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76화 GTA(그레이트 티처 아서) (28)
* * *
끼이익.
오두막 한편에 있는 작은방에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아서가 몸을 질질 끌고 나왔다. 표정은 어제와 같이 거무죽죽한 게 굉장히 좋지 못했다. 클레멘스의 치유를 받은 탓이다.
민철은 아서를 굉장히 걱정된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이어서 어떻게든 아서에게 힘을 주려고 먼저 말을 붙였다.
“교수님, 피가 부족하면 철분이 들어간 음식을 먹는 게 좋데요. 소고기나 미역, 달걀노른자나 시금치처럼요.”
민철은 말을 내뱉으면서 속으로 자신을 마구 칭찬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어제와 오늘 피를 잔뜩 흘린 아서에게 딱 맞는 조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까?”
아서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답했다. 억지로 입꼬리를 올린 어설픈 미소였다.
그러고는 잠시 뜸을 들이며 무엇인가 생각한 다음 입을 열었다.
“음···. 저희가 가지고 있는 재료는 소고기하고 시금치 그리고 달걀노른자가 있네요.”
말을 하면서 아서는 그 속에 들어있는 철분이 얼마나 되겠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민철이 강아지 귀를 쫑긋 세우며 몸을 일으키고 말했다.
“내일 제가 미역 같은 해초라도 캐올까요?!”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키며 민철이 말하자 아서는 쿡쿡대며 웃었다. 직접 캐오겠다니. 너무 기특하고 귀엽지 않은가. 그 모습에 없는 힘까지 절로 생겨나 이내 함박웃음까지 나왔다.
그렇게 힘이 나서 어느 정도 머리가 굴러가자 아서는 시답잖은 얘기를 꺼냈다.
“그거 아십니까? 미역은 사실 해초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진짜요···?”
“네.”
아서는 민철이 되묻자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그 대답하는 과정에서 아서가 계속 입가에 미소를 띠자 민철이 의심하듯 물었다.
“자, 장난치시는 거 아니죠?”
이어서 못 참겠다는 듯이 핸드폰을 잡고 검색했다.
“와···진짜네요. 식물처럼 생겨놓고 진핵생물이라니. 으으. 갑자기 미역이 기분 나쁘게 느껴져요.”
아서는 그 반응을 보며 자연스럽게 흔들의자에 앉았다. 이어서 그 대화를 시작으로 민철과 계속 대화를 나눴다. 시시껄렁한 농담부터 아이들에 대한 얘기까지.
돌이켜보면 민철과 가볍게 얘기한 적이 얼마 없었다. 이에 이런 대화는 서로에 대해 알아갈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되었다.
‘슬슬 좋은 분위기가 된 것 같은데···?’
어느 정도 대화가 무르익자 민철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준비한 것을 자연스럽게 말하려고 천천히, 또 천천히 마음을 다졌다.
“아, 교수님.”
그리고 생각했던 작전대로 무언가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이 아서를 불렀다.
“말씀하세요.”
아서는 민철과 눈을 마주쳤다.
“...”
난데없는 눈 맞춤이었다.
계산이라고는 일절 없는.
순간 민철의 호흡이 흐트러졌다.
결국 작전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향해 흘러갔다.
“호, 혹시 저와.”
‘아앗!’
말을 더듬어버렸다.
하지만 말을 내뱉었으면 끝까지 이어야 했으니.
“내, 내일같이 씨, 씻지 않으실래요···?”
‘망했다!’
말이 끝나는 순간, 민철의 얼굴과 귓불이 새빨개 졌다. 말을 더듬은 것도 부끄러웠고, 그 더듬으면서 자신이 무슨 파렴치한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서 깨달은 것이다.
꽤나 오랫동안 준비되어 있던 작전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애써 어색한 분위기가 되지 않게 헤헤 웃어 보였지만, 어떻게든 얼버무리려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으리라.
“네?”
아서는 처음에 잘못 들었나 싶어 민철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진득한 시선에 민철은 심장이 미친 듯이 펌프질 했다.
얼굴은 또 얼마나 뜨겁게 느껴지는지! 얼마나 빨개졌을지 예상도 되지 않아 그것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이고 싶었다. 시선도 갈피를 못 잡고 요동치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제일 중요했던 것은 교수님이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갸웃거린 것이다.
그 반응으로 보아 ‘혹시 교수님의 고향에는 이런 문화가 없는 건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으니.
만약 그렇다면 자신이 굉장히 실례되는 말을 한 게 아닌가!
안 그래도 교수님은 성소수자를 별로 좋게 보지 않는 것 같았는데···!
“흐음.”
아서가 침음을 흘리자 민철이 땀을 흘리며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아···그 남자끼리는 같이 목욕탕을 가야 친해진다는 말이 있잖아요···그래서···저도 교수님하고 치, 친해지고 싶어서···요. 하하.”
민철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줄타기하며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말들은 오히려 분위기를 더 묘하게 이끌어갈 뿐이었다.
“···그런가요?”
순간 아서는 ‘하지만 민철 씨는 여자잖아요?’ 하고 말할까 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머리를 배배 꼬는 그 모습이 일자로 날카롭게 잘린 숏컷을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으니까.
