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53화 GTA(그레이트 티처 아서) (5)
* * *
“어디 다녀오셨습니까?”
한스는 한붕이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말을 걸었다.
“네 놈은 알 필요 없는.”
드르륵.
대답을 끊듯이 의자에서 일어서는 한스. 곧바로 한붕에게 다가갔다. 그의 얼굴은 어떠한 표정도 짓고 있지 않았기에 한없이 냉정해 보였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한붕은 말을 끝까지 할 수 없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자신을 괴롭혔던 학생들보다 한스에게서 더 거대한 압박을 느꼈다.
“후···.”
살짝 한숨을 내뱉은 한스는 한붕이 늦은 이유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아서가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놓은 덕분에 말이다.
그가 총기난사사건을 저질렀던 학생이라는 것은 물론, 집단 따돌림을 당했던 피해자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으니.
“여기 앉으시길 바랍니다.”
한스는 위세를 거둔다음 낮은 목소리로 자신이 앉아있던 자리를 가리켰다.
“...”
한붕은 그것을 거부하려했으나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결국 지시한 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클레멘스 후배님. 부탁드립니다.”
미리 무엇인가 약속이라도 한 듯 클레멘스에게 말을 건네는 한스. 클레멘스는 그 말과 동시에 책을 덮으며 히죽히죽 웃음을 띈채 한붕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던 사내, 클레멘스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 ]
“히익!!”
한붕은 갑자기 귀에 꽃히는 기괴한 목소리에 공포를 느꼈다.
클레멘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와 같이 끔직했다. 거기다 주파수가 잘못 잡힌 라디오처럼 치직 거리는 노이즈도 섞여있었으니, 공포영화의 주요장면에 넣어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한붕은 다음 장면에서 더한 혐오감을 느꼈다.
철퍽.
“으아아아아악!!”
클레멘스의 등 쪽에서 꺼내져 나와 꿈틀꿈틀 튀어오르는 촉수. 한붕은 기겁하며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려했다.
“맥. 부탁드립니다.”
“알겠다, 형제여.”
하지만 한스의 말에 등장한 맥이 어느 순간 한붕의 근처로 다가간 그의 어깨를 강제로 눌렀다.
“이거놔!! 개새끼들아!! 니들도 읍!!”
시끄러워질 것까지 예상하고 있던 한스는 미리 준비하고 있던 수건을 이용해 한붕의 입을 틀어막았다.
“읍!! 읍!!”
결국 한붕은 끈적끈적하고 미끌미끌해 보이는 촉수가, 자신에게 흐느적거리면서 다가오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교수님, 저를 포함한 총 4명, 전원 집합했습니다.”
한스는 약속시간에 맞추어 교화부 학생들을 이끌고 나왔다. 아서는 시계를 한번 바라보며 확인한 다음, 가볍게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제가 언급한 대로 클레멘스 씨에게 부탁드렸나보군요.”
아서는 정신이 나간사람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남학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저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당황했지만. 교수님이 말씀하신대로 별 문제는 없었습니다···.”
한스는 감정을 최대한 억누른채 말했다. 말하는 도중에도 계속 방금 전에 있었던, 클레멘스가 일으킨 기적이 소름 돋았으니까.
“현장실습이 끝날 때까지 다치는 일이 있을 경우, 클레멘스 씨에게 부탁을 드릴 예정입니다.”
“···절대로 다쳐서는 안되겠군요.”
한스의 강한 다짐에 아서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클레멘스는 흔히 알려져 있는 종교와는 달리, 알려져 있지 않은 종교를 믿는 이교도(??)였다. 질서의 신이나 생명의 신같이 대중적인 신을 믿지 않는 사제 말이다.
황당한 사실은 클레멘스 본인조차 스스로 섬기는 신에 대해서 모른다고 적혀있었던 것이었다. 분명 유적지에는 ‘포교 골렘’이라고 표기 되어있었을 터인데.
“...”
