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양이의 제자-89화 (89/154)

〈 89화 〉 88화 ­ 무인도에서 마력 없이 마법을 (1)

* * *

쏴아아.

파도소리가들렸다.바다의냄새가났다.햇빛이일직선으로내려와온몸을태우려는듯이강하게내리쬐고있었다.

그것이따갑게느껴졌다.그래서아서는서서히눈을떴다.잠들기전의기억이떠올려지지는않았지만,의식을잃었다는것이면분명자신도모른채잠든것이리라생각하며.

손발의쥐락펴락했다.이어서까끌까끌한모래의감촉을느끼며마력을한번순환하려고했는데.

“!!!”

마력이느껴지지않았다.

“...”

곧바로찾아온것은분노였다.동시에공허함이엄습했다.조심스레오른손을들어심장에가져다대도텅비어있다는느낌만남아있었다.

“···씨발.”

얼마나더가져가야직성이풀리길래.인생을몇번이나나락으로떨어트려야만족하길래.

신이라는작자가역겹게느껴졌다.

하지만다행히그분노는금세식어갔다.몸을일으켜주위를둘러본순간,멀리있는누군가를발견했기때문이다.

“아.”

그흐릿한형체를유심히관찰했을때아서는깨달을수있었다.마력이없어진건자신뿐만이아니라는사실을.

새근새근.

가까이걸어가서확인했다.그형체는확실하게민철이라는것을알수있었다.파도에밀려온쓰레기더미와같이보였던것은,그녀의꼬리가바닷물에젖은채로뒤엉켜있었던탓이었다.

“음냐···.”

이따금씩뒤척이며자고있는민철.반지가껴있음에도불구하고변신은풀려있었다.분명자의로변신을풀지않았을 터.무엇보다그녀에게서도마력이느껴지지않았다.

정황을파악한아서는다양한생각을머릿속으로정리했다.몇분동안생각들을이어갔을때였다.생각들은점차톱니바퀴처럼맞물려갔다.

“하.”

가능성이가장높은하나의결론.

‘이것이현장학습평가인가.’

아서는주먹을꽉쥐었다.누가했는지는몰라도정말고약한방식이라고생각했기에.

‘하지만교수까지평가한다는말은없었는데.’

무엇보다자신과민철이감지하지못할정도였으면세계에몇없는강자라는뜻이었다.그리고이런일을일으킬수있는강자는아서가알고있는한단사람밖에없었다.

‘하워드선생님.’

자신에게첫번째로마법을알려준선생님이었다.황실마법사스텔라에게거절당한직후,스승님이소개해주었던하이엘프이자엠마의스승님이기도하였고.

세계수의이야기꾼이라불리면서스텔라의스승이기도했다.정작본인은그딴제자둔적없다고말을번복했지만.

아서는‘하워드선생님이발현한마법이라면어쩔수없지’라는생각을되뇌었다.

또한 하워드 선생님이 만든 현장학습평가라면클리어기준이있을터였다.그것을알기위해일단민철을깨워서해안가를걸어보는것도좋겠다는생각이들었다.

“으으···.”

때마침민철이깨어날려했다.그녀의이가갈리며눈썹이파르르흔들렸다.아서는그녀의곁에앉았다.그리고이상황을어떻게전달할까고민했다.

스륵.

조금씩눈을뜨는민철.

“잘주무셨나요?”

아서는인사를건넸다.하지만이후에나올상황은전혀예상치못했으니.

“꺄아아아아악!!”

귀청이찢어질것같이 시끄러운 여자의비명.아서는눈썹을찡그린채귀를틀어막았다.

“가,가가가까이오지마세요!!”

의식을찾은민철은겁먹은채손을파닥파닥거렸다.

“네?”

“미안해요!잘못했어요!모든건제잘못이니까혼내지말아주세요!제잘못이에요!”

이어서두팔로자신의얼굴을가리더니오들오들몸을떨었다.무슨트라우마가그녀를자극한것일까.