팔로는 팔짱을 끼고 있었는데 셔츠의 제일 위 단추가 풀어져 있는 만큼 커다란 가슴이 부각되었다. 또한 새하얀 가슴 사이에 연분홍색으로 물든 가슴골이 돋보였다.
거기다가 부끄러움 한 숟갈까지.
이로 말할 수 없는 순수함의 결정체!
가히 폭력적이라 할 수 있는 처녀력(??力)!
완전히 치트키가 다름없지 않은가!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싶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흥분하는 그녀를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자신까지 흥분이 덩달아 차올라, 보석을 탐하는 늑대처럼 곧바로 그녀를 덮쳐버리고 싶은 음심이 우뚝이 솟아났다.
하지만 지금은 일하는 도중이었기에, 아쉬울 따름이었다.
결국 아서는 귀여운 수작을 준비한 앙증맞은 마음을 장난치는 것으로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거면 근처에 온천도 있습니다.”
"온천이오?"
“네, 이사장님께서 인공적으로 만드신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모두와 친해질 계기를 원하시면 학생들도 포함시켜 다 같이 이용하는 게 어떻습니까.”
“그, 그럼···.”
아서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민철의 꼬리가 푹 내려가는 게 보였다. 뼈다귀를 빼앗긴 강아지처럼 귀도 축 처지고 표정은 아쉬움으로 가득 차 보였다.
아서와 단둘이라는 전제가 깨졌으니까.
“하지만 뭐, 지금은 현장학습 도중이니 아이들 긴장감을 완전히 풀어주어서는 안되겠지요. 온천 또한 저희끼리만 가면 아이들이 무슨 행동을 저지를지 모르는 일이니, 역시 둘이 목욕탕에서 목욕하는 걸로 만족할까요?”
“네! 좋아요!”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아서의 말기술. 민철의 표정과 귀, 그리고 꼬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색을 띠며 답했다.
“그럼 내일이 마침 저희 차례니 그때 들어가는 걸로. 저는 이만 피곤해서 먼저 자겠습니다. 민철 씨도 편히 쉬시길.”
아서는 그 말과 함께 거실을 떠났다. 그리고 그가 떠난 1층 거실.
“···헤헤.”
민철은 옅게 웃음을 흘렸다.
보이지 않는 꼬리도 마구 흔들렸고 귀는 계속 팔랑거렸으니, 이내 두 손을 꽉 쥐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작전 성공!’
*
다음 날.
오전에 있는 팀 순찰 도중.
“정신 차려!!!!”
긴박한 전투 속 한스의 외침이 숲에 울려 퍼졌다. 그 외침은 적과 아군 할 거 없이 고막을 강타했다. 목소리는 메아리로 다시 되돌아올 정도로 우렁찼다.
끼에에엑!!
학생들에게 기습을 가한 리자드맨들은 당황했다. 바짝 긴장하고 있던 학생들도 그 목소리에 온몸의 잔털이 삐쭉 서는 느낌을 받았다.
푹!
께에에엑!!
당황하는 틈을 놓치지 마라!
한스는 재빨리 작살을 내뻗었다. 작살은 단번에 리자드맨의 심장을 꿰뚫었고, 한스가 팔을 당겨 회수하자마자 그 리자드맨은 자신의 심장을 붙잡고 땅에 뒹굴었다. 그리고 이내 피를 철철 흘리며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한스가 재빨리 한 마리를 처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좋지 못했다.
진열을 똑바로 유지할 수 있게 해야 하는 맥은 이미 리자드맨 두 마리가 붙어서 밀착마크하고 있었고, 메리 또한 다른 한 마리를 띄어놓고 있지 못한 탓이다.
총 일곱 마리의 리자드맨과 한 마리의 리자드맨 주술사.
그들은 땅의 정령과 숲의 정령의 힘을 빌려 존재감을 숨긴 채 대기하고 있다가, 학생들을 기습한 터였다.
“이 개새끼가!”
한스의 목소리를 듣고 기세를 잊지 않으려는 듯이 한붕 또한 욕지거리를 크게 내뱉었다. 그리고 곧바로 멀리서 윈드볼을 던져대던 리자드맨 주술사를 향해 총구를 겨눈 후 방아쇠를 당겼다.
탕!
커다란 격발 소리와 함께 날아가는 마탄. 하지만 그 마탄의 위력은 터무니없이 낮았다.
팅!
리자드맨 주술사 옆에 있던 다른 리자드맨이 고철로 된 방패로 쉽게 막아 낼 정도로.
키에액!!
그래도 리자드맨 주술사는 총이 위협적이라는 것을 알리듯이 크게 소리쳤다. 이어서 그걸 들은 리자드맨 한 마리가 한붕 쪽으로 몸을 날렸다.
이빨 빠진 거대한 칼을 들고 높게 점프하는 리자드맨. 한붕은 덮쳐오는 그림자에 공포를 느끼며 순간 재장전을 잊고 몸을 움츠렸다.
“젠장!”
한스는 그 모습을 보고 진열이 완전히 뭉개질 것을 감내하고 몸을 뒤로 빼려 했다.
