너지면서 속해있던 관계자들이 대부분 법의 판결을 기다리거나, 해고 혹은 퇴학조치를 당했으니, 그 업무들이 전부 남아있던 사람들에게 몰려버린 탓이었다.
이사장님은 어느정도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일에 가담하고 있었다고 한탄하셨다. 결국 사람을 뽑아서 그 일들을 누군가 해야했는데.
그의 채용 기준은 굉장히 까다로울뿐더러, 사람 자체를 구하기 힘든 특수분야에 있던 사람들도 잔뜩 사라졌다고 말씀하셨으니, 금방 충원되지 않으리라.
···이 학원도시에서 학생을 제외하고 여유로운 사람은 나밖에 없지 않을까.
“아서군.”
잠시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드시는 이사장님.
“저···부탁 하나만 들어주시면 안될까요···?”
어느 때보다 간절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목소리가 살짝 촉촉한 것이, 물에 빠졌던 강아지가 낑낑 되는 소리와 비슷했다.
“듣고 나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동정은 갔지만 어떠한 일인지 듣지도 않고 곧바로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 자칫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는 대답을 했다.
이사장님은 안 통하네 라고 생각 하듯이 짧게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다시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다다음주 월요일, 전투와 관련된 고등부 1학년 학생 전원참여로 현장학습이 있을 예정이에요.”
“그렇군요.”
“거기서 교화부에 소속되어 있는 학생들 지도를 맡아주셨으면 해요. 무엇인가 가르칠 필요는 없고 다치지만 않도록 케어해주시면 돼요.”
1학년.
교화부 학생.
케어.
“거절하겠습니다.”
할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타인과 어울리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내게 학생케어라니. 게다가 그들은 가장 혈기왕성한 나이가 아닌가.
과거 내가 마법학교를 떠났을 때도 그렇고, 처음 학원도시에 왔을 때 사건을 일으켰던 동아리 애들도 그렇고. 전부 1학년이었다. 분명 복잡해지고 서로 감정상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틀림없을 터. 재빨리 거절하는게 맞는 선택일 것이다.
내가 딱잘라 대답하니, 이사장님은 잠시 고민하신다음 다시 말씀하셨다.
“그···좋은 마법도구 필요하지 않으세요? 저번에 드렸던 파이프같이.”
“이사장님.”
미련이 남는다는 듯이 계속 말씀을 걸어오는 이사장님 에게 낮은 어조로 말했다.
“제 능력 밖의 일입니다. 사고가 일어날게 분명합니다.”
“음···.”
이사장님은 나의 말에 짧게 침음을 흘렸다. 그리고 별로 걱정 안된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엘리트 조교와 그들을 지도할 뛰어난 4학년 학생을 붙여드리죠. 실력과 인성에서는 누구보다 확실한 학생입니다. 아서 군이 손쓸필요도 없겠죠.”
“그럼.”
굳이 내가 왜 가야하는지 말하려고 했으나, 이사장님은 계속 말을 이었다.
“원래 교화부 소속인 엠마 양이 가야하는 일입니다만, 지금 그녀가 학원도시에서 빠지면 정체되는 일이 한 두개가 아닙니다. 그녀는 고급인력이니까요. 으···방금 그녀가 학원도시에서 사라지는걸 상상해봤는데 끔찍하네요.”
“...”
“이번 사건 때문에 갑자기 늘어난 교화부 학생들에 의해, 대부분의 교화부 담당교수들이 골머리를 싸매고 있어요. 일반 교수들은 절대로 그들을 담당하려 하지 않거든요.”
“이른바 책임질 사람이 필요한겁니다. 일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더라도, 변수에 대응하고 잘못된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사장님은 더 이상 할애할 시간이 없다는 듯이 빠르게 말씀하셨다. 그에 나는 잠깐 생각한다음 대답했다.
“그럼 교화부 소속 학생들이 현장학습을 가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들 대부분이 협동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터인데, 굳이 그들이 벌일 돌발상황을 감수하면서까지 보낼 필요가 있습니까?”
담담하게 말을 계속 하니 이사장님은 어느순간 완전히 일을 멈춘채, 나를 처다보시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셨다.
“음···뭐, 맞는 말이네요.”
그리고 짤막한 긍정의 표시와 함께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하지만요 아서군. 타인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어요.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중에 가면 또 바뀔 수도 있고요. 그들은 아직 성장하는 학생들이니까요.”
“아서군의 말대로 그들은 커다란 위험요소에요. 그래서 아서 군 정도의 힘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통제할 수도 없겠죠.”