“진정하세요.”

“네,네넷!”

아서는따끔하게말한뒤해할생각이없다는듯이몇걸음뒤로물러났다.그제서야그녀는눈을힐끔뜨더니이쪽을보았다.

“흐윽···.”

민철은 이런상황에서도아름답게 보였다.땀에젖어속에살갗이비쳐보이는셔츠와허리에안맞는바지.간파마법을사용하지않고맨눈으로보니더매력적으로느껴졌다.

지레겁을먹고새파랗게질려몸을떨고있는데도,발그스레한얼굴과촉촉하게젖은눈을 보니 장난으로라도괴롭히고싶어졌다.

끊이질않는거친호흡그리고축늘어진귀.아서는공포에잠긴그녀를보고계획을조금수정하기로마음먹었다.이대로가다가는협조는커녕안좋은감정만심어줄수도있었으니까말이다.

“혹시학원도시사람이십니까?”

“네?···네네!”

“이름은어떻게되십니까.”

“장민···아니,정나연이에요···.”

‘이게본명이었던건가.’

아서는흔들리는나연의눈동자를쳐다보며짧게끄덕였다.

“처음들어보는이름이네요.소속은어디신가요?”

아서는말을내뱉고는아차싶었다.대답하지못할것을질문한게아닌가하고.

하지만나연은눈알을굴려급하게답을꺼냈다.

“위벨로교수님의조교에요···.”

‘그런교수는없는데요.’

“아아.그렇군요.”

아서는납득한척을했다.일단계속뭐라도말을시켜야진정시킬수있을터였으니.

저벅.

“히익!”

아서가한걸음다가가면나연이그한걸음만큼뒤로물러섰다.그에아서는마음에크나큰상처를받았다.

‘혹시기억을잊은건가.’

아서는그생각을떠올리는것과동시에그럴수도있겠거니싶어질문했다.

“제가누구인지아시나요?”

나연은연신고개를끄덕였다.아서는나연의모습과민철의모습을대조해서,나연이기억을잃지않았다는사실을유추했다.

“그럼같이활동하시겠습니까?”

“···생각할시간을주실수있나요?”

“알겠습니다.”

아서는그말을끝으로잠시자리를비켜주었다.그녀가사라져도금세추적할수있었으니,시야에서보이지않을정도로말이다.

그리고.

예상했던대로잠시다녀온사이나연은사라져있었다.

*

‘여긴어디지?왜마력이사라진거지?’

자고일어나니무인도였다.깨어난시점에서잊을수없는꼬리감촉이느껴져변신이풀려있다는사실을알아챌수있었다.

‘교수님이만든상황일까.’

나연은그질문을머릿속으로수차례반복했다.그리고끝내아니라는결론을내렸다.방금전아서의모습을보고수인으로서내린직감이었다.

‘이렇게몰래도망쳤는데화내시지않으려나···.’

나연은아서를떠올렸다.화내는아서의모습이상상되지는않았지만그가가까이에있을때마다조마조마한것은변하지않았다.

평소에학생들을사랑으로이끌어주신친절한교수님.하지만결국그도남자였다.성욕이있는생물이라는말이다.

가뜩이나남녀단둘이있는상황.지금까지봐왔던사람들중위기일때급변하지않는사람을찾는게더힘든일이었다.

조심해서나쁠것은없으리라.

무엇보다대인기피증과남성공포증때문에자연스레다리가움직이는것을참을수없었다.어떤상대든곁에있으면얼굴이굳고호흡이거칠어지는건어쩔수없다는말이다.

반지를사용해민철이라는가면을쓰고있으면괜찮았는데,골반위에있는꼬리가계속엉덩이에닿을때마다다시금깨닫게되었다.자신은민철이아니라고.

‘마력을쓸수없는난쓸모가없을거야···.’

