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 86화 땅은 비가 내린 다음 굳어진다 (2)
* * *
멈출줄모르는 비를 맞으며메리는 땅에 드러누웠다.머리는헝클어져진흙사이에파묻혔다.장비들은이미비에맞지않도록천막안에던져놓은지오래였다.
그녀의대련상대였던한스는이번에도먼저들어갔다.감기에걸리지말라는아서의말에강제로메리를오두막안으로집어넣을까했지만,무엇인가깨달은듯입다물고있는메리를보자방해하지않는게좋겠거니싶었다.
거친호흡을연신내뱉는메리.얼굴정면으로떨어지는차가운비로열을식히며방금전에있었던대련을머릿속으로복기했다.
그때방패로쳐내지않고몸으로피하는게더좋지않았을까.칼을휘두르지않고찔러넣었으면결과가달라졌을까같은것들을.
풀리지않는난제들.한참동안이나머릿속으로반복하고있을때였다.
“메리.”
조그마한발걸음소리가근처로다가왔다.이어서얼굴을들이밀어하늘을가렸다.
그녀는아서가만들어낸불과수건으로몸을뽀송뽀송하게만들고우비까지뒤집어쓴릴리였다.
메리는한숨을내뱉지도인상을찡그리지도못했다.그럴힘마저한스와대련하는데썼기때문이다. 전력을다해도한스의몸에털끝하나스치지못했지만.
적당한권태감과복잡한 생각을 가지고있던찰나에,머리를더욱복잡하게만들사람이등장했다.
릴리는메리가입을다물고있자또말을꺼냈다.
“재능이없는데왜그렇게열심히하는거야?”
굉장히무례한질문이었다.게다가자극적이기까지했다.
“...”
오전에있었던싸움에대해부채질을하는걸까.그렇다고하기에는릴리의얼굴에호기심이띄워져있었다.비아냥거린다기보다는부모님에게궁금한것을물어보는순수한아이와같아보였다.
“응?말해줘.대체왜?”
계속이어지는채근에메리는분노의감정이점차가라앉고곤란함을느꼈다.그질문에대한답은쉽게입밖으로꺼낼수없는것이었기때문이다.
허나,눈앞에있는하플링은진심으로대답하지않으면금방알아차릴것같았다.메리는어쩔수없이대답했다.
“···할수있는사람이나밖에안남았으니까.”
“뭘?”
“친구들의의지를이어받을사람이나밖에없다고!”
모든힘을써서입을벙긋거린만큼말하면서분노가생겨났다.그분노는물어보는릴리에대한분노라기보다과거어리석고이기적이었던자기자신에대한분노였다.
메리는외침과함께팔을휘두르면서도아차싶었다.결과적으로그화풀이를자신이아닌조그마한아이에게하고있었으니까.스스로생각하기에도너무나한심스러운일이었다.
갑작스러운메리의행동에릴리는당황하기보다꺄핫소리를내며냉큼발을옮겼다.그리고방금메리가했던말과자신이아는정보를합쳐그녀의심정을유추했다.
쏴와와.
릴리가생각하는것과동시에정적이찾아왔다.그정적을메꾸려는듯비가뺨을따갑게때렸다.
“그거알아메리?”
생각이끝난릴리는메리에게다가갔다.이어서누워있는메리옆에쭈구려앉아양손으로턱을괴었다.
“네가교수님을피하는건모두가다알고있지만,교수님은사실널믿고있어.”
“······나를?”
릴리는거짓말을했다.
“응!교수님본인에게직접들었거든.그리고···.”
“아까했던말은미안해.”
하지만이어서나온말은진심이었다.
“생각했던걸그대로입밖으로꺼낸건맞지만심한말이었던것또한맞으니까.과거의일을들먹였던건사과할게.”
말을하면서도입가와눈매가올라가있는릴리.웃고있는건변함없었다.
하지만정중하지는않더라도평소보다낮은목소리에메리는릴리가거짓말을하지않는것같았다.
“...”
저렇게시원하게사과하면뭐라할말이없었다.