팍!!
키에에에엑!!
하지만 다행히 지금까지 조용히 존재감을 낮추고 있던 클레멘스가 리자드맨의 두개골을 허공에서 지팡이로 강타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정도로 깜짝 등장이었다.
탕탕!
이어서 분위기 역전을 알리 듯 몸을 내빼면서 리자드맨 한 마리를 죽이고 온 릴리가 곧바로 합류해 권총을 두발 쐈다.
끼에에에에엑!!
결국 역전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머리를 정확히 맞추지 못한 탓일까. 마탄은 가죽을 조금 꿰뚫는 정도로 끝났고, 그 고통에 찬 울음소리는 오히려 리자드맨들에게 더한 분노와 흥분을 가져다주었다.
더 적극적으로 무기를 휘두르는 리자드맨들. 그들의 몸이 학생들과 딱 붙어져 있었기에, 소형 폭탄을 사용하려고 했던 릴리는 그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일어난 지 1분이 채 되지 않았으니. 멀리서 보고 있던 민철은 한숨을 내쉴 따름이었다.
멀리서 보나 가까이서 보나 목숨을 건 치열한 사투. 허나 시간이 갈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목숨에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아본 경험이 얼마 없었을뿐더러, 팀워크를 맞춰본 것이라고는 어제 고블린을 죽이던 것뿐이었으니.
평생을 같이 살아온 리자드맨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누가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 치달았을 때였다.
피잉!
민철은 결과가 확정 났다고 생각하고 드론을 조작해 마탄을 날렸다.
께에엑!!
단 한순간이었다.
모든 리자드맨이 동시에 풀썩 쓰러진 것은.
“후욱. 후욱.”
“하아. 하아.”
학생들은 방금까지의 그 긴박한 일이 현실이라는 것을 체감하듯이 눈을 깜빡깜빡 거리거나,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는 않는 학생은 없었다. 이미 한번 들어간 긴장감이 그들을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몇 명 죽었을 텐데. 목숨을 건진 기분은 어떠니?”
멀리서 보고 있던 민철이 조용히 다가와 평소와 같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어조는 날카로웠다.
“...”
“...”
그 말을 듣고 곧바로 대답하는 학생은 없었다. 평소에 쉴 새 없이 입을 재잘거리던 릴리마저 눈빛이 가라앉어 있었다.
결국 그들 사이로 침묵이 내려앉았고 민철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제의 고블린도 오늘의 리자드맨도 전부 목숨을 걸고 너희랑 싸웠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고. 그런데 너희들은 어땠니.”
“한스가 있다면 괜찮겠지. 내가 있다면 괜찮겠지. 그런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경계를 소홀히 하고, 방심하고, 처음부터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았지.”
“...”
“결국 눈앞에 칼이 번쩍이고 마법이 스쳐야 정신을 차리는 게 지금까지 봐온 초심자들과 같아 아쉬울 따름이란다.”
민철이 냉소적으로 말을 계속하자, 릴리는 의문을 꺼냈다.
“민철쌤, 그냥 재들이 우리들 보다 강했던 거 아냐?”
강한 자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긴 자가 강한 자 같은 논리였다. 그 말을 들은 민철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개개인의 힘을 합친 값이면 너희들이 리자드맨들보다 강했어. 방심하지 않고 각자 역할만 제대로 수행했어도 한스가 안전하게 다 쓰러트릴 수 있을 정도로.”
민철은 그 말을 확신한다는 듯이 못 박았다. 이어서 끝이 아니라는 듯이 말을 계속했다.
“팀워크를 만드는 것까지는 나나 교수님은 강요하지도 바라지도 않아.”
“단, 어느 파티에 들어가도 자신의 역할을 빨리 깨달아 민폐 끼치지 않고, 1인분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바라는 거지.”
민철은 그 말을 끝으로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쳐 가며 지적했다.
“릴리. 소리에 의존해서 마력 감지를 너무 소홀히 했어. 리자드맨 주술사가 순찰하는 경우는 얼마 없더라도, 긴장을 풀면 안 되잖니.”
“맥. 어제 교수님과 약속했다면서 오늘도 선뜻 뒤쪽으로 몸을 돌리지 않았더구나. 결국 그게 리자드맨 두 마리한테 양각을 잡히는 꼴이 되었고.”
“한붕. 당황해가지고 두 번째 장전하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 오히려 몬스터가 점프했을 때 가장 맞추기 쉽다는 걸 알잖니.”
“메리. 방패를 들었다길래 무엇인가 깨달았다고 생각했는데, 과거처럼 그냥 양손검을 휘두르는 게 더 나아 보이는구나. 방패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또한 팀에서 서브 가드가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가장 중요한 건 이것들인데, 있다가 세세하게 더 피드백하도록 하고 일단은 돌아가자. 이대로 리자드맨 부락을 소탕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으니까.”
민철은 끝을 알리듯이 먼저 몸을 돌렸다.
그리고 평소와 같이 앞서서 걸어갔는데, 학생들은 그 모습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머릿속으로 기억하고 있던 친절한 S급 헌터와는 많이 달랐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