이러나저러나적당히숲속에서목숨을부지하고있으면교수님이알아서하실터였다.교수님은완벽에가까운사람이었으니까.

또한친절하신분인만큼구조대를발견하면신호를터트려줄것이다.

‘그때까지만숨어있자···.’

그렇게나연은혼자숲을떠돌았다.헌터시절에배운약간의서바이벌지식을잘만활용하면몇주간쉽게버틸수있을거라생각했다.지금까지봐왔던인터넷생존영상도쉽게쉽게가르쳐주었고말이다.

어느덧해는가라앉고어둠이찾아왔다.

“흐윽···.왜안피워지는건데···.”

결국그생존지식들이마력을다룰줄아는헌터기반이었다는것을깨닫는데는오래걸리지않았다.이에가장많은시간을들였던불은피우지도못했다.

나연에게마력이없는삶은지옥이었다.거기다가도시에서자라숲에대해는거의지식이전무했으니···.

밤이찾아온만큼앞은깜깜해아무것도보이지않았다.달빛도흐릿흐릿해서청각에의존해야했는데,가끔씩살같이풀에베여그마저도제대로집중되지않았다.

“···교수님.”

이럴거면그냥붙어있을걸이라는생각이가장먼저들었다.교수님이자신의생각과는다르게무서운사람이라고해도목숨만은붙여줄터였기에.

“우욱.”

왠지모르게속도울렁거렸다.먹은거라고는계곡물밖에없었는데도.

또눈이점차흐려지는것같았다.단순히어두워서가아니라저주에걸린듯간질거리기도했다.

아오오오오!

갑자기들리는늑대소리.

엎친게덮친격이었다.

“히이이익!”

꽤나멀리서들렸지만무섭기그지없는건마찬가지였다.그래도자신의피가1/4정도늑대수인의피인만큼말은통하지않을까하는생각으로억지로다리를내딛였다.

부스럭.

무엇인가가풀을헤쳤다.그리고자신에게다가오고있었다.

“교수님···?”

나연은가슴속의희망을입밖으로꺼내불렀다.학생들을매일같이걱정했던그라면자신을찾아올수도있었겠거니싶어서.

하지만.

크르릉···.

“아아···.”

기대를 배신하고 나타난 것은 늑대들이었다.그것도들개와는전혀다르게덩치가산만한.어두워서무슨색인지정확히보이지는않았지만지금은그게중요한게아니었다.

“아,안녕?”

일단무턱대고늑대수인의피를믿으며인사를건넸다.

크아아앙!!

“꺄아아악!!”

쓸모없는일이었다.허튼생각이곧바로깨지고재빨리등을돌릴찰나였다.

빡!!

깨개앵!

어디선가돌멩이가날라와늑대의얼굴을정통으로가격했다.그돌멩이는목적을달성하자쿵소리와함께주변에떨어졌다.

마력만있었으면겨우늑대따위였겠지만,마력이없는일반인들에게는공포의대상인늑대.

“괜찮으신가요?”

허나,마력이있든없든아서에게는 순한 양과 다를 바 없었다.

아서는돌을넝쿨로엮은돌도끼를꽉쥐고있었다.단순히발자국을보며나연을쫓아온게아니라,식량을찾고도구들을만들면서쫓아온것이었다.

아서는땅에다리를박아넣듯이쿵.쿵.발을굴렀다.

압도적인 포식자의 위용.

다섯마리늑대들은생물적으로상대가안된다는것을깨달았는지잽싸게깨갱거리며도망쳤다.

과거프리실라가말하길.

‘너는마력이없는세상이었으면수준급강자였을거야.’

“혹시나해서따라왔는데역시이럴줄알았습니다.앞으로는함께 다니죠.”

“아···.”

나연은앞이흐릿해서아서가정확히보이지않았지만,그 믿음직하고 다정한목소리에안도의한숨을 절로 나왔다. 이어서긴장이풀리고너무나도지친나머지그대로기절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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