그리고따지고보면릴리가과거자신의친구들을모욕한적은없었다.그녀가했던말은정확히‘지휘를그따위로하니까동료들이죽은거잖아!’였으니까.
결국자기자신의잘못을그대로지적한것이다.메리의머릿속에서이번에도잘못한건자신이아닐까하는부정적인생각이차올랐다.과거에도그랬던만큼.
그에이걸자신도입밖으로솔직하게꺼내며사과해야하는건가갈팡질팡했다.
이어서자신도모르게입을열려는순간.
“교수님에게얼른가봐.지금널기다리고계셔.”
릴리가먼저말을꺼냈다.
“···기다리고있다고?”
릴리의말을들은메리의머릿속이순식간에새하얘졌다.이어서착잡한표정을지었다.릴리는빙긋웃으며말을이었다.
“응!거실흔들의자에앉아가지고네가오기를기다리며시간을재고있던데?”
릴리의명랑하게말을계속했다.구체적으로묘사까지해주니메리의머릿속에서는아서의모습이그려졌다.
수많은촛대사이에어색하기짝이없던눈동자가없는얼굴.손바닥에느껴졌던딱딱한의족과진한알코올냄새.자신을꿰뚫려는듯이지그시얼굴을가져다대고소리치는그상황이너무나도무서웠다.
“우욱.”
껄끄러운나머지가고싶지않은마음이굴뚝솟아올랐다.하지만자신의몸이의지와는상관없이기계적으로움직이기시작했다.
찰팍···찰팍···.
메리는힘겹게몸을일으켜질퍽질퍽한진흙에한발씩내디뎠다.릴리는멀어져가는메리를보며생각했다.이것으로오늘있었던빚은조금갚은걸까하고.
*
오두막안은따듯했다.뜨거운열기를내뿜는난방용마도구가있어서였다.벽난로도딱히필요없었다.
학생들은점심식사를마치고2층에서각자취미생활을하고있었다.민철은욕실에아무도없는틈을이용해씻고있었다.
아서는환하게조명을켜기보다는옅은조명들을여러개켜서거실분위기를아늑하게만들었다.이어서조그마한전기등을작동시켜책에만집중할수있게끔빛을쐈다.
책을읽기전,따듯한홍차를한잔마시며흔들의자에몸을기대고있었을때였다.
“···교수님.부르신다고하셔서찾아왔습니다.”
덜컹거리는소리와함께문밖의비바람과함께진흙범벅인메리가들어오는것이보였다.그녀는아서에게용무가있었으니일직선으로다가갔다.
“제가불렀다고요?”
아서는처음듣는소리에살짝인상을썼다.
“그말을누구에게들었습니까?”
“릴리입니다.”
“아.”
아서는탄성을내뱉었다.릴리라는이름이나오자마자납득이되었기에.
확실히현장학습이끝나기전,메리와한번대화를나눠야겠다는생각은하고있었는데이렇게빨리직접적으로부딪히게될줄은.
망설이고있던자신이바보같이느껴지는상황이었다.동시에릴리에게고마운마음이들기도했고.
“그럼의자가져와서제옆에앉으실래요?”
이기회를그냥날릴수는없는노릇이었다.아서는마음속으로릴리에게감사의인사를전하고자리에서일어났다.
“···알겠습니다.”
그리고메리가다가와서의자에앉아있는동안아서는쇠꼬챙이를집었다.이어서들고있던쇠꼬챙이끝에마력을불어넣어소리차단마법진을그렸다.
메리와연관이있는과거에있었던일에관해다른사람이듣기를원하지않았으니말이다.
“방금그리신것은무엇인가요···?”
메리는살짝겁을먹은채질문했다.
“소리차단마법진입니다.저와나누는대화를다른사람이듣지않기를바라지않습니까?”
아서의말에메리는살짝고개를끄덕였다.
“그동안잘지내셨습니까.”
이어서나온아서의말에도고개를끄덕였다.
“팀원들이랑은잘맞습니까?”
메리는이제야고개를흔들었다.