그가 일으키는 기적은 다른 신들의 기적들과 같이 신성력을 이용하였으니. 촉수덩어리가 나와 몸을 더듬으며 상처를 회복시키는 행위 또한 신성한 일이겠지.
“여학생들 데리고 왔···무슨 일 있었나요?”
여학생들을 데리고 나타난 민철은 한스를 포함한 남학생들의 표정에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아서가 아무 일도 아니라고 웃으며 말하자,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
깔끔한 조명 아래, 보기만 해도 침이 절로 고이는 다양한 음식들이 접시위에 놓여있었다. 각 나라별 대표하는 음식들은 물론, 귀한 재료로 만든 고급음식들이 즐비해 있는 뷔페. 심지어 진열되어 있는 음식이 부족해지는 순간, 곧바로 계속 채워지기 까지 하는 고급 뷔페였다.
“완성된 팬케이크에 꿀을 올려줍니다! 즈퓨푸풋!”
처음보는 음식들을 가득 담아와서 허겁지겁 먹는 다른학생들과 다르게, 푹신한 팬케이크 위에 과일, 꿀, 생크림, 잼 등을 가져와서 데코레이팅을 하고 있는 릴리.
그 과정은 지나치게 과격하고 요란했다.
“딸기와 포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렇다! 붉은색과 파랑색! 우아하고 아름다운 태극의 신비!”
“보여주마! 절대적인 힘을!”
“초 궁극 얼티메이트!!”
쿵.
“릴리 후배님. 얌전히 식사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그것을 참다못한 한스가 릴리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의 접시와 뺨에는 이미 릴리가 튀긴 생크림과 꿀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에? 왜?”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가 가지 않습니까.”
한스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릴리는 손날을 자신의 이마위에 올리며, 주변을 둘러본 후 입을 열었다.
“민폐라면 사인 받으려고 민철쌤 자리 앞에 일렬로 길게 늘어진 저년들이 더 민폐 아니야? 어차피 내가 이렇게 떠들어도 재들이 꺄꺄 거리는 소리보다는 작잖아?”
평소에 아무 말이나 내뱉던 릴리가 갑자기 진지하게 이야기하자 한스는 침을 삼키며 당황했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예절이라는 것은 타인과 비교하는 것이 아닌, 교양인으로서 지켜야하는 기본소양이니까요.”
한스는 어떻게든 릴리가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타이르듯이 얘기했다.
“으응, 뭐, 노력해볼게!”
그에 릴리는 짧게 고민한다음 힘차게 대답했다. 그 후 비글 두 마리에서, 비글 한 마리 분으로 소란스러움이 줄었으니. 그의 설교는 성공했다면 성공한 것이리라.
“작은 형제여. 접시위에 단백질이 부족하다. 단백질을 많이 먹어라.”
“피를 나누지 않은 주제에 형제라고 부르지마. ”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대하는 맥은 근육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며 한붕에게 말을 건냈다.
한붕은 감정이 진정된 듯 다시 우스꽝스럽고 건방진 말투를 사용했지만, 맥은 그런 자잘한 것에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
과격한 언행과는 다르게 얌전하게 먹고 있는 벨라. 한스는 그것이 의외였기에, 잠시동안 그녀를 쳐다보았다.
뷔페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과식하지 않으며 일정한 양만을 딱 먹은 후, 기도를 드리고 있는 클레멘스.
“...”
그리고 이들과는 다르게 아직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메리. 그녀는 슬쩍 주위 눈치를 보면서 깨작깨작 입에 음식을 넣고 있었다.
한스는 그렇게 별다른 문제없이 흐르는 점심식사 시간에 만족하고 있었다.
“네가 말해준 모습이랑 딱 닮은애가 저기 있는데. 재 맞냐?”
“마, 맞습니다! 저 놈이 한붕입니다!”
처음보는 두 사내가 접근하기 까지.
