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 85화 땅은 비가 내린 다음 굳어진다 (1)
* * *
추적추적비가내리는날이었다.바닥은진흙으로바뀌어질척질척해졌고,온도는급격히떨어져굉장히추운날씨가되었다.
하늘은숲의나뭇잎들이비에반사되어초록색으로보였다.분위기는자연스레가라앉았고이성보다는감성이더앞서게되는그런날이었다.
수업은비가오면더위험해지길마련이었다.하지만아서는그들의수업을진행했다.비가온다고터질사건이안터지는일은없었으니까.
그래도평소와는달리비에젖었을때먹기좋은따듯한점심들을만들었다.몸을단번에녹일뜨끈한국물은빠질수없었다.금방힘을보충할수있는다양한튀김도 튀겼다.
마지막으로돌아오자마자몸을닦을수있는수건들과욕조에뜨거운물을가득채웠을때,아서는그들을기다릴겸의자에앉았다.
연기를스무번쯤내뱉었을때였을까.
멀리서학생들이돌아오는게보였다.
하지만무슨사건이있었던듯그들의얼굴빛이흙빛이었다.다친학생은없어보였으니그나마다행이었다.
“다들무슨일이있으셨습니까?”
“그게···.”
선뜻말하지못하는민철.자신이실망하거나혼낼거라생각하고있는걸까.
아서는민철뒤학생들의얼굴을면면히둘러보았다.그중릴리와메리의표정이유난히좋지않아보였다.
눈꼬리가치켜올라간메리와입을삐죽내밀고있는릴리.누가봐도그들사이에커다란다툼이있었던것임을알수있을터다.
‘비때문에어떠한사건이터질것같기는했는데.’
좋지않은예감은빗나가지않는법이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릴리!”
릴리가땅을박차고자리에서사라졌다.한순간에멀리멀어져가는것이보였다.한스는따라가려는마음에발을세차게내디디려했으나.
“내버려두시길바랍니다.어차피결계밖으로나가는순간알수있으니까요.”
아서가한스를불러세웠다.
“그게아니라···.”
한스는망설였다.
바로가서혼을내든지,달래든지해야하지않느냐! 저러다가다른사고치는게아니냐! 같은말을할까하고.
한스가고개를살짝들고아서와눈을마주쳤을때는,아서가엄한표정을짓고있었다.
“알겠습니다.”
이를본한스는말을삼키고묵묵하게가만히있었다.아서에게어떠한생각이있을거라믿으면서.
*
학생들이장비를벗고목욕을하거나수건으로몸을말리는동안,아서는민철과한스에게어떠한일이있었는지에대해들었다.
모든내용은듣고나서머릿속으로정리해보자면세줄로요약할수있었다.
같은실수를계속반복하는메리를보고참지못한릴리.결국심한폭언을내뱉다가죽어버린친구를언급했다고한다.
메리도릴리의발언을참지못하고손찌검을하려했지만,한스와민철이급하게말렸고.
‘뭐,잡으려고해도릴리가잡힐리없겠지만.’
아서는얘기를다듣고짧게고개를끄덕였다.
“그렇게됐군요.”
확실히생각을솔직하게털어놓는릴리와자기고집이있어서행동을쉽게변화시키지못하는메리는좋은상성이아닐것이다.
누군가는양보할수밖에없는노릇.만약메리가실력이더훌륭했더라면이런일이일어나지도않았겠지만말이다.
그런데애초에아서는메리가가진고집때문에그녀를리더로선정했다.팀원들의눈앞에서잃어본경험이있기에더신경쓰고조심스러울거라생각했다.
“교수님,릴리는···.”
말을하는도중걱정이차올랐는지한스가말을꺼냈다.허락만해주면바로오두막밖으로달려나갈기세였다.
한스는릴리가얄밉고짓궂기는해도마음이여리고착한아이라는것을알았으니까.
“결계밖으로아직안나갔습니다.”
아서는차를한잔마시면서차분하게말했다.이말은아직나서지말라는말이었다.
평소에는무겁고냉정한마음을가진한스였지만,지금그의상태는꽤나감정적이었다.분명격한감정두개가부딪히면좋은결과가나올리없었다.
“교수님.”
멀리서머리를말리고있던한학생이다가와말했다.
“조금있다가한스선배와같이훈련해도되겠습니까?”
그녀는릴리와다툼이있었던메리였다.하지만그녀는릴리와는다르게과거를금방잊은듯꽤나차분해보였다.
“한스군만괜찮다면요.”
아서는그말과함께메리의얼굴을꿰뚫듯이지긋이보았다.메리는몸을움찔떨었다.한스는곧바로대답했다.
“저는괜찮습니다.”