“저는 학생들에게 교육만큼은 평등하게 하고싶어요. 세상이 평등하지 않더라도 이 학원도시에서, 벌써부터 알아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욕심이라면 욕심이 맞아요. 이번 사건과 같이 부모가 손을 써서 악폐습과 권력을 몰래 쥐는 학생들이 있는건 당연한건데.”
이사장님은 말씀하시다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몇 번 두들기셨다.
“뭐, 그래요. 아서 군은 손님인만큼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저는 마족이니 아서 군이 만족할만한 대가로 부탁할 뿐이죠. 한심한 친구 얘기를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이사장님이 이렇게까지 저자세를 유지하는 것을 처음보았다. 이 일은 굉장히 중요한 일인걸까. 잘 모르겠지만 만족할만한 대가라는 말에 입을 열었다.
“그럼, 대가로 감정제어반지를 요구해도.”
“아앗, 그건 안돼요! 프리실라가 그거 주면 냥냥펀치 날리겠데요!! 아프다고요 그거!!”
“···책임져야할 학생은 몇 명이죠?”
내가 일에 관해 은근슬쩍 질문하자, 이사장님이 눈을 반짝였다.
“6명밖에 안되요. 교화부 교수들이 전부 안가는 것도 아니거든요. 현장학습에 대한 정보는 아래 근무하는 의회학생들에게 전달하라고 말씀드릴게요.”
“···생각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네네! 생각만 해주셔도 좋아요. 아, 아닌가?”
더 이상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는 듯이 이사장님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그에 나는 조심히 이사장실을 나온다음 문을 닫고 하루일과를 실천하러 걸음을 옮겼다.
* * *
“조교님!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보고 계세요!”
날씨가 좋은 아늑한 토요일. 흔들의자에 몸을 기대서 어제 받은 정보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 때, 교화부의 학생기자 마야가 뒷짐을 지고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이번 현장학습과 관련되 있는 내용들입니다.”
숨길 생각도 없는 정보였으니, 그녀에게 서류를 흔들며 말했다
“아아. 이번 1학년 햇병아리들이 나가는 그거 말이죠?”
그녀는 알고 있다는 듯이 웃으며 나의 눈을 처다보았다. 그녀는 곧바로 돌아갈 것 같지 않았으니, 나는 다시 서류로 눈길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당신도 햇병아리 아닙니까.”
“저는 꽉 찬 1학년이니 햇병아리가 아니에요!”
내가 가볍게 말하니 마야는 목소리를 높여 부정했다. 그리고 원피스를 흩날리며 뒤쪽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서류를 같이 보았다.
“와···무슨 첫 장부터 멤버가 이래요.”
“아시는 분입니까?”
“응? 학원도시에 있으시면서 얘를 몰라요?”
마야와 같이 보고 있던 서류에는 너저분한 후드티를 입고 눈매가 사나운 여학생이 있었다. 보통 증명사진은 깔끔하고 단정한 옷을 입고 촬영하는데, 그녀는 그런것따위 신경쓰지않는다고 말하는 듯 했다.
“얘, 중등부시절부터 도장깨기한다고 무투가들 줘패는 또라이년이에요.”
“...”
“실력도 좋아서 부셔트린 간판만 해도 엄청 많아요. 그야, 마족이니까요. 왠만한 교수들도 못 막아요. 아···옆에 개는 ‘학생저격동아리’ 라는 악질 집단에서 활동했던 쓰레기고, 옆에는···조교님과 연관되어있는 메리네요.”
“흠···.”
“오! 우리의 근육멋쟁이 맥도 있네요! 무슨 수어사이드 스쿼드 그런 거 찍으러 가시는 건가요?”
마야는 호들갑 떨면서 말했다.
“잘모르겠습니다. 게다가 할지 안할지도 결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라면 절대!! 네버! 안 할거에요!! 재들은 교수님들이 상대여도 말을 들어 처먹을 놈들이 아니거든요.”
“그런가요?”
“더 듣고 싶으시면···.”
말을 하다 멈추고 손바닥을 비비적거리는 마야. 나는 핸드폰을 꺼내들어 그녀에게 곧바로 돈을 전송했다. 예전에도 한번 재미난 소문을 돈을 주고 들은적이 있었기에, 이미 내 핸드폰에는 그녀의 계좌가 찍혀 있었다.
“감사합니다! 손님!”
그렇게 마야가 서류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적혀있는 학생들에 대한 정보를 제잘제잘 말할때였다.
부르릉.
주말인데도 출근했던 엠마가 돌아왔는지, 그녀의 차가 시동을 끄는 소리를 내었다. 드디어 일이 끝내고 온 것일까.
하지만 주차한 곳은 주차장이 아니라, 문 앞이었다. 곧 그녀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흐느적 거리면서 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았다.
“...”
나는 곧바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너무나도 걱정 된 나머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