한스는 한 명은 학생이고, 한 명은 조교라는 것을 눈치챘다. 얼핏보이는 얼굴이나 마력같은 것들로 말이다.
“야, 니 따라 나와라. 그 검은 양복 새끼랑 같이.”
조교로 보이는 자가 갑자기 맥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한붕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한스는 다른 교화부 학생들이 반응하는 것보다 빨리 자리에서 일어서서 입을 열었다.
“교화부 후배님들한테 무슨 볼일이 있으십니까?”
얼굴에 흉터가 있는 호리호리한 조교가 무례하게 굴어도, 한스는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질문했다.
“아아. 알렉스 교수님께서 할말이 있다고 애들좀 데려오라고 해서 왔어. 아서 라는 놈이랑 여기 있는 한붕이랑.”
그 말과 함께 한붕의 의자를 확 내빼는 조교. 순식간에 교화부 학생들이 모두 그를 처다보았지만, 도와줄 의리는 없었으니,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맥을 제외하고.
툭.
“어?”
“손 치워라.”
조교의 손목을 강하게 움켜쥐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맥.
“응? 너는 뭔데 내 몸에 손을 대고 있냐? 교수님의 명령으로 왔다···니까?”
처음에는 깐죽거리다가도 점차 천장에 닿을 듯이 커져가는 맥의 덩치에, 조교의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맥의 덩치는 평범한 고등부 1학년이 아닌, 바바리안 전사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으니.
“조교님. 한붕 학생은 교화부 교수님의 허가없이 데려가실 수 없습니다.”
“아니 씨발 알렉스 교수님의 명령이라고. 학생이면 교수님이 하는 말을 좀 쳐 들어라.”
조교는 팔에 잡혀있던 맥의 손아귀를 거세게 뿌리쳣다. 그리고 맥보다 더 만만하다고 느낀 한스에게 다가가며 삿대질했다.
“아니면 너, 설마 나 조교라고 무시하냐?”
눈을 부리부리 뜨며 한스를 처다보는 조교. 한스는 침착하고 짧게 대답했다.
“보고하겠습니다.”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터벅터벅.
한스의 말에 누군가가 곧바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시끌벅적한 뷔페 속에서 나지막하게 한스와 조교의 귀에 들어왓다.
어떠한 힘도, 마력도 담겨있지 않았지만, 한스와 조교의 귀에는 그 목소리가 정확하게 울러퍼졌다.
“···어, 그래 지 얘기하고 있는 줄 알고 딱 오네. 니가 아서냐?”
조교는 곧바로 한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아서에게 다가갔다. 검은 양복이라고 했으니, 곧바로 그를 알아챈 것이다.
아서는 조교의 눈을 정확하게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래그래. 너는 좀 얌전한게 맘에드네. 너 알렉스 교수님께서 데려오란다. 알렉스 교수님 알지?”
정중하게 대답해주는 아서를 보자, 조교는 아서를 만만히 보고 계속 말을 이었다.
“잘 모릅니다.”
“응? 알렉스 교수님도 모른다고? 하하. 아주 당돌한 친구네 이거.”
아서의 어깨를 툭툭치는 조교.
“그런데···.”
아서는 이해할 수 없는게 있다는 듯이 잠시 말끝을 흐린다음에 곧바로 다음말을 이었다.
“학원도시에서는 조교가 교수에게 말을 낮추어도 되는겁니까?”
“뭐?”
조교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되묻자, 아서는 품안에서 교수증명카드를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이야···잘 만들었네. 이렇게 그럴싸할 정도면.”
“지금 장난같습니까?”
순식간에 싸늘해지는 목소리. 조교는 자신의 귀 속에 칼날이 박히는 것 같아,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
“교수님.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때마침 민철도 그 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
탄식을 내뱉는 조교. 그는 알고 있었다. 다가오는 민철이 S급 헌터라는 사실을. 또한 그가 거짓말을 할 리 없다는 것을.
조교는 민철이 쳐다보는 이 검은양복의 사내가 교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상황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