한스는지금당장밖으로나가려는듯이나무봉을집어들었다.몸을움직이면서잊으려는생각인듯했다.
그에아서는허락을내렸다.이어서감기가걸릴정도로는하지말라고말했다.
그들은알겠다고말하며곧바로오두막을나섰다.
‘그런데점심은언제먹으려고···.’
*
비는금방그치지않았다.오히려더세차게내리더니이내바람까지휘몰아치기시작했다.
“엣취.”
릴리는몸을얕게떨었다.입술과피부는이미새파래진지오래였다.그모습은마치물에빠진생쥐같았다.
“춥지않으십니까?”
“꺅!”
갑작스레들리는남성의목소리에릴리는짧게비명질렀다.생각외로귀여운비명이었다.
말을건남자는아서였다.릴리는아서의얼굴을본후에야주변을허둥지둥둘러보았다.왜냐하면그녀가앉아있던곳은나뭇가지위였기때문이다.
아서는나무위로올라오는동안그리고릴리에게붙는동안존재감을숨기고있던것이다.
“교수님얄궂어···.”
릴리는그것을귀신같은실력이라고속으로감탄하며볼멘소리를냈다.
“별로춥지않거든!과거에이런일이없던것도아니엣취!”
릴리는재채기를계속했다.아서는그녀의떨림이자신에게까지전해지는것을느꼈다.
“역시추워!”
거짓말을해봤자소용없다는것을안릴리는크게외쳤다.아서는곧바로우비로둘러싸서가져온담요를꺼내그녀에게덮어준다음손가락을튕겼다.
딱!
화르르.
그러자아서와릴리주위에세개의불길이두둥실떠올랐다.따스한불길에릴리의몸이잠잠해져어느덧떨림이멈쳐졌다.
“와!이건무슨마법이야?”
릴리는신기하다는듯이물었다.
“이름은없습니다.마법으로불릴정도로대단한것도아닌그냥잡기술이니까요.”
아서는그말과동시에품에서파이프를꺼내불에잠깐집어넣었다가빼냈다.그순간연소통에있던약초에불이붙으며연기가피어올랐다.
한붕과대화를나눌때사용했던사람의마음을차분해지게만들어주는약초였다.
“따듯하니기분이좋아져···헤헤.”
릴리는느슨하게입을 풀며실없이웃었다.화가난마음은혼자있으면서다풀린걸까.
“그런데교수님,여기있는건어떻게알았어?”
“마법사여서알았습니다.”
“뭐야그게···유치해.나는마법사가모든일을해결할수있다고생각할정도로어리지않아.”
릴리는세침때기의얼굴을하며주먹을쥐고아서를툭쳤다.그저딴죽을걸기위한가벼운주먹이었다.
“릴리.마음이풀리면돌아올겁니까?”
“그냥가게?!”
릴리는아서가무뚝뚝하게말하자목소리를높였다.
“네.”
“으으!교수님은센스가너무없어!지금은틀딱인교수님들도눈치챌거야.”
“무엇을말입니까.”
“위로해달라는거잖아!”
“아···!”
아서는깨달았다는듯이탄성을내뱉었다.그저릴리를놀리려고.실제로릴리는지금눈썹을확찌푸렸다.
아서는속으로큭큭대며웃은다음담요와함께가지고왔던음식을릴리에게보여주었다.
“와!수플레다!”
릴리는눈빛을반짝반짝빛냈다.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수플레는온천에있었던우유로만든수플레였다.어제민철이모닥불앞에서따듯하게데워온우유도그것이었다.
“날위해서만든거야?”
“아뇨.남은걸가져온겁니다.”
“교수님!”
릴리는장난치지말라는듯이크게외쳤다.
릴리의말대로아서는그녀를위해만든것이었다.하지만 사실대로 대답하면부담을느낄것같아그리대답했다.
“못됐어진짜. 단한번을져주지않네···.”
그말과함께덥석수플레를무는릴리.
“그래도맛있어.입에서사르르녹는게너무기분이좋아···헤헤.”
부드러운 단맛에의해뺨이흐물흐물해져서 나른한 고양이 같은 표정을지었다.아서는그것을보며등을쓰다듬어주었다.체하지말라는뜻도있었지만사람의온기가부족해보이는소녀였으니까.
“···헤.”
릴리는의외라는표정을지어보였다.손길이거북하지않은듯저항하거나몸을내빼지않았다.그저따스한손길을받아들이며수플레를허겁지겁먹었다.
그렇게가져온보온병의차까지도다마신후에둘은그저가만히 앉아있었다.비가땅에부딪히는소리를들으며.
아서는릴리를꾸짖거나하지않았다.그녀스스로도반성했다고생각했기에.