“이유는무엇이라생각합니까.”
“···제가미숙하기때문이라생각합니다.”
딱히추궁하지도않았는데메리는절로겁먹은채대답했다.어깨는움츠려있었고목소리는너무작아서집중하지않으면들리지않을것만같았다.
한스나다른학생들에게하는것과는전혀다른행동들이었다.
“그런것만은아닐거라생각합니다.오히려미숙하지않은학생들을찾는게더힘드니까요.”
아서는흔들의자에다시앉으며메리를바라보았다.
“제생각에는팀원을너무걱정한나머지그런일이일어난게아닐까합니다.”
“팀원을너무걱정해서요···?”
“네.”
아서는목소리를몇번다듬고말을이었다.
“매사에너무소극적으로대처하는나머지,더커다란위험을보지못하고전투의양상이더힘겨워진 것 이겠지요.”
아서는그말을시작으로민철에게들었던전투내용들을떠올리며메리에게풀어주었다.
어떤상황에서어떻게대처하는게더좋았을까부터,어느정도까지팀원들을믿었어야했는지에관하여.
한동안깊은대화를나누었다.메리는공포와불편함을느끼면서도그자리를피하지않았다.강해지기위해서,그리고과거의자신보다나아지기위해서는어떤한일이든감내할생각이었으니까.
“아,그리고.”
“학원도시에서당신의지도를맡겠다는 교수가얼마없다고들었습니다.”
아서가문뜩떠올린듯한말에메리는입을다물었다.비밀은아니었지만아무에게도얘기하지않은내용이었기에.
“...”
“이번에친해진교수님이있으니말씀드리겠습니다.”
“교수님은···.”
처음이었다.메리가먼저자신의의견을꺼내는것은.
“제가밉지않으신가요?”
“음···.”
메리는심장이쿵쾅쿵쾅뛰었다.그리고괜히말했나싶었다.방금까지전술에대해얘기할때와는달리,집중할거리가없어서과거의일이되뇌어졌다.
아서는그런메리를위아래로훑어보았다.메리는시선이닿자파들파들몸을떨었다.
“지금은뭐. 괜찮습니다.”
메리는안도의한숨을내쉬었다.그런데아서의말은아직끝난게아니었다.
“하지만.”
“다른사람의말을듣지도않고 자신의책임에서회피하려하던그고집불통시절로돌아간다면싫어질것같네요.”
아서는옅게웃으며말했다.괴롭힌다기보다는씁쓸해보이는그런미소였다.
“그일은···죄송합니다.”
메리의얼굴이확붉어졌다.이어서아서를쳐다보지도않고연속적으로고개를숙였다.
이어서예전부터준비했던사과의말을잔뜩꺼내려할찰나였다.아서는손바닥을들어메리가말하는것을멈추게했다.
“저는고해성사같은말을들으려는게아닙니다.그저···.”
아서는잠시과거에있었던일을되뇌었다.그리고거기서느꼈던감정을그대로입으로꺼내었다.
“과거에있었던일은아직안타까운일이라생각할뿐입니다.”
메리는아서의말을듣자마자눈망울에눈물이고였다.그사건의얘기만나오면감정선이자연스레낮아지는것도있었고,말하는사람이같은일을겪었었기에더욱공감이되어서그런것도있었다.
“당신은그들의몫까지해내야합니다.지금도할수있을수있다고생각합니까?”
“잘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메리는망설임없이대답을내뱉었다.
“제가해야만하는일,아니저밖에할수없는일이라생각합니다.”
아서는만족한듯옅게웃었다.
“좋습니다.그럼저번여객선위에서보여주었던그어중간한모습은보여주지마시고···.”
아서는흔들의자팔걸이를검지로툭툭쳤다.
“릴리에게고맙다고말한다음화해하세요.이번현장학습제가메리에게주는첫번째과제입니다.”
메리는아서의말을듣고살짝눈동자가떨렸다.무엇을고마워해야할지몰랐으니말이다.이내고개를끄덕이고는2층으로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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