아서는 파이프를입에 물었다.간간이연기를내뱉다가입을열었다.
“그래서위로가되셨습니까?“
“뭐···어느정도.”
릴리는인정하고싶지는않지만인정한다는듯이실눈을뜬채조용히말했다.이내무엇인가떠오른듯아서쪽으로몸을돌렸다.
“교수님,나질문있어.”
“말씀하세요.”
“교수님은귀족이야?”
릴리는아서가평소에사용하는고급스러운어휘와식사를할때의예절을보고예상했던것을말했다.
“아닙니다.”
“그럼엘리트나특수요원출신?”
이번에는 아서가사용하는기술들을생각하며말했다.기척을숨기는거라든가,와이어를다루는거라든가.
“그것도아닙니다.”
아서는고개를연이어저으며말했다.
“그런데제가누구인게중요합니까?”
“음···이제아닌것같아.애초에알수도없을것같고.”
릴리는 잠깐 뜸을 들인 다음 말했다. 그리고릴리의말대로였다.
아서의얼굴은먼옛날정말어렸을때의얼굴이었다.스승님의마법에의해변한지금은이사장님에의해정보가통제되고있었으니,아서의기록은학생은커녕각국의정보원들도쉽게알수없을터였다.
이번에교수들과의대전영상이세계적으로퍼져나갔지만,외형이야쉽게바꿀수있었다.그것이낯설고귀찮아서하지않았을뿐.
“그런데교수님은내과거에대해다알고있지?”
릴리는싱긋웃으며아서를보았다.아서는가볍게고개를끄덕여답했다.
“네.물론입니다.”
“흐음···그럼나에대해서잘알고있겠네?”
“그건아닐거라생각합니다.”
“왜?”
“제가아는건당신의과거기록뿐이니까요.당신과같이지낸건요며칠이전부고.저는그것가지고상대를다안다고생각하지않을뿐더러그기록들 마저 의심스러운부분이많더군요.”
“헤에···.”
릴리는속으로놀란나머지입이절로벌려졌다.이내마음을다잡았을때는희미한미소를지었다.
“역시교수님은참특이해.이일이끝나면이제정교수가되는거야?”
“아뇨.그만둘생각입니다.”
“응?왜?나교수님이수업을열면들을생각있는데.”
“제가구체적으로알려줄수있는것들은···많이과격한것뿐이니까요.”
아서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제일많이알고있는분야인마법은대부분자신만이쓸수있는그런것들이었다.자신도어떻게배웠는지모를것들또한태반이었고,알려준다고해도사용할수없는것들마저수두룩했다.
쉽게알려줄수있는것또한자랑스레말할만한것들이아니었다.
각종살인기술은기본이고,하수구에서토하지않고수영하는법이나,독의영향을받지않게차근차근독초를먹는방법같은것들로어떻게교수를하겠는가.
릴리는아서의말을듣고히힛거리며웃었다.그리고분위기를조금씩가라앉힌다음말을이었다.
“교수님.난아직도교수님이왜리더로메리를뽑았는지모르겠어.”
아서는짧게고개를끄덕였다.그것을본릴리는입가를올렸다.꾸밈없는그런미소였다.
“그래도믿어볼게.이번에교수님이생각보다더믿음직하다는걸알았으니까.”
그말을끝으로릴리는나무에서폴짝뛰어내렸다.그녀의손에는어느새아서가가져왔던우비가들려있었다.
릴리는그것을순식간에입고여전히나뭇가지에앉아있는아서에게손을흔들었다.
“그럼나먼저갈게!메리한테사과해야하거든!”
총총걸음으로멀리떠나는릴리.
“릴리.”
아서는나직이목소리를냈다.비가떨어지는소리를뚫고겨우릴리에게전달될정도로.
“응?”
릴리는아서쪽으로몸을돌렸다.
“언젠가는···.당신의마음을이해해줄사람이생길겁니다.”
“응···?”
아서의말에릴리의동공이살짝커졌다.그리고시간이조금지나자풋풋하게웃어보였다.
“응!”
활기찬대답과함께고개를끄덕이고는시야에서멀어졌다.
“...”
릴리가 당했던 과거 사건에의하면지금당장자신이나서봐야아무의미없었다.그녀는교수라는족속자체를싫어하게 됐으니까.
이정도다가와준것도임시교수였기때문일까.자세히는모른다.
하지만그녀가잘되기를바랐다.
‘타인에의해상처받은것들은결국 타인에의해치유받을수밖에없거든.’
아서는이사장님이전해준스승님의말을떠올렸다.그리고공감하면서릴리에게도그치유해줄사람이나타